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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첫 임상 바이오 소재, 국내서 검증 못해 해외 실험실 전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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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첫 임상 바이오 소재, 국내서 검증 못해 해외 실험실 전전한 이유

2020.08.27 08:41
의학·바이오 연구 상당수 중개연구 체계 미흡해 죽음의 계곡을 못건너
한형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재료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영국 옥스퍼드대와 중개 임상 연구를 진행해 뼈의 재생을 돕는 효능을 검증한 마그네슘 합금 임플란트를 개발했다. KIST 제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재료연구단은 뼈를 구성하는 원소인 마그네슘과 칼슘, 아연만을 활용한 생체분해성 마그네슘 합금 소재를 2010년부터 개발해 왔다. 몸속에 이식하면 약 1~2년 내로 분해되는 생체분해성 금속 임플란트를 만들기 위한 소재다. 금속 임플란트는 부러진 뼈를 고정해 다시 붙일 때 쓰이지만 다 나으면 필요가 없어져 다시 제거해야 한다. 생체분해성 금속 임플란트는 이러한 2차 시술이 필요 없다.

 

연구단은 2013년 정형외과 의료기기 업체 유앤아이와 함께 생체분해성 금속 골접합 나사못 ‘리조멧’을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인체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개발한 금속 바이오소재 중 인체 임상시험 허가를 받은 첫 의료기기다. 임상에서 인체에서 부작용이 없는 것이 확인돼 2015년에는 식약처의 판매허가를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임플란트 이식에 성공한 사례만 한국에서 300건이 넘을 정도로 안전성은 입증됐다.

 

하지만 시장 진입은 쉽지 않았다. 환자에게 쓰는 의료기기에 보수적 태도를 보이는 의료계 특성상 새로운 제품을 잘 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엑스레이로 관찰했을 때 오히려 기존 임플란트보다 뼈가 더 잘 자라는 현상도 발견됐다. 뼈와 비슷한 성분을 쓰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지만 설명을 원하는 의사들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했다. 효과를 검증하는 '중개임상연구'가 필요했다.

 

중개임상연구는 기초연구에서 개발한 바이오 소재나 신약의 효과를 동물이나 세포 단계 실험을 통해 임상연구 전에 먼저 확인하는 연구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하는 인체임상과 달리 중개임상연구는 의료기기가 효과를 보이는 정확한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이용하는 의료진에게 의료기기를 써야 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중개임상연구는 의료기기가 인정을 받고 시장에 안착하는 데만 수 년이 걸리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중개임상연구를 진행할 길이 없었다. 한국에서 뼈 세포의 성장이나 동물 뼈의 성장 정도를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할 연구자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생체분해성 금속 소재 개발에 참여한 한형섭 KIST 생체재료연구단 선임연구원은 "한국에서 소재를 개발하는 공학적 연구는 많지만 이를 설명하는 중개나 기초연구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중개임상 인프라 대부분 신약 개발이나 암 연구에 몰려있는 탓도 컸다.

 

한 선임연구원은 2016년 이 소재를 안고 의학 연구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한 선임연구원은 “가능하면 한국에서 파트너를 찾아 공동연구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관련한 중개연구나 기초연구를 많이 하지 않더라”며 “찾기 힘들 바에는 차라리 제가 가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형섭 선임연구원이 영국에서 개발해 온 바이오리액터를 살펴보고 있다. 뼈의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바이오리액터는 뼈가 자라는 방향을 고려해 세포를 평평한 면이 아닌 위아래로 긴 튜브 속에서 키운다. 튜브 속으로는 뼈 속을 피가 흐르듯 세포 성장에 필요한 액체가 흐른다. KIST 제공

한형섭 선임연구원팀은 옥스퍼드대에서 중개 임상 연구를 진행했다. 세포와 동물 조직, 동물 임상 등 세 단계에 걸쳐 뼈의 재생을 돕는 효능을 검증했다. 우선 실제 뼈를 그대로 옮겨놓은 바이오리액터를 새로 개발했다. 바이오리액터는 체내의 환경을 몸 밖으로 그대로 옮겨 실험이나 세포 생산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세포를 키우는 것과 실제 몸속의 세포가 자라는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몸속 뼈는 뼈 내부로만 피가 흐르고 중력과 다른 몸통의 하중을 견디는 환경에 놓여 있다. 연구팀은 이를 따라해 세포를 위아래로 긴 튜브 속에서 키우고 뼈 속에 피가 흐르듯 세포 성장에 필요한 액체가 튜브 위아래로 흐르도록 했다. 그 결과 바이오리액터에서는 기존 세포실험보다도 마그네슘 합금이 뼈세포를 더욱 잘 자라게 하는 것이 확인됐다.

 

세포실험 결과는 쥐의 태아에서 빼낸 정강이뼈를 통해 2차로 검증했다. 임신한 쥐 한 마리에게서 100개 이상의 재료를 얻을 수 있어 뼈 연구에 주로 쓰이는 재료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쥐의 자그마한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빼내야 하는 기술이 요구되는 고난이도 임상 시험이다. 연구팀은 여기에 금속 임플란트를 붙이고 7일 후 뼈 속 혈관의 생성 정도를 분석했다. 여기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마그네슘 합금의 비율을 최적화했다. 마지막으로 최적화한 마그네슘 합금을 어린 쥐의 뼈에 이식하고 치료 효과를 지켜보는 동물임상연구를 거쳐 마그네슘 합금의 비율을 결정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달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한 선임연구원은 “체외 실험과 탈체 실험, 체내 실험을 거쳐 생체분해성 금속이 녹을 때 나오는 마그네슘과 칼슘, 아연 이온을 조절하면 뼈 속 혈관 생성을 늘리고 뼈가 재생되는 것을 촉진하는 것을 밝혀냈다”며 “여기서 얻은 결과를 토대로 유럽에서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형섭 선임연구원이 연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KIST 제공

한 선임연구원은 의학 연구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국가로 평가받는 영국에는 어떤 의료 연구 분야에서든 중개임상을 진행하는 데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설명하며 “중개임상 연구 시스템을 보면 옥스퍼드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백신을 가장 빨리 개발한 곳 중 하나인 이유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선임연구원은 “영국은 대학에서 운영하는 중개임상팀 자체에서 어떤 연구든 필요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며 “통계 보조부터 임상 준비, 임상 지원까지 모든 전문가들이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연구 과정에서는 더 비싼 비용이 들지만, 속도는 빠르고 헤멜 필요 없이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낸다. 한 선임연구원은 “연구비는 두 배로 비싸도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주고 시간도 단축해주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 선임연구원은 소재를 함께 개발해 온 유엔아이로부터 6억 원을 지원받아 영국에서 박사과정과 중개임상 연구를 마쳤다. 이에 대해 한 선임연구원은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며 “소재 개발부터 중개임상 과정을 거쳐 검증하는 데까지 10년이 걸렸지만 그렇게 오래 연구를 하게 두거나 한 가지 소재를 깊게 연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생체분해성 금속 소재의 효과를 검증하는 데 성공한 연구가 중개임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기초연구를 토대로 바이오용 소재를 개발하더라도 중개임상으로 이어지지 않다 보니 논문을 여러 편 내도 성공적인 제품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학계에선 빈번한 실정이다. 한 선임연구원은 “정부 차원에서도 소재와 바이오 연구에 투자한다고 하는데 소재개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전체적 과정을 보고 중개임상에도 도움을 많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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