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1.

2013.05.09 14:38

예측의 혼란이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두운 미래’ 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있다. 요즘과 같이 국내외적으로 경영환경의 불안 요인들이 넘쳐나는 이때, 많은 기업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안감으로 출발해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마저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미래 불확실성을 냉정하게,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Corporate Foresight 기법과 사례에 대해 논의한다. 구체적으로 거시적 관점에서 정부와 기업의 노력, 메조(Meso), 마이크로(Micro) 수준의 국내외 기업의 접근, 중소기업의 또는 중소기업을 위한 노력까지 다양한 수준의 관점을 담고자노력했다.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기 전에 이 글에서 우선 미래 탐구에 대한 기본 개념을 살펴보고, 탐색과 예측기법이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어떻게 진화해오고 있는지 알아보자.

I 박용태 서울대학교 교수, 편집위원장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감
19세기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인생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해하는 것이지만 미래로 나아가면서 생존하는 것(Li fe is u nderstood backwards, but must be lived forwards)’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미 일어난 사실, 이미 겪은 경험으로부터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새로운 현상,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래의 상황에 대응하는 지혜를 얻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의미일 것이다. 비단 개인의 삶뿐 아니라, 기업의 생존, 나아가 국가의 성쇠에 대입해도 잘 들어맞는 해석이다. 철학자의 말처럼, 기업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이미 수차례의 위기와 충격을 겪으면서 ‘과거로부터의 지식’을 습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지혜’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나라 안팎으로 불안한 요인들이 가중되면서, 비즈니스 환경이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예측은 계속 낮춰져서 3%대 아래의 저성장을 예고하고 실물경제의 침체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로 다가오고있다. 심지어는 다양한 불안요인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이른바 '‘Perfect Storm’이 닥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경기회복의 길조를 전하는 소식들도 들려오고 있다. 실물지표가 좋아지고, 떠났던 돈이 금융권으로 돌아오고, 주가도 반등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측의 혼란이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두운 미래’ 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은 곧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호의 특집주제를 ‘불확실성 하에서의 Corporate Foresight’로 잡은 이유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주제의 시의성에 있다.


미래는 본질적으로 복잡성(Complexity), 불확실성(Uncertainty), 리고 확산성(Pervasiveness)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복잡한 미래는 불확실한 미래로 이어지고 그럴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수위는 올라가고 범위는 넓어진다. 불안감이 퍼져 나갈수록 더 많은 예측이 만들어지고 예측이 많아질수록 오류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유발하는 핵심 요인은 복잡성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복잡성이 두 가지의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먼저 거대 통신망이나 첨단 수송기기라는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무수한 요소가 얽히고설켜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반드시 ‘반복적(Repeatable)’이고 ‘결정적(Pre-Determined)’인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 매번 작동의 패턴이 달라진다거나 미리 정해진 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 복잡하지만 안정적인 시스템이다. 이제 미래의 사회라는 다른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이것도 전형적으로 복잡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불시적(Emergent)’인 특성을 지닌다. 복잡하면서 불안정한 시스템이다. 굳이 표현한다면 전자는 영어로 ‘Complicated’라는 용어로, 후자는 ‘Complex’라는 용어로 부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복잡성은 주로 후자의 시스템에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크고 높은 영역에 존재하는 복잡성은 경기변동의 주기(Business Cycle)이다. 사실 언제라도 또는 언젠가는 경기가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자본주의 경제가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아킬레스건이다. 불황에 대한 심리적 대응을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Galbraith)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처음 대규모 불황이 찾아왔을 때는 놀란 나머지 그것을 공황(Panic)이라고 불렀다. 다음에는 공황이라는 용어가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불경기(Depression)로 바꾸었다. 불경기는 불길하다고 하여 다음에는 경기후퇴(Recession)로 낮추었다. 후퇴는 불쾌한느낌을 준다고 하여 요즘은 성장조정(Growth Adjustment)이라고 부른다. 지속적 성장을 위한 일시적 조정이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그래도 과거의 경제학자들은 경기의 순환주기를 예측해 불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자신감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경제구조가 합리적 가정과 수리적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면서 전통적인 경기예측 모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기변동의 패턴은 국가간, 산업 간에도 커다란 편차를 보인다. ‘불규칙’과 ‘불균형’이 심화하면서 ‘경기변동의 종언(The End of Business Cycle)’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좀 더 아래의 시장 영역으로 내려가 보자. ‘틀리지 않는 것은 예측이 아니다’라는 역설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는 기상예측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기현상을 분석하던 기상학자 로렌츠(E. Lorenz)는 초기값의 미세한 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면서 최종값이 크게 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정확한 기상예보를 불가능하게 하는 이 ‘복잡한’ 현상을 로렌츠는 “아마존의 나비가 날갯짓하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분다”는 이른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로 설명했다. 나비효과의 복잡성은 기상예측에서 출발하여 주가예측으로
전염되었다. 글로벌 증시의 나비효과는 먼저 일부 지역 간에 전염되어 미국–유럽-아시아의 순으로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효과의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먼저 경제 부문으로 전염되고 이어서 주택 문제로, 그리고 금융문제로 파급된다.


MOT의 영역에서 예측의 대상은 기술의 미래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나비효과의 영향권 밖에 있을까? 이론적으로 보면, 기술예측은 상대적으로 쉬운 예측에 속한다. 그 이유는 기술 예측에는 다음 세 가지의 기본가정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첫째, 기술에는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이론적 한계가 존재한다. 둘째, 기술은 계속 진보하지(올라가지) 퇴보하지(내려가지)는 않는다. 셋째, 기술성능은 기술투자에 비례해 좋아진다. 처음부터 종점이 정해져 있고, 그 점을 향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즉 움직이는 속도를 알 수 있다면 나비효과는 미미할 것이며, 따라서 예측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과거의 ‘전통기술’ 예측은 비교적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대부분 기술이 기본가정을 따라 단계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첨단기술’의 발전 추세를 단순한 S-커브로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역시 기술진보의 ‘복잡성’ 때문이다. 복잡성의 원천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곡선의 모양이 워낙 다양해진 점이다. 빠른 시간에 정점에 도달한 후 정체하는 패턴의 기술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오랜 기간 완만하게 상승하다가 끝에 가서 빠른 속도로 정점에 도달하는 패턴의 기술도 있다. 같은 기술이라도 과거의 패턴과 최근의 패턴이 다른 경우도 많다. 둘째는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등장 때문이다. 기존 기술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급진적 신기술이 출현하면서 기술진보의 패턴은 물론 나아가 시장의 판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제는 경영환경의 갑작스런 변화가 기업에 던져주는 충격에 있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은 변화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만들고,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수록 충격은 더 커지게 된다. 최근 ACI(Aca–demy of Competitive Intelligence)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자신의 기업이 과거 5년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의 심각한 사건에 의해 충격을 받았으며, 응답자의 98%는 자사가 앞으로 3년 안에 더 높은 비즈니스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기업이 불확실성의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이러한 시의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번 호에서는 Corporate Foresight를 특집주제로 정하였다. 다만 가 MOT 전문지라는 점을 감안해 사회경제적 측면보다는 기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냉정하게,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현장의 노력을 다양한 관점에서 담아 보았다. 우선 매크로
(Macro) 관점에서,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지대한 사건에 대응하는 정책적·전략적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서 거시적 변화를 메조(Meso), 마이크로(Micro) 수준의 변화로 구체화 해가면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국내외 기업의 접근을 실었다. 아직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해 공공서비스는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도 모색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국제비교의 관점에서 미국식 접근과 독일식 접근을 대비시켜 보았다.


몇 가지 기본 개념
미래 탐구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할 기본개념을 정리해 보자. 기본개념은 크게 다음 네 가지 용어와 의미의 쌍(Pair)으로 설명할 수 있다.


Forecasting vs. Exploration
예측(Forecasting)의 앞 단계에는 탐색(Exploration)이 있다. 흔히 미래에 대한 탐색을 바탕으로 예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탐색과 예측을 어떤 관계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둘이 하나로 묶여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탐색은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측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탐색활동과 예측활동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둘을 따로 떼어서 보는 시각이다.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계획이나 전략을 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탐색활동을 통해 유용한 정보는 얻되 이를 예측활동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견해이다.


Forecasting vs. Foresight
Forecasting과 Foresight도 미래 탐구의 방향이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개념이다. 먼저 정의(Definition)의 차이부터 살펴보자. 예측(Forecasting)은 ‘과학적인 방법론과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의 사건, 조건 또는 상황을 전망하는 작업’이다. 특히 기술예측(Technology Forecasting)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떤 용도와 수준의 기술이, 어느 정도의 확률로 출현할 것이다’라는 객관적 추측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포싸이트(Foresight), 특히 기술포싸이트(Technology Foresight)는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 기술분야를 발굴하기 위해 전반적이고 장기적인 미래를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좀 더 자세히 두 개념의 차이를 살펴보자. 기술예측은 미래에 일어날 일은 미리 예상하고 측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이른바 ‘결정론’을 토대로 한다. 한마디로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그 일이 언제 일어날지를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정량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강조하며 오차를 줄이는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반해 술포사이트는 미래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함께 생각하고,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뿐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포사이트는 다양한 이해 당사
자 사이에 지식과 기술의 공유를 유도하고, 정책적 결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전략적이고 정성적인 접근을 중시한다. 한마디로 예측의 정확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정책적으로 고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Macro-Public Approach vs. Micro-Private Approach
다음에는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을 대비해 보자. 거시적 접근은 공공부문의 과학기술 정책(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Policy)과 관련된 것이고, 미시적 접근은 민간기업의 사업전략과 연결된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의 목적은 ‘사회·경제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기술을 창출하는 것으로 예측-선정-투자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인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민간기업의 탐색과 예측활동은 ‘지속적인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정책과 비교하여 예측-선정-투자의 수순을 거치지만 그 이후의 사업화-마케팅-서비스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에 반해 평가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전략(Strategy)과 예측을 연계하는 인터페이스가 더 중요하다.

Forecast vs. Backcast

또 다른 개념은 Forecast와 Backcast의 차이다. Forecast는 과거의 추세를 분석하고 학습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접근이다. 따라서 탐색적(Exploratory)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반면, Backcast는 목표로 하는 미래를 먼저 상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를 거꾸로 찾아가는 과정을 설정하는 접근이다. 그러므로 규범적(Normative)인 특성을 보인다.

Forecast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추세가 미래에도 지속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 과거 데이터를 학습(Training)하여 외삽법(Extrapolation)으로 예측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의 수명주기가 지속해서 짧아지고 불연속적 혁신(Discontinuous Innovation)이 잦아지면서 Backcast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미래전망을 통해서 도출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적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접근이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상반된 개념의 쌍(P a i r)은 공진화의 궤도(Co-Evolutionary Trajectory)를 따라 움직인다. 한쪽의 방법이 진화하면, 다른 쪽도 그 영향을 받아 새로운 돌파구를 창출한다. 그 돌파구는 다시 전체적인 미래기술 탐색활동의 발전을 견인한다. 기술, 경제, 사회의 변화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라는 측면에서 때에 따라 어느 한 측의 방법이 앞서나갈 때도, 뒤처질 때도 있다는 것이다.오늘날의 MOT는 이런 ‘빠른 공진화 시스템’의 구축과 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국가 간, 그리고 기업 간 미래기술 탐색 능력의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공진화 시스템의 관리능력 차이 때문이다.

(2회에 계속)

 

*본 기사는 KOITA에서 발행하는 < TIM alive > 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http://www.koita.or.kr/mem_knowledge/tim_list.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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