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19세기 화가들, 18세기 화가보다 높은 곳에 수평선을 잡았다

통합검색

19세기 화가들, 18세기 화가보다 높은 곳에 수평선을 잡았다

2020.11.05 16:00
KAIST 연구팀 17~19세기 화가 풍경화 분석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루앙 풍경′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포도 수확′. 국내 연구진이 두 그림의 공통점을 숫자로 밝혔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루앙 풍경'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포도 수확'. 국내 연구진이 두 그림의 공통점을 숫자로 밝혔다. 출처 위키미디어

서로 다른 두 화가가 그린 풍경화가 있다. 풍경화를 보자마자 작품 연대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을까. 미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작품의 주제, 표현 기법, 색채, 사용된 재료 등을 기준으로 작품 연대를 유추할 수 있다.

 

정성적인 분석이 주를 이루던 미학 분야에 과학자들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최근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술 작품을 보다 정량적으로 이해하려는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잉그리드 도브시 미국 듀크대 수학과 교수는 2008년 ‘웨이블릿(wavelet)’이라는 수학 이론을 활용해 그림을 계량화해서 여러 개의 고흐 작품 중에서 위작을 가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 이론은 현재 미국연방수사국(FBI)에서 범인의 지문을 빠르게 대조하거나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 영상 분석 시스템을 제작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국내 연구팀도 최근 그림을 미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수학을 접목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정하웅 KAIST 물리학과 교수팀과 한승기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미술 작품의 구도를 수치화해 작품의 연대를 유추할 방법을 고안했다.

 

○ 1476명 예술가 풍경화 1만4912점 분석 

 

연구팀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선호하는 화면 구성에 보편적인 특징이 있는지를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작품의 구도와 화면 구성이 시대별, 지역별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16세기부터 21세기까지 61개 국가 1476명의 예술가가 그린 풍경화 1만 4912점을 스캔해 디지털 이미지로 바꿨다. 풍경화를 선택한 이유는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구분하기 쉽고 요소 간 색 차이가 뚜렷해 초상화나 정물화에 비해 컴퓨터로 분석하기 수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스페인 지로나대 연구팀이 2007년에 제시한 알고리즘을 발전시켜 스캔한 정보를 분석했다. 이는 그림에서 작가의 창의성이 발현된 지점이 어디인지를 추정하는 알고리즘으로, 색의 차이가 크게 나는 곳을 기준으로 그림을 수직이나 수평으로 양분한다. 예를 들면 바다와 땅, 하늘과 바다를 나누는 식이다. 계속해서 다음으로 색 차이가 크게 나는 곳을 기준으로 그림을 나누고, 이를 더 세부적으로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연구팀은 작품을 위-아래 또는 오른쪽-왼쪽으로 나누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에 주목했다. 그림을 양분할 때 두 부분의 길이를 각각 a와 b라 하고, a와 b의 합으로 a를 나눈 값을 화면 분할 비율로 정의했다.

 

분석 결과 1만 5000여 개 작품의 화면 분할 비율은 시대별로 비슷한 값을 나타냈다. 화면 분할 비율은 작품이 위아래로 나뉠 경우에는 수평선의 위치를 의미한다. 캔버스 위에서 이 위치는 바로크 양식이 포함된 17세기에 위에서부터 약 5분의 3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나타나며 가장 낮았고, 그 뒤로 점점 높아져 19세기에는 위에서부터 약 3분의 1 위치에서 발견됐다. 18세기 중반에 그린 왼쪽 두 작품에 비해 19세기 후반 고갱과 르누아르가 그린 오른쪽 두 작품은 수평선이 높은 곳에 있다.

 

18세기 작가들이 그린 작품(왼쪽)과 폴 고갱, 오귀스트 르느와르가 그린 그림(오른쪽)의 차이. 고갱과 르느와르의 풍경화는 공통적으로 수평선이 위로부터 3분의 1 지점에서 나타난다. 정하웅 교수 제공
18세기 작가들이 그린 작품(왼쪽)과 폴 고갱, 오귀스트 르느와르가 그린 그림(오른쪽)의 차이. 고갱과 르느와르의 풍경화는 공통적으로 수평선이 위로부터 3분의 1 지점에서 나타난다. 반면 18세기 풍경화는 수평선이 캔버스 아래쪽에서 나타난다. 정하웅 교수 제공

연구팀은 예술가별로 주로 사용하는 화면 분할 비율을 계산하고 비슷한 값끼리 모았다. 그 결과 대체로 같은 시기에 활동한 예술가들끼리 묶였다. 예를 들어 화면 분할 비율이 약 0.4인 빈센트 반 고흐와 폴 시냐크는 둘 다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작가다. 수학적으로 계산한 화면 분할 비율로 예술가별 스타일과 활동 시기를 구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정 교수는 “500년 이상 발전해 온 서양 미술에서 화가들이 선호한 작품의 구도와 구성 비율이 무작위하지 않고 점진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화했음을 확인했다”며 “색채 사용과 표현 방법에서 차별화를 추구한 현대 미술도 구도와 구성 비율 측면에서는 서로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를 작품의 위작 여부나 제작 연대를 판별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미술 작품 생성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10월 12일자에 게재됐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3 + 2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