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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직장내 성적 괴롭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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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직장내 성적 괴롭힘에 대하여

2020.07.18 11:1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성적 괴롭힘은 어디에나 있었다. 초등학교 때 걸스카우트 캠핑에서 6학년 여자아이들 텐트에 들어가서 자려고 한 남교사, 이상하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그냥 못 본 척하라고 했던 학교와 어른들, 골목에서 성기를 노출하고 달아난 남성, 먼저 와서 부딫혀놓고 여성 비하적인 욕설을 내뱉더니 뒤에서 따라오는 남자친구를 보고 빛의 속도로 도망친 남성, 남자 선배님 옆에 여학생들 앉히라던 같은 과 동기들, 제자를 ‘애인’처럼 생각하고 대했다는 교수나 부적절한 성적 농담을 하면서 자신의 유머감각에 자랑스러워하던 교수, 자신이 어떤 종류의 술집과 서비스를 좋아하는지 늘어놓던 직장 상사 등 필자가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것만도 다 늘어놓으면 백여가지는 되겠다. 


유난히 성적 괴롭힘은 아주 어릴 때 겪은 것들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는데 아마 이만큼 쉽고 빠르게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절망감을 선사하는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어렸을 때 일어난 성폭력은 (성폭력은 대부분 가정, 학교, 직장 등 ‘주변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고 어린이들은 주변 어른들을 철썩같이 믿는다) 당시에는 잘 몰랐다가 십여년이 지나서야 고통의 실체가 명확해지며 본격적인 고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수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종류의 성적 괴롭힘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들 중 약 70%가 ‘학교와 직장’에서 일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성적 괴롭힘을 저지르는 남성들


왜 어떤 남성들은 성적 괴롭힘을 저지르는 걸까? 성폭력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권력'이다. 권력을 누리고 싶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왜곡된 욕망이 성폭력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권력 추구욕과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 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고 여성을 자신의 성취에 대한 ‘전리품’으로 보는 경향이 큰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성폭력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권력이 없었다가 생겨서 간만에 느낀 우쭐한 기분을 크게 누리고 싶은 욕구가 클수록 성적 괴롭힘을 더 많이 저지르는 현상도 확인된 바 있다. 즉 눈 앞에 있는 여성의 인격을 훼손함으로써 권력감을 얻거나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이를 즐기는 남성들이 다수 있다는 얘기다. 성적 괴롭힘의 본질은 갑질인 셈이다. 

 

여성을 무릎꿇림으로써 권력감을 크게 누리고 싶다는 마음은 유능하고 잘 나가는 여성을 깔아뭉개려는 시도로도 나타난다. 남초 직장에서 능력있는 여성이 나오는 경우, 이 여성을 향해 성적 괴롭힘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한 예다. 가정에서 여성이 남편보다 교육수준과 소득 수준이 높은 경우 그 반대 경우에 비해 가정폭력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기가 세고 자아가 비대해서 본인이 대접 받아야만한다고 생각하는 ‘자격의식’이 높은 남성들도 성폭력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수 많은 여성들을 생각해보면 남성들의 비대한 자아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가히 국가적 재난이다. 

 

성적 괴롭힘을 조장하는 환경

 

성적 괴롭힘을 조장하는 환경적 요소에서도 권력 구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컨대 권력구조가 수직적이어서 몇 명이 제왕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구성원 대부분이 남성이며 리더 역시 대부분 남성인 경우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교수가 제자들의 미래를 한 손에 거머쥐고 있는 대학원의 경우에도 대놓고 학생에게 사귀자고 하거나 유흥업소에 데려가는 일들이 일어난다. 아무도 자신을 제지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고발을 하더라도 같은 남성 교수 사회에서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고 묻히거나 피해자만 학업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는 식이다. 


반면 여성 직원 수가 많거나 특히 여성 리더가 많은 조직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교적 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몇 명만이라도 잘못된 일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상황은 훨씬 좋아진다는 것이다. 즉 성적 괴롭힘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은 여성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성 직원을 더 많이, 더 비중있게 고용하는 것이 되겠다. 


이 외에도 ‘성적 농담’이 용인되는 정도, 여자는~ 남자는~ 어쩌고 하는 성차별적 언사가 자유롭게 행해지는 환경, 성적 괴롭힘을 저지르고도 고발당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는 환경 등이 조직 내 성적 괴롭힘이 일어날 확률을 잘 나타내는 지표들이다. 즉 직장내 성폭력은 ‘충동적으로’, ‘한 순간의 실수로’ 같은 말이 나타내듯 마치 자연 재해처럼 인간의 힘으로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 성적 폭력을 저지를만한 사람이 성적 폭력을 허용하는 환경을 만나서 생기는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인간 행동이다. 해결하지 ‘못’한다기보다 다만 의지가 없어서 문제 인식도 하지 않고 해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조직에서 성적 괴롭힘에 엄충하게 대처할 것임을 내세우고 고발과 조사 절차, 피해자 보호 방안, 실제 처벌 등을 확고하게 밝히며, ‘농담으로 그랬다’ 같은 변명을 허용하지 않고 사소한 언행도 주의시키는 등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경우 이것만으로도 직장 내 성폭력이 많이 감소한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정리하면 성적 괴롭힘은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억압을 허용하는 환경에서 온갖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의해 아무 문제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여성을 ‘사무실의 꽃’ 같은 거 말고 동등한 인력으로 인식하고, 성별 권력 차이를 해소하며, 문제인식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반응


한편 직장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가해자를 나름 피하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내가 더 잘 대처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관계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애쓰는 것이다. 또 다른 반응은 ‘설마 성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거야’라며 어떻게든 가해자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애쓰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믿고 의지하고 존경했던 인물’로부터 생각지 못했던 폭력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지고 만다.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며 본인을 탓하기도 한다. 직업과 생계, 자신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이기에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동료를 찾는 일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바로 빠져나오거나 고발을 하기보다 가해자와 계속 마주치며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면서 지쳐간다. 


조직과 가해자측은 바로 직장 내 성폭력의 이러한 특징을 끌어내서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냐며 너도 즐긴거 아니냐고 피해자를 공격한다. 악의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고발 후에 조직에서는 거의 반드시 피해자에 대한 보복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해고하는 등의 노골적인 방법보다는 괴롭혀서 피해자 스스로 그만두도록 만드는 식이다. 책상을 복도에 빼놓거나 컴퓨터와 전화를 없애는 등이 사례들이 보고된 바 있다. 너 때문에 분위기 이상해졌다거나 회사 이미지 나빠졌다는 비난들도 던져지며 피해자들은 철저히 혼자가 된다. 그렇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피해자가 견디지 못하고 조직을 나오면 시간이 지나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제임스 캠벨 퀵 교수는 미국심리학회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성폭력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들이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는 한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남자가 다 그러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거나 여성을 고용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보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어떤 남성들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지 생각할 때다. 

 

※관련기사

-Baumeister, R. F., Smart, L., & Boden, J. M. (1996). Relation of threatened egotism to violence and aggression: The dark side of high self-esteem. Psychological Review, 103, 5-33.
-Kaukinen, C. (2004). Status compatibility, physical violence, and emotional abuse in intimate relationships.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66, 452-471.
-Kunstman, J. W., & Maner, J. K. (2011). Sexual overperception: Power, mating motives, and biases in social judgm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0, 282–294.
-McLaughlin, H., Uggen, C., & Blackstone, A. (2012). Sexual harassment, workplace authority, and the paradox of power.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77, 625-647.
-Smith, B. L. (2018). What it really takes to stop sexual harassment. Monitor on Psychology, 49, 36-40.
-Williams, M. J., Gruenfeld, D. H., & Guillory, L. E. (2016). Sexual Aggression When Power Is New: Effects of Acute High Power on Chronically Low-Power Individual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 201–223.

 

※필자소개

박진영《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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