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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주년 3.1절]독립운동에 참여한 그 시절 과학계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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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주년 3.1절]독립운동에 참여한 그 시절 과학계 인사들

2021.03.01 14:26

 

김용관
김용관

“우리의 모든 생활방법을 과학으로 개선하자! 일체 문화운동의 기초를 과학으로 쌓아 올리자! 다같이 손잡고 과학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분기하자.” 지난 1934년 일제 치하 당시 경성(서울)에서 조직된 과학지식보급회 창립 발기문의 한 구절이다. 독립을 위해 민족의 과학 역량을 키우자는 내용이다.

 

김용관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과학의 날을 제정하고 발명 운동을 이끌며 과학 대중화에 앞장선 과학활동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독립운동가 6인 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과학기술유공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과학대중화 외친 김용관 (1897-1967)

 

김용관 선생은 1918년 경성공전 요업과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도 다녀왔다. 1924년 경성공전 동기 현득용, 박길용 등과 함께 발명학회를 설립했다.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는 근대화와 산업 발전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발명가를 양성하고 연구 기관을 설립하려 노력했다.

 

발명학회는 정치가 윤치호, 시인 주요한 등의 저명 인사를 끌어들이며 조직을 재정비했다. 1933년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하며 과학 대중화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1934년에는 찰스 다윈이 세상을 뜬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했습니다. 이날 서울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기념식이 열렸고, 과학 강연과 과학기설 견학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조선중앙일보사가 제작한 과학데이 포스터 - 네이버 한국잡지백년2
조선중앙일보사가 제작한 과학데이 포스터 - 네이버 한국잡지백년2

이는 조선중앙일보사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여운형,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 보성전문 (현 고려대) 교장 김성수(1891-1955) 등이 참여한 과학지식보급회 결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제는 이들의 활동을 경계했고, 1938년 5회 과학데이를 추진하던 김용관을 체포했다. 결국 과학지식보급회도 해체되고 말았다. 최초의 과학대중화 운동은 전시 총동원 체제를 추진하던 일본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됐다. 과학운동을 통해 과학기술을 민족의 과제로 제시했지만, 사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업적은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재조명됐다. 

헤이그 밀사이자 수학자, 이상설 (1870-1917)

 

이상설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돼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을 오가며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가 수학 연구와 보급에도 기여한 수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900년 우에노 기요시의 근세산술을 번역편집한 산술신서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이상설이 간도에 세운 서전서숙에서 교재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를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수학 교육의 아버지로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주목할만 하다.

의학으로 독립운동 도운 서재필 (1864-1951), 김필순 (1878-1919)
 

 

독립신문 발행인 서재필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을 거쳐 미국에 망명한 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고생하다 다행히 부유한 후원자를 만나 공부를 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의대에 진학해 1893년 의사가 된다.

 

그는 1895년 귀국해 김홍집 내각에서 고문으로 일하다 이듬해 독립신문을 발간했다. 독립협회도 설립했다. 이후 대한제국 정부와의 갈등으로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김필순은 1899년 지금의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에서 통역으로 일했다. 1908년 제중원을 졸업해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중 한명이 됐다. 1907년 신민회에 가입해 독립 운동을 하기도 했다.

 

1911년 중국 간도로 가 한인 마을을 개척하고 병원을 운영하며 독립 운동을 이어갔다. 모든 수입을 독립군자금으로 썼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19년 일본인 의사에 의해 독살당했다.

 

※이 기사는 본지 2018년 3월 1일자 '99주년 삼일절, 독립운동 참여한 과학자들을 기립니다' 기사를 다시 정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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