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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유사비즈니스로 추락한 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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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유사비즈니스로 추락한 과학연구

2020.06.18 16:00
MIT출신의 공학자이자 행정가인 배너바 부시는 미국의 2차대전과 전후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위키미디어 제공
MIT출신의 공학자이자 행정가인 배너바 부시는 미국의 2차대전과 전후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위키미디어 제공

“과학연구기관들은 최선을 다해 과학 연구자들에게 독립성과 안정성 그리고 지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데 필수적인데, 새로운 지식의 대부분이 현재 우리가 믿고 실천하는 것들의 반대편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배너바 부시⁠,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 중에서 

 

“연구비 배분과 관료적 업적평가를 통해 한국 정부가 공공 부문 연구자들이 산업적 응용가능성이 큰 연구와 지적재산권을 중시하도록 유도하고 있고, 연구의 가치를 국가의 이익과 등치시키는 국가주의적 과학관 이 이러한 정책적 유도에 순응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 한 모습은 과학을 단지 경제성장의 도구로뿐 아니라 ‘조국 근대화’의 동력으 로 호명하며 동원해온 국가의 정책적 노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연구행태에서든 연구규범에서든 한국에서 과학의 상업화는 국 가에 의해 추동되었고 상당부분 국가주의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박희제⁠, 국가주도 과학의 상업화와 그 문화적 영향. 담론(2013) 중에서 

 

잊혀진 배너바 부시의 꿈


과학계가 과학자들을 마치 기계부품처럼 다루면서, 과학계의 인력구조는 철저히 정부와 기업의 연구비 관리자, 그리고 연구소의 과학행정가들에 의해 관리 받는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되었다. 이 구조 속에서 과학연구자들은 철저히 통제받는 가용노동력으로 취급되며, 스스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처우를 결정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림1의 오른쪽은 현재 과학계의 연구시스템을 간략하게 보여준다. 이 시스템에서 화살표는 각 기관 간의 상호작용을 의미하며, 붉은 상자는 해당 기관이 대부분 과학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정도를 나타낸다. 

 

과학계는 배너바 부시가 그리던 것과는 완벽하게 다른 방식으로 이분화되었다. 과학계의 수많은 비정규직들은 그 증거다. 출처 Lazebnik, Y. (2015)
과학계는 배너바 부시가 그리던 것과는 완벽하게 다른 방식으로 이분화되었다. 과학계의 수많은 비정규직들은 그 증거다. 출처 Lazebnik, Y. (2015)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제공하는 상위기관인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민간재단들과 소위 ‘과학계 리더’ 혹은 ‘과학행정가’라고 불리는 이들을 통해 상호작용한다. 과학계 리더 혹은 과학행정가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연구자들 중에서 선택되는 것이 전통이었지만, 최근의 흐름은 과학행정가와 과학계 리더의 자리를, 연구현장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대다수 차지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연구현장의 고충을 절감하지 못하며, 따라서 연구현장의 과학자들을 단순히 기계부품이나 숫자로 다루는 방식으로 정부 혹은 기업과 협상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조차 정부와 기업에 의해 비슷한 취급을 당하고 있다. 과학계는 잘못된 과학계 대표를 내세움으로서 스스로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위 그림의 왼쪽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배너바 부시(Vannevar Bush)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제출한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에서 부시가 설계한 ‘정부-기업-연구비 지원기관-과학계’의 이상적인 구조다. 배너바 부시가 이런 구조를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과학자들의 연합체 혹은 결사체였고, 미국에서 그 조직은 ‘미국과학재단(NSF)’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부시가 독립적인 과학자 결사체를 과학 연구시스템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상정한 이유는, 그가 공학자로 살아가면서 느낀 현장의 경험 때문이었다.

 

“따라서 기초 과학연구는 연구 이외의 것들을 우선하는 관리 기관의 지배하에 놓여서는 안됩니다. 관리 기관과 싸우느라 연구는 언제나 고통받게 될테니까요⁠ ” -  배너바 부시

 

1940년대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할 당시의 배너바 부시(왼쪽)와 제임스 코넌트 하버드대 총장, 미군 공병대의 레슬리 글로브스 장군과 프랭클린 마티아스 소령. 미국과학기술정보국 제공
1940년대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할 당시의 배너바 부시(왼쪽)와 제임스 코넌트 하버드대 총장, 미군 공병대의 레슬리 글로브스 장군과 프랭클린 마티아스 소령. 미국과학기술정보국 제공

부시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국립연구재단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재단을 연방 행정부의 조직처럼 대통령에 의해 통제되는 체제로 만들려고 했고, 부시는 이에 반대해 재단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연방행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이사회 중심 체제를 주장했다. 이런 갈등은 1945~1950동안 계속된 대토론으로 이어지며, 그 결과 NSF 총재는 대통령에 의해 통제받지만, 이사진 24명은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하는 장치로 만들어, NSF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조율된다. 결국 미국의 NSF는 독특한 독립성과 운영형태를 지니게 되었고, 부시 보고서 입안자들이 주장한 두 가지의 요구, 즉 첫째 국립연구재단이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과, 둘째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발견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창의적 연구분위기 조성과 원천기술 탐구의 목표를 관철하게 되었다⁠. 

 

국가주도의 상업화와 노벨상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철저히 국가주도로 이루어졌다. 국가가 과학기술정책을 전담하는 20세기 이전에 이미 과학자와 엔지니어 집단이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국가주도로 과학기술인력이 길러지고 관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과학기술의 패권을 주도한 미국의 경우에도 국가에 의해 과학기술정책이 주도된 측면이 강하지만, 미국은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했고, 그 어느 국가보다 민간공익재단에 의한 과학연구지원이 풍부했던 독특한 맥락 덕분에, 한국과 같은 철저한 국가주도의 과학기술정책은 실현되지 않았다. 

 

남한과 북한 모두 해방 이후 국가가 주도하는 과학기술정책에 매진했고, 경제성장이 국가의 주요 목표였던 산업화 시기와 맞물려, 과학기술정책은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철저히 계획되어야 했다⁠6. 이 과정에서 “과학은 산업화의 단계적 발전을 위해 견인차 역학을 할 핵심적 자원”으로 간주되었고,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을 동원하고 연구개발능력을 키웠다⁠. 박정희 시대에 성립된 국가주도 과학기술정책의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은 정치에 종속되었고⁠, “산업화와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자원이자 도구”로 취급되었다. 산업화 시기 한국에서, 과학의 상업화는 국가에 의해 주도되었다.

 

국가주도로 과학이 상업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첫째, 과학기술 거버넌스가 정권에 따라 불안정하고 현장과는 상관 없는 정치적 고려 혹은 관료주의에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과학기술 거버넌스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겪어 왔고, 이처럼 정치적 요인에 의해 과학기술계는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로 전략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 김대중 정권 이후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변화

 http://www.hani.co.kr/arti/PRINT/788419.html 

 

이승만 정부 이후 과학기술거버넌스의 변화. 자료출처 송하중. (2017). 과학기술 거버넌스: 압축 성장의 신화와 절박한 미래. 과학기술정책
이승만 정부 이후 과학기술거버넌스의 변화. 자료출처 송하중. (2017). 과학기술 거버넌스: 압축 성장의 신화와 절박한 미래. 과학기술정책

불안정한 과학기술 거버넌스는, 과학자 사회의 규범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산업화 시기 이후 지속적인 국가주도 과학의 상업화를 겪은 한국 과학자 사회는, 과학연구에서 공유, 개방성, 탈이해관계 등의 전통적인 규범을 따르기보다 비밀주의, 폐쇄성, 상업주의 등의 포스트 아카데믹 과학의 규범을 따르는 경향을 보여준다⁠. 공공부문 과학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는 조금 놀라운데, 예를 들어 대부분의 공공부문 과학자들이 지적재산권 확보를 위해 논문발표를 늦춰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공공부문 과학자의 연구규범. 자료출처 박희제, 국가주도 과학의 상업화와 그 문화적 영향(2013)
한국 공공부문 과학자의 연구규범. 자료출처 박희제, 국가주도 과학의 상업화와 그 문화적 영향(2013)

과학의 상업화가 한국 과학자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중 가장 위험한 요소는, 연구를 책임지는 교수나 책임연구원 그리고 과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리더들이 탈규범화되는 것이다. 박희제의 말처럼, “한국에서 과학의 상업화는 국가에 의해 추동되었고, 상당부분 국가주의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으며, 이런 영향은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를 경험한 과학원로들과 과학계의 리더들에게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과학과 비즈니스의 잘못된 만남, 그 결과


비즈니스의 일차적인 목표는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모든 비즈니스, 즉 사업은 이윤이라는 보편적이고 숫자로 측정가능한 지표를 통해 평가된다. 문제는 비즈니스계의 이런 목표가 과학계의 본질과 상충한다는데 있다. 과학 연구의 일차적인 목표는 실증 가능한 발견을 이루는 것이며, 그 발견의 상업적 가치는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다. 즉, 과학적 발견의 상업적 가치는 연구 그 자체가 아니라, 발견 이후의 사회적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이 철학이나 절차 없이 섞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정확히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계에 이런 일이 벌어졌고, 현재 세계 대부분의 곳에서 과학자들은 괴물이 되어버린 과학과 비즈니스의 잡종 시스템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과학적 발견은 결코 즉각적인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하지만 상업화된 과학계의 리더들은 과학자들을 이윤 창출의 도구로 상정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과학적 발견 자체에는 이윤을 만드는 기능이 없지만, 과학행정가들은 과학자의 발견을 포장해서 연구비를 수주하고, 발견의 파장을 과장해서 민간의 자본을 연구기관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실제로는 이윤이 아닌 이윤을 창출해냈고, 그 이윤은 연구기관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즉, 이 잡종 시스템에서 과학연구는 과학적 발견을 위한 목표보다, 연구기관의 유지와 확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유리 라제브닉은 이런 잡종 시스템을 ‘유사비즈니스(pseudo-business)’라고 부른다. 과학을 참칭하는 유사과학처럼, 현재의 과학연구 시스템은 조직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유사비즈니스에 가깝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전세계의 연구대학들은 과학자들을 일종의 연구비 따오는 기계로 취급하며, 그렇게 과학적 발견은 왜곡된 비즈니스 모델 하에서 썩어가는 중이다.

 

과학계가 만든 하이브리드 방식의 생태계 유지 방식. 이 시스템 속에서 연구기관의 목적은 더 나은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 연구기관의 존속과 팽창으로 왜곡된다. 출처 Lazebnik, Y. (2015)
과학계가 만든 하이브리드 방식의 생태계 유지 방식. 이 시스템 속에서 연구기관의 목적은 더 나은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 연구기관의 존속과 팽창으로 왜곡된다. 출처 Lazebnik, Y. (2015)

배너바 부시는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기초과학 연구가 꽃피울 수 있는 제도를 만든 인물이지만, 과학자가 아니라 공학자의 정체성을 지닌 학자였고, 공학자로서 보다는 행정가로서 더욱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정치가 과학과 기술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행정가가 되었고, 언제나 겪의 없는 대화를 즐겼으며, 스스럼 없이 권력을 비판해 주위에서 별로 인기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그는 과학과 공학 사이에서 주저 없이 공학을 선택했고, 공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그는 “과학자는 사물을 이해하는 일을 하지만, 공학자는 사물과 사람을 다룬다”는 말로, 공학자가 하는 일을 정의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을 존중했던 공학자에 의해, 미국 기초과학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부시가 꿈꾸었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과학자들의 결사체는, 과학계 리더들이 주도한 과학의 비즈니스 모델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참고자료 

- Bush, V. (1995). Science, the endless frontier. Ayer Company Publishers.
-박희제. (2013). 국가주도 과학의 상업화와 그 문화적 영향. 담론 201, 16(4), 5-31..
-미국과학재단(NSF)의 의미에 관해서는 다음 보고서를 참고할 것. https://www.bioin.or.kr/board.do?cmd=view&bid=policy&num=11577
-김근배. (2008). 과학기술입국의 해부도: 1960 년대 과학기술 지형. 역사비평, 236-261.
-김근배. (2017). 박정희 정부 시기 과학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과학대통령 담론을 넘어서. 역사비평, 142-168.
-박희제, 김은성, & 김종영. (2014). 한국의 과학기술정치와 거버넌스. 과학기술학연구, 14(2), 1-47.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A%B3%BC%ED%95%99%EC%9D%84-%EB%91%98%EB%9F%AC%EC%8B%BC-%EA%B8%B0%EB%AC%98%ED%95%9C-%EB%B3%8
- Zachary, G. P. (1995). 배너바 부시와 공학자의 역할. 공학기술, 2(4), 36-42.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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