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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랙스, 죽고 나서야 전 세계를 여행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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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랙스, 죽고 나서야 전 세계를 여행한 여인

2013.08.26 18:04
[강석기의 과학카페 141] 헬라세포 게놈이 공개된 사연

  “하지만 이것은 우리 엄마예요.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맞습니다.”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과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헬라 어쩌고, 헬라 저쩌고 하는 식입니다. 사람들은 헬라가 어떤 사람의 이름 첫 글자에서 따온 것인 줄은 알아도, 다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그게 역사의 중요한 대목입니다.”
  데버러는 마치 그를 껴안아주기라도 할 것 같았다.
                                                              - 레베카 스클루트,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중에서.

 

  필자는 10여 년 동안 과학기자를 하다 지난해 은퇴했는데(아직 좀 더 일할 나이임에도), 돌이켜보면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기자로서 자질부족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필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한 발 물러서서 관찰자로 남아있으려는(즉 프레임을 정하는데 만족하는) 성향이 있는데, 저널리스트라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자신도 직접 뛰어들어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한 몫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나 사회도 아니고 과학 분야에서 사실만 충실하게 전달하면 되지 그 정도로 할 필요까지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해 한글판이 나온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의 저자 레베카 스클루트(Rebecca Skloot)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마흔 전후로 추정되는 스클루트는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창조적 논픽션’ 과정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스클루트는 10여 년 간 준비해 지난 2010년 출간한 첫 번째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10여개의 상을 휩쓸면서 일약 유명해졌는데, 책을 읽어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헨리에타 랙스가 누구지?’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필자도 2010년 학술지에 실린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보기 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1920년 태어나 1951년 불과 31살에 자궁경부암으로 죽은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는 그 유명한 ‘헬라세포(HeLa cell)’를 제공한 사람이다.

 

최초로 배양에 성공한 인간세포

헨리에타 렉스와 남편 데이비드. 1945년 무렵 찍은 사진이다. - Lacks family 제공
헨리에타 렉스와 남편 데이비드. 1945년 무렵 찍은 사진이다. - Lacks family 제공

  생명과학 전공자는 물론이고 관련 과목을 수강한 사람이라면 헬라세포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필자 역시 ‘암세포로 세포배양을 통해 전 세계 실험실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각종 약물의 안전성 시험부터 우주공간 실험까지 지난 60여 년 동안 안 해본 게 없는 헬라세포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증식하고 있다(적당한 배지만 공급해주면). 스클루트 역시 학교에서 헬라세포에 대해 처음 알게 됐는데, 이 세포의 태생이 상당히 미심쩍다는 얘기를 듣고 1990년대 후반 이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정말 힘들게 헨리에타 랙스의 후손들을 만나고 취재하며 알게 된 사실을 생생히 기록했다.

 

  헨리에타 랙스는 미국 버지니아주 클로버에서 담배농장을 하는 흑인 노예 후손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헨리에타의 증조할아버지는 백인 앨버트 랙스로 흑인노예인 마리아와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헨리에타의 사진을 보면 전형적인 흑인의 외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불과 14살에 첫 아이를 낳았고 애 아버지인 사촌 데이비드와는 20살 때 정식 결혼했다. 훗날 제철공장에 취직한 남편을 따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로 이주했는데, 다섯째 조를 임신했던 서른 살 무렵 자궁에 이상을 느껴 출산 뒤 인근 존스홉킨스병원을 찾았고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로 종양이 사라진 듯했으나 암은 다시 급격히 퍼졌고 결국 1951년 10월 4일 사망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의료진은 랙스의 암조직을 채취해 같은 병원의 조지 가이(George Gey) 박사팀에 보냈다. 가이 박사는 당시까지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인간세포 배양을 위해 닥치는 대로 생체시료를 모아 배양을 시도하고 있었다. 배양액 조성과 조건을 바꿔가며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세포들은 결국에는 죽고 말았고 반복 실험에 지친 연구원들이 두 손을 들 때쯤 랙스의 시료가 들어온 것이다. 실험실의 연구원 메리 쿠비체크는 기대하지 않고 여느 때처럼 세포를 키웠는데 놀랍게도 엄청난 속도로 증식했던 것. 평소 쿠비체크는 제공자의 이름과 성을 따서 시료의 이름을 만들었는데, 이 시료의 이름 헬라도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의 이름과 성 각각의 앞 두 글자 모음이다.

 

2010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의 저자 레베카 스쿨루트는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 PW 제공
2010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의 저자 레베카 스쿨루트는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 PW 제공

  그 뒤 헬라세포는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퍼졌고 소아마비 백신 개발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가 성과를 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헬라세포 배양이 성공한 건 이 암세포가 강력한 증식 능력을 갖는 악성 종양이었기 때문인데, 헬라세포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는 염색체 부위인 텔로미어(소진되면 세포도 더 이상 분열을 못하고 죽는다)를 복구하는 텔로머라제라는 효소를 엄청나게 만들어 ‘불멸의 삶’을 획득했다.

 

  시료가 채취되고 수개월 뒤 사망한 헨리에타는 물론이고 남은 가족들도 아내 또는 엄마의 세포가 배양을 통해 전 세계 실험실에서 증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1970년대 초 존스홉킨스병원에서 헬라세포를 식별하기 위한 표지를 찾기 위해 가족들의 혈액이 필요해지자 가족들에게 연락했고 가족들은 공짜로 건강검진을 해주는 줄 알고 기꺼이 시료를 제공했다.

 

  그런데 1975년 ‘롤링스톤’이라는 잡지의 마이클 로저스라는 기자가 랙스가(家) 사람들을 찾아오면서 혼란이 시작된다. 우연히 헬라세포를 알게 된 로저스는 특종거리임을 직감하고 볼티모어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헨리에타의 맏아들 로렌스의 연락처를 알아낸다. 로저스는 로렌스가 헬라세포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데 놀랐고 거꾸로 질문공세를 받는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로렌스는 세포의 개념도 몰랐다.

 

  이듬해 로저스의 기사가 실렸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한 흑인여성의 세포가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상품으로 거래되고 각종 실험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헨리에타의 가족들도 이 사실에 경악했는데, 세 아들은 존스홉킨스대학이 헬라세포를 팔아 떼돈을 벌었다고 오해하고 자신들은 한 푼도 못받는 데 분노한 반면 넷째인 딸 데버러는 두 살 때 죽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삶과 헬라세포의 의미를 모른다는 데 괴로워했다. 그 뒤로도 잊혀질만하면 기자들이 가족들을 찾았고 궁금한 걸 다 알려주겠다고 접근했지만 결국 자기들 필요한 것만 챙기면 연락을 끊었다. 결국 가족들의 정신은 갈수록 황폐해져갔다.

 

  1999년 스클루트가 헨리에타의 유족들과 접촉을 시도했을 때 상황이 이랬으므로 취재가 쉽지 않았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스클루트는 끈질기게 달라붙었고 2000년 마침내 데버러를 만나게 된다. 그 뒤 두 사람은 취재원과 기자 사이를 넘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현장취재여행을 같이 떠나기도 한다. 글 앞에서 인용한 부분은 2001년 존스홉킨스의대의 크리스토프 렌가우어 박사가 데버러와 동생 조(헨리에타의 막내)를 실험실로 초청해 현미경으로 헬라세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공개한 데이터 며칠 만에 폐쇄해

 

형광항체가 달라붙은 헬라세포. 녹색은 액틴 단백질, 빨간색은 비멘틴 단백질, 파란색은 DNA다. - EnCor Biotechnology Inc. 제공
형광항체가 달라붙은 헬라세포. 녹색은 액틴 단백질, 빨간색은 비멘틴 단백질, 파란색은 DNA다. - EnCor Biotechnology Inc. 제공

 학술지 ‘네이처’ 8월 8일자에는 헬라 세포와 관련된 글이 다섯 편이나 실렸다. 각각 사설, 컬럼, 기사, 논평, 논문으로 종류도 다양하다. 스클루트의 책이 출간돼 화제가 된 것도 이미 3년 전 일인데 왜 이런 이례적일 일이 일어났을까. 이야기의 발단은 올해 3월 학술지 ‘유전자 게놈 유전학’에 실린 한 논문이다. 독일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진들은 헬라세포의 게놈을 해독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게놈 데이터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아무 생각도 없었던 듯한데, 논문이 실리자 스클루트의 책을 열독했던 사람들로부터 데이터 공개가 유족들의 동의를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쇄도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은 펄펄 뛰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연구자들은 바로 데이터를 폐쇄했고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스클루트 역시 3월 23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과학자들을 질타했다.

 

  그런데 학술지 ‘네이처’는 이무렵 미국 워싱턴대의 제이 셴두어 교수팀이 보낸 논문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역시 헬라세포 게놈에 관한 연구였다. 이 연구는 미 국립보건원(NIH)이 연구비를 댔는데, 결국 ‘네이처’는 이 논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논하기 위해 NIH의 프랜시스 콜린스 소장과 접촉한다(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끈 그 콜린스다!).

 

  평소 콜린스는 과학만능주의에 거부감이 있었고 이번 일을 계기로 생체시료와 관련된 연구윤리를 바로잡기로 결심한다. 그는 스클루트에게 연락해 헨리에타의 유족들과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부탁했고 4월 8일 유족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그 뒤에도 두 번 더 만남을 가졌고 많은 대화 끝에 세 가지 안을 제시한다. 즉 게놈 데이터를 완전히 공개하는 방안, NIH가 DB를 관리하며 의뢰자에게 심사를 거쳐 정보를 주는 방안, 절대 공개하지 않은 방안이다. 결국 유족들은 조건부인 두 번째 안을 택했고 DB관리 그룹에 두 사람이 참여하기로 했다.

 

 2011년 헨리에타의 후손들이 버지니아주 클로버에서 모였다. 헨리에타가 살았던 마을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  Lacks family 제공
2011년 헨리에타의 후손들이 버지니아주 클로버에서 모였다. 헨리에타가 살았던 마을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 Lacks family 제공

  콜린스는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서 “사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개인 실험실에서도 헬라세포의 게놈을 해독할 수 있고 유족들도 이를 알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연구자 사회가 책임감있게 행동하고 유족들의 소망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라고 쓰고 있다. 콜린스는 또 ‘시료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면(de-identified) 데이터를 공개해도 된다’는 1970년대 제정된 현재의 법규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오늘날 데이터 분석 기술은 이런 시료도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콜린스는 “연구자와 참여자(생체시료제공자나 임상참여자) 사이의 관계는 진화해야 한다”며 “데이터 공개에 참가자의 허락을 구하는 건 이들이 단지 ‘실험대상’이 아니라 ‘동반자’임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헬라세포 염색체 구성 엉망

  끝으로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잠깐 소개하면, 헬라세포의 게놈 염기서열과 유전자 발현양상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다. 먼저 헬라세포 역시 암세포 게놈의 특징인 이수성(aneuploidy)과 이형접합성상실(loss-of-heterozygosity)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수성이란 염색체의 개수가 일정하지 않은 현상인데, 정상 세포라면 염색체가 2배체(부모로부터 각각 하나씩 받으므로)여야 하지만 헬라세포의 경우 4번 염색체만이 2배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염색체들은 부분에 따라 3배체, 4배체, 5배체, 6배체까지 존재한다. 한편 이형접합성상실은 부모에게서 받은 염색체 쌍 가운데 하나가 소멸하는 현상으로 헬라세포의 경우 6번, 13번, 22번, X 염색체에서 한 쪽 염색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게놈해독으로 밝혀진 헬라세포의 염색체 구성. 2배체인 정상세포와는 달리 암세포의 특징인 이수성과 이형접합성상실이 뚜렷하다. 염색체 양 옆의 옅은 주황색과 청회색 막대가 각 반수체의 개수를 보여준다. 염색체 위(또는 아래) 숫자가 염색체 번호다. 4번 염색체만이 2배체이고 다른 염색체들은 부분에 따라 3배체, 4배체, 5배체, 6배체까지 존재한다. 한편 6번, 13번, 22번, X 염색체에서 한 쪽 염색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 네이처 제공
게놈해독으로 밝혀진 헬라세포의 염색체 구성. 2배체인 정상세포와는 달리 암세포의 특징인 이수성과 이형접합성상실이 뚜렷하다. 염색체 양 옆의 옅은 주황색과 청회색 막대가 각 반수체의 개수를 보여준다. 염색체 위(또는 아래) 숫자가 염색체 번호다. 4번 염색체만이 2배체이고 다른 염색체들은 부분에 따라 3배체, 4배체, 5배체, 6배체까지 존재한다. 한편 6번, 13번, 22번, X 염색체에서 한 쪽 염색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 네이처 제공

  한편 자궁경부암은 열에 아홉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의 감염으로 일어나는데, 헨리에타의 경우도 8번 염색체 DNA에 바이러스가 끼어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50만 염기 떨어진 곳에 원암유전자(proto-oncogene)인 믹(MYC)이 존재한다. 원암유전자는 세포주기를 조절하는데, 정상 발현될 경우 문제가 없지만 과잉 발현되면 암세포를 만든다. 헬라세포에서는 끼어든 바이러스 유전자가 믹 유전자 발현을 수십 배 늘린다는 게 확인됐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생의학 연구에 기여한, 이제는 고인이 된 헨리에타 랙스와 현재 살아있는 그녀의 유족들에게 감사한다”고 쓰고 있다. 이 논문은 생체조직 제공자와 그 가족들의 ‘권리’와 ‘기여’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논문으로 과학사에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2010년 출간된 레베카 스클루트의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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