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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소심함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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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소심함의 진화

2020.12.27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자신을 피할까 봐 걱정한다. 매일매일 누군가 경험하는 ‘일상’ 사건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하늘이 무너지면 어떡할까? 땅이 꺼지면 어떡할까? 춘추시대, 기나라의 한 남자는 늘 이러한 걱정에 시달렸다. 불안이 너무 심해져서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잠도 이루지 못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기인지우(杞人之憂), 즉 기우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과도한 걱정과 두려움, 불안, 과민, 불면은 범불안장애의 증상이다. 범을 두려워하는 병이 아니다. 늘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심지어 집에 혼자 있어도 불안하다. 

 

불안은 소심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돌다리도 두들겨봐야 한다지만, 조금 두들겨보다가 그냥 도강을 포기하는 타입이다. 두들길 때는 괜찮았지만, 건널 때는 또 모르는 일이니까. 새로운 시도는 없다. 앞장 서는 일도 없다. 모든 것이 안전하다고 확신이 들어야 조심스레 행동을 하는 것이다. 소심함이다. 

 

있을 법한 일에 관한 걱정

 

기나라 사내의 불안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실 하늘은 가끔 무너진다. 201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 지역에 유성우가 쏟아졌다. 약 1만 톤의 운석이 지구에 들어와 폭발했다. 지름은 약 16.8m였다. 운석의 크기에 대해서는 조금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 수백 명이 다쳤다. 한적한 지역이라 피해자가 적었지만, 대도시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초신성이 폭발하거나 운석이 떨어지는 일은 제법 흔하다. 중생대가 끝나고 신생대가 시작한 것도 소행성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땅은 더 자주 무너진다. 2010년 이후 규모 8 이상의 지진만 총 11차례. 2020년에만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총 104차례 발생했다. 가장 최근, 2020년 10월 30일 그리스 지역에서 규모 7의 지진이 발생했다. 85명이 죽고, 1000여 명이 다쳤다. 화산 폭발과 지진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범불안장애를 겪는 사람은 우주인이 침공하거나 3차 대전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에 걸리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자신을 피할까 봐 걱정한다. 매일매일 누군가 경험하는 ‘일상’ 사건이다. 

 

과도한 불안은 ‘좀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일’에 관한 불안이지만, 분명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에 관한 불안은 아니다.

 

타고나는 걸까 학습하는 걸까

 

범불안장애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시작해서 이후 점점 감소하다가 노인이 되면 다시 증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범불안장애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시작해서 이후 점점 감소하다가 노인이 되면 다시 증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언제 일어날 지 모르는 수많은 불행. 어떻게 보면 불안을 느끼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런데도 만사태평한 사람도 있다. 물론 늘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환경에 따른 유연한 반응일까? 보통 별거나 이혼, 실업을 겪은 사람이 불안을 쉽게 느낀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열악할수록 불안하다. 차별받는 소수민족에서도 흔하다. 또한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여성은 남성보다 두 배 이상 범불안장애를 앓는다. 나이에 따라서도 다르다. 10세 이하의 소아는 범불안장애를 거의 앓지 않는데,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시작해서 이후 점점 감소한다. 하지만 노인이 되면 다시 증가한다. 

 

흔히 불안의 경향은 타고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전쟁터에서도 코를 골며 자는 성격도 있고, 풍년이 들어도 굶을 걱정부터 하는 성격도 있다는 것이다. 분명 어느 정도 타고난 성향이다. 하지만 환경의 영향도 크다. 불안장애는 인지행동치료로 제법 잘 치료된다. 주변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성별과 나이, 사회경제적 수준, 가정환경, 혼인 상태, 사회적 차별 등에 의해서 불안의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면, 불안은 혹시 환경에 맞춰서 학습하는 것이 아닐까? 

 

소심한 녀석과 대담한 녀석

 

생태계 교란종 '호박블루길'.  위키피디아 제공

진화학자 데이비드 윌슨은 그물과 통발을 들고 코넬 대학교의 연못으로 향했다. 호박블루길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개복치와 친척인데, 민물에 산다. 호박씨처럼 생겨서 영어로도 '펌킨시드(pumpkinseed 호박씨)'라고 한다. 튀겨먹으면 맛있다는데, 안타깝게도 한반도 바다에는 없다. 맛을 보겠다면서 국내에 들여오려는 사람이 있을까 불안하다. 생태계 교란종이다.

 

아무튼 윌슨은 연못에 통발을 설치했다. 통발에 잡히는 녀석은 분명 대담한 성격을 가졌을 것이다. 또한 윌슨은 위망을 사용해서 연못을 아예 훑었다. 천렵을 할 때 쓰는 그물이다. 물고기의 ‘성격’과 상관없이 몽땅 잡힐 것이다. 


그리고 두 종류의 녀석을 잡아서 조사했다. 아니나 다르랴. 두 녀석은 주로 섭취한 먹이도 달랐고, 감염된 기생충도 달랐다. 성격이 달랐던 것이다. 소심함과 대담함, 즉 불안 경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가설이 입증되는 것 같았다. 대학교 교내 연못의 환경이야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런데도 소심한 호박블루길과 대담한 호박블루길이 나뉜다면, 분명 ‘원래 다른 녀석’일 것이다. 

 

그런데 몇 달 키워보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대담한 녀석이 수조에서도 용감하게 행동했다. 소심한 녀석은 실험실 수조에서도 수줍어했다. 그러나 3~4주 지나니 서로 비슷해졌다.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 연구 결과의 해석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실험실 수조의 일정한 환경으로 인해서 두 집단의 차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소심한 녀석은 ‘좀 늦게 행동에 나섰지만’, 결국 대담한 녀석과 비슷하게 행동했다. 


불안이 없는 세상

 

그러면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면 불안이 사라질까? 불안이 심한 사람도 점점 용기를 내어 행동하고, 그러면서 누구나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삶을 즐기는 행복한 파라다이스가 있다면 어떨까.


이런 시나리오는 실현되기 어렵다. 일단 선진국이라고 해서 범불안장애 유병률이 낮지 않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오히려 불안장애가 더 증가한다는 믿을만한 증거가 많다. 아무리 안전하고 풍족해도, 불안에서 해방될 수 없다.


물론 문화별 유병률 차이에 관한 연구는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나라에서 ‘고작 불안 따위로’ 병원을 찾기는 쉽지 않을 테니. 내전이 벌어지는 시리아의 병원에 가보자. 분명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불안장애 환자는 아주 적을 것이다. 총상 환자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분명 어떤 면에서 선진국은 더 불안한 나라다. 굶어 죽을 위험성은 분명 낮지만, 당당하게 고개 들고 살아가기엔 힘겹다. 복잡한 사회구조, 줄어든 역동성, 세분된 계층구조를 감안하면 단지 ‘먹이’만 풍족하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성에게는 좀 으스대고 싶고, 이성에게도 사랑받고 싶다. 자랑도 좀 하고, 인정도 받고 싶다. 남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는 권력도 원한다. 라면 상자를 가득 쌓아둔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소심해도, 나의 길

 

인간 세상은 실험실 수조보다는 코넬대 연못에 더 가깝다. 다양한 사회생태학적 신호가 복잡하게 난무한다. 자칫하면 잡아먹히고, 또 운이 좋으면 남을 잡아먹을 수도 있다. 인간 세상에는 법과 규칙이 있다지만, 절대로 누구에게나 ‘공정’해질 수 없다.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비로소 공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이 가진 대담함과 소심함, 즉 불안을 느끼는 진화적 성향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일부 용감한 사람은 ‘대박 성공’을 거두지만, 일부는 쪽박을 찬다. 조심성이 많은 사람은 좀처럼 크게 성공하기 어렵지만, 큰 실패도 없다. 당신의 소심함과 불안. 분명 많은 기회를 앗아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위험을 피하게 해줄 것이다. 평균을 내보면 그 이득과 손해는 일치할 것이다. 대담함이 소심함보다 무조건 유리하다면, 세상에 우유부단한 사람이 이렇게 많을 리가 없다. 진작에 온통 용감한 사람으로 가득할 것이다. 

 

소심한 자신이 싫다면, 물론 바꿀 수 있다. 임상적으로 심각한 불안장애라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심한 자신을 책망할 일은 아니다. ‘정신과에 가야 하는 처지라니…’라며 자신을 비관하는 호박블루길이다. 그렇다고 '불공정한' 세상을 비난할 일도 아니다. ‘이게 연못이냐’를 외치며 코넬대를 욕하는 호박블루길이다.

 

불안하고 소심한 당신. 그러나 '못난' 자신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세상이 당신에게 고개 숙여 사과할 이유도 없다. 세상은 나보다 먼저 있었고, 나는 어쨌든 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 지금처럼 살 수도 있다. 원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 수도 있다. 어디로 가든 그 길이 나의 길이다. 소심한 자신이 창피하여, 영 내키지 않으면서도 대담하게 살겠다며 매일 전전긍긍하는 당신. 그야말로 정말 소심한 태도 아닌가?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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