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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한국' 이들이 있어 지금이 있다…한국을 빛낸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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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한국' 이들이 있어 지금이 있다…한국을 빛낸 ‘1호’

2020.12.18 09:00

과기정통부, 2020년 과학기술유공자 선정

첫 감염병 임상학자부터 ‘세종 1호기’ 개발자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0년 과학기술유공자 9인을 선정했다. (왼쪽 위부터 차례로) 고(故) 국채표 중앙관상대 (전)대장,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 고(故) 김용관 과학지식보급회 전무이사, 노승탁 서울대 명예교수, 고(故) 안병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고(故) 윤능민 서강대 명예교수, 고(故) 임덕상 미 펜실베이니아대 (전)교수, 고(故) 전종휘 가톨릭대 명예교수, 한문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초대원장.

‘뇌염 박사’로 불린 한국 첫 전염병 임상학자, 최초의 국산 컴퓨터 ‘세종 1호’ 개발자, 미국 아이비리그 최초의 한국인 수학 교수, 국내 최초로 기상 관측기구를 23km 상공까지 띄운 기상학 선구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7일 최초의 벽을 뛰어넘으며 국내 과학기술 연구와 이를 통한 산업기술 발전의 초석을 닦은 과학기술인 9명을 2020년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유공자 제도는 국민이 존경할 만한 우수한 업적이 있는 과학기술인을 선정해 삶과 공을 알려 예우하기 위해 2017년 제정됐으며, 지난해까지 총 60명이 선정됐다. 과학기술유공자에게는 대통령 명의 증서가 수여되고,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다. 과학기술유공자는 생존해 있는 과학기술인은 물론이고 작고했지만 공이 뚜렷한 과학기술인도 선정된다. 올해는 9명 가운데 3명이 생존, 6명이 작고했다. 이들의 공적을 소개한다.  

 

 

○ 자연분야(3인)

●고(故)국채표 | 태풍 예보 ‘국의 방법(Kook’s Method)’ 창안… 한국 기상예보 기반 마련 

 

 

故국채표 중앙관상대 (전)대장. 한국의 기상학과 기상예보의 기반을 마련한 기상학자로, 한국에 맞는 태풍진로 예상법(국(鞠)의 방법)을 창안하여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고(故) 국채표 중앙관상대 (전)대장. 

국채표 박사는 국립중앙관상대(현 기상청)에서 근무하며 일제강점기에 5km 상공까지만 올렸던 기상관측 기구를 해방 이후인 1947년 23km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1961년 중앙관상대장을 맡은 뒤에는 국내 기상예보 시스템의 현대화를 추진했다. 전화로 일기예보를 자동으로 받을 수 있는 ‘자동일기예보기’를 설치하고, 해외 기상도를 실시간으로 전달받는 ‘기상 팩시밀리’를 구축했다. 1964년 일본 교토대에 제출한 ‘한국 및 한국 부근에 내습할 우려가 있는 태풍의 운동 및 중심시도의 통계적 예보법’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태풍 경로를 예측하는 ‘국의 방법(Kook’s Method)’을 제시해 국제적으로 알려졌고, 이는 당시 기상예보에도 쓰였다. 지금의 한국기상학회를 1963년 창립했고, 현재도 발간되는 ‘한국기상학회지’를 1965년 창간했다. 

 

●고(故) 윤능민 | 유기화학 연구 개척…화학 산업화 기틀 닦아

 

 

故윤능민 서강대 명예교수. 수소화금속 이용 유기합성 분야를 선도한 화학자로, 선택환원반응 연구분야에서 개척자적 연구성과와 후학 양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故) 윤능민 서강대 명예교수.

1951년 경성대(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윤능민 교수는 가톨릭의대에서 화학을 가르치다가 1963년 늦은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퍼듀대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그는 오로지 새로운 유기합성법을 고안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알루미늄이나 붕소에 수소가 결합한 금속수소화합물을 이용해 유기합성 효율을 높였다. 윤 교수는 기초연구를 해야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응용기술도 나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유기화학 기초연구에 매진했고, 이 과정에서 개발한 시약 20가지 중 10가지가 당시 미국 화학회사인 올드리치(현 머크 자회사인 밀리포르시그마)에서 생산됐다. 퍼듀대 유학 당시 함께 연구한 허버트 브라운 박사는 1978년 유기합성 효율을 높인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는데, 당시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윤 교수를 자신의 연구에 기여한 연구자로 가장 먼저 언급했다. 

 

●고(故) 임덕상 | 세계적 대수기하학자…한국 수학 인재 양성에 기여

 

 

故임덕상 미 펜실배니아대 (전)교수
고(故) 임덕상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간 임덕상 교수는 대수기하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당시 전 세계 7~8명이던 최고의 대수기하학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1965년 펜실베이니아대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며 한국인 수학자로는 첫 아이비리그 교수가 됐다. 그는 ‘대수적 K이론’을 정립했고, 대수기하학의 한 분야인 ‘변형이론’도 발전시켰다. 탁월한 연구업적으로 미국수학회(AMS)에서 발행하는 저널 ‘트랜잭션스(Transactions of AMS)’ 편집인으로 선출됐다. 1971년 창립한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초대 본부평의원을 맡아 한인 과학자들의 교류를 장려했고, 1976~1977년 서울대에서 대수기하학을 강의하며 한국의 수학 인재양성에도 공헌했다.

 

 

○ 생명분야(2인)

●고(故) 전종휘 | 한국 첫 전염병 임상학자…일본뇌염 바이러스 첫 분리한 ‘뇌염 박사’

 

故전종휘 가톨릭대 명예교수
고(故) 전종휘 가톨릭대 명예교수.

1930년대 경성(지금의 서울)은 매년 전염병 환자가 2000여 명 발생할 만큼 전염병에 취약한 도시였다. 전종휘 교수는 전염병 전문병원인 경성부립순화병원에 근무하며 환자들을 대상으로 일본뇌염과 말라리아를 연구했고, 당시 그가 발견한 열대열 말라리아는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였다. 해방 이후 서울은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콜레라, 천연두,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뇌염 등 각종 전염병의 온상으로 꼽혔고, 그는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했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 가족의 동의 하에 부검으로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해 ‘뇌염 박사’로 알려졌다. 1946년과 1963년 콜레라 대유행에는 검역 책임자로 감염병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현재 대한감염학회의 모체가 된 ‘감염합동토론회를’ 1959년 개최하는 등 국내 감염병 최고 권위자로 꼽혔다. 2010년 대한의학회가 헌정한 ‘명예의 전당’에 선정됐다. 

 

●한문희 | 국내 생명공학의 개척자…원당 대체할 이성화당 첫 합성 

 

한문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초대원장
한문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초대원장.

“1970년대 국내에서 ‘생명공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을 겁니다. 생명공학 분야를 개척했다는 자부심이 이번 선정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모체가 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전공학센터’ 초대 소장을 지낸 한문희(86) 박사는 1974년 미국에서 귀국해 해외 유치 과학자로 KIST에 근무하면서 불모지였던 생명공학 분야를 일궜다.

 

당시 설탕을 만드는 원당 값이 많이 뛰었는데, 한국은 원당을 100% 수입하는 실정이었다. 그는 “설탕보다 싸고 달콤한 감미료인 이성화당을 합성하는 데 성공해 기업에 기술을 이전했다”고 말했다. 또 의약원료로 가장 많이 수입하던 항결핵제(리팜피신)를 국산화할 수 있는 ‘리파마이신’을 개발해 유한화학에 생산기술도 이전했다. 한 박사는 “유한화학은 유한양행과 KIST가 합작해 설립한 지금의 조인트벤처에 해당한다”며 “국내 바이오벤처 1호격”이라고 말했다.  

 

1966년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출연연으로 설립된 KIST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연구개발에서 얻은 새로운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해 산업체의 기틀을 다졌다. KIST 연구원은 과학기술인에게는 ‘최고의 대우’와 ‘최고 명예’의 상징이었다. 한 박사는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보람이 컸다”고 회상했다. 

 

퇴임 후 2000년에는 단백질 칩과 프로테오믹스를 개발하는 바이오벤처를 창업했다. 이듬해에는 한국바이오벤처협회를 창립해 바이오 기업들의 네트워크를 다졌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지금도 새로운 연구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비타민D와 코로나19 사이의 관계를 의학계와 함께 조사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면역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비타민D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코로나19 치료 시 보조제로 투약했다. 

 

 

○ 엔지니어링분야(2인)

●노승탁 | 열공학 터전 닦은 스승…후학 양성 힘써 


노승탁 서울대 명예교수
노승탁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퇴임을 계기로 그간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열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국제열물질전달저널’ 2009년 5월호에는 ‘노승탁 교수의 65세 생일을 축하하며’라는 제목의 두 페이지 기념사가 실렸다. 이준식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 W.J. 민코비츠 미국 일리노이대 기계및산업공학부 교수, 요시다 히데오 일본 교토대 항공우주공학부 교수 등 국내외 학자 3명이 썼다. 국제학술지에 퇴임사가 별도로 실리는 일은 흔치 않다. 노 교수(77)는 “쑥스럽고 민망하다”며 “그저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1973년 서울대 기계공학과(현 기계항공공학부)에 부임한 그는 퇴임할 때까지 35년간 석사 113명, 박사 30명을 배출하며 기계공학 후학 양성에 힘썼다. 열역학 전문가인 그가 쓴 ‘(최신)공업열역학’은 1986년 초판을 시작으로 2008년 4판을 인쇄할 만큼 오랫동안 열역학 분야 대표 교재로 꼽혔다. 


열역학을 이용해 산업 문제 해결에도 기여했다. 1989년 몬트리올의정서가 발효되며 오존을 파괴하는 염화불화탄소(CFC)를 더는 냉매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친환경 신냉매의 물성을 재빨리 시험해 자동차 에어컨 등에 사용할 수 있게 도왔다. 열병합발전소나 복합화력발전소의 열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건도 알아냈다. 최근 에너지 분야 기술 화두인 연료전지발전의 기초연구를 진행해 일찌감치 터를 닦았다. 그는 “에어컨과 발전소는 열역학적 원리는 같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영하 70도의 콜드체인(저온 유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에 대해 그는 “경제성만 담보된다면 국내 냉동 기술 수준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故) 안병성 | 전자통신기술 개척자…전자계산기, 컴퓨터 국산화

 

故안병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고(故) 안병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안병성 박사는 1971년 전자계산기 국산화, 1973년 최초의 국산 컴퓨터 ‘세종 1호기’ 개발 등 한국이 현재의 정보통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 그가 국산화에 성공시킨 전자계산기 가운데 탁상용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에 10만여 대가 수출됐고, 미국 ‘소비자 리포트(Consumer Report)’는 1973년 6월호에 다른 제품 15종과 함께 한국의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소개했다. 세종 1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국내 연구진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진정한 의미의 첫 국산 컴퓨터로 이후 삼성반도체통신이 1980년대 ‘삼성 슈퍼마이크로’ 시리즈를 개발하는 기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는 다이얼이나 버튼을 인색해 상대방의 번호를 찾아 통화를 연결하는 전자장치인 전전자(全電子)교환기 TDX 개발,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인 핵심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개발, 삼성전자 등 반도체 3개 기업이 추진한 4메가(M) D램 개발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중요한 국책사업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 융합분야(2인)

●김명자 | 환경과 과학정책 아우른 ‘여성 1호’…매번 ‘유리천장’ 깨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

“2만3000여 통의 편지를 직접 써 보냈어요. 10여 년간 꿈쩍도 안 한 낙동강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려면 그 정도 정성은 쏟아야죠. 결국 2001년 낙동강을 포함해 금강, 영산강·섬진강수계의 3개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3년 8개월 동안 환경부 장관을 지내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명자(76) 전 장관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정말 컸다”고 말했다. 그의 타이틀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환경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10개월 동안은 치과 치료에만 매달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일한다’는 말처럼 무의식중에 이를 악물고 일했더라”고 회상했다.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환경 정책에 눈을 돌린 계기는 출산이었다. 화학자이자 자녀를 키우는 엄마에게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은 민감하게 다가왔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환경화학적 관점에서 1993년 ‘동서양의 과학전통과 환경운동’을 펴냈다.


고(故) 김영삼 정부 시절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을 시작으로 4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장관, 17대 국회의원 등을 지내는 동안 그는 늘 ‘여성 1호’였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6월까지 3년간 회장을 맡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도 1966년 설립 이래 첫 여성 회장이다. 


그는 ‘여성을 위한 진보가 모두를 위한 진보’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 그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덜 진출한 분야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며 “국회의원 시절 상임위로 환경 대신 국방위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과학기술은 국가 사회 발전의 기반”이라며 “실험실 바깥에서 머문 내게 평생 신명나게 일할 기회가 주어진 데 대해 항상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고(故)김용관 | 일제강점기 과학운동…‘과학데이’도 제정 

 

故김용관 과학지식보급회 전무이사
고(故) 김용관 과학지식보급회 전무이사.

김용관 선생은 일제강점기 ‘과학조선 건설’을 민족의 새로운 비전과 활로로 제시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과학운동을 펼친 과학기술 활동가다. 1918년 경성공업전문학교 1회 졸업생인 그는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1세대 과학기술인으로서 책임감을 느꼈고, 발명을 통해 조선의 산업발전을 이루기 위해 1924년 발명학회를 설립하고, 1928년에는 고려발명협회를 세웠다. 1930년대 본격적으로 과학운동을 추진하면서 1933년 대중 과학잡지인 ‘과학조선’을 발행했고, 1934년에는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기일인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해 발명품 전람회, 과학 상담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열었다. 과학운동을 통해 과학기술을 민족의 과제로 제시했지만, 사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업적은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재조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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