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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적 인본주의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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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적 인본주의자의 길

2020.07.30 15:00
후베르트 마르클(1938~2015)이 총재로 재직할 당시, 빌헬름카이저연구회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인간생체실험을 수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막스플랑크학회 제공
후베르트 마르클(1938~2015)이 총재로 재직할 당시, 빌헬름카이저연구회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인간생체실험을 수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막스플랑크학회 제공

“카이저 빌헬름 학회가 나치의 정치적 이념에 동참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생체 실험에 동참했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충분하며 카이저 빌헬름 학회의 뒤를 이은 막스 플랑크 학회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도덕적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후베르트 마르클, 2001년 나치 독일의 유태인에 대한 생체실험에 사과하며


2001년 독일 과학계는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태인에게 수행했던 비인간적인 과학실험들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진행했다. 막스플랑크연구회가 진행한 이 공식사과는 연구회의 전신인 ‘카이저빌헬름연구회’를 대신해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들에게 사과하는 형식이었고, 이 행사를 주도한 인물은 바로 후베르트 마르클이었다. 그는 8명의 유태인 생존자를 초청한 행사의 기조연설에서 “독일의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이런 잔인한 행위를 방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실행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후회하며 부끄럽게 생각”하며, 나치 독일과 카이저빌헬름연구회가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을 수행했다는 과학적 증거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1933년 독일의 존경받는 철학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는 히틀러의 나치당에 입당하면서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이 된다. 이후 이성적이라는 이유로 히틀러와 나치의 활동을 미화했으며, 자신의 스승이자 은인이던 현상학자 에드문트 후설을 아리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퇴출시킨다. 그는 학생들에게 나치혁명에 대한 지지와 참여를 호소했으며, 단지 사상적으로 나치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동료 교수들을 나치에 고발했다. 이후 나치에 실망해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하이데거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나치 참여 문제에 대해 침묵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독일 철학계는 하이데거를 비롯한 히틀러의 철학자들의 문제에 대해 단 한번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막스 플랑크 학회의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협회 개소식 장면.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위키피디아 제공
막스 플랑크 학회의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협회 개소식 장면.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위키피디아 제공

과학자는 어떻게 인본주의자가 되는가


“생물학은 과학 및 기술 산업 문명이 우리에게 제공하고 제공하는 모든 문제와 기회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진정한 미래의 자연 과학입니다. 생물학자들의 지위를 향상신키고, 그들의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물학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책임은, 자연에 대한 지식이 빠르게 발전하면 할 수록, 과학적 연구에 의해 빠짐 없이 보상될테니까요.” 후베르트 마르클, 《생물학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중에서

 

마르클이 인생의 후반부를 성공적인 과학행정가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정치적 야망이나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살았던 그의 삶이 광범위한 독서와 글쓰기 등의 지적 훈련을 통해 행정가의 자질을 준비해두었기 때문이다. 마르클이 얼마나 다양한 독서를 했고, 또 과학과 사회에 대해 얼마나 수많은 글을 남겼는지를 보면, 도대체 어떻게 마르클이 통일 독일의 초창기에 기초과학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사심 없는 행정을 펼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르클의 저작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1970~80년대까지 동물의 의사소통과 사회성에 대한 논문이 대다수였지만, 1980년대를 지나면서 과학계의 여러 이슈들에 대한 글들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2000년대가 되면 마르클 특유의 과학적이면서도 인본주의적 시각을 담은 글들이 나타난다. 1994년 그는 《두 문화라는 허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때부터 그는 과학자로서 인문학과 과학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많은 글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그의 글들은 동물행동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진화적 의미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과학의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1999년 발표한 《자연의 미래》와 2001년 발표한 《자연에서 인간의 지위. 그 과거와 미래 - 지구생태계를 이해하기》와 같은 글은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생태학자로서의 그의 학자적 정체성을 확장시켜,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적으로 자연에서 점유하는 위치와, 의식을 지닌 종으로서의 책임을 다루고 있다. 마르클은 동물행동학자로의 경력을 쌓으면서도,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동물행동학자가 사회적 실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런 실천을 위해 많은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는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인본주의적인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과학연구와 연구윤리 혹은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가 2001년 네이처에 발표한 글 《연구는 인본주의를 손상하지 않는다》에는, 생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통해 인본주의자가 된 이 동물행동학자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대하는 고결한 논리와 신념이 녹아 있다. 그는 막스플랑크연구회의 총재로 나치의 생체실험을 사과했음을 밝히면서도, 꼭 필요한 치료목적의 연구를 위해 인간배아연구는 부분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다. 나치 독일의 인간생체실험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독일에서 태어나 과학자로 성장한 동물행동학자 후베르트 마르클에게, 생물학적 연구와 인본주의적 생명관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게 연결된 하나의 통합적 세계관이었다. 이런 그의 독특한 정체성은 인간유전체계획에서 유전체의 소유권에 대한 논란에서도, 나치의 우생학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그의 《유전학과 윤리학》에 대한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과학적 인본주의자였다.


탁월한 과학행정가의 조건

 

2014년 중국과학원을 방문한 후베르트
2014년 중국과학원을 방문한 후베르트 마르클. 중국과학원 제공

그는 오래전부터 과학행정가로서의 정체성을 띈 글을 발표했는데, 그가 독일 생물학계의 학문적·구조적 위기를 느끼고 1995년 발표한 《생물학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를 읽어보면, 자신의 연구에만 이기적으로 몰입하는 상아탑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라, 과학자로 연구실에서 연구를 수행하면서도, 좁게는 과학계의 문제부터 넓게는 독일사회의 문제까지를 치밀하게 사유하고 고민하며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행동하는 지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특히 그는 이 글을 통해 학문후속세대가 안정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자신의 임무임을 각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그의 애정은, 막스플랑크연구회 총재로 재직하던 당시 그의 행정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관심은 결국 세계 과학계로 확장되어, 과학자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많은 글을 쓰고 노력하게 만들었다.

 

마르클의 사례는, 뛰어난 과학행정가가 단순히 정치적 야망이 있는 과학기술인이나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학문적 업적을 이룬 원로과학자와는 확연하게 다른 능력을 지녀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먼저 탁월한 과학행정가는 자신의 학문에 대한 연구에 정통한 것을 넘어, 과학기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 과학기술인의 정체성이란 자신의 연구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는 전문적 식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문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 학문과 사회와의 관계를 깊이 사유할 때 나타나는 신념과 실천을 뜻한다. 따라서 과학행정가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독서 그리고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글쓰기와 실천을 겸비한 사람이어야 한다. 과학기술인의 정체성 위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더했을 때에만, 과학행정가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과학과 사회를 위한 실천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클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통해 과학현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런 문제들을 풀어내기 위해 작가로서 글을 쓰고 행정가로 실천을 했던 공적 지식인이었다. 다른 시대, 다른 문화에서 활동했지만, 마르클의 행보는 20세기 초 중국에서 지질학자이자 행정가,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살았던 지질학자 정문강의 삶과 닮았다. 정문강 또한 지질학자이면서도 폭넓은 독서와 글쓰기로 다양한 중국근대화 논쟁에 참여했고, 지질학을 통해 중국사회를 근대화 시킨 과학자이자 과학행정가였다.


‘인본주의 과학’과 ‘과학적 인본주의’


2014년 과학철학자 장하석 런던대 교수 겸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EBS 강의를 요약한 책을 통해 ‘인본주의 과학’이라는 개념을 한국사회에 소개했다. 그가 말하는 ‘인본주의 과학’이란 결국 “과학도 인간이 하는 것이다”라는 소박한 주장에, 그가 지금까지 연구해 온 과학철학적 사례들을 끼워 맞춘 엉성한 형이상학적 주장이다. 그는 인본주의가 인간을 중심에 둔 신념이라고 소개하면서, 과학도 인간이 하는 활동이기에 인본주의를 벗어나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장하석 교수는 우리가 과학에 대한 세 가지 통념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첫째는 과학의 주목적이 기술적 응용을 통해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선형모델이다. 선형모델은 그 자체로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기초과학은 일종의 문화로서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말에 동의한다. 

 

장하석은 인본주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제어론을 정당화하고 있다. 2016서울인문포럼 강연 장면 캡쳐
장하석 교수는 인본주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제어론을 정당화하고 있다. 2016서울인문포럼 강연 장면 캡쳐

두번째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과학에 대한 통념은, 과학주의 혹은 과학우월주의라는 신념이다. 즉, 과학만이 올바른 지식이며 과학으로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신념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번째 통념도 과학주의와 비슷한데, 그건 절대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과학지식이 신의 섭리와 같은 절대적 진리라는 믿음이다. 장하석 교수는 이 통념을 공격하면서, 1990년대 사회구성주의계열의 과학사회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한다.

 

1990년대에는 앨런 소칼이라는 물리학자의 ‘지적 사기’ 사건을 계기로 ‘과학 전쟁’이 펼쳐졌는데, 당시 과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이 강력하게 공격했던게 바로 과학적 지식도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스트롱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장하석 교수가 말하는 통념들 중에서, 두번째와 세번째의 주장을 여전히 따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1990년대에도 과학지식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과학이 생산하는 지식이 다른 지식체계보다는 성공적이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장하석 교수은 20세기초 빈 학단의 논리실증주의를 100년도 넘은 현대에 끌어와,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을 계몽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계몽의 결론이 인본주의 과학이고, 그에 대한 사상이 바로 인본주의 과학철학인데, 그건 바로 “과학도 인간이 하는 것이다”라는 허망한 순환논리다.

 

장하석 교수가 과학철학자로 온도계의 발명을 연구해서, 과학지식의 절대적 객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견을 했다고 해도, 그 발견이 곧 과학적 지식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과학적 지식에 대한 논쟁만 해도 이미 100년의 역사를 지닌 복잡한 문제인데다, 과학의 가치가 절대진리의 객관적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그 사실을 발견하는데 사용하는 과학적 방법론에 있다는건,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장하석 교수가 인본주의 과학의 근거로 삼고 있는 내용은 결국 “과학을 과학답게 만드는 특성이 모두 인간적인 측면, 예를 들어 인간의 감각에 의존한다”는 엉성한 논리구조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결론이 과학이 겸허해져야 한다는 윤리적 명령이라면, 장하석 교수 또한 ‘인문학적 제어론’을⁠ 주장하는 인문학 우월론자일 뿐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인본주의 과학을 주장하는 인문학자 장하석 교수는, 도대체 왜 인문학이 과학에 이런 절대적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하며, 인문학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이 절대적 객관서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권위적 태도와, 과학이 겸허하게 인본주의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하석 교수의 권위적 태도는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회 신부이자 화학자였던 프리스틀리가 말한 지식이 확장할 수록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아진다는 비유를 통해, 그의 인본주의 과학 강의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는 프리스틀리가 과학자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다양한 학문을 탐독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프리스틀리는 라부아지에와 산소의 발견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했던 과학자였고, 그 논쟁의 한 가운데서는 결코 자신이 틀렸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과학자의 정체성에 대해 무지한 장하석 교수는 결코 알 수 없는 과학적 인본주의의 미덕이다.

 

장하석 교수의 인본주의 과학과 비슷한 주장은 이미 19세기말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하가 감각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마하는 모든 과학적 지식은 인간의 생리학적 감각으로 환원된 것만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코 과학이 겸허해야 한다는 싸구려 인본주의로 회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하의 사상은 오스트리아 빈 학단에게 영향을 미쳐, 그의 감각주의는 논리실증주의의 전조가 되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의 논리적 분석방법을 철학에 적용해서, 지식을 통일하려는 야심찬 꿈을 꾸었던 20세기초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과학자, 과학철학자, 수학자, 사회학자 등의 지식인 모임이었다. 어쩌면 논리실증주의자들이야말로, 장하석 교수가 말한 과학주의자 혹은 과학우월론자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빈 학단의 내부에도 좌파와 우파 지식인이 존재했고, 빈 학단의 구성원이었던 오토 노이라트는 아이소타입 등의 개발을 통해 과학적 논리를 사회적으로 사용하는데 몰두했었다. 말년의 노이라트는 ‘상식의 긴팔’로 자신이 생각하는 통일과학과 지식융합의 철학을 기술했는데, 그 사상을 요약한 그림에서 각각의 지식들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상의 구조물에 매달린 풍선으로 묘사된다. 100년전의 노이라트가 과학과 다른 학문의 관계를 고민했던 수준에 비하면, 장하석 교수의 인본주의 과학은 지나치게 엉성하고 나이브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피라미드와 풍선으로 대비되는 지식융합의 의미.  이 그림들은 카트라이트(N. Cartwright)가 노이라트(O. Neurath)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출처 Otto Neurath: Philosophy between Science and Politics (1996)
피라미드와 풍선으로 대비되는 지식융합의 의미. 이 그림들은 카트라이트(N. Cartwright)가 노이라트(O. Neurath)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출처 Otto Neurath: Philosophy between Science and Politics (1996)

 

19세기 말, 영국에서 태어나 실험동물학자이자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살았던 랜슬롯 호그벤은, 말년에 그의 사상에 ‘과학적 인본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생각엔, 호그벤의 과학적 인본주의가, 장하석 교수의 인본주의 과학보다 훨씬 겸허하고 인간다운 철학이다.

 

“만약 나의 삶의 신조에 대해 이름을 붙이라는 요청을 받았다면, 지금 나는 그것을 과학적 인본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과학적 인본주의 역시 새로운 의미의 사회적 관련성을 지닌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교육의 내용을 대촉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과학적 인본주의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식된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의 발전에 필요 불가결한 전제조건이라고 믿는다.”

 

※참고자료

-독일 과학계, 나치 생체 실험 참여 사과, 동아사이언스, 2001년 6월 27일자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56981
-나치 독일과 카이저빌헬름연구회가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에 대한 후베르트 마르클의 논문Markl, H. (2003). Jewish intellectual life and German scientific culture during the Weimar period: the case of the Kaiser Wilhelm Society. European Review, 11(1), 49.

-하이데거 연구자인 박찬국 교수는 나치에 대한 동조는 하이데거 철학의 과오가 아니라, 하이데거 철학 그 자체라고 말한다. 
-철학계의 스타라는 지젝은 하이데어를 범죄화해서는 안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후베르트 마르클이 총재로 재직할 당시, 막스플랑크연구회는 전신인 빌헬름카이저연구회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인간생체실험을 수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35081253
-Markl, H. (1995). Wohin geht die Biologie?. Biologie in unserer Zeit, 25(3), 33-47.
-후베르트 마르클은 동물의 사회성의 진화에 대한 교과서를 집필할 만큼 동물행동학의 저명한 학자였다. Markl, H., & Feldman, M. W. (1980). EVOLUTION OF SOCIAL BEHAVIOR: HYPOTHESES AND EMPIRICAL TESTS: A REPORT.
-Markl, H. (1994). Dementia dichotoma—the ‘two cultures’ delusion. Experientia, 50(4), 346-351. 물론 마르클의 저작물에 대한 나의 한계는 영어로 발표된 글들에 제한된다. 독일어로 된 그의 저작물을 대략 살펴보면, 그는 독일어로는 이미 더 오래전부터 과학과 주변학문 그리고 사회에 대한 글들을 발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Markl, H. S. (1999). The future of nature. European Review, 7(3), 359-369.
-동물행동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진화적 의미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과학의 문제를 다루는 내용의 논문

Markl, H. S. (2001). Man’s place in nature—past and future. In Understanding the Earth System (pp. 81-93). Springer, Berlin, Heidelberg.

아래 글들도 이와 비슷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Markl, H. S. (2003). Humanity and humanism: The bioethical perspective of human evolution. Current Science, 84(10), 1309-1316.

동물행동학자로서 인간의 진화와 역사 그리고 사회에 대한 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르클의 주요 관심사였다.

-Markl, H. (1982). Constraints on human behavior and the biological nature of man. Journal of Social and Biological Structures, 5(4), 381-387.
-Markl, H. (2001). Research doesn't denigrate humanity. Nature, 412(6846), 479-480.
-Markl, H. (2002). Who owns the human genome? What can ownership mean with respect to genes?. European review, 10(4), 513-517.
-Markl, H. (2011). Genetik und Ethik.
-Markl, H. (1995). Wohin geht die Biologie?. Biologie in unserer Zeit, 25(3), 33-47.
-Markl, H. (2009). Challenges of Globalization for Science and Research. European Review, 17(3-4), 499-509.

Markl, H. (2006). Brain drain: a non-political perspective. European review, 14(1), 23-31.

Markl, H. (2003). Science and science television in the changing world of global communication. European Review, 11(2), 131-146.

Markl, H. S. (2005). Battle for the Brains?. Science, 310(5754), 1585-1585.
-정문강에 대한 나의 글들을 참고할 것. http://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176http://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444

-장하석. (2014).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서울: 지식플러스. 
-장하석 교수의 서울인문포럼에서의 강연을 보면, 장하석 교수의 인본주의 과학이라는 주장의 실체를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7Ob40TlD_8&feature=youtu.be
-내 글 ‘경제적 효용가치로서의 과학’을 참고할 것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A%B2%BD%EC%A0%9C%EC%A0%81-%ED%9A%A8%EC%9A%A9%EA%B0%80%EC%B9%98%EB%A1%9C%EC%84%9C%EC%9D%98-%EA%B3%BC%ED%95%99/
-과학전쟁에 대해서는 내 글 혹은 홍성욱의 다음 논문을 참고할 것.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A%B3%BC%ED%95%99%EA%B3%BC-%EC%9D%B8%EB%AC%B8%ED%95%99-%EA%B7%B8-%EC%B6%A9%EB%8F%8C%EA%B3%BC-%EB%8C%80%ED%99%94/

-홍성욱. (1997). 누가 과학을 두려워하는가. 최근" 과학전쟁"(Science Wars) 의 배경과 그 논쟁점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과학사학회지, 19(2), 151-179.
-장하석 교수의 책에 과학철학자 이상욱이 쓴 논평도 엉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장하석 교수의 주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번역어 정도를 지적하며, 인본주의 과학이라는 엉성한 주장을 논파조차 하지 못한다. 이상욱. (2016). 서평: 다원주의와 인본주의: 장하석 교수의 과학철학, 19(1), 85-93.
-인문학적 제어론에 대해서는 나의 글들을 참고할 것.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D%B8%EB%AC%B8%ED%95%99%EC%A0%81-%EC%83%81%EC%83%81%EB%A0%A5%EC%9D%B4%EB%9D%BC%EB%8A%94-%EC%98%A4%ED%95%B4/http://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713http://www.hani.co.kr/arti/PRINT/661586.html

-장하석 교수는 호이겐스의 말 “전 세계가 나의 조국이고, 과학은 나의 종교이다”를 인용하며 과학지식을 종교적 신념처럼 믿는건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데, 호이겐스가 살던 16세기의 유럽은 혼돈의 시기였고, 호이겐스의 친구이기도 했던 데카르트는 과학을 통해 확실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그의 철학을 완성했다. 즉, 16세기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이라는 맥락을 건너뛰고 호이겐스의 당시 발언을 그대로 21세기로 가져와 가치절하하는건 결코 역사를 아는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다. 장하석 교수에게 데카르트의 확실성 추구의 맥락을 다룬 스티븐 툴민의 책 《코스모폴리스》를 권한다.

-프리스틀리에 관해선 다음 글을 참고할 것. https://m.blog.naver.com/kbs4547/220740100802
-노이라트에 대해서는 내 글을 참고할 것.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3671
-여영서. (2012). 통일과학과 지식융합. 과학철학, 15(2), 209-232.
-피라미드와 풍선으로 대비되는 지식융합의 의미. 여영서, “지식융합의 의미와 방법”, 지식융합 2011 창간호에서 재인용. 이 그림들은 카트라이트(N. Cartwright)가 노이라트(O. Neurath)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Otto Neurath: Philosophy between Science and Politics (1996)
-호그벤의 과학적 인본주의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내 책을 참고할 것. 김우재. 《선택된 자연》. 경기도: 김영사, 2020.
-송진웅. (2001). 1930-50 년대 영국의과학시민의식운동과 L. Hogben 의 Science for the Citizen. 한국과학교육학회지, 21(2), 385-399.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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