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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재구성, ‘빨간 모자’와 ‘해님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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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재구성, ‘빨간 모자’와 ‘해님달님’

2013.12.09 18:00
[강석기의 과학카페 156] 계통분류학 방법 이용해 상관관계 찾아

‘신데렐라’와 ‘콩쥐팥쥐’.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 수 있기는커녕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존재조차도 몰랐을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왔을 유럽의 동화 ‘신데렐라’와 우리나라의 동화 ‘콩쥐밭쥐’는 이야기의 구성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계모 구박에 파티(잔치) 갔다가 신을 잃어버리는 것까지. 교역이나 전쟁 같은 접촉을 통해 한 쪽의 이야기가 흘러들어가 모방 이야기가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인류의 보편적 정서가 비슷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우연일까.

 

아마 필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두 이야기의 관계를 궁금해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학술지 ‘플로스원’에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줄 수도 있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58가지 이야기 비교

 

영국 더럼대 인류학과 얌시드 테라니 교수는 생물학 교과서에 나오는 계통분류학 방법을 이용해 동화 ‘빨간 머리’ 계열 이야기들의 계통수를 만들었다.

 

테라니 교수는 세계 33개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빨간 머리’와 구성이 비슷한, 영역된 동화 58편에 대해 ‘진화적으로’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규명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동화 ‘해님달님’과 ‘해순이달순이별순이’도 포함돼 있다.

 

논문에서 테라니 교수는 먼저 전래동화를 분류하는 기존의 방법인 ‘역사적-지리적’ 접근법을 비판한다. 즉 기록의 시기를 토대로 하나의 원형(대체로 오래된 것)을 설정한 뒤 여기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의 자리를 잡아주는 방법인데 아무래도 유럽 위주로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것.

 

아무튼 오늘날 세계의 전래동화는 ‘아네-우터-톰슨(ATU) 지수’에 따라 300여 문화에 걸쳐 2000가지가 넘는 국제유형으로 분류돼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빨간 모자(Little Red Riding Hood)’는 국제유형 ATU 333이다.

 

대표적인 고전동화 ‘빨간 모자’는 여러 버전이 존재하고 세계 각지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 민속학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19세기 프랑스 판화가 귀스타프 도레의 삽화(1861년)로 늑대가 할머니 집으로 가고 있는 빨간 모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는 장면이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제공
대표적인 고전동화 ‘빨간 모자’는 여러 버전이 존재하고 세계 각지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 민속학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19세기 프랑스 판화가 귀스타프 도레의 삽화(1861년)로 늑대가 할머니 집으로 가고 있는 빨간 모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는 장면이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제공

여기서 ‘빨간 모자가 뭐지?’라고 궁금해 할, 기억력이 좋지 않거나 어릴 때 동화를 별로 읽지 않은 어른들을 위해 ‘빨간 모자’를 잠깐 소개한다.

 

유럽에서 구전돼 온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가 각색해 1691년 펴낸 동화집 ‘어미 거위 이야기’에 수록했다. 페로는 1697년 펴낸 동화집 ‘교훈을 곁들인 옛이야기’에도 실었는데, 이 책이 유명해지면서 페로 버전의 ‘빨간 모자’가 널리 퍼졌다.

 

옛날 옛적에 예쁜 소녀가 살았는데 할머니가 만들어준 빨간 모자를 쓰고 다녀 사람들이 빨간 모자라고 불렀다. 어느 날 할머니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은 어머니가 빨간 모자에게 빵과 버터를 갖다 드리라고 얘기한다. 숲을 지나가는 빨간 모자를 본 늑대는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고 빨간 모자가 할머니에게 줄 꽃다발을 만들려고 꽃을 꺾는 사이 할머니 집에가 할머니를 잡아먹고 침대에 누워 빨간 모자를 기다린다. 뒤늦게 집에 도착한 빨간 모자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그 유명한 질문과 대답 장면이 나온다.

 

“할머니는 팔이 왜 이렇게 길어요?”
“그건 너를 잘 안아 주기 위해서야.”
“할머니는 발이 왜 이렇게 커요?”
“그건 너에게 더 빨리 달려가기 위해서지.”
“할머니는 귀가 왜 이렇게 커요?”
“그건 너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야.”
“할머니는 눈이 왜 이렇게 커요?”
“그건 너를 잘 보기 위해서지.”
“할머니는 이가 왜 이렇게 날카로워요?”
“그건 너를 잡아먹기 위해서야.”

이렇게 말한 나쁜 늑대는 와락 달려들어 빨간 모자를 한 입에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샤를 페로가 들려주는 프랑스 옛이야기’, 최내경 옮김, 웅진닷컴)

 

한편 독일의 그림 형제는 페로 버전의 결말이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해 이 부분을 바꾼 ‘빨간 모자’를 1812년 펴낸 민담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에 수록한다. 이 버전에서는 빨간 모자를 잡아먹고 포만감에 코를 골고 자던 늑대를 마침 지나가던 사냥꾼이 발견하고 가위로 배를 갈라 할머니와 빨간 모자를 꺼내 목숨을 구한다.

 

한편 저자가 비교를 위해 선택한 우리나라 전래동화 두 편의 영어제목은 ‘The Sun and the Moon’과 ‘The Three Little Girls’다.

 

앞의 작품은  ‘해님달님’(또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일 텐데, 뒤의 작품은 아무래도 모르겠다. 이 작품이 수록된 책 ‘The Story Bag: A Collection of Korean Folk Tales’를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검색하니 마침 이북이 있다. 별수 없이 사서 읽어보니 ‘해순이달순이별순이’라는, ‘해님달님’의 다른 버전이다. 저자는 영역본을 토대로 분석을 했을 것이므로 영역본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1955년 간행된 한국의 전래동화 영어판 ‘The Story Bag’에 실려있는 ‘해순이달순이별순이’도 이번 분석에 포함됐다. 엄마로 변장한 호랑이가 소나무로 피신한 세 자매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제공
1955년 간행된 한국의 전래동화 영어판 ‘The Story Bag’에 실려있는 ‘해순이달순이별순이’도 이번 분석에 포함됐다. 엄마로 변장한 호랑이가 소나무로 피신한 세 자매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제공

깊은 산속 외딴집에 어머니와 어린 딸 셋이 살았는데 첫째가 해순이, 둘째가 달순이, 막내가 별순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땔감을 팔러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호랑이가 돌아다니니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멀리서 어머니가 떠나는 걸 지켜본 호랑이가 집으로 와 달콤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해순이, 달순이, 별순이야. 엄마가 왔다. 문 열어라.”
해순이가 묻는다. “진짜 엄마 맞아요? 엄마 목소리 같지가 않아요.”
“엄마야. 잔칫집에서 노래를 많이 불렀더니 목소리가 쉬었나보네.”
달순이가 눈을 보여 달라고 한다. “세상에! 눈이 왜 그렇게 빨게요?”
“할아버지댁에 들러 고추 빻는 걸 도와드리다 고춧가루가 들어갔구나.”
별순이가 손을 보여 달라고 한다. “손이 노래요!”
“옆 마을 친척이 집에 벽 바르는 걸 도와주다 황토가 묻었어.”

결국 아이들은 문을 열어줬고 들어온 호랑이를 보고 방구석에서 벌벌 떤다. 호랑이가 잠깐 부엌에 간 틈을 타 아이들은 재빨리 소나무로 올라갔다. 아이들을 발견한 호랑이는 나무에 오르려고 하지만 잘 안 된다.

“얘들아, 어떻게 나무를 탔는지 엄마한테 얘기해줄래?”
해순이가 대답한다. “부엌 찬장에 참기름이 있어요. 나무에 바르면 쉽게 올라올 수 있어요.”
호랑이는 나무에 참기름을 잔뜩 발랐지만 물론 미끄러지기만 했다. “착하지. 제대로 얘기해봐.”
달순이가 아무 생각없이 알려준다. “저기 있는 도끼로 나무를 찍으면 올라올 수 있어요.”
호랑이가 다가오자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고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와 얼른 올라탄다. 이 모습을 본 호랑이도 기도를 하자 역시 두레박이 내려왔고 호랑이가 올라탔다. 그러나 밧줄이 끊어지면서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져 죽었고 수숫대에는 호랑이의 피가 붉은 얼룩으로 남았다. 하늘에 올라간 해순이는 해가, 달순이는 달이, 별순이는 별이 되었다.

 

한편 ‘해님달님’은 비슷한 이야기인데 다른 점은 호랑이가 먼저 어머니를 잡아먹고(“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집으로 가 막내(아기)까지 잡아먹는다. 간신히 나무 위로 도망친 오누이는 두레박을 타고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이 됐고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져 죽었다.

 

●‘빨간모자’가 ‘해님달님’의 조상?

 

‘빨간 모자’와 연관된 민담 58종의 지리적 분포. 빨간색이 국제유형 ATU 333인 ‘빨간 모자’ 계열이고 녹색이 ATU 123인 ‘늑대와 새끼 염소’ 계열이다. 보라색은 동아시아 ATU 333/123, 하늘색은 아프리카 ATU 333/123이다. - 플로스원 제공
‘빨간 모자’와 연관된 민담 58종의 지리적 분포. 빨간색이 국제유형 ATU 333인 ‘빨간 모자’ 계열이고 녹색이 ATU 123인 ‘늑대와 새끼 염소’ 계열이다. 보라색은 동아시아 ATU 333/123, 하늘색은 아프리카 ATU 333/123이다. - 플로스원 제공

‘빨간 모자’와 ‘해님달님’ 이야기를 보면 구성이 꽤 비슷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분석한 58편은 기존 방식을 따르면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빨간 모자’가 대표하는 ATU 333 유형과 ‘늑대와 새끼 염소(The Wolf and the Kids)’가 대표하는 ATU123유형, ‘해님달님’이 속하는 동아시아 ATU 333/123 유형, 아프리카 333/123 유형이다. 참고로 늑대와 새끼 염소 이야기는 역시 집에 남겨진 새끼 염소들이 늑대에 속아 문을 열어줘 잡아먹힌다는 이야기로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테라니 교수는 세 가지 계통분류학 방법을 써서 이들 58가지 이야기의 계통수를 만들었다. 그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72가지 변수(주인공이 아이 한 명이냐 자매냐, 나쁜 짐승이 늑대냐 호랑이냐, 잡아먹혔냐 도망쳤냐 등)를 설정해 각 이야기 사이의 진화적 거리를 계산했다.

 

그 결과 방법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일관된 구조가 나왔다. 즉 58가지 이야기는 크게 세 무리로 나뉘는데, 하나는 ATU 333,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나머지는 ATU 123과 아프리카였다. 옆의 그림은 분지분석법에 따른 계통도로, 왼쪽 아래에 ‘해님달님’(TG12)과 ‘해순이달순이별순이’(TG13)가 보인다. 흥미롭게도 ‘해순이달순이별순이’는 TG14와 아주 가까운 사이인데(즉 내용이 많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TG14는 미얀마의 전래동화로 영역본의 제목은 ‘The Sun, the Moon and the Evening Star’다.

 

이 계통수에서 주목할 점 가운데 하나는 아프리카의 민담이 ATU 123과 묶이는 반면 동아시아 민담은 ATU 333과 ATU 123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의 그룹을 형성한다는 걸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계통분류학 방법으로 얻은 ‘빨간 모자’와 연관된 민담 58종의 계통수로 크게 세 가지 그룹으로 묶임을 알 수 있다. ‘빨간 모자’ 페로 버전(Perrault)과 그림 형제 버전(Grimm)이 오른쪽 아래에 보인다. 왼쪽 아래에는 우리나라의 ‘해님달님’(TG12)과 ‘해순이달순이별순이’(TG13)이 위치한다. - 플로스원 제공
계통분류학 방법으로 얻은 ‘빨간 모자’와 연관된 민담 58종의 계통수로 크게 세 가지 그룹으로 묶임을 알 수 있다. ‘빨간 모자’ 페로 버전(Perrault)과 그림 형제 버전(Grimm)이 오른쪽 아래에 보인다. 왼쪽 아래에는 우리나라의 ‘해님달님’(TG12)과 ‘해순이달순이별순이’(TG13)이 위치한다. - 플로스원 제공

사실 이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민속학자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는데, 한 학설은 동아시아 민담이 ‘빨간머리’(ATU 333)와 ‘늑대와 새끼 염소(ATU 123)’ 이야기로 갈라지기 전 원형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석했다. 중국학자인 배런드 터 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아시아 민담에서 ATU 333과 ATU 123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테라니 교수는 계통수를 면밀히 조사한 뒤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내놓았다. 즉 위의 주장대로라면 ATU 333과 ATU 123은 동아시아 민담에 비해 서로 더 가까우므로(최근에 갈라졌으므로) 둘이 공유하는, 동아시아 민담에는 없는 ‘파생형질(derived characters)’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는 것. 또 ATU 333과 ATU 123 초기 버전일수록 동아시아 민담에 더 가까워야 하는데 역시 그렇지 않다는 것.

 

대신 동아시아 민담이 ATU 333과 ATU 123의 잡종이라고 주장한다. 즉 ATU 333과 ATU 123 사이에는 겹치지 않지만 동아시아 민담에는 둘과 겹치는 에피소드가 있다. 예를 들어 손을 테스트하는 장면은 ATU 333에는 한 예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이 구해주는 장면은 ATU 123에서 한 예도 없다. 반면 동아시아 민담에서는 둘 다 몇 편에서 보인다. 이 밖에도 저자는 여러 통계분석 방법을 통해 이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두 유형이 조합돼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났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다.

 

생물을 분류하고 진화적 관계를 결정하는데 있어 계통분류학은 기존 린네 분류 체계를 훌쩍 뛰어넘어 혁신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파충류와 조류가 대등한 분류단위로 여겨졌지만 계통발생 연구를 통해 지금은 조류가 파충류의 부분집합으로 재배치됐다. 즉 계통발생에 따르면 새와 악어 사이의 거리(둘 다 조룡류)가 악어와 도마뱀(인룡류) 사이의 거리보다 더 가깝다. 직관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오늘날 많은 생물학자들은 계통분류학을 신뢰하고 있다.

 

최근 10여년 사이 계통분류학의 방법론이 언어학이나 인류학 분야에 도입되면서 참신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계통분류학적 방법은 기존의 인문, 사회학적 방법들에 비해 정량적이고 선입견이 개입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신데렐라’와 ‘콩쥐팥쥐’의 관계도 조만간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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