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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K방역 훨씬 앞서 최초의 'K모델' 만든 과학자 최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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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K방역 훨씬 앞서 최초의 'K모델' 만든 과학자 최형섭

2020.10.30 06:00
내달 2일 탄생 100년...과학관료이자 연구자, 행정가, 정책가 면모 재조명
1970년 1월, 초창기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앞줄 가운데가 초대 소장인 최형섭 박사다. 그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고 연구자의 자율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으며 나중에는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과 행정의 틀을 잡았다. 그가 주도한 한국식 과학기술 발전전략은 ′KIST 모델′이라 불리며 여러 개도국에 영향을 미쳤다. KIST 제공
1970년 1월, 초창기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앞줄 가운데가 초대 소장인 최형섭 박사다. 그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고 연구자의 자율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으며 나중에는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과 행정의 틀을 잡았다. 그가 주도한 한국식 과학기술 발전전략은 'KIST 모델'이라 불리며 여러 개도국에 영향을 미쳤다. KIST 제공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소장으로 재직한 고 최형섭 박사(1920~2004)가 내달 2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최 박사는 KIST 설립과 초기 운영을 통해 국내 응용과학과 산업기술 개발의 기틀을 다져 한국이 경공업 국가에서 산업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최 박사는 2대 과학기술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신) 장관을 맡아 국내 과학기술 행정과 정책의 뼈대를 세우기도 했다. 내달 2일 KIST에서 국내 과학기술사 연구자, 행정학자들이 모여 그의 업적과 정체성을 살펴보는 학술대회를 여는 등 최 박사의 탄생 100년을 맞아 국내 과학계에서도 추모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경제개발·기술공학 의미 약하던 시절 공학자
 

최 박사는 일본 와세다대와 미국 노터데임대, 미네소타대를 거치며 금속공학을 연구한 정통 금속공학자였다. 미국에서 연구하다 귀국해 금속연료종합연구소와 원자력연구소 소장을 거치며 과학행정가로 변모했고, 1966년 KIST 초대 소장을 맡아 KIST 설립과 초기 발전을 주도했다.

 

최 박사가 활동하던 1960년대 초는 국내에 경제개발이라는 말이 막 나오던 때였다. 최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는 경제개발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먹고 살기에 급했고 나라의 근간은 여전히 농업이라 정부 예산도 대부분 농업에 투입되던 때였다. 공학과 기술, 공업의 존재감은 매우 낮았다. 이공계를 공부한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 이론이나 기초과학을 공부했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최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펴왔고 신념을 대통령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미국 방문을 앞두고 연구소장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섬유제품(스웨터)을 2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고 자랑하자 “일본은 전제제품으로 이미 10억 달러를 수출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런 것만 하느냐”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받아친 일화가 유명하다.

 

최 박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실제로 직후 미국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은 존슨 미 대통령과 만난 뒤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치를 위한 지원을 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약속은 이듬해 최 박사가 KIST의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면서 가시화됐다.

 

KIST는 오늘날 1000명이 넘는 박사급 연구원들이 모인 연구기관으로 성장했지만 처음엔 사람도, 돈도, 공간도 없어서 서울 청계천의 한 은행장이 제공한 어물시장 옆 사무실에서 설립을 시작했다. 최 박사는 이 공간을 거점으로 해외 과학 기술자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파격적인 대우를 걸고 인재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교수보다 3배 많은 봉급을 주고 한국에 없던 의료보험을 제공하자 지원자가 쇄도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가 아니라 기업에 필요한 연구를 해야 한다”며 엄격한 기준에 따라 50여 명을 선발해 초기 KIST를 꾸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1969년 준공됐다. 1966년 최형섭 박사가 소장으로 임명돼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한지 약 3년 만이다. KIST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1969년 준공됐다. 1966년 최형섭 박사가 소장으로 임명돼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한지 약 3년 만이다. KIST

●필요한 연구 위해 인재 유치했지만 자율성·안정성 보장 노력

 

처음에는 ‘필요한 연구’를 위해 연구자를 데려왔지만, 최 박사는 과학기술 연구에서 자율성과 안정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20세기 초 설립돼 일본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는 데 일조한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의 성공 비결이 뛰어난 연구환경과 연구자의 재량권에 있다고 보고 이를 KIST에 이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단위연구실 별로 자율적으로 연구실을 운영하고 기초에서 응용까지 자유롭게 연구하되 결과는 기업과 연계시키려고 했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을 받되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캐나다의 국가연구위원회(NRC), 자국에 필요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는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의 장점을 모아 KIST에 적용했다. KIST는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성공적으로 출범했고, 과학기술인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설립초기 국가 '싱크탱크' 역할도 했다. 문만용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는 "기계공업이나 중화학공업 육성 방안 등' 산업정책 연구 과제를 많이 수행했고, 나중에 국민차 '포니' 생산 등으로 실현되는 등 국가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과기행정가로 대덕연구단지 설립, 정보통신 초기 기틀 닦아


KIST처럼 선도적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산업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연구를 중심으로 선진기술을 빠르게 도입하는 모델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발전 모델의 귀감이 됐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임재윤 서울대 연구원은 2017년 논문 ‘최형섭과 한국형 발전 모델의 기원’에서 “최 박사의 과학기술정책론 작업은 이후 여러 국제기구 및 개발도상국에서 관심을 갖는 일종의 ‘한국형 발전모델’로 귀결됐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에는 전세계 개도국의 과학기술 발전 모델로 한국의 KIST 모델과 ‘자국의 자원과 원자재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도의 모델이 대립했다. 둘은 각각 나름의 성공을 거뒀는데, 1970년대 중반 이후 인도네시아와 요르단, 태국 등 KIST 같은 연구소를 설립하거나 자문을 구한 국가가 많아지면서 KIST 모델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최근에는 한·베트남과학기술연구원(VKIST) 설립으로도 이어졌다.

 

1970년, 갓 운영을 시작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는 세계적 공학학술행사인 국제전기전자학술대회를 개최하며 공학 분야에 적극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KIST 제공
1970년, 갓 운영을 시작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는 세계적 공학학술행사인 국제전기전자학술대회를 개최하며 공학 분야에 적극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KIST 제공

최 박사는 이후 1971년 제2대 과기처 장관을 맡으면서 정부의 과학행정 및 정책 분야 기틀도 다졌다. 또 대학의 기초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한국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설립을 주도했으며 대덕연구단지 설립을 이끌고 정보산업국을 설치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연구자라고 봤다. 문 교수는 "과학기술학 연구자로서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장관 재직 시절의 여러 업적이라고 보지만, 정작 최 박사는 생전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구자로 기억되길 바란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과학과 정부를 매개한 '과학 관료'라고 표현했다"라고 말했다.

 

●연구 친화적인 R&D, 잊혀진 이야기들 발굴 등 새 KIST 모델 필요

 

한국의 과학기술은 최 박사가 활동하던 때와는 많이 다른 환경을 맞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R&D)비는 세계 5위권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비는 2014년 이후 1~2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과학기술 인프라 경쟁력은 3~13위로 23위인 국가경쟁력보다 훨씬 높다. 이에 따라 과기 정책의 변화도 필요하다.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현재 한국의 과학은 세계 최고 수준의 R&D 예산을 확보하고 있지만 운영이 관료화됐고, 분절적이고 단기적이며 산업지향적인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라며 “경제적 효용보다는 사회적 효용을 추구하고 종합적인 R&D를 지향하며 지원보다는 연구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과학기술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KIST 제공
KIST 제공

KIST모델의 변화도 필요하다. 최형섭 교수는 논문에서 “최 박사가 설정한 한국의 발전 경험은 박정희라는 ‘계몽된’ 정치 지도자의 지원 아래 강력한 정부가 과학기술 진흥에 필요한 여러 기관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전략산업 발전에 필요한 기술을 선진국으로부터 도입하거나 개발하는 방식”이라며 “이 모델을 받아들임으로써 ‘선택적으로 망각’한 것들,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의 성공 이야기에서 박 대통령의 혜안과 이병철 회장의 결단 외에 중하위직 엔지니어와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다면 ‘발전’이라는 일방적 개념이 아닌 보다 풍부한 ‘한국의 경험’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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