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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독일의 과학엔 특별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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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독일의 과학엔 특별한 것이 있다

2020.07.02 15:06
2005년부터 지금까지 독일의 총리로 재직중인 앙겔라 메르켈은 물리학 박사다. 특히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과학적으로 대처해 세계를 놀라게 했고, 현재 지지율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2005년부터 지금까지 독일의 총리로 재직중인 앙겔라 메르켈은 물리학 박사다. 특히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과학적으로 대처해 세계를 놀라게 했고, 현재 지지율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과학은 결코 국수적일 수 없고 인류 전체에 봉사해야 합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코로나19 사태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과학에  몸을  바치는데, 모두  다 과학 자체를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보여  줄  기회가  있기에  과학의  사원에  들어오는데, 이들에게  과학은  운동선수들이  경기에서  자신의 근육을 보여 주듯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는 스포츠와 같다. 또  다른  부류는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자신의  두뇌  섬유(brain  pulp)를  사원에  바치는  부류다. 이들은  우연히  과학을 경력으로 삼게 된 사람들로, 상황이 달랐다면 정치가나 사업가가 됐을 이들이다. 만약 천사가 강림하여 과학의 사원에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몰아낸다면, 사원이 거의 비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진정한 과학 숭배자들이 존재한다—이전 시대 사람 몇몇과 현시대 사람 몇몇. 우리의  플랑크가  바로  그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우리가  그를 사랑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메르켈, 4차산업혁명, 그리고 독일의 과학기술사랑


코로나19가 한창이던 3월,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침착하게 국민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확진자 1만5천명이 넘어가는 위기의 순간, 양자화학 박사학위를 지닌 66세의 여성 총리는 아주 차분한 어조로 앞으로 코로나19가 가져올 사회와 삶의 변화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모든 사안을 미리 의학계와 협의하고, 그 내용을 솔직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물론, 기초감염재생산수 개념을 숫자와 과학으로 직접 설명했다. 자신의 감에 의지해 미국의 코로나 대응을 좌절시킨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의 리더십 차이는, 어쩌면 질병을 대하는 과학적 태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유행한지도 오래되었다. 이제는 유행어가 된 이 말의 기원이 독일의 인더스트리4.0이고, 그 말을 한 인물은 독일의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이었다. 독일은 이미 2012년부터 제조업의 완전 자동화를 통해 스마트 공장을 만들자는 인더스트리4.0을 진행하고 있었고, 클라우드 슈밥은 이를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다보스포럼에서 소개한 것이었다.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대결로 2016년이 되서야 충격을 받은 국내의 정치인들이 그제서야 대선 구호로 4차산업혁명을 내세운 한국과, 자국의 제조업 중심 산업을 통해 새로운 혁신의 한 축으로 4차산업혁명을 내세운 독일은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나치 독일이 패망하기 직전인 20세기 중반까지, 독일의 과학기술은 세계최고 수준이었다. 미국이 페이퍼클립 작전이라는 작전명으로 나치 독일의 과학자 수백여명을 미국으로 포섭해서 이주시켰고, 이들에 의해 과학기술 후진국이었던 미국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는건 유명한 이야기다. 이후 동독과 서독으로 나라가 분열되고,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면서 독일의 과학기술은 미국이나 러시아보다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물리학 박사 출신의 국가 지도자를 보유하고, 4차산업혁명의 물결을 주도하면서, 가장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의 현재 모습 뒤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적인 신뢰와 든든한 후원이 놓여 있다.

 

독일의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와 지원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독일의 학술연구를 이끄는 비대학 학술연구기관체제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독일은 학술연구를 대학이 독점하지 않는 독특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이들 비대학연구기관(Außeruniversitätsforschungsinstitut)은 크게 4개의 대규모 연구협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4개 연구회의 이름은 각각, 헬름홀츠협회(Hermann von Helmholz-Gemeinschaft Deutscher Forschungszentren), 라이프니츠협회(Wissenschaftsgemeinschaft Gottfried Wilhelm Leibniz), 프라운호퍼(Fraunhofer-Gesellschaft), 그리고 막스플랑크 협회(Max Plank Gesellschaft·MPG)로, 각 연구회를 상징하는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프라운호퍼, 그리고 막스플랑크는 모두 과학자의 이름이다. 게다가 매년 2천명 이상의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학술활동을 위한 독일 체류를 지원하는 재단의 이름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으로, 훔볼트 또한 다윈이 흠모하던 지질학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대학이 아닌 독일정부가 지원하는 국가적 학술연구가 이처럼 과학자의 이름을 딴 과학기술연구회를 중심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많은 사회과학연구소들은 이 4개의 연구회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즉, 한국처럼 억지로 융합과 통섭을 말하는 대신에 독일은 처음부터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모든 학문이 자연스럽게 통섭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두었다는 뜻이다

 

그런 독일의 연구회들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운영원칙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곳이 바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막스플랑크연구회다. 


‘하낙 원칙’ 혹은 ‘저명한 과학자의 원칙’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의 모습. Daniel Mietche/위키피디아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의 모습. Daniel Mietche/위키피디아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1948년 2월 26일 카이저빌헬름연구회의 후신으로 태어났다. 1948년은 서독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던 시기다. 독일은 국가의 설립과 동시에 국가 과학기술연구의 중심이 될 연구회 설립을 진행했던 셈이다. 초대 총재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오토 한이 임명되었고, 25개의 연구소와 연구조직으로 구성되어, 1951년 생화학학연구소의 설립을 시작으로 1960년이 되면 40개의 연구소가 설립된다.

 

막스플랑크연구회를 운영하는 최고의 원칙은 ‘하낙 원칙(Harnack Prinzip)’이라고 불리는데, 하낙은 막스플랑크연구회의 전신, 카이저빌헬름연구회의 초대총재였다. 하낙 원칙 혹은 ‘저명한 과학자의 원칙(principles of eminent scientists)’은 한 명의 저명한 학자를 중심으로 연구소와 실험실을 운영한다는 것으로, 국내에는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유명해졌다. 하낙 원칙은 영국의 분자생물학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막스 페루츠가 관료주의로부터 연구소를 보호하려고 했던 시도와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소처럼 과학자의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연구성공의 원인이 되는 조직에선, 이제 하낙 원칙은 보편적인 원리로 고려되고 있다

 

막스플랑크연구회의 성공요인으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하낙 원칙 외에도, 독일 정부가 정권의 이익에 상관 없이 연구회를 꾸준히 지원해 왔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와는 달리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주무부처가 바뀌는 등의 불안정한 운영이 계속되고 있다. 저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자유롭고 안정적인 연구환경이 주어지는 막스플랑크연구회를 모방해 기초과학연구소 IBS가 탄생했지만, 처음부터 기초과학연구소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탄생했고, 지금까지도 정치적 압력과 관료주의 속에서 불안정한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과학적 구성원, 즉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연구회의 방향과 목표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지닌 막스플랑크연구회와는 달리, 한국의 각종 정부출연연구소들은 과학기술자가 아닌 행정관료들에 의해 연구소의 방향이 시시각각 변한다

 

막스플랑크연구회는 독일 과학기술의 자존심으로, 어마어마한 자본과 양으로 승부하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2014년 7대 소장으로 취임한 마틴 스트라트만은 “하낙 원칙에 좀 더 충실하자”라는 모토로, 최고의 과학자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연구회의 운영원칙을 재확인했다. 더 놀라운 점은 1948년에 시작된 연구회가 이제 겨우 7명의 총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회 총재의 임기는 6년이며, 1회 연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까지 과반수 이상의 총재가 12년의 임기를 채웠고, 나머지 과반도 6년의 임기를 모두 채웠다. 즉,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의 과학기술리더십은 정치적 변화와 상관 없이 유지되었다는 뜻이다.

 

독일 과학의 저력을 보여주는 조직이 바로 막스플랑크연구회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연구회는 1948년 창설되어 지금까지 독일이 과학연구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견인하고 있다.

 

독일 과학의 저력을 보여주는 조직이 바로 막스플랑크연구회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연구회는 1948년 창설되어 지금까지 독일이 과학연구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견인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독일 과학의 저력을 보여주는 조직이 바로 막스플랑크연구회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연구회는 1948년 창설되어 지금까지 독일이 과학연구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견인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통일과 과학


전쟁 직후 독일 과학기술의 혁신을 담당하던 막스플랑크연구회도 1990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동서독의 통일로 심각한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던 서독에 비해, 동독은 과학기술 발전이 보잘것 없었고, 독일의 정치지도자와 과학기술계 리더들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1998년까지 구동독 지역에 18개의 연구소와 1개의 연구거점을 설립하는데 성공한다. 통일로 인해 정부의 지출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은 과학기술예산의 증가 없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당연히 서독지역에 투자되었어야 할 과학기술예산이 동독에 집중 투자되었고, 서독 과학자들은 당연히 크게 반발했다. 연구회의 법적 소재지가 괴팅겐에서 통일 수도 베를린으로 이전되었고, 연구회는 동독으로의 확장을 꾸준히 진행해 나갔다. 서독 국민과 서독 과학자들의 반대, 그리고 통일독일이라는 목표와 과학기술발전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과업은, 단순히 과학연구만을 잘 이해한다고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막스플랑크 연구회의 독일이전은 과학적 문제 이전에 과학기술계의 갈등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정치적 문제였다. 

 

1996년 연구회가 동독으로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시절에 그 어느때보다 민감하고 어려운 연구회 총재직에 48세의 동물학자가 임명된다. 그는 콘라드 로렌츠, 칼 폰 프리슈 등과 함께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던 기초과학자였지만 깊은 인문학적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과학의 사회적 책무와 역할에 대해 젊은 시절부터 이해가 깊었던 르네상스맨이었다. 통일독일을 이끌어갈 과학의 운명이 48세의 동물학자 후버트 마르켈의 손에 맡겨진 것이다. 

 

※참고자료

-메르켈 총리 “독일 정부는 WHO 전적으로 신임”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423/100786001/1
-막스 플랑크의 책  《과학은 어디로 가는가》에 쓴 서문 중에서 '막스 플랑크의 물리학의 철학'에서 재인용. http://webzine.kps.or.kr/contents/data/webzine/webzine/15428716861.pdf
-메르켈 독일 총리 대국민담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의 협력 가장 필요한 때” 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05
-트럼프의 '감' 메르켈의 '과학'…극명하게 갈린 리더십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46912
-누구냐 넌? 4차 산업혁명...獨 인더스트리 4.0에서 시작 '알파고 쇼크' 거치며 한국 사회 뒤흔들어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1629.html
-https://brunch.co.kr/@jwsvddk/74'
-독일의 주요 학술·연구기관 https://seoul.diplo.de/kr-ko/themen/wissenschaft/-/1988200?openAccordionId=item-1988186-3-panel
-[독일의 정책브레인을 해부한다(2)]쾰른의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MPIfG) https://www.makehope.org/독일의-정책브레인을-해부한다2쾰른의-막스플랑크/
-鄭善陽. (1995). 기초연구를 어떻게 진흥할 것인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의 경험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정책, (77), 63-77
- [야! 한국사회] 무상커피와 과학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5853.html
-(시론)연구소의 주인은 누구인가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972988
-독일 과학의 저력을 보여주는 조직이 바로 막스플랑크연구회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연구회는 1948년 창설되어 지금까지 독일이 과학연구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견인하고 있다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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