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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집단의 믿음이 아이스크림 맛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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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집단의 믿음이 아이스크림 맛을 규정한다

2021.03.07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민트 맛이 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가. 민트도 좋아하고, 초코도 좋아하지만, 민트초코는 곤란하다는 사람이 많다. 세상이 분열하고 있다.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서로 반목한다. 이를 묶어줄 구심점을 찾기 어렵다.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서로 상대를 존중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그렇다. 하지만 민초파와 반민초파는 서로를 비난하며 끝없는 정쟁을 일삼을 뿐이다. 인류 공동의 적, 감염병이 여전히 기승인데, 세상은 집단을 가르고, 편을 가르며, 갈가리 찢기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민초를 싫어하는 철수. 그러나 주변 사람은 죄다 민초파다. 그렇다고 반민초파를 찾아 이사를 가고, 이직을 하기도 어렵다. 민초를 좋아하는 영희, 그러나 주변 사람은 죄다 반민초파다. 민초파라고 이야기를 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 지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철수는 민초파로 위장하고, 영희는 반민초파로 위장한다. 그러나 마음은 늘 콩닥콩닥. 골방에서 불을 끄고, 커튼을 내리고 민초를 즐기는 영희. 그리고 먹기 싫은 민초 아이스크림을 입에 퍼담으며 위선적인 미소를 짓는 철수. 

 

릴리퍼트와 블레훠스크의 계란 전쟁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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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먹기 전에 더 굵은 쪽 끝을 깨는 것이 모두가 지키는 예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현 국왕 폐하의 조부께서 오랜 관습에 따라 껍질을 깨다가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국왕 폐하께서 계란의 가는 쪽 끝을 깨야 하며 위반 시에는 엄하게 벌한다는 포고를 내리셨습니다. 백성들은 이 법에 몹시 분개하였고, 그 문제로 폭동이 여섯 번 일어났습니다. 어느 국왕은 목숨을 잃었고, 어느 국왕은 왕좌를 잃었습니다. 가는 쪽 끝으로 계란을 깨느니 차라리 죽음을 감수하겠다고 한 사람의 수가 1만1000명이었습니다.

 

이 논쟁을 다룬 두꺼운 책이 수백 권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굵은 쪽 옹호자'들의 책은 오래전에 금서가 되었고, 그쪽 무리 전체가 법에 따라 공직에 진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브룬드레칼 54장에 나오는 대예언자 러스트로그의 말에 의하면 "진실한 신자들은 편한 쪽으로 계란을 깰지어다"라고 했죠. 이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계속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난 36개월 간 해군과 육군 4만 명을 잃었습니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한 대목을 옮긴 것이다. 릴리퍼트의 주민 중 상당수는 절대 가는 쪽으로 계란을 깰 수 없다면서 적성국이던 블레훠스크로 도망갔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원래 소인국 릴리퍼트는 내부에서도 심각한 분란이 있었다. 높은 굽의 구두를 신는 집단과 낮은 굽의 구두를 신는 집단이다. 원래는 높은 굽을 가진 사람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국왕이 제도를 바꾸어 버렸다. 모든 관리는 낮은 굽을 신는 사람만 하도록 정한 것이다. 물론 국왕의 신도 낮은 굽이었다. 


높은 굽 사람과 낮은 굽 사람의 반목은 점점 심해져서, 심지어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말도 섞지 않았다. 릴리퍼트에는 높은 굽 사람이 더 다수였지만, 요직에는 낮은 굽 사람이 더 많았다. 권력은 낮은 굽 사람이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국왕의 아들, 즉 왕위 후계자가 점점 높은 굽에 관심을 보이면서 문제가 생겼다. 왕자는 한 쪽에는 높은 굽을, 한 쪽에는 낮은 굽을 가진 구두를 신었는데, 그래서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다. 낮은 굽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졌다. 왕자가 점점 높은 굽을 신는 것 같았다. 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자명했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본성

 

인간은 차이를 잘 식별하는 동물이다. 세상에 대한 지식도 상당수는 차이에 관한 지식이다. 공기는 무엇인지 물으면 대부분 우물쭈물하는데 ‘공기는 물보다 가볍다’라고 하면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공기와 물에 대해서 이제 알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경향은 물리적 지식보다는 사회적 지식에 대해서 더 두드러진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 흑인과 백인과 황인을 나누는 본성이다. 사실 황인종이라는 용어는 참 이상한 말인데, 심슨 가족을 제외하면 세상에 노란 피부색은 없다. 그러나 일단 그렇게 나누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들에 대해서 ‘이해’했다고 여긴다. 


민초파와 반민초파의 대결은 찍먹파와 부먹파의 반목이나 하와이언 피자에 대한 입장보다도 더 격렬하다. 민초를 먹느니 그냥 치약을 먹으라고 저주하기도 하지만, 사실 민초 아이스크림은 아주 인기가 높은 제품이다. 초콜릿의 달콤함만 남기고, 쓴 맛은 민트가 커버해주어 좋다는 것이다. 민초파는 치약 이야기만 나오면 격분한다. 사실만 말하자면, 초콜릿에 민트를 섞어 먹는 전통은 민트향 치약보다 더 오래전에 생겼다. 엄밀히 말하면 치약이 민초를 따라 한 것이다.  


민초파와 반민초파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느 하나의 편에 서기를 강요당한다. ‘민초를 반만 좋아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민초파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에는 참 무의미한 논쟁이 많다. 지구가 둥근 지 혹은 평평한 지, 계모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지, 세상은 빠르게 바뀌어야 하는지 천천히 바뀌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쟁이다. 논쟁을 끝낼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거나(망원경으로 월식을 보면 된다), 논쟁 자체의 생산적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예송논쟁)다. 진보와 보수의 싸움도 알고 보면 모순적이다. 종종 진보주의자는 세상이 얼른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절대 고수하려고 하고, 보수주의자는 전통과 안정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급진적인 방법을 불사한다. 중요한 것은 주장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런 방법으로 차이를 부각하여, 내 편과 네 편을 나누어지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민트초코를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맛있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맛있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좀 꺼려지지만, 역겨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리고 네가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 여부다. 만약 민초파냐 반민초파냐에 따라서 출세 여부가 결정된다면, 자칫하면 역적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다면, 더 이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우리는 어떻게든 어느 쪽 편에 서야 한다. 종종 자신의 취향을 위장하고,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척 혹은 싫어하는 척 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불순분자를 식별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진다. 민초파로서 성공하려면, 자신의 순수한 민초성을 과시하고, 충성심을 입증해야 한다. 반민초파도 마찬가지다. 집단은 점점 양극단으로 나뉜다. 민초파로서의 순수성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반민초파에 대한 강력한 적개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초를 싫어하는 자식과 연을 끊는다. 반민초파도 똑같다. 민초파에 대해 테러를 가한다. 실수로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면 자결을 시도한다. 이런 식으로 순수함을 증명해야 집단 내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똑같은 이유로 릴리퍼트에서는 늘 당쟁이 끊이지 않았고, 주변국과도 수만 명이 사망하는 전쟁을 벌인 것이다. 인류사의 수많은 비극이 알고 보면 대개 이런 식이다. 

 

도덕적 각성이라는 처방

 

시중에 판매중인 다양한 민트초코 상품들. 구글 갈무리
시중에 판매중인 다양한 '민트초코' 상품들. 구글 갈무리

극단적인 집단 간 편견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동안 정말 수많은 해결책을 나왔다. 그런데 대부분 행동주의적 접근이다. 즉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집단 간 편견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가능할까? 어린 시절부터 민초 아이스크림을 점심시간에 제공하면 반민초파를 일소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 하와이안 피자에 대한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다. 아니면 걸리버 여행기처럼 계란 깨는 방법을 기준으로 세상이 나뉠 수도 있다.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진화적 본성이다. 고양이와 호랑이를 차별 없이 대하던 조상은 자손을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차이를 만들고, 집단을 구분한다. 기존의 차별이 사라진 곳에는, 새로운 차별이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유연한 인간성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필자가 아는 어떤 대학원생은 세상의 편견과 선입관, 차별에 대해 늘 깊이 분노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A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진 A를 절대 동료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대학원생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지적해주려다가, 왠지 그랬다가는 나도 그에게 차별받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도덕적 각성을 통해서 세상에 관한 편견과 선입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적 각성이든 법정 온라인 교육이든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편견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야말로 지독한 편견이다. ‘배우지 못한 나쁜’ 인간이라서 편견을 가지고 주위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가 '인간’이라서 그러는 것이다.

 

동종선호와 양극화

 

매슈 잭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미국 상원의 법안 투자에 관해 연구했다. 흥미롭게도 민주당 바버라 복서 의원과 공화당 마코 루비오 의원은 거의 모든 법안에 대해 정반대의 투표를 했다. 즉 한 명의 투표 결과를 알면, 다른 한 명의 투표 결과를 상당히 정확하게 (반대로)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 메이지 히로노 의원과와 잭 리드 의원은 무려 98%의 법안에서 동일한 투표를 했다. 쌍둥이나 마찬가지다. 


과학적 사실이나 세상에 대한 지식은 이런 식의 동종선호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체는 철없는 어린 아이의 폭로로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었는데, 그건 임금님의 나체가 분명히 눈에 보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믿음이나 의견처럼 다양한 가치의 영향을 받는 정보나 미추에 대한 입장과 같은 주관적 정보는 동종선호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주변에 누가 있고,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정보는 끊임없이 반복하여 순환된다. 나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어떤 주장을 친구에게 듣고 아주 반가운 느낌이 든 적이 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주장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친구는 그러한 주장을 어떤 대중 과학 매체에서 읽었다고 했다. 고무된 기분이 들어 어떤 매체인지 물었는데, 동아사이언스였다. 내가 쓴 글이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생각은 점점 반복 강화되고, 한쪽으로 편향된다. 


민초파와 반민초파의 대결은 일종의 집단적 유희로 지속할 테지만, 더 중요한 사회적 갈등에 관한 격렬한 대립도 여전히 지속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편협한 시각에 갇혀서 자신의 주장을 계속 주변에 메아리치게 만들거나 혹은 썩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생존을 위해 주변의 의견에 동조하는 척 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는 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가득해질 것이고, 민초파의 주변에는 온통 민초파가, 반민초파의 주위에는 온통 반민초파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민트와 초코의 진짜 맛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집단의 믿음이 민초 아이스크림의 맛을 규정할 것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인간이 겪는 필연적인 어리석음이다. 진화는 인간의 지혜를 추동하지 않는다. 설령 어리석음이라고 해도 개체의 적합도를 높일 수 있으면 진화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지혜보다는 어리석음이 더 유리한 형질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주와 인간의 어리석음, 오직 이 두 가지만이 무한하다. 하지만 우주가 무한한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휴먼 네크워크》를 쓴 매슈 잭슨 교수는 천재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들어 집단 지성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아인슈타인 혹은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빌린 가짜 명언이다. 명언의 진위가 불분명한 사실 자체가 이 명언이 가지는 진짜 교훈인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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