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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의 빈공간에 있는 에너지를 빼내 우주 탐사선 동력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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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의 빈공간에 있는 에너지를 빼내 우주 탐사선 동력으로 활용한다"

2020.05.11 06:00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 올린 최상혁 NASA 수석연구원
최상혁 미국항공우주국(NASA) 랭글리연구소 수석연구원. NASA 제공
최상혁 미국항공우주국(NASA) 랭글리연구소 수석연구원. NASA 제공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난 2012년 8월 25일 인류가 만든 물체 가운데 처음으로 182억km 떨어진 태양계의 경계를 넘었다. 1977년 9월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지 35년만이다. 쌍둥이 우주선인 ‘보이저 2호’도 발사된지 41년만인 지난 2018년 보이저1호의 뒤를 이어 태양계 바깥 우주로 향했다. 1972년과 1973년 발사된 미국 탐사선 파이오니어 10호와 11호도 지금은 통신이 두절됐지만 태양계 너머 먼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 

 

NASA는 1970년대부터 태양계 바깥인 심우주 탐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지의 세계인 심우주에서 우주탄생의 비밀과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밝힐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태양계 경계에 도착하는데만 20~30년씩 걸린다는게 걸림돌이었다. NASA 과학자들은 최근 보이저1호와 2호 같은 심우주 탐사선의 순항속도를 높이는데 관심을 쏟고 있다. 

 

최상혁 NASA 랭글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런 차세대 탐사선 추진장치 개발의 중심에 서있다. 랭글리연구소는 NASA에서 가장 오래된 연구소로 우주와 항공 기술의 기초 연구를 진행하는 시설이다. 최 수석연구원은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원자’의 빈공간에 있는 에너지를 빼내 우주 탐사선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 수석연구원은 6일 화상을 통해 이뤄진 인터뷰에서 "원자핵이 야구공 크기인 지름 10cm 정도라고 하면 핵주변의 전자들은 6.4km 떨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원자핵과 전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고 모두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에서 핵과 전자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10조분의 1에 불과하고 나머지 공간을 에너지가 채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주탐사선이 사용하는 동력은 플루토늄을 활용한 핵전지에서 얻는다. 주로 지구와의 송수신을 위해 사용된다. 탐사선을 나아가게 하는 추진동력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궤도나 자세를 바꾸기 위해 추진력을 얻는데만 주로 사용된다. 핵전지의 추진 효율이 5% 미만이라 탐사선에서 꼭 필요한 때만 쓰인다. 


최 수석연구원은 “원자의 빈공간에 있는 에너지를 뽑아 쓸 수만 있다면 탐사선의 추진 효율을 크게 끌어올리고 무거운 핵전지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져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며 "현재 실험실 수준에서 기술 증명을 끝냈고 1~2년 안에 프로토타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최 수석연구원은 이 기술을 포함해 NASA에서 40년간 일하면서  인공위성 센서와 바이오나노 배터리, 극초소형 분광기, 태양열 로켓, 단결정 실리콘게르마늄(SiGe) 반도체 물질 등 다양한 발명품을 개발했다.

 

NASA는 그 공로를 인정해 이달 1일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최 수석연구원의 이름을 올렸다. 항공 우주 기술의 혁신을 이룬 NASA 최고의 엔지니어와 과학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다. 우주왕복선의 첫 모델을 제안한 막심 파게 연구원과 '위성서비스 기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랭크 세폴리나 연구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겨우 32명에게만 이 영예가 주어졌다. NASA는 “최 수석연구원은 200편 이상의 논문과 보고서, 특허권 45개, NASA가 수여하는 상 71개 등의 무수한 과학적 업적을 남겼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최 수석연구원은 어려운 탄광마을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로켓 발명가의 꿈을 꾸고 결국 NASA 엔지니어가 되는 실화를 그린 미국 영화 '옥토버스카이'의 한국판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 가천시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집 앞 미군 부대 천막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고물상에서 버려진 탄피와 화약을 얻어 로켓을 개발했다. 인하대에 입학해 1964년 12월19일 인천 소래포구 해변에서 3단 고체로켓 IITA-7CR을 50㎞ 상공까지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 로켓 발사 시범 요청을 받고 추진체(연료)를 제작하다 폭발 사고로 오른손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그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물리 교사와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짐시 일했지만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미국 오리건주립대로 건너가 석사와 박사 학위를 마치고 1980년 10월 NASA 랭글리연구소에 들어가며 어릴 적 꿈을 결국 이뤘다. 


최 수석연구원은 "혁신적이고 다양한 발명의 성과를 낼 수 있던 배경에는 혁신을 존중하는 NASA의 지원이 있었다"며 "한국도 NASA처럼 우주개발을 전폭적으로 이끄는 국가기관인 ‘우주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 수석연구원은 "우주개발이 학문의 발전과 산업 기술력의 향상, 국가 경쟁력 제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파급력이 주는 혜택은 투자의 몇십배에 해당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과감히 방향을 설정한다면 한국도 세계 우주개발을 이끌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민간이 주도하는 우주개발을 뜻하는 ‘뉴스페이스’에서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최 수석연구원은 "재사용 로켓을 개발한 미국의 우주기업인 '스페이스X'도 정부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며 "정부와 민간 회사가 협력을 하며 우주 개발을 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라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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