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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거리는 비너스의 머리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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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거리는 비너스의 머리칼

2015.10.21 17:00
[코스모스 포토에세이 ⑥] 1년에 지구질량 내뿜는 거대한 바람
비너스의 탄생 - pixabay 제공
비너스의 탄생 - pixabay 제공

 

우주에도 바람이 불까. 공기가 없는 우주공간에 웬 바람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주에도 바람이 분다. 물론 지구에서처럼 공기의 압력 차이 때문에 생기는 공기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바람은 아니지만.
 
지난 5월 9일 미국의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에서 공개한 허블우주망원경의 영상을 보면 우주에서 부는 바람이 뺨에 느껴진다. 마치 보티첼리의 유명작품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머리칼이 찰랑거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15세기 후반에 그린 이 작품에는 늘씬하고 눈부신 알몸의 비너스가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커다란 조개껍데기 위에 수줍은 듯 서있다.
 
미의 여신 비너스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천공(天空)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아들 크로노스가 싸우는 와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우라노스가 포악해지자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와 짜고 몰래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 바다에 던졌다.

 

바다에 떠다니던 성기 주위에는 하얀 거품이 나타났고, 이 거품 속에서 아름다운 비너스가 탄생했다(비너스에 해당하는 그리스신화의 아프로디테는 거품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프로스에서 유래했다). 알몸으로 태어난 비너스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도움으로 키프로스 섬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비너스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로부터 받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여러 신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다시 보티첼리의 작품을 보자. 바다 거품에서 탄생한 알몸의 비너스가 서풍에 밀려 이제 막 섬에 다다른 장면을 그린 이 작품에는 조개껍데기 위의 비너스에게 바람을 부는 제피로스와, 알몸의 비너스에게 보랏빛 망토를 건네는 호라이가 등장한다. 비너스의 머리칼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이유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바람을 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영상에 비너스의 찰랑거리는 머리칼 같은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선가 서풍의 신 제피로스처럼 바람을 불고 있지 않을까.

 

허블우주망원경 - pixabay 제공
허블우주망원경 - pixabay 제공

 

● 서풍의 신 제피로스 역할 하는 별
 

영상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볼프-레예’라는 특이한 종류의 별이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역할을 한다. 볼프-레예 별은 거의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무겁고 뜨겁고 밝은 별이다. 특히 크기에 비해 두꺼운 대기를 가지는데, 바람의 형태로 상당한 물질을 우주공간으로 내보낸다. 별에서 나오는 바람은 항성풍이라 불리는데, 사실 전자, 양성자, 이온 같은 대전입자의 흐름이다.


볼프-레예 별의 경우 1년에 지구 전체에 해당하는 질량을 항성풍으로 잃어버린다. 태양에서 나오는 바람인 태양풍에 비하면 1억배나 많은 양이다. 태양풍이 코끝에 살짝 느껴지는 미풍이라면 볼프-레예의 항성풍은 한반도를 강타하는 초특급 태풍인 셈이다. 실제 볼프-레예 항성풍의 속도는 초속 수천km에 달한다.

 

볼프-레예 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엄청난 규모이기 때문에 제 살을 깎으며 자신의 수명을 꽤나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주위 우주공간에도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허블우주망원경의 영상을 보면 항성풍이 주위 가스와 충돌해 만들어낸 충격파로 인해 가스가 빛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보티첼리가 그린 작품 속의 비너스가 막 태어나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머리칼을 나풀거리는 모습인 반면, 비너스의 하늘거리는 머리칼을 닮은 볼프-레예 항성풍은 진실을 알고 보니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불길한 폭풍이었던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데,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는 장면이다.
 
한편 4월과 5월 사이에 미의 여신 비너스(금성)를 비롯해 5개의 행성이 저녁하늘에 나란히 모였다.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모습은 40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비너스는 올여름 내내 저녁하늘에서 매우 밝게 빛나며 자신의 미를 한껏 뽐낸다.

 

만일 5행성이 모인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비너스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보자. 또 가끔 산들바람이 뺨을 스치면 그녀의 머리칼처럼 찰랑거리던 볼프-레예 항성풍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이충환 기자의 ‘코스모스 포토에세이’를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우주 속 별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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