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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 잡는 ‘종두법’, 조선에 늦게 상륙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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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 잡는 ‘종두법’, 조선에 늦게 상륙한 까닭

2013.04.11 00:00
인경왕후가 사망한 원인인 천연두는 과거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 간, 가장 독하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바이러스다. 천연두가 가장 무서운 질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은 사망률 때문도 있지만, 천연두를 앓고 난 사람의 모습이 매우 흉해진 탓도 있다. 이 병을 경미하게 앓은 사람은 피부에 얕은 흠이 생겼지만, 심하게 앓은 사람은 얼굴 전체에 흉터가 남아 일생 동안 고통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에 천연두 흉터를 갖고 있고, 또 앓지 않은 사람도 언제 자신에게 병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야 했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는 종두법을 개발한 뒤 ‘내가 사용한 방법에 의해 천연두가 절멸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1970년대에 실제로 증명됐다. 1977년 10월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가 발생하고, 1978년 실험실 사고로 두 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을 끝으로 지구상에서 천연두라는 질병은 완전히 사라진 것. 이에 197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는 지구상에서 절멸되었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에서 천연두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다른 질병도 멸종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종두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천연두는 한국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인경왕후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제너의 종두법이 급속도로 세계에 전파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천연두가 사라지게 된다. 종두법은 1848년 네덜란드 사람이 일본에 처음 소개했고, 1876년 7월 조선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김기수 일행에 의해 조선에 들어온다. 김기수 일행을 수행한 박영선이 동경에서 일본인 의사로부터 받은 종두법에 관한 책을 지석영(池錫永, 1855~1935)에게 전한 것이다. 지석영은 1879년 조선에 천연두가 유행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자 부산 제생의원에서 종두법을 습득한 후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석영보다 앞서 종두법을 습득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로 상당수가 천주교 신자인데다 당파 싸움의 회오리 속에 몰려 종두법을 널리 보급하지 못했다. 예병일 박사는 “해외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이들이 지석영보다 먼저 우두접종법을 받아들였으나 천주교도라는 것이 발목을 잡아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 해도 널리 펼 수 없었다”고 적었다. 1790년 박제가가 처음 인두접종을 실시하고 보급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정약용은 ‘마과회통’에서 자신이 행한 종두법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 선구자의 행로는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당파싸움 등의 여파로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석영은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 의학과 발명에 큰 공헌을 한 사람 중의 한 명이지만 2003년 제정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자에서 빠졌다. 지석영이 1909년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추도문을 낭독하는 등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02년 ‘부산을 빛낸 인물’ 선정 작업에서도 제외됐다. 과학적인 업적만 본다면 ‘과학기술인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지만, 민족 앞에 떳떳치 못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헌정되지 못한 것이다.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참고문헌 : 「[王을 만나다·18]서오릉-홍릉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이창균, 경인일보, 2010.01.28 「[王을 만나다·19]서오릉-익릉 (숙종의 제1왕비 인경왕후)」, 염상균, 경인일보, 2010.02.04 「꽃다운 19살 왕비 ‘마마’의 습격에 스러지다.」, 이창환, 주간동아, 2010.11.01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 박택규⋅이종호, 책바치, 2004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 예병일, 한울, 1999 (19에 계속)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thescience.co.kr)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4부를 연재합니다.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세계문화유산 속에 숨어 있는 과학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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