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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토지 측량 제대로 안한 신하들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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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토지 측량 제대로 안한 신하들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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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지역과 국가의 경계 구분에 사용된다. 등산과 항해 및 항공로는 물론이고 고대 유적 발굴에서 미래의 토지 이용 계획 등에도 필요하다. 작게는 지역 단위부터 크게는 국가 단위까지 현대사회의 필수 도구다. 조선시대에도 지도가 활발하게 이용됐다. 왕들은 지도를 제작하고 활용하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세종은 1434년에 기존 지도에서 틀린 점을 찾았다. 이를 바로잡고자 각 도의 수령과 감사에게 명령해 고을의 관사 배치와 산과 하천의 경로를 제대로 표기하도록 했다. 도로의 거리를 수치화했고 지역의 경계가 갖춰진 지도를 그리도록 했다. 문종은 1450년에 각 도에 있는 주, 군 간의 거리를 상세히 기록해 지도를 제작하라고 명령했다. 군사 징발 시 지역 간 거리가 모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정확한 지역 기관의 위치와 도로망을 파악해 유사시에 대비하려는 조선 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도는 새 도읍을 결정할 때도 쓰였다. 태조는 1393년 정2품 관리인 권중화(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의료인)로부터 제사와 궁궐 건설 장소가 표시된 새 도읍지 ‘한양’의 지도를 보고받았다. 태조는 지도를 토대로 지면의 형세를 살피고 조사와 측량을 실시했다. 성종 15년(1484년)에는 영안도에서 새롭게 발견된 땅을 조사했다. 수목이 빼곡하고 나무들이 쓰러져 있어 사람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지역도 지도에 그려냈다. 그 장소에 가보지 않고도 지도만으로 형세를 가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과거 정책을 분석해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지도를 활용했다. 1470년 성종은 세조가 설치한 군사 행정구역인 진 지도를 보고 설치 목적과 선왕의 의도를 파악했다. 지역의 지리, 지형에 대한 정보 수집을 소홀히 하면 벌을 내렸다. 태종은 1402년 새로 개간한 토지를 측량해 보고하라는 명을 어긴 죄를 물어 연관된 신하들을 귀양 보내는 등 문책했다. 지도는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빠르게 변화, 발전되고 있다. 지리정보 발전이라는 물줄기에는 지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슬기롭게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밑바탕이 돼 흐르고 있다. 이태식 한양대 건설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건설문화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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