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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어선 4척 중 1척에 '노예선원' 탄다…중국 오징어선박, 한국 참치잡이배도 '의심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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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어선 4척 중 1척에 '노예선원' 탄다…중국 오징어선박, 한국 참치잡이배도 '의심대상'

2020.12.22 17:16
글로벌어업감시 인공위성 데이터 분석 결과 PNAS 공개
글로벌어업감시 제공
글로벌어업감시 제공

2015년 5월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 공해에서 참치잡이를 하던 한국 국적 원양어선 101소진호에 탄 필리핀인 선원이 급성 심낭염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이송해줄 것을 호소했다. 선장은 항구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연료를 부담하고 싶지 않다며 항구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한 달간 방치된 끝에 이 선원은 심장마비로 죽었다. 101소진호가 부산항에 정박한 후 해경이 수사에 착수한 결과 선장은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선원에게 오히려 “꾀병을 부린다”며 폭행을 가했다.  다른 외국인 선원도 수시로 폭행을 당한 것으로 당국의 조사결과 드러났다. 공익법센터 ‘어필’과 유엔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가 2017년 발간한 보고서에 담긴 한국어선 강제 노동 보고서 내용 중 일부다. 

 

2010년 초 세계적인 문제가 됐던 어선 강제 노동이 지금도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어선 4척 중 1척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인공위성을 활용한 분석에서 드러났다. 중국의 오징어잡이 어선과 일본, 대만의 어선은 물론 한국의 어선에도 심각한 강제 노동이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전세계 바다를 항해하는 어선의 위치를 추적하고 불법 조업 행위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 ‘글로벌어업감시’와 가빈 맥도날드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해양과학연구소 교수 공동 연구팀은 전 세계 어선들의 움직임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강제 노동의 가능성을 분석한 연구결과를 이달 22일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공개했다.

 

전 세계에서는 지금도 선원을 하루 18시간씩 일하게 하고 임금체불, 폭행 등을 가하는 이른바 ‘노예 선원’을 태운 어선들이 적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1년 오양 75호에서 39명의 외국인이 탈출하며 노동착취와 폭력, 임금체불을 공개하며 한국 원양어선의 선원 인권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커지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는 매년 6월 발간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올해에도 “한국 국적 어선에서 강제 노동을 시키는 자들에 대해 수사와 기소를 늘릴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강제 노동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선상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선박의 움직임과 특성을 수집해 분석하기로 했다. 연구팀은 인신매매 방지 비정부기구(NGO) ‘리버티 쉐어드’와 그린피스, 환경정의재단 등 환경단체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해 강제 노동과 관련된 선박의 행동 27종을 도출했다. 예를 들어 항구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 엔진 출력을 더 높이는 것, 하루 낚시 시간이 긴 것, 공해에서 낚시하는 기간이 긴 것 등이 주요 지표로 꼽혔다.

 

연구팀은 글로벌어업감시의 위성 선박 모니터링 데이터에 기계학습을 적용해 강제 노동이 일어나는 선박을 추렸다. 언론과 NGO에서 강제 노동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어선 22척을 학습시킨 후 AI가 강제 노동 확률이 높은 선박을 추리도록 했다. 22척에는 101소진호 등 한국 국적 어선만 7척이 포함됐다. 기계학습 결과 AI는 강제 노동 선박을 90% 이상 확률로 찾아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어업감시 제공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강제 노동을 의심할 수 있는 지표로는 엔진 출력, 항구로부터의 거리, 항해 일수, 일일 어업 시간, 원양에서의 조업 시간 등이 꼽혔다. 선박 중 최대 26%가 강제 노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의심됐고 선원 2명 중 1명은 강제노동의 위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어업감시 제공

연구팀은 이렇게 학습한 AI를 적용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전 세계에서 활동한 1만 6000척의 선박을 조사했다. 그 결과 최소 2300척에서 많게는 4200척이 강제 노동이 일어난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조사 선박의 14~26%다. 강제 노동이 의심되는 선박에는 적게는 5만 7000명에서 많게는 10만 명의 선원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됐다.

 

강제 노동 고위험 선박 중에는 연승어선이 많았다. 연승어선은 수많은 낚싯바늘이 달린 긴 낚싯줄을 드리우는 어선으로 참치 등을 조업하는 데 쓰인다. 별다른 설비가 필요 없어 낙후된 선박을 활용할 수 있다 보니 선원의 조업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닌 경우가 많다. 위험 가능성이 가장 큰 선박은 밤에 빛을 내 오징어를 잡는 오징어선으로 전체 중 70~80%가 강제 노동이 의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승어선은 그 비율이 50~75%였다. 그물을 끌고 다니는 트롤선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았다.

 

국가별로는 중국의 오징어선과 한국, 일본, 대만의 연승어선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중국 오징어선은 2012년부터 매년 그 수가 늘어 2017년 400척가량이 의심 선박으로 추정됐다. 대만 연승어선도 매년 수가 늘며 2017년에는 550척가량이 의심 선박이었다. 한국 연승어선 중 강제 노동이 의심되는 선박은 2012년 약 130척에서 점차 그 수는 줄었으나 2018년에도 약 60척이 활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강제 노동 선박은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항구를 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선박은 불법 및 비규제 어업을 근절하기 위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항구국조치협정’의 당사국 39개국을 포함해 총 79개국에 정박했다. 협정 당사국인 한국에도 오징어선이 방문하는 비율이 높고 연승어선도 정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항구들이 강제 노동의 잠재적 원천이자 강제 노동을 이용해 잡은 해산물을 이송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PNAS 제공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고위험 어선을 분석한 결과다. 연승어선(Longliner)의 경우 대만 배가 가장 많고 중국, 일본, 한국 순으로 위험 어선이 많았다. 오징어선은 중국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승어선과 오징어선은 강제 노동 발생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PNAS 제공

데이비드 크루드스마 글로벌어업감시 연구책임자는 “이 연구는 글로벌어업감시가 활용하는 인공위성 기술과 기계학습을 이용해 갑판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나은 시각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선박 운영자가 책임감 있게 어업을 하는지뿐 아니라 선원을 공정하게 대하는지를 밝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고위험군으로 예측된 선박의 자세한 사항은 공개하지는 않았다. 김태상 글로벌어업감시 컨설턴트는 “이번 연구는 어선의 강제노동 위험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념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내용을 공개해 실제 사용하기까지는 좀 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시망을 넓혀 선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는 유용할 것이란 기대다. 발레리 파라비 리버티셰어드 연구 및 분석책임자는 “악위적인 행위자에 집중할 수 있는 이러한 능력은 전 세계 인권단체와 집행기관의 잠재적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컨설턴트는 "한국 정부가 갖고 있는 원양어선 데이터에 이를 적용해 감시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할 걸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년 원양어선 선원 노동과 인권문제가 발생하는 한국에 이같은 감시법이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한국 정부는 2011년 오양 75호 문제가 불거진 후 2013년 원양산업발전법에 “해양수산부장관은 외국인선원의 근로여건을 개선하고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여 원양업자들이 이를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항을 마련했으나 그 후에도 강제 노동이 의심되는 선박이 많았다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이달 7일 원양어선 이주어선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이행방안을 수립하고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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