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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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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2015.05.17 18:00
[과학기자의 문화산책] 프랙탈과 원주율,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몽환적 스릴러
자음과 모음 제공
자음과 모음 제공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 ‘일곱개의 고양이 눈’ 中

 

 

기묘한 제목만큼이나, 두꺼운 양장본 표지 아래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섬뜩한 문구를 품은 소설 ‘일곱개의 고양이 눈’은 원주율(π)과 프랙탈을 닮았다.


원주율은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눴을 때 나오는 끝이 없으면서도 반복되는 구간도 없는 무리수다. ‘프랙탈 구조’는 세부 구조를 확대해 볼수록 전체 구조와 유사한 형태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복잡한 구조를 말한다. 리아스식 해안선이나 나뭇가지 구조가 그 예다.


소설에 왜 뜬금없이 프랙탈 구조일까. 작법용어를 빌려오자면 액자구성 쯤이 적당하다. 으스스하면서도 섹시한 문구에 홀려 책장을 넘기면 연쇄살인마를 주제로 하는 폐쇄형 인터넷 카페 멤버들이 고립된 산장에 모여 있다. 각자의 본명도 모른 채 오직 카페에서 사용하는 닉네임만 아는 채로.


도착하지 않은 주인을 기다리며 그들은 역사 속 살인마 중 어떤 살인마가 가장 주목할만한지를 술안주 삼아 웃고 떠든다. “화려한 콜렉션을 완성한 사체절단 전문 연쇄살인범 에드워드 게인이 최고”라며 한 멤버가 떠들면, “사체절단이란 행위 자체보다는 범죄 심리에 더 주목해야 옳은 게 아니냐”며 다른 멤버가 빈정대는 식이다.


그리고 스물 몇 페이지 쯤 넘겼을 때 산장에서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다. 수전 손택의 책 ‘타인의 고통’에서 말한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지켜보며 안도감과 함께 쾌감을 느끼는 비특이적인 관음증은 여기서 끝이 난다. 술안줏감이었던 연쇄살인마가 산장 속에 고립된 그들을 노리기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거기서 몇 장을 더 넘기면 산장에서 벌어진 악몽과도 같은 살인 사건은 영화의 시나리오로 전락한다.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가 흐르는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치명적인 독극물로 살인을 준비하는 수수께끼 남성은 자신의 여동생이 앞선 ‘시나리오’의 비중 있는 조연으로 캐스팅됐지만 “바로 당신 때문에” 그 꿈이 꺾이고 자살했다고 희생자에게 속삭인다. 희생자는 이미 온몸이 마비돼 몸을 움직일 수도, 입을 뻥끗할 수도 없다.


독으로 찬 주사기를 든 채로 남자는 말한다. 당신이 내 여동생을 성폭행하는 동안 어린시절부터 간질을 앓는 나는 삐걱대는 침대 맡에서 입에 거품을 문 채로 부르르 떨고 있었노라고.


그리고 책장을 다시 넘기는 순간, 여동생과 성폭행, 간질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시 액자 속 이야기로 퇴화한다. 액자 속의 액자 속의 액자, 소설 속의 소설 속의 소설. 영락없는 프랙탈 구조지만, 그럼에도 결코 반복되는 적이 없다. 메아리치는 공통적인 코드는 있지만 쉴 새없이 변하는 멜로디가 π를 연상시킨다. 소설에 등장하는 한 모텔의 방 번호가 314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


이 책에 등장하는 끊임없이 새로우면서도 서로 중첩되는 이야기는 세헤라자데가 목숨을 걸고 지샌 천일 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작가는 미궁과도 같은 이 소설의 끝을 맺는 마지막 문장으로 그 사실을 독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주입시킨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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