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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근 교수와 함께 수학의 고향을 찾아서]<3>파라오 무덤의 경고 “숫자 모르는자, 영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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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근 교수와 함께 수학의 고향을 찾아서]<3>파라오 무덤의 경고 “숫자 모르는자, 영생을…”

2012.04.16 00:00

“죽은 후에 영생으로 가는 길에 접어든다/그 길을 따라가면 강에 이르는데 강의 건너편이 영생의 곳이다/강을 건너려면 아켄이라는 사공이 젓는 나룻배에 올라야 한다/‘자신의 손가락 숫자를 모르는 사람’은 이 배에 탈 수가 없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파라오)이 죽으면 이 같은 내용을 파피루스 두루마리인 ‘사자(死者)의 서(書)’에 기록해 함께 묻거나 무덤 벽에 새겼다. 인류 최초의 문자 중 하나인 상형문자 히에로글리프로 썼다. 당시 파라오와 같은 신성한 인물만이 숫자를 알았으며, 숫자가 ‘아켄의 배’를 탈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할 정도로 중시됐음을 보여준다. 카이로 인근 기자의 쿠푸, 카프라, 멘카우레 왕 등 3대 피라미드 옆의 일반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케옵스(쿠푸 왕의 그리스식 이름) 배 박물관’에는 파라오가 사후에 타고 간다는 ‘아켄의 배’, 즉 ‘태양의 배’가 전시되어 있다. 쿠푸 왕 피라미드 남쪽의 거대한 구덩이에서 기원전 2500여 년경 묻어놓은 길이 약 60m의 목조 선박이 해체된 상태로 5척이나 발견됐고 그중 1척을 복원해 전시한 것이다. 멀리 레바논에서 가져온 소나무로 건조한 선체와 삿대는 물론이고 꼬아놓은 밧줄 한 가닥까지 그대로라고 박물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나일 강 상류의 도시 룩소르에서도 고대 이집트에서 기하학이 권력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했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투탕카멘 등 파라오의 집단 지하무덤 터인 ‘왕들의 계곡’이 있는 이곳에서는 1858년 ‘현존 최초의 수학책’이 발견됐다. 스코틀랜드 변호사 알렉산더 헨리 린드 씨는 한 전통시장에서 두루마리 형태의 파피루스를 발견했다. 기원전 1650년경 서기(書記)였던 아메스가 기록한 이 책은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린드 파피루스’ 또는 ‘아메스 파피루스’로 불린다. 린드 파피루스의 흔적을 찾아 최근 이만근 교수(동양대)와 방문한 룩소르의 전통시장에는 파피루스에 그린 온갖 그림과 짝퉁 골동품, 그리고 조잡한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로 넘쳐났다. 가로 550cm, 세로 약 30cm의 아메스 파피루스에는 사칙연산과 분수, 원과 삼각형의 넓이, 피라미드의 부피 구하기 등 85가지 문제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아메스는 서문에서 “모든 사물과 비밀에 대한 지식을 제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지배층의 위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저자가 서기인 데다 여기에 적힌 계산 내용은 단순한 수학책을 뛰어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경지 면적이나 곡식 창고의 용량 등을 측정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서기는 어떤 계층이었을까. ‘재산을 파악해 세금을 매기고 징수하는 것이 서기의 일이었다. 궁정 사람들도 서기에게 청탁하러 온다. 왜 공부하나. 바로 서기가 되기 위해서다. 서기는 어떤 직업보다 위대하다. 서기 외에 주인이 되는 직업은 없다.’(‘이집트의 역사’ 중에서 발췌. 당시 교사나 아버지가 제자와 아들에게 서기가 되라고 권하는 말) 린드 파피루스는 이처럼 부와 명예, 권력을 한손에 쥔 서기가 기록한 것이다. 아메스가 신관으로도 알려진 것처럼 고대에는 숫자란 마법과 같은 것으로, 숫자를 세고 수학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자 권력의 표상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를 대표하는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 거대한 기둥과 높은 오벨리스크, 정교한 조각 등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이 신전의 대로에는 오랜 세월로 목이 떨어져 나갔지만 세금 징수인으로 보이는 석상이 숫자판을 앞에 놓고 지키고 앉아 있다. 세금을 계산하거나 노예 등을 세는 장면일 수 있다고 이집트 안내인 맘두 씨(42)는 설명했다. 이집트에서 수학이 ‘권력자의 언어’였음은 수학의 시초인 ‘기하학(geo+metry)’이 그리스어로 토지(geo)를 측량(metry)하는 것이란 뜻에서도 알 수 있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기행문에서 “이집트에서는 대홍수로 땅이 유실되면 측량 후 유실된 땅만큼 세금을 빼줬다. 여러 가지 꼴(도형)의 토지 넓이를 재는 기술이 발달했다”고 적었다. 나일 강이 범람했다 다시 물이 빠진 농토 경작지 면적을 재는 것은 지배층으로서는 조세 행정의 가장 기초적인 자료였다.

이처럼 이집트의 기하학은 실용성에서 주로 강점을 보였고, 체계적인 이론은 그리스 수학자들의 몫이었다. 그리스에서 기하학은 ‘유한 지식 계층’의 학문이란 성격이 강했다. 노동은 노예에게 맡기고 넉넉한 시간을 가진 수학자들은 자와 컴퍼스만을 가지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증명’을 위해 정교한 지식체계를 세웠다. 이런 풍토에서 나온 것이 유클리드가 집대성한 기하학이다. 그렇다고 이집트 기하학의 수준을 낮다고 보면 오산이다. 린드 파피루스에는 원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 ‘지름의 9분의 1을 잘라내고 나머지(지름의 9분의 8)로 정사각형을 만들면 그 넓이가 원의 넓이와 같다.’ 이 계산에 따르면 후에 원주율로 이름 붙여진 파이(π)의 값이 3.1604938(81분의 64)로 나온다. 현재의 3.1415926과 근사치다. 피라미드에서도 높은 기하학 수준을 읽을 수 있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지금은 겉이 허물어져 돌계단으로 드러나 있지만 원래는 겉도 매끈하게 채워져 있었다. 바로 옆 쿠푸 왕의 둘째 아들 카프라 왕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는 허물어지지 않은 매끈한 부분이 남아 있다. 이 같은 매끈한 피라미드의 옆면 기울기는 51도. 완전히 건조된 모래를 쌓을 경우 무너지지 않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기울기다. 현재 이집트에 남아 있는 피라미드와 무너져 내린 피라미드의 흔적은 모두 108개. 이 가운데 중간에 무너져 ‘실패한 피라미드’는 기울기가 47도에서 53도까지 편차가 난 것이라고 15년째 안내를 맡고 있는 에즈딘 씨(47)가 설명했다. ▼ 아랍국가 이집트 車번호판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 ‘아랍엔 왜 아라비아 숫자가 없을까?’ 카이로 룩소르 알렉산드리아 등 이집트 어느 도시의 자동차 번호판에서도 ‘아라비아 숫자’를 찾을 수가 없다. 아랍의 맹주인 이집트에 왜 아라비아 숫자가 없을까. 아라비아 숫자는 아랍에서 만든 게 아니다. 인도에서 생겨난 후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에 전해지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유럽 수학자들 사이에서 아라비아 숫자가 급속히 퍼지게 된 것은 1202년 출간된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의 저서 ‘리베르 아바치(Liber Abaci)’ 이후로 알려져 있다. 아라비아 숫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는 주로 로마자를 썼다. 아라비아 숫자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숫자의 위치에 따라 자릿수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456’에서 4는 ‘400’을 의미하는 식이다. 이처럼 위치에 따라 자릿수를 나타내려면 비어 있는 자릿수를 채워줄 ‘0’이 필수적이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인도는 공(空)의 개념에 익숙해 0도 쉽게 생각해 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0’은 인도 외의 메소포타미아나 마야 문명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이를 기호가 아닌 하나의 숫자로 취급해 자릿수로 활용한 것이 인도 수학자들의 공적으로 꼽힌다. 인류가 숫자를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숫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견됐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간단하고 단순한 모양의 기호인 ‘쐐기 문자’를 썼다. 이집트는 기원전 약 2600년부터 서기 4세기경까지 약 3000년 동안 지배 계층의 문자로 고유의 상형문자인 히에로글리프를 사용했다. 이집트는 고대에는 자신들만의 상형문자 같은 숫자를 썼다. 이집트에서 현재 쓰이는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와 기원은 비슷하지만 일종의 ‘방언’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이만근 교수는 설명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작은 숫자들은 단순히 막대를 늘어놓은 모양으로 표시했다. 1000은 당시 나일 강가에 많았던 연꽃 모양을 따다 썼다. 큰 숫자에 해당하는 10만은 수많은 올챙이 알에 영향을 받은 듯 올챙이 한 마리를 활용했다. 특히 아주 큰 숫자인 100만은 사람이 두 손을 번쩍 들어 놀라워하는 모습을 형상화해 흥미롭다.

카이로·룩소르=구자룡 동아일보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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