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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구 주도권 잡을 기회 놓쳤다" '방역선진국' 한국 기초연구에선 목소리 못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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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구 주도권 잡을 기회 놓쳤다" '방역선진국' 한국 기초연구에선 목소리 못내는 이유

2020.07.21 09:42
BL3 시설 모자라고 부검 부정적인 문화로 실험정보 수집 어려워
미국 비영리의학연구소 잭슨연구소는 2007년 개발된 코로나19 감염 유전자변형마우스의 정자와 배아를 냉동보관하고 있다. 최근 이 연구소는 이 마우스를 증식해 코로나19 실험을 위해 공급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잭슨연구소 제공
미국 비영리의학연구소 잭슨연구소는 2007년 개발된 코로나19 감염 유전자변형마우스의 정자와 배아를 냉동보관하고 있다. 최근 이 연구소는 이 마우스를 증식해 코로나19 실험을 위해 공급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잭슨연구소 제공

이달 20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코로나19) 국내 첫 환자가 나온 지 6개월이 지났다. 지난 1월 19일 중국 우한에서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 여성이 다음날인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로 확신 판정을 받았다. 이후 코로나19 환자 수는 이달 20일까지 1만3771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은 초기에 대구 경북 지역의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일어나면서 중국 다음으로 빠른 환자 증가세를 보였지만, 방역당국의 적극적인 방역조치와 역학조사, 의료진의 헌신적 치료로 사태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안정화시킨 국가로 꼽히고 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적극적인 접촉자 추적과 우수한 바이오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진단기술은 많은 국가에 도입됐다. 하지만 손꼽히는 방역조치와 달리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자체나 이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대한 국내 연구진의 우수한 기초연구 성과는 부족한 실정이다. 방역조치를 수행 중인 질병관리본부가 한국의 역학 분석 사례를 발표한 사례는 간혹 있지만, 우수한 바이러스학 또는 유전학 연구는 드물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제공하는 논문 검색 서비스 '국가오픈액세스플랫폼(KOAR)'에서 COVID-19와 2019-nCoV, SARS-CoV-2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20일까지 코로나19 관련 전세계 학술지에 게재됐거나 사전공개사이트에 공개된 프리프린트 논문은 총 4만1637건이 검색된다. 이 가운데 한국인이 저자로 들어간 논문은 137건으로 0.3%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내의학지가 대부분이다. 


사이언스나 네이처, 셀 등 저명한 국제학술지와 랜싯,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 미국의사협회지(JAMA) 등 의학학술지가 거의 매일 코로나19 관련 연구 논문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 가운데 한국 연구팀이 주도한 경우도 거의 없다.

 

5월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과 장혜식 연구위원, 질병관리본부팀이 RNA 전사체 구조를 밝혀 셀에 발표한 논문과,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팀이 코로나19 환자에게 발견되는 과잉염증반응의 원인이 인터페론 면역반응 때문이라고 밝힌 이달 13일자 ‘사이언스 면역학’ 논문 정도가 드문 예외에 속한다. 그 외에는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인체세포 감염시 활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 ‘물리화학저널B’에 논문으로 발표한 사례와, 코로나19 의료진이 NEJM과 랜싯 등 의학학술지에 짧은 논평이나 보고를 몇 번 발표한 게 전부다.

 

이런 상황은 지난 사태가 안정화된 4월 말 이후에도 변화가 없다.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 의생명과학 분야가 총력 연구를 펼치는 가운데 한국 연구팀은 이 경주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학 기초연구는 직접적으로 바이러스 치료제나 백신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19’ 연구의 주도권을 영영 놓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장의 연구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꼽는다. 먼저 절대적으로 시설이 부족하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공공연구를 해야 한다는 믿음은 생겼는데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바이러스를 안전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생물안전3등급(BL3) 시설이 반드시 필요한데 충분하지 않아 실험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전체 시퀀싱(해독) 외에는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실정에서 '포스트 코로나19'가 과학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논의에 치우쳐져 있는 게 아쉽다”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BL3가 필요한 코로나19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연구자와 실험실을 매칭시키겠다고 5월 밝혔지만,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위해 민간기업에 공공기관의 BL3를 개방한다는 계획으로 기초연구를 촉진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또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정작 BL3가 시급한 백신 영장류 동물실험용 케이지(사육장) 추가 건설을 위한 예산 확보에는 소극적이라는 사실이 6월 나오기도 했다.

 

임상과 부검이 쉽지 않은 상황도 기초연구에는 불리한 여건으로 꼽힌다. 방역에 성공해 국내 발생 환자 자체가 적은 상황이 역설적으로 임상시험을 위한 환자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류왕식 한국파스퇴르연구소장은 5월 "하루 신규 환자 수가 20~30명 수준이다 보니 이 가운데 임상시험에 맞는 조건의 환자를 추릴 경우 실제로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환자 수는 극소수에 불과해 몇 가지 국내 치료제 임상시험의 참여자를 채우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대구 경북 지역에 환자가 크게 발생했던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급증하는 환자의 치료와 방역에 집중하느라 기초연구를 위한 검체 확보와 연구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초기 환자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막대한 양의 샘플을 확보해뒀다면 이후 치료제와 백신 연구는 물론 바이러스 추적 연구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왔겠지만 아쉽게도 국내엔 이런 샘플 확보 프로세스가 전국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부검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아직 활발하지 않다. 대구 경북 지역 확산이 정점을 지난 3월 초 정은경 본부장은 브리핑에서 “코로나19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다”면서도 “가족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아직 국내에서 부검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19 등 감염의 체내 확산 경로이자 백신 등의 주된 작용 기관인 림프관을 연구 중인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장은 “사망자의 부검을 통해 인체 림프관과 코로나19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부검 허가까지는 받았지만 정작 부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환자가 없을 때는 사망자가 없으니 부검 대상자가 없어 기회가 없었는데, 환자가 많아지자 이번에는 의료진이 바빠져서 부검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 단장은 “미국 등의 연구자가 평소였다면 그다지 정교한 연구 결과로 인정 받지 못할 내용을 단지 부검을 통해 확인했다는 이유로 최고의 의학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을 보면 기운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검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로 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부검할 부검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고 단장은 “감염병 환자다 보니 (감염 등의) 두려움을 느끼는 의료진이 많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3월 “감염병은 특수한 분야로 관련 공부를 하고 경험 있는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연구에 대한 연구자와 대중의 무관심과 거부감도 문제다. 한 신약개발 연구자는 “바이러스 연구는 위험하기만 할 뿐 다른 생명과학 분야에 비해 유망한 성과를 내기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바이러스 연구가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바이러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기관 역시 드물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와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등이 바이러스 전문연구기관을 표방하고 있지만, 일부 기관의 경우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 과거에는 바이러스나 감염병과는 관련 없는 분야 연구를 병행하는 등 온전히 바이러스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역 주민 역시 바이러스 관련 연구소가 입지하다고 하면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많아 연구소 입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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