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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위험한 출산, 더 위험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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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위험한 출산, 더 위험한 믿음

2021.02.07 06:00
픽사베이 제공
수백만 년 동안 인류에게 임신과 출산은 자신, 그리고 아기의 생명을 건 위험한 일이었다. 픽사베이 제공

아기를 낳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조선 시대 양반집 여성의 대략 60%는 폐경 이전에 사망했는데, 상당수는 출산 관련 질병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임산부 사망률은 임신 중 사망과 출산 후 42일 내 사망을 합친 것인데, 과거에는 출산 후 90일까지의 사망도 포함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든지 간에 임산부 사망률은 대단히 높았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 제 17권에서  아내 풍산 홍씨의 출산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다. 

 

"내가 처음 경자년(1780년, 정조 4년) 가을 예천(醴泉)의 군사(郡舍)에서 애기 하나를 지웠고, 신축년 7월에 아내가 학질로 인해 계집애 하나를 여덟 달 만에 출산했는데 4일 만에 죽었으므로 미처 이름을 짓지 못한 채 와서(瓦署)의 언덕에 묻었다. 그다음에는 무장과 문장을 낳았는데, 다행히 성장하였다. 그다음이 구장이고, 그다음은 딸아이 효순(孝順)인데, 순산했기 때문에 효순이라 한 것이다. 구장이와 효순이에게는 모두 광명(壙銘)이 있으나, 진짜 광명이 아니라 책에만 기록한 것이다. 그다음에는 딸 하나를 얻었는데, 지금 열 살이 되어 이미 두 번째 홍역을 지냈으니, 아마 이제는 요사(夭死)를 면한 것 같다.

 

그 다음은 삼동(三童)으로, 곡산(谷山)에서 천연두로 요절하였다. 그때 아내는 아기를 가졌었는데 슬퍼하는 중에 아들을 낳았는데, 열흘이 지나 또 천연두를 앓다가 며칠 안 되어 요절하였다. 그다음이 곧 농장이다. 삼동이는 병진년(1796년, 정조 20년) 11월 5일 태어나서 무오년 9월 4일 죽었으며, 그다음 애는 이름이 없다. 구장이와 효순이는 두척산(斗尺山)에 묻었고, 삼동이와 그다음 애도 두척산 기슭에 묻었으니, 농장이도 역시 두척산 기슭에 묻어야 할 것이다. 모두 6남 3녀를 낳았는데, 산 애들이 2남 1녀이고 죽은 애들이 4남 2녀이니, 죽은 애들이 산 애들의 두 배이다…” (김두얼, ‘조선시대 양반 여성의 출산율’, KDI 나라경제, 2014.9.)

 

산모는 왜 죽는가?

 

경북대 박희진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 시대 양반집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6.9명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 중국이나 일본의 합계출산율과 비슷하다. 서유럽사회의 8~11명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제법 높다. 태반이 숨졌다. 인류학자 웬다 트라바탄에 따르면 수렵채집사회의 여성은 대략 6~7명까지 아기를 낳는데, 최종적으로 번식연령에 도달하는 아이는 2명에 불과했다. 농업혁명 이후 출산율이 더 높아졌지만, 감염병 유행과 기아, 전쟁 등으로 사망률도 높아졌다. 인구가 많이 늘어나지 못한 이유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을 넘었지만, 최근 백 년 사이에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분만실로 들어가는 산부와 가족의 마음은 제법 비장하다. 한국의 모성사망률은 10만 명 당 10명 남짓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아주 최근에 이뤄낸 성과다. 아직도 짐바브웨나 아프가니스탄 등 일부 나라에서는 모성사망률이 1000명을 훌쩍 넘는다. 한국보다 100배 위험하다. 그래서 일부 국가 여성의 평균 수명은 40살도 안된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에게 임신과 출산은 자신, 그리고 아기의 생명을 건 도박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임신과 출산을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아기를 낳다가 죽는 이유는 주로 무엇일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주로 출혈, 낙태 합병증, 임신성 고혈압, 감염, 난산이다. 매년 30만 명의 여성이 아직도 임신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한국은 산전 진단, 높은 의료 기술, 산부인과의 응급 대응 능력 및 관련 시설, 산후 관리 등을 통해서 사망률을 크게 낮추었지만, 여전히 출산 중에 사망하는 일이 없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산과적 사망의 대부분은 불가항력 의료사고다. 의학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임산부 사망은 거의 다 막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산과적 의료 소송이 늘어나는지도 모른다. 아기를 낳다가 산모가 죽으면, 가족으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 명에 한 명 발생하는 일이 왜 하필 우리 아내, 우리 딸에게 일어났냐는 것이다. 사실 만 건의 출산 중 백 명의 산모가 사망할 것을 한 명으로 줄인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심정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는 불가항력의료사고보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만족스러울 리 없다. 단지 보상금이나 의학적 책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요즘은 주로 출혈이나 임신성 고혈압이 큰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낙태 합병증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고, 후진국은 여전히 감염이 문제다. 그런데 불과 백여 년 전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페티코트와 나쁜 공기, 그리고 전기

 

19세기 유럽에서는 병원에 입원한 산모들이 사망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픽사베이 제공

19세기 유럽에서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곳은 '병원'이었다. 19세기 초반, 가정분만으로 아기를 낳은 영국의 산모 1만명 당 10명 꼴로 사망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임산부 사망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600명이 사망했다. 프랑스도 비슷했다. 만 명 당 약 880명이 사망했다. 이 정도 수치면 거의 도박이다. 스무 명의 산모가 병원에 입원하면, 두세 명은 시신이 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차라리 병원에 안 가는 편이 유리하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모두 가정에서 낳은 것일까? 물론 가정이라기보다는 궁궐이고, 최고의 의료진이 주변에 가득했겠지만. 

 

오스트리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세기 무렵 빈 종합병원에는 매년 6000~7000명의 산모가 출산을 위해 입원했다. 병동이 두 개 있었는데, 1병동은 매년 600~800명이 사망했다. 무려 27%의 사망률이다. 세 명의 산모 중 한 명은 죽는 것이다. 그런데 2병동의 사망률은 2%에 불과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많은 의사들이 그 원인을 찾으려고 달라붙었다. 사망한 산모에게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몸 안에 이상한 흰색 액체가 가득한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뭘까? 당시 여성은 몸에 꽉 끼는 페티코트를 입었는데, 그래서 양수가 몸 안에 쌓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물이 아니라 공기가 문제라는 주장도 나왔다. 더러운 공기가 산모에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자기장의 변화가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악취 나는 더러운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미아즈마 이론, 체액의 순환이 원활해야 하는 4체액설, 그리고 당시에는 첨단 이론이었던 전자기장 이론까지 동원된 가설이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몸이 안 좋아지면,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하거나 아예 시골로 요양을 간다. 헐렁하고 편한 옷을 입는데, 삼베나 명주로 된 한복을 입기도 한다. 왠지 더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자기장이 나온다는 자석 스티커를 몸에 붙이기도 하고, 방석에 깔기도 한다. 

 

하지만 환기를 잘 하고, 페티코트를 풀어도 별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1병동만 창문이 없는 것도 아니고, 1병동 여성만 타이트한 옷을 입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1병동과 2병동의 차이에 주목한 의사가 있었다. 헝가리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스 제멜바이스였다. 

 

이그나스 제멜바이스

 

헝가리 의사 이그나스 제멜바이스는 '손을 씻어야한다'고 주장하다가 학계에서 배척되기도 했다.

1병동 환자 수가 더 많았다. 혹시 환자가 북적거려서 그런 것일까? 제멜바이스는 1병동의 환자 수를 줄였다. 그러나 아무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2병동은 산파가, 1병동은 의사나 의대생이 주로 환자를 돌보았다. 1병동은 교육 병동이라서 의대생이 분만을 지켜봐야 했는데, 그래서 출산 자세가 좀 달랐다. 혹시 그것이 원인일까? 제멜바이스는 산모가 모두 같은 자세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역시 변화가 없었다.


혹시 부끄러워서 병이 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의대생이 미숙해서? 당시 의대생이나 의사는 대부분 남성이었는데, 당시 유럽은 성적으로 억압된 사회였기 때문에 출산 장면을 남성에게 보여주는 것은 의대생이라고 해도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아무튼 제멜바이스는 의대생 참관 숫자를 제한하고, 미숙한 외국 의대생의 출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빈 종합병원의 성직자는 임종하는 환자에게 기도를 해주기 위해서 이동할 때, 1병동을 가로질러 가고는 했다. 그러니 눈앞의 사제를 본 산모는 ‘나도 죽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병이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제멜바이스는 사제들이 다른 길을 이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변화가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미생물이 뭔지 모르던 시기다. 제멜바이스는 2병동의 낮은 사망률, 1병동의 높은 사망률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동료 의사가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사망하던 산모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 것이 아닌가? 아니 남성인데, 산모가 걸리는 병을? 알고 보니 최근에 죽은 산모의 시신을 부검한 일이 있었다. 그러다 실수로 메스에 베인 것이다. 뭔가 안 좋은 것이 시체에서 옮겨온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의대생들이 종종 시체 해부 실습을 하고, 바로 산과 병동에 들어와 실습을 하곤 했다. 제멜바이스는 시체에서 나온 안 좋은 것이, 물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산모에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병동에 들어올 때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도록 한 것이다. 바로 효과가 있었다. 1병동의 사망률이 10분의 일로 감소했다. 

 

제멜바이스의 죽음

 

제멜바이스는 일약 의학계의 스타가 되었고,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가 되어 부와 명성을 모두 가졌을까? 아니다. 이런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무시당했다. 


당시 유럽의 의사는 ‘안 좋은 외부의 기운’, ‘다양한 요인의 불균형과 부조화’ 등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자연주의적 질병관을 믿고 있었다. 자연주의적 질병관 외에는 별다른 경쟁 패러다임도 없었다. 고작해야 신의 저주나 징벌이라는 식의 오래된 초자연주의적 질병관이 힘겹게 경쟁하는 정도였다.


이 와중에 제멜바이스는 과학적 접근을 통해서 산욕열의 원인을 찾았다. 그리고 예방법도 찾았고, 효과도 좋았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의 주장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빈 종합병원에서 쫓겨났다. 헝가리로 돌아와 부다페스트에서 일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다. 산욕열의 원인과 개념, 예방에 관한 책을 저술했지만, 제멜바이스는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몇 년 후, 제멜바이스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했고고, 아이러니하게도 입원 과정 중에 입은 상처가 덧나 ‘원내 감염’으로 사망했다. 


믿음 혹은 사실

 

우리는 흔히 믿음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 그리고 미래를 평가한다. 민주주의를 믿느냐? 어떤 정치인을 믿느냐?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믿느냐? 이런 식이다. 처음부터 ‘믿음’을 묻는다. 사실이 아니다. 우리에게 객관적 사실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다. 


세상에 관한 사실은 믿음을 통해서 비로소 나와 하나가 된다. 일단 그렇게 유착되면, 최초의 믿음이 틀린 사실에 기반한 것임이 판명나도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나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상한 논리가 생겨난다. 믿음은 버리는 것은 죄악이라는 등, 사실에 대한 믿음은 모두 등가라는 등, 인식론적 궤변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각자의 믿음이 복수의 진실을 구성한다는 등… 그러나 솔직해지자. 그냥 믿음을, 즉 나의 일부를 버리기 싫은 것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사실 누가 최고의 영화배우인지, 어떤 곡에 최고의 가요인지, 어떤 그림이 최악의 그림인지 등에 대해서는 믿음의 세계가 지배해도 상관없다. 명곡집에 실린 곳은 정말 ‘명곡’이라기보다는, 인기곡일 뿐이다.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 심지어 연애도 그렇다. 서로 최고의 파트너라고 ‘믿는단다'. 바퀴벌레 한 쌍의 오글거리는 상호 신뢰는 분명 '사실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좋다는데 제3자가 왈가왈부할 것은 없다.


그런데 정치적 입장이라면 조금은 해롭다. 최선의 지도자를 뽑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큰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사실 다 거기서 거기니까. 만약 경제적 전망도 '믿음'에 기반한다면 상당히 해롭다. 사실보다는 믿음에 기반하여, 주식을 사거나 회사를 확장하고 국가 재정을 꾸린다면 금세 파산할 것이다.

 

믿음이 영향을 미치는 가장 해로운 영역은 바로 의학이다. 잘못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산모가 목숨을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인데, 얼마 전만 해도 의사는 철학자나 점술가에 가까웠다. 많은 의사가 ‘몸과 마음에 관한 철학적 믿음’에 기반해서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했다. 의사가 자신의 세계관을 고수하는 동안, 그 대가로 수많은 환자가 죽어 나갔다. 불과 100여년 전에야 의사가 과학자가 되기 시작했다. 이제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고, 치료하는 일은 과학에서의 가설 검증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정적인 진단을 세우고, 증거를 통해 하나씩 기각해나간다. 처방과 치료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확진이 내려져도, 언제든지 다시 기각될 수 있다. 과학적 검증 과정은 모든 진료실마다, 수술실마다, 병원마다 계속 반복되며 끊임없이 기각되고 데이타는 축적되고 있다. 덕분에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서 다시 원시의 의학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급하다는 이유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백신이 뿌려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개발한 백신은 전혀 효과를 알 수 없는데, 외부에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믿고 맞으라'는 것인데, 왠지 시골 장터 약장수의 말처럼 들린다. 소위 '제대로 된'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백신도 아직 헛점이 많다. 예방 효과가 좋기를, 부작용이 없기를 '믿고 싶지만', 믿음이 강하다고 해결된 문제는 분명 아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출산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인간은 두발걷기를 하면서 골반이 작아졌고, 난산을 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건강과 질병에 관한 잘못된 믿음이다. 안그래도 힘들게 출산하는 산모를 떼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잘못된 믿음을 고집하는 의사들이었다.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눈 앞에 명백한 사실을 보여주어도, 19세기 유럽의 의사는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분명 감염병에 취약하다. 문명이 건설하면서 주기적인 감염병이 유행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감염병 유행에 관한 잘못된 믿음이다. 안그래도 어렵게 코로나19 대유행을 견디고 있는 인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작년 초, 미국 질병예방국에서는 마스크 착용도 권장하지 않았다. 몰랐으니까(사실 나도 몰랐다). 그러나 작년 몇몇 연구를 통해서 집단 방역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눈 앞에 사실이 명백한데도, 많은 이들이 사실보다는 믿음을 따르려고 한다.

 

의학에 있어서는 믿음보다 의심이 더 좋은 덕목이다. 확신에 가득찬 의사보다는, 의심쟁이 의사를 만나라. 큰소리 땅땅 치면서, 호언장담하는 사람은 크게 세 종류다. 사기꾼, 과대망상증 환자 혹은 정치인. 가족 주치의로 삼기에는 영 내키지 않는 세 부류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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