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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언어,대중의 언어]③ 정의를 엄밀하게 그래야 우리말 혼란을 줄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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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언어,대중의 언어]③ 정의를 엄밀하게 그래야 우리말 혼란을 줄일 수 있어

2020.12.18 15:00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동아사이언스와 국어문화원연합회는 대중이 사용하는 말글과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의 간극을 줄이고 한글과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운 외국말을 활용해 대중이 좀더 이해하기 쉽고 전문가도 거부감 없이 활용하는 전문용어 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의 하나로 '쉬운 의과학용어 찾아쓰기' 기획을 3차례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지난 8월19일과 21일, 같은 달 30일 보도한 '과학용어는 먼나라 말' 시리즈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새롭게 쏟아지는 의과학 용어의 홍수 속에서 정작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할 대중은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설문 조사 등을 통해 보도했습니다. 지난 10월 12일과 13일, 같은 달 16일 보도한 두 번째 시리즈인 '고쳐 쓰자 과학용어'에서는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과 정부출연연구기관 홍보협회 등과 공동으로 과학계와 과학 커뮤니케이션계 내부에서 용어 순화의 필요성을 설문조사를 통해 끌어냈습니다.  이달 8일과 10일, 12일 보도된 세 번째 시리즈인 '전문용어의 벽 어떻게 허무나'에선 해외 각국에서 일고 있는 용어 장벽을 깨는 과학계의 노력을 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획과 과학계 숙제로 남아있는 용어 순화의 문제를 이번 기획의 자문을 맡고 있는 권재일 한글학회장(서울대 교수)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최무영 서울대 교수,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기고를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과학기술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일은 대중의 의사소통에도 중요하고 지식의 대중화에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외국어 용어를 계속 쓰다보면 그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있었음에도 두 말은 서로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그런 쓰임새는 용어의 뜻을 더욱 모호하게 만드는 결과를 빚는다. ‘데이터’라는 말이 딱 그짝이다. 그동안 ‘자료’라는 말로 대신 쓸 말을 제안했는데, 이제는 ‘버스’와 같은 외래어라고 봐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우리 국어사전에 보면 ‘데이터’는 대개 다음의 세 가지 뜻으로 풀이를 단다. 1) 이론을 세우는 데 기초가 되는 사실. 또는 바탕이 되는 자료. 2) 관찰이나 실험, 조사로 얻은 사실이나 정보. 3) 『정보·통신』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문자, 숫자, 소리, 그림 따위의 형태로 된 정보. 참고로, 국어사전에 그 말이 올라 있다고 하여 그 말이 외래어로 인정받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쓰는 낱말 가운데 꽤 많이 쓰는 말은 욕이든 외국어든 전문용어든 국어사전에 올리는 법이니 착각하지 말자.


문제는 3)의 뜻으로 쓰고 있는 ‘데이터’를 ‘자료’라는 말로 대신 쓰라고 권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데이터는 데이터지, 그걸 자료라고 해서는 의미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내가 활동하는 한글문화연대에서도 ‘데이터 바우처’라는 말에 대해 ‘데이터 이용권’이라는 말로 대체어를 제안하고 있으니 ‘데이터’를 외래어처럼 인정해도 되지 않느냐는 지적도 들어왔다. 그런데 이건 우리 직원의 실수였다. 나는 지레 짐작으로 이것이 형편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통신 이용권’아니냐고 물었다. 굳이 데이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곳에서 ‘데이터 요금’ 어쩌구 하는 말을 쓰기 때문에 ‘통신 이용권’을 ‘데이터 바우처’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냐고 추측했던 것이다. 


웬걸, 나중에 찾아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데이터바우처'는 데이터 활용을 통해 비즈니스 혁신과 신규 제품, 서비스 개발이 필요한 기업에 바우처 형식의 데이터 구매, 가공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신문에 나오더라. 그렇다면 이것은 저소득층이나 장애인에게 주는 복지 정책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이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에 연락을 해보니, 이들이 사용하는 ‘데이터’라는 용어는 ‘자료’를 디지털로 가공한 것이었다. 거기 직원에게서 받은 두 종류의 정의는 이러하다. 


(가) '데이터'란 정보처리능력을 갖춘 장치를 통하여 생성 또는 처리되어 기계에 의한 판독이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는 정형 또는 비정형의 정보를 말한다. (출처 : 데이터기반행정 활성화에 관한 법률)

(나) '데이터' : 문자·숫자·도형·도표·이미지 그 밖의 정보체계(출처 : 방송법)


(가)는 ‘통계 데이터’처럼 형체 없이 무미건조한 데이터에 비교적 가깝고, (나)는 과거에는 아날로그 형태의 자료였는데 요즘은 모두 디지털로 변환되거나 생성된 자료들을 가리킨다. 둘 다 ‘자료’라고 부르던 것이었는데, 이 약간 다른 정의를 보다보면 데이터라는 말이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의 일상적인 쓰임새에 이르면 더 혼란스럽다. “거리두기 격상 조치 이후 휴대전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동량이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데이터’는 ‘사용 기록’ 정도를 뜻한다. 이밖에 ‘데이터 요금 완전 무료’ 등 전화요금 안내의 용법은 ‘패킷’으로 묶인 데이터 통신 요금을 부르는 말이다.


사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에서 다루고 있는 데이터는 사진, 그림, 영상, 상호 등 전에는 ‘자료’라고 불렀던 것인데,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디지털로 바뀌어서 마치 새로운 것인양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처리 방식의 차이 때문에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 곳에나 모호하게 용어를 쓰게 되면 소통에 어려움이 생기고 지식의 대중화에도 장애가 된다. 만일 그 외국어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개념을 지닌 용어라면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먼저 그 정의문을 엄밀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말로 바꿀 수도 있고,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어려운 일이지만, 과학기술인들의 분발을 바란다.

 

 

※필자소개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및 출판기획자로 《한자 신기루》, 《파산》, 《내 청춘의 감옥》, 《미디어몽구, 사람을 향하다》등를 펴냈다.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교육정보화 자문위원과 한글문화연대 정책위원 등을 역임했고 2012년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에 취임했다. 2008년 국어발전유공자 표창과 2020년 ‘한글 발전 유공자’ 표창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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