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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근육과 글루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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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근육과 글루타민

2020.12.01 14:00
최근 2021년 몸짱소방관 달력이 나왔다. 7년째 만들어지고 있는 몸짱소방관 달력의 수익금은 중증화상환자의 치료비로 쓰인다. GS샵 제공
최근 2021년 몸짱소방관 달력이 나왔다. 7년째 만들어지고 있는 몸짱소방관 달력의 수익금은 중증화상환자의 치료비로 쓰인다. GS샵 제공

얼마 전 TV에서 2021년 몸짱소방관 달력을 소개하는 뉴스를 봤다. 모델로 나온 소방관들의 몸을 보니 다들 보디빌딩 선수 같다. 일로 바쁜 와중에도 이 정도의 몸을 만들었으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보디빌딩은 몸은 정직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운동이라지만, 모델로 선발될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식이요법도 병행했을 것이다. 아마도 닭가슴살을 물리도록 먹었을 것이고 유청단백질(whey protein) 가루도 물에 타 수시로 마시지 않았을까. 

 

필자도 수년 전 근육 감소가 걱정돼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유청단백질을 먹어봤다. 그런데 건강식품 사이트에서 보니 유청단백질과 함께 글루타민도 보충제로 인기가 많은 듯했다. 그럼에도 이건 시도해보지 않았다.

 

20가지 아미노산이 인체 근육과 비슷한 조성으로 들어있는 닭가슴살이나 유청단백질과는 달리 특정 아미노산 하나만 과잉으로 섭취하는 게 근육단백질을 만드는 데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게다가 글루타민은 필수 아미노산도 아니어서 부족하면 우리 몸이 만들어 쓸 수 있다.

 

암세포가 좋아하는 이유

 

 

단백질을 이루는 20가지 아미노산의 하나인 글루타민의 분자구조다. 에너지를 낼뿐 아니라 단백질과 핵산, 지질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일 수 있는 글루타민은 암세포와 근육줄기세포가 증식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키피디아 제공
단백질을 이루는 20가지 아미노산의 하나인 글루타민의 분자구조다. 에너지를 낼뿐 아니라 단백질과 핵산, 지질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일 수 있는 글루타민은 암세포와 근육줄기세포가 증식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키피디아 제공

그런데 지난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리뷰논문을 읽다가 글루타민을 다시 보게 됐다. 논문은 정상 세포와 암세포의 대사 차이에 주목해 암세포에 불리한 식이요법을 쓰면 암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최신 연구결과들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암세포는 포도당을 정상 세포보다 훨씬 많이 필요로 한다. 따라서 케톤식이(극단적인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처럼 포도당 섭취를 제한하면 암세포가 굶주림으로 허약해져 치료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사실 이건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이어서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전개됐다. 암세포가 글루타민도 엄청나게 좋아해 역시 정상 세포보다 훨씬 많이 소모한다는 것이다. 포도당과 글루타민은 서로 다른 계열이지만 대사의 관점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고 때에 따라서는 하나가 부족할 땐 나머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포도당은 해당과정을 통해 에너지 분자인 ATP를 만든다. 그런데 글루타민 역시 구조가 약간 바뀌면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핵산(DNA와 RNA)의 벽돌인 염기를 만드는데도 포도당 대사물과 글루타민이 필요하다. 세포의 산화환원 균형을 유지하는데도 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두 분자 모두 지질을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암세포가 에너지를 얻고 증식하는데 포도당과 글루타민이 일등공신이라는 말이다.

 

저항(근력) 운동으로 근육량이 늘어나는 건 위성세포(근육줄기세포)가 증식해 분화한 뒤 근육세포(근섬유)에 합쳐져 부피가 커지는 과정이므로 어찌 보면 암세포의 증식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단백질뿐 아니라 핵산과 지질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고 에너지도 낼 수 있는 글루타민을 보충제로 섭취하면 근육을 늘리는데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암세포도 워낙 좋아한다니 굳이 먹을 마음이 생기지는 않지만.

 

저항 운동이나 충격으로 근육이 스트레스(trauma)를 받으면 신호물질(DAMP)을 내보내 주변의 여러 면역세포를 끌어들인다. 근육의 회복 과정은 꽤 복잡한데, 이 가운데 염증성 대식세포(M1-biased macrophage. 파란색)가 핵심으로 위성세포(satellite cell)에 신호를 보내 증식하고(proliferation) 분화하게(differentiation) 한다. 이때 대식세포가 만드는 글루타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네이처 리뷰스 면역학’ 제공
저항 운동이나 충격으로 근육이 스트레스(trauma)를 받으면 신호물질(DAMP)을 내보내 주변의 여러 면역세포를 끌어들인다. 근육의 회복 과정은 꽤 복잡한데, 이 가운데 염증성 대식세포(M1-biased macrophage. 파란색)가 핵심으로 위성세포(satellite cell)에 신호를 보내 증식하고(proliferation) 분화하게(differentiation) 한다. 이때 대식세포가 만드는 글루타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네이처 리뷰스 면역학’ 제공

대식세포가 왜 근육에서 나와?

 

‘네이처’ 11월 26일자에는 근육량을 늘리는데 글루타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다만 이때 글루타민은 음식이나 보충제를 통해 공급되는 게 아니라 근육에 있는 대식세포가 만들어낸 것이다. 

 

선천면역계를 이루는 대식세포는 아메바가 연상되는 형태의 백혈구다. 이름 그대로 침입한 병원체를 잡아먹거나 손상된 조직을 청소하는 식작용(phagocytosis)을 한다. 대식세포는 우리 몸 곳곳에 존재하는데, 근육을 둘러싼 결합조직이나 혈관 주변에도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근육에 감염하는 병원체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다. 우리 근육에 있는 백혈구는 대략 400억 개로 대부분이 대식세포와 (분화하면 대식세포가 되는) 단핵구다. 참고로 혈액에 존재하는 백혈구는 4000억 개다. 그렇다면 대식세포는 근육에서 무슨 일을 할까.

 

연구결과 근육이 자라거나 재생하는데 대식세포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저항 운동이나 손상으로 근육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식세포가 활성화돼 염증반응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잠자고 있던 위성세포가 깨어나 증식과 분화를 해 근육이 불어나고 상처가 복구된다는 것이다. 실제 대식세포를 무력화하는 약물을 처리하면 근육 스트레스에도 위성세포가 잠자코 있다. 

 

벨기에 루뱅에 있는 암생물학센터 연구진이 주축이 된 유럽 공동연구자들은 대식세포가 위성세포를 깨우는데 글루타민이 관련돼 있을지 모른다고 가정했다. 근육의 대식세포가 글루타민을 만들어 분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식세포에 있는 글루타민합성효소(GS)가 글루타메이트(아미노산의 하나)와 암모니아로 글루타민을 만든다. 그런데 대식세포에는 글루타메이트를 산화시키는 효소인 글루타메이트탈수소효소1(GLUD1)도 있다. 글루타메이트를 놓고 두 효소가 경쟁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손상이나 저항 운동 같은 근육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대식세포의 GS의 활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글루타민을 만드는 반응이 우세해진다. 이때 GULD1이 없다면 글루타민을 더 많이 만들고 그 결과 근육의 재생 또는 증량이 더 효율적으로 일어나지 않을까.

 

연구자들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대식세포에서 Glud1 유전자가 고장난 돌연변이 생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근육에 손상을 입히는 약물을 주사한 뒤 회복 속도를 일반 생쥐와 비교했다. 그 결과 변이 생쥐가 약물에 손상된 근육의 비율이 낮았고 회복 속도는 빨랐다. 실제 변이 생쥐에서 약물 주사 뒤 위성세포 수가 더 많아졌고 분화도 빠르게 일어났다. 

 

사람으로 치면 60세 노인에 해당하는 생후 18개월 된 생쥐의 근섬유 단면 사진으로 왼쪽이 정상 생쥐이고 오른쪽이 Glud1 유전자가 고장난 변이 생쥐다. 변이 생쥐는 근육의 대식세포가 글루타민을 더 많이 만들어내 근육 노화(감소)가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제공
사람으로 치면 60세 노인에 해당하는 생후 18개월 된 생쥐의 근섬유 단면 사진으로 왼쪽이 정상 생쥐이고 오른쪽이 Glud1 유전자가 고장난 변이 생쥐다. 변이 생쥐는 근육의 대식세포가 글루타민을 더 많이 만들어내 근육 노화(감소)가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제공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줄어드는데, 근육의 대식세포가 글루타민을 만드는 능력이 떨어진 게 한 원인일 수 있다. 실제 나이가 들수록 ‘글루타민/글루타메이트’의 값이 작아진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 나이인 생후 18개월의 생쥐는 근육량이 한창때인 생쥐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지만, 변이 생쥐는 감소 폭이 이보다 적었다. 근섬유를 봐도 변이 생쥐 쪽이 더 크고 근섬유 사이 공간의 글루타민 농도도 더 높았다. 그리고 줄기세포인 위성세포 수도 더 많았다.

 

유전자를 없앤 실험동물 결과가 인상적이지만 사람에 적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유전자를 없애는 대신 그 산물인 GLUD1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는 약물도 비슷한 효과를 보이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지난 2015년 개발된 R162라는 약물을 생후 18개월 생쥐에 한 달 동안 투여하자 근육 조직의 글루타민 수치가 올라갔고 위성세포가 많아졌고 근육량이 늘어났다. 반면 몸무게나 다른 기관의 무게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논문 말미에서 연구자들은 “현재 질병이나 노화로 인한 근육량 감소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이번 연구는 약물로 이를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논문 어디에도 글루타민 보충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별로 효과가 없어서일까.

 

중요한 건 미세환경

 

2000년대 근력 운동을 할 때 글루타민 보충제의 근육량 증진 효과를 보는 임상 시험을 몇 건 있었는데, 대부분 유의미한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위궤양이나 에이즈 같은 근육 소모성 질환 환자들에게 고농도의 글루타민을 정맥 투여할 때 효과가 있었다는 결과는 있다. 보디빌딩 컨설턴트인 로버트 시네츠키는 “글루타민 보충제를 먹어도 위나 간, 장 같은 소화기관에서 소모되기 때문에 혈관을 거쳐 근육까지 도달하는 양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암과 글루타민의 관계도 비슷하다. 암세포가 글루타민을 좋아한다고 해서 섭취를 줄여봐야 효과를 보기 어렵다. 암세포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변에서 글루타민을 끌어들이거나 글루타민을 만들게 대사회로를 재설정해 살아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이 조절과 함께 미세환경인 암세포 주변에서 농도를 낮추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로 헬스장도 못가고 집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며 따라 하려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신경 써 늘린 근육량이 다시 꽤 줄어든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몸짱소방관 달력을 사서 벽에 걸어놓고 홈트를 꾸준히 해야겠다.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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