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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왕 이야기’로 보는 이세돌과 알파고, 인간과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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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왕 이야기’로 보는 이세돌과 알파고, 인간과 인공지능

2016.03.23 07:00
[미리보는 인공지능과 나 ③] 영문학자 편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4대 1,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화제가 된 만큼 이 대국과 그 의미에 대한 수많은 글들이 보입니다. 이세돌 9단의 바둑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리고 그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둔 알파고의 바둑은 또 얼마나 파격적인지, 인공지능이 어떠한 원리로 인간의 놀이인 바둑을 학습하고, 인간의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하고 승리에 이르는지를 분석하는 글은 오목도 못 두는 진성 문과생인 제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저는 기사(棋士)가 아닌, 기사(騎士)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자신과 같으면서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를 만난 후, 본인이 더 이상 “최고”가 아님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기 길을 걷는 이야기. 15세기 말, 영국에 퍼져 있던 여러 가지 아더 왕 전설을 집대성한 토마스 말로리 경의 ‘아더 왕의 죽음 (Le Morte D’Arthur)’에 등장하는 랜슬롯의 이야기입니다.

 

Le Morte D’Arthur 삽화 - Aubrey Beardsley  제공
Le Morte D’Arthur 삽화 - Aubrey Beardsley  제공

●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랜슬롯과 태어나기 전부터 고귀한 갤러해드

 

랜슬롯 경은 아더 왕이 이끄는 원탁의 기사들 중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기사였습니다. 누구보다 탁월한 무력 외에도, 아더 왕의 왕비인 기네비어를 흠모하며 그녀에게만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해 “여성에 대한 봉사”라는 기사의 또 다른 미덕도 갖춘 인물이었죠.

 

그가 모험 중에 굴복시킨 기사들은 모두 아더와 기네비어의 성인 카멜롯으로 찾아와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랜슬롯 개인의 명예와 원탁이라는 공동체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러한 그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기사로 추앙받았죠. 이러한 그의 입지가 흔들리게 되는 계기가 바로 원탁 설립 이래 최고의 모험인 성배 (the sankgreal)탐색, 그리고 그 성배탐색에 성공할 최고의 기사이자 자신의 친아들인 갤러해드 경의 등장입니다.

 

말로리에 따른 갤러해드 경의 탄생 비화는 이렇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피를 받은 잔이라고 여겨지는 성배는 아리마태의 요셉에 의해 영국 땅에 도착한 후 모습을 감춥니다. 아리마태의 요셉의 후손인 “어부왕” 펠레스 왕은, 성배를 찾는 모험이 랜슬롯 경의 아들인 갤러해드 경의 손에 완성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지요.

 

그러나 랜슬롯은 기네비어 왕비를 흠모하며 그녀에게만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했기에 주변의 어떤 여인들이 유혹을 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펠레스 왕은 자신의 성으로 랜슬롯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고,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딸 일레인과 랜슬롯이 동침하게끔 만듭니다. 이 일레인이 낳은 아들, 계시에 의해 점지되고 계시에 맞추어 마법의 힘을 빌어 잉태된 랜슬롯 경의 아들이 바로 “세계 최고의 기사” 갤러해드입니다.

 

열두 명의 수녀의 손에 키워진 갤러해드는 성인이 되자 아더 왕의 성에 찾아갑니다. 갤러해드의 카멜롯 입성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성배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원탁의 모든 기사들은 성배가 찰나의 순간 동안 보여준 눈부신 영광에 매료됩니다. 그들은 “이 모험은 나만을 위한 것”이라는 갤러해드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성배의 실체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고, 이들 중 소수만이 원탁으로 귀환한다, 는 것이 말로리가 기록한 성배 이야기의 요약입니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 갤러해드는 알파고, 랜슬롯은 이세돌 9단과 닮았다

 

다른 원탁의 기사들과는 달리, 갤러해드는 기사도라는 기본적인 군사적, 인간적 가치 외에도 그것을 넘어선 “성배”라는 신비로운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태어났고 자랐습니다. 말로리에 의하면, 성배는 아무런 흠이 없는 지극히 순결한 이들에게만 그 실체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곧 인간 세상과 인간 관계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그래서 어떠한 육체적, 정신적 유혹도 겪을 필요가 없었던, 정말이지 인공지능에 가까운 존재들이나 닿을 수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죠. 갤러해드는 성배탐색이라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잉태되고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성배탐색에서 성공하기 위한 선택지만을 택하는, 기사도계의 알파고 같은 존재라고 봐도 무리가 아닙니다.  

 

반면 이 초인적인 최고의 기사의 등장으로 한 때 “가장 훌륭한 기사”였던 랜슬롯은 “가장 훌륭한 세속적 기사”로 입지가 바뀝니다. 랜슬롯은 기네비어에 대한 사랑이 마음만으로도 죄였음을,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원탁 설립 이래 최대의 모험인 성배 탐색에 자신이 온전히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죠.

 

만방에 명성을 떨쳤던 랜슬롯이 자신의 핏줄이자 거울이며, 자신의 가장 훌륭했던 모습들을 뛰어넘은, 신 앞에서도 완전무결한 기사인 갤러해드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러한 자랑스러운 아들과 달리 자신은 결국은 죄 많은 인간이자 완벽하지 못한 기사였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어찌 되었든, 랜슬롯은 이 실패가 분명히 보이는 모험의 길을 끝까지 걷습니다. 자신이 여태껏 살아 왔던 세속 기사의 길이 신의 입장에서는 죄였음을 깨달은 실패자로써 원탁에 돌아와야 했지만요.

 

성배탐색과 갤러해드의 죽음 이후, 랜슬롯은 갤러해드의 성스러웠던 삶을 닮아가는 대신, 훌륭한 전투를 치르고 여성을 위해 봉사하는 세속적인 기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가 선택한 우수한 인간 기사의 길은 아더 왕의 죽음 직전의 에피소드인, 우리 경(Sir Urry)의 치유에서 가장 눈부신 방식으로 인정받습니다.

 

우리 경은 “세상 최고의 기사”의 손길로만 치료받을 수 있는 상처를 입은 인물인데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아더 왕을 위시한 원탁의 모든 기사들이 모였지만 모두 실패합니다. 원탁에 누가 될까 봐 시도하는 것 자체를 꺼리던 랜슬롯에게 아더 왕은 모두를 위해 나서서 치료를 해 달라고 말하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친 후 랜슬롯이 우리 경의 몸에 손을 대자 그의 상처가 씻은 듯이 낫게 되죠.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랜슬롯 경은—더 이상 “세계 최고의 기사”가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세속적 기사”로 하느님 앞에 인정받는 이 순간—매맞은 아이처럼 눈물을 흘립니다.

 

이 순간, 인간 기사가 겪을 수 있었던 모든 영광과 좌절, 기쁨과 고통을 견디며 자기 길을 걸어 온 위대한 인간의 손길로 인해 원탁이라는 인간 공동체는 그 비극적인 분열 직전,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의 성공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15일 구글 알파고와 최종 경기에서 첫 수를 놓고 있는 이세돌 9단 - 한국기원 제공
15일 구글 알파고와 최종 경기에서 첫 수를 놓고 있는 이세돌 9단 - 한국기원 제공

● 인간이 가진 존귀함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

 

다시 알파고와 이세돌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바둑을 학습해서 인공지능의 한계를 시험하여 연구의 새 지평을 연 구글도, 인공지능과의 대국에서 1승을 거둔 이세돌 국수도, 저 같은 평범한 영문학자의 눈에는 그야말로 갤러해드와 랜슬롯처럼 대단해 보입니다. 구글은 이번 경기를 통해 인공지능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지를 생각하며 지금보다 더 놀라운 인공지능을 들고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이세돌 9단은 경지에 이른 사람의 정신력과 분석력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가 여태껏 바둑돌 하나하나에 들인 노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대국이 모두 끝난 지금, 이 승부를 지켜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인간 전체의 승리로 확장시키며 그의 우수함에 편승(?)하며 “역시 인간은 위대해!”라고 대리 우월감에 취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한 분야의 최고수가 보여준 인간 사고력의 놀라움과 인간 의지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대국 이후, 주변으로부터 인공지능이 이제 인간의 자리를 빼앗아가고 나아가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는 걱정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원탁의 예에서도 보이듯, 인간 공동체의 붕괴는 오로지 그 구성원들, 인간에서 비롯됩니다. 랜슬롯을 시기한 모드레드와 아그레베인이 아더와 랜슬롯을 이간질해 갈라서게끔 하거든요. 한 때 아더 왕의 가장 훌륭한 기사였던 랜슬롯은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이들 간 전쟁이 안정된 틈을 타 모드레드가 일으킨 반란으로 아더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 걱정된다면 인공지능과 같은 과학 기술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길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어떨까요? 또 만에 하나 인공지능이나 다른 기술이 악의를 가진 세력의 손에 들어가 인간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을 갖고 감시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문학 속 카멜롯과 달리, 인간과 기술이 함께할 우리의 사회는 모두가 공평하게 건강하고 편안하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필자소개

박환희. 인천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분야는 중세영문학. 특히 제프리 초서, 중세 중후반기 여성과 신앙 교육, 그리고 아더 왕 전설이다. 인문학의 절대비기는 비판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읽고 생각하고 말하기를 가르치고 있다.

 

편집자주: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대국 전 예상과 달리 인공지능 알파고의 압승으로 끝났지요. 알파고의 승리 의미는 단순히 뛰어난 바둑 인공지능이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왔다는 신호탄입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앞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보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글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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