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강석기의 과학카페]우리 몸에는 생체시계 네트워크가 있다

통합검색

[강석기의 과학카페]우리 몸에는 생체시계 네트워크가 있다

2021.03.02 15:3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논문을 읽다가 보면 가끔 저자가 고인(deceased)으로 표기된 경우가 있다. 논문을 제출한 뒤 학술지에서 검토를 하는 사이에 사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게재된 논문이 유작인 셈인데,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월 12일자에 이런 논문이 실렸다. 생체시계와 몸의 항상성에 대한 리뷰로, 두 저자 가운데 한 명인 파올로 사소네-코르시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생물화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22일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어떤 분야의 동향을 개괄하는 리뷰는 보통 학술지가 권위자에게 집필을 의뢰한다. 사망일과 출간일 시차가 꽤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경우는 사소네-코르시 교수가 집필 중 사망했고 공동저자인 케빈 코로노브스키 박사가 마무리해 제출한 게 아닐까.

 

 

천문학과 생물학의 만남
_지난해 7월 22일 64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파올로 사소네-코르시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생체시계와 후성유전학, 대사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UC어바인(Steve Zylius) 제공
_지난해 7월 22일 64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파올로 사소네-코르시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생체시계와 후성유전학, 대사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UC어바인(Steve Zylius) 제공

1956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난 사소네-코르시 교수는 열두 살 때 형과 함께 아마추어 천문학 클럽을 만들어 활동한 과학영재다. 형제는 10년 뒤 토성 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나폴리대에 조기 입학한 사소네-코르시는 점차 생물학으로 관심을 옮겨 1979년 불과 23세에 효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유전학・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와 미국 소크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유전자 발현 조절에서 중요한 발견을 했고 1989년 유전학・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에 실험실을 차려 연구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관심이 있던 유전자의 발현량이 하루 주기로 오르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생체시계와 관련된 생물학으로 연구의 폭을 넓혔다. 하루 24시간 주기는 지구의 자전에서 비롯되므로 어린 시절 천문학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난 셈이다. 2006년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로 자리를 옮긴 사소네-코르시 교수는 2011년 후성유전학 및 대사 센터를 세워 시간생물학의 지평을 넓혔다. 

 

몸이 지구 자전에 맞춰 리듬을 갖게 해주는 생체시계는 몇몇 핵심 유전자의 산물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24시간 주기, 즉 일주기로 진동하는 회로로 이뤄져 있다. BMAL1과 CLOCK은 Per와 Cry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하고 이들 유전자의 산물이 BMAL1과 CLOCK의 작용을 억제해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소네-코르시 연구팀은 CLOCK이 히스톤 아세틸전달효소임을 밝혔다. CLOCK이 DNA가 감긴 실패(히스톤)를 느슨하게 하는 후성유전학 작용으로 Per와 Cry 같은 표적 유전자의 발현을 늘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NAD+를 비롯한 많은 대사산물 역시 체내 농도가 24시간 주기로 오르내림을 밝혔다. 생체시계와 후성유전학, 대사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말이다.

 

 

생체시계 사이의 네트워크
우리 몸은 일종의 연방국가로, 뇌 SCN의 생체시계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각 장기마다 독자적인 생체시계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섭식 패턴 등 외부 요인이 장기의 생체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이언스 제공
우리 몸은 일종의 연방국가로, 뇌 SCN의 생체시계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각 장기마다 독자적인 생체시계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섭식 패턴 등 외부 요인이 장기의 생체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이언스 제공

‘사이언스’ 리뷰에서 사소네-코르시 교수와 코로노브스키 박사는 몸이 하루 주기의 동적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각 장기의 생체시계 사이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해야 함을 보인 최신 연구결과들을 소개했다. 

 

생체시계라면 뇌 시상하부의 한 조직인 시교차상핵(SCN)이 떠오르지만 사실 우리 몸의 모든 장기는 각자 생체시계를 갖고 있다. SCN의 생체시계는 지구 자전의 결과인 빛과 어둠의 정보를 바탕으로 시간을 맞춰 그 정보를 각 장기의 생체시계로 보내 몸을 하루 시간에 맞춰 최적화된 상태로 만든다.

 

그런데 최근 들어 SCN 생체시계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왔다. 각 장기의 생체시계가 시간을 맞출 때 참고하는 건 맞지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호가 있을 때는 무시한다. 심지어 이렇게 독자적인 생체시계를 운영하는 장기가 그 정보를 다른 장기에 보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소 농도는 몸의 생체시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생쥐를 4시간 동안 저산소(6%) 환경에 두자 간과 폐, 신장의 생체시계 유전자의 발현 패턴이 흔들린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그 방향이나 정도가 서로 달라 Per 유전자의 경우 간은 정점인 시간대가 뒤로 밀린 반면 폐와 신장은 앞으로 당겨졌다(그 정도는 달랐다). 장기 사이에 생체시계 시간이 엇갈리며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연구는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한 저산소 조건이 단순히 피로나 인지력저하 뿐 아니라 고혈압, 심혈관계질환, 당뇨 등 다양한 대사질환의 발생 위험성을 높이는 이유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다. 

 

섭식 행동도 몸의 생체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낮에 활동하는 동물은 낮에 먹이를 먹는다. 반면 사람은 인공조명 덕분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대가 넓어졌다. 그 결과 아침은 거르고 점심, 저녁, 야식으로 하루 세 끼를 먹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2017년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먹는 사람들에 비해 지방조직의 생체시계가 한 시간 늦게 맞춰져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혈당 수치의 오르내림 주기도 밀려 있었다. 반면 SCN의 생체시계는 같았다.


저산소 노출은 각 장기의 생체시계에 다른 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생쥐를 낮에 4시간 동안 저산소(6%) 환경에 두면 간의 생체시계 시간은 뒤로 밀리는 반면 폐와 신장의 시간은 앞당겨진다. 그 결과 생기는 시간의 어긋남이 몸의 항상성을 무너뜨려 각종 대사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PNAS 제공
저산소 노출은 각 장기의 생체시계에 다른 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생쥐를 낮에 4시간 동안 저산소(6%) 환경에 두면 간의 생체시계 시간은 뒤로 밀리는 반면 폐와 신장의 시간은 앞당겨진다. 그 결과 생기는 시간의 어긋남이 몸의 항상성을 무너뜨려 각종 대사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PNAS 제공

 

생체시계 영향력 한계 있어

음식 섭취의 리듬 자체가 깨지면 몸의 24시간 주기 항상성이 더 크게 흔들린다. 일어나서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 자다 깨서도 먹을 걸 찾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난 2019년 학술지 ‘셀 리포츠’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생쥐에게 3시간 간격으로 하루 8차례 먹이를 조금씩 줘 위의 상황을 유도하자(늘 출출한 생쥐는 바로바로 먹어 치운다) 간의 경우 24시간 주기 발현 패턴을 보이는 유전자의 70%가 주기를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격근과 갈색지방조직의 대사 관련 유전자 역시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음식 섭취의 리듬이 깨져도 간의 생체시계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음식 섭취 시간이 교란되면 간의 생체시계는 24시간 주기로 발현하는 유전자의 30%에게만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나머지 70%에 대해서는 통제권을 잃는 것이다. 아니면 이들 유전자가 원래부터 생체시계가 아닌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아 주기적 발현 패턴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장내미생물이 내보내는 대사 산물이 그런 신호물질일 수 있다. 지난 2016년 학술지 ‘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항생제를 복용해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교란돼 이들이 내보내는 대사물질의 양과 조성과 크게 바뀌면서 내장 상피세포와 간의 유전자 발현 주기성이 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를 먹으면 몸 상태가 나빠지며 이런저런 증상이 나타나는 배경일 수도 있다. 이런 결과들은 몸의 주기 항상성에 미치는 생체시계의 영향력이 지금까지 과대평가된 것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생체시계는 하나가 아니다

 

리뷰 말미에서 사소네-코르시 교수는 오늘날 동물의 생체시계로 알려져 있는 ‘PER 진동자(oscillator)’인 BMAL1/CLOCK과 PER/CRY를 핵심부품으로 하는 생체시계가 유일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해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PER 진동자의 핵심부품의 하나인 Bmal1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의 피부 섬유아세포와 간 조직에서 많은 유전자가 여전히 24시간 주기 발현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Bmal1 변이 생쥐의 행동은 주기성을 잃지만, 분자(유전자 산물) 차원에서는 많은 경우 여전히 주기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논문의 저자들은 PER 진동자는 일주기 발현 패턴을 보이는 유전자의 일부를 통제할 뿐이고 나머지는 다른 진동자들이 맡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생체시계의 진화를 보면 PER 진동자는 약 7억 년 전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했다. 초파리와 사람은 생체시계가 같은 유형이지만 식물은 전혀 다른 유형이다(TOC-CCA1 진동자).

 

따라서 진화적으로 오래된 생체시계가 여전히 우리 몸에 존재하며 작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약 25억년 전 미생물이 처음 생체시계를 만들 때 써먹었던 산화환원 경로가 유력한 후보다. 한편 포유류의 등장 이후 진화한 새로운 생체시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 논문에는 29개 유전자가 알려져 있는 ETS 전사인사군을 유력한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올해는 최초의 생체시계 유전자인 Period(주기. 줄여서 Per라고 씀)를 발견한 논문이 실린지 50년 되는 해다. 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생물학부의 시모어 벤저 교수와 대학원생 로널드 코놉카는 일주리듬을 잃은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든 뒤 유전자 분석법을 통해 유전자 하나의 변이가 원인임을 밝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보고했다. 

 

1984년 미국 브랜다이스대 제프리 홀 교수와 마이클 로스바쉬 교수의 공동연구팀과 록펠러대 마이클 영 교수팀이 독립적으로 Per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그 실체를 밝혔다. 그 뒤 다른 생체시계 유전자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핵심부품이 규명됐다. 그 결과 2017년 홀과 로스바쉬, 영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벤저는 2007년, 코놉카는 2015년 사망했다.

 

지난 50년 동안 생체시계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생체시계가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이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소네-코르시 교수의 리뷰를 읽다 보니 생체시계 분야는 아직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새로운 발견이 더 많은 새로운 의문을 낳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흥미로운 분야라는 말이다. 

 

약 25억 년 전 지구 대기의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미생물의 생체시계 회로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다양한 생체시계 회로가 진화했고 동물의 경우 약 7억 년 전 PER 진동자가 나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PER 진동자 외에도 초기에 진화한 산화환원 경로(ROS pathways)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진동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네이처 제공
약 25억 년 전 지구 대기의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미생물의 생체시계 회로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다양한 생체시계 회로가 진화했고 동물의 경우 약 7억 년 전 PER 진동자가 나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PER 진동자 외에도 초기에 진화한 산화환원 경로(ROS pathways)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진동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네이처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관련 태그 뉴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6 + 7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