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특집(2)] 에너지 자립을 향한 도전, 고리1호기의 탄생까지

2015.10.23 09:12

지난 6월 12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열고 고리 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를 권고했다. 이후 한국수력원자력은 2017년 운영 허가 기간이 끝나는 고리 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을 신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고리 1호기는 한국 원전 역사 37년 만에 처음으로 영구정지(폐로)가 확정됐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07년 설계수명 30년에 도달했다. 설계수명 종료에 맞춰 1차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10년간 연장 운영을 하고 있는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 18일 최종적으로 수명이 종료될 예정이다.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계획을 계기로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의 문을 연 고리 1호기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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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 도입 당시의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 수준은 걸음마 수준으로 한국은 원자력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미래에 적합한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선택할 정도의 안목과 목표를 명확하게 갖고 있었다.

 

1950년대 초부터 원자력 기술을 도입하려고 노력해 온 한국은 1959년에 이르러 원자력원과 원자력연구소를 발족하며 원자력 이용과 개발에 필요한 체재를 갖추었다.

1962년 3월에는 연구용원자로 트리가마크2를 가동하며, 본격적인 원자력 연구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962년에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원전 건설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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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제규모보다 큰 원자력발전소를 선택한 이유
우리나라가 원전 건설을 추진한 19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운전경험이 10년도 채 안 되는 원자력 기술의 초기였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원전 건설이나 운영 등 원전에 대한 경험이나 기술이 전무한 상태였고, 원자력발전소는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해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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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는 국가산업의 중심을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하면서 원자력에 대해 성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자력원 산하 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 방사선의학연구소, 방사선농학연구소에 대해 우대했는데도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자, 원자력발전소 건설 추진이 무리한 계획이 아닌지 의심하며 걱정할 정도였다.

 

특히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면 경제성이 우수한 50만kW 이상의 대용량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야 하는데, 당시 우리나라 경제규모나 전력 필요성에서는 이 정도로 많은 양의 전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장래성을 고려한 에너지원의 필요성이다. 국내에 쓸 만한 에너지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가장 유망한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둘째는 경제성이다. 당시 발전단가는 원자력과 화력발전이 비슷하다고 평가됐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탄소배출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고 연료의 단가가 화력보다 낮아, 전문가들은 원자력이 더 저렴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셋째로 연료의 저장과 수송이 훨씬 편리하다는 점이다. 넷째로 기존 에너지원의 문제 발생 가능성을 대비한 에너지공급원의 다각화 필요성이다.

 

실제로 1962년 정부의 예측에 따르면 1961년 30만 6000kW에 불과했던 최대 전력수요가 10년 후인 1971년에는 무려 177만 7000kW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1969년 계약협상 당시 국내 총 발전설비용량은 184만kW였으며, 고리 1호기는 58만 7000kW로 전체의 31%에 달했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당시 정부의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과 장기적으로 발생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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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 건설과 기술 도입
정부는 1963년부터 1967년까지 3차례에 걸쳐 IAEA부지조사단의 도움을 받아 국내 원전 건설 후보지역을 조사했다. 1967년 9월에는 수립된 장기전원개발계획인 ‘10개년 전원개발계획’에 따라 50만kW급 원전 2기를 1976년까지 건설하기로 확정했다. 1호기는 1974년, 2호기는 1976년 준공을 목표로 계획됐다. 1969년 1월 원자력발전소 건설부지로 경남 양산군(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를 확정하고, 원전 계약대상자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를 선정했다.

최초의 원전 건설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중 하나가 주민 반대다. 한국전력(이하 한전)은 1969년 5월 고리의 주민대표와 한전관계자로 구성된 원자력발전소 부지매수와 보상위원회를 설치하고 부지매수에 착수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원전에 대한 안전성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건설 대상 부지에 살던 사람들은 강제로 이주해야 했고, 원전 주변지역은 농사나 어업에도 제한 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군부에 의해 정부 정책이 추진되던 시절이어서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부지에 살던 주민을 이주시키고 21만평의 부지를 확보했다.

 

원전 건설에 적합한 지역은 전력 수요가 높은 지역과 가까운 한편, 지반이 단단하고 안정하면서도 대량의 냉각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 전력 수요의 중심지는 서울과 부산, 그리고 대대적인 개발이 진행되던 울산공업지대다. 서울과 가까운 한강 하류와 부산과 울산을 연결하는 동남해안을 원전 건설 지역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하지만 기초조사 과정에서 이들 지역은 부적합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이후 장안읍 고리가 후보 지역으로 추가됐고 1968년부터 원자력청에서 고리 지역에 대한 조사를 통해 최종 후보부지로 선정됐다.

또 다른 어려움은 전적으로 외국의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리 1호기는 가압경수로형 58만7000kW로써 주계약자인 웨스팅하우스가 착공부터 준공까지 모든 책임을 지고 사업관리, 설계, 자재 구매, 시공과 시운전을 수행하는 일괄발주방식(Turn-Key)으로 건설됐다. 국내에서는 현대건설이 원자로계통 공사를, 동아건설이 터빈과 발전기계통 공사를 하도급형태로 참여했으며 비파괴검사는 유양원자력이 맡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처럼 고리 1호기에서 우리나라가 참여한 분야는 부지조성공사, 일부 토건자재 공급, 단순노무인력 제공 등으로 제한됐다. 건설 기술을 축적하는 데는 큰 도움을 얻지 못했지만 사업관리와 시운전에 대해서는 충분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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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번째 원자력발전소 보유국
1970년 발전소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1971년 3월 고리에서 1호기 기공식이 열렸다. 그러나 건설기간 중 발생한 석유파동으로 인한 물가상승과 건설재원의 부족, 주요 설비 발주처인 영국에서 발생한 장기 파업 등으로 공사기간이 연장됐다. 결국 계획보다 2년 늦은 1978년 4월 29일에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이로써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 세계에서는 21번째 원자력발전소 보유국으로 원자력 시대의 막을 열었다.

 

고리 1호기 건설 공사에는 외국자본 1억 7,390만 달러와 내국자본 717억 원 등 총 1,560억 원이 쓰였다. 이는 당시 국내 총생산의 약 5%에 달하는 금액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 429억 원의 3배가 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건설 사업이었다.

 

고리 1호기의 설비용량은 58만7000kW로 1978년 상업운전 시작 당시의 전체 발전설비용량 659만kW의 9%를 담당했다. 또 고리 1호기 발전단가는 9.21원/kWh로 화력발전 발전단가 16.0원/kWh에 비해 42%나 저렴했다. 고리 1호기의 이용률을 60%로 감안할 때 화력발전 대비 연간 약 210억 원의 발전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던 셈이다. 원자력의 발전단가가 화력보다 저렴할 것이라는 원전 건설 계획 당시의 예상이 실제로 확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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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축적과 원전 전문 인력 양성의 산실
고리 1호기의 전력 누계생산량은 지난해 말까지 1,436억kWh에 달한다. 이는 1년에 465.5억kWh를 사용하는 서울시 전체가 3.1년, 255.1억kWh을 사용하는 울산공단이 5.6년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국내 전력사용량 1위 공장인 현대제철 당진공장이 1년에 55억kWh를 사용하는데 이 공장이 26.2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고리 1호기는 가장 먼저 건설된 만큼 경험과 기술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로 인해 고장과 정지 사태도 자주 발생했다. 그 탓에 대외적으로 ‘문제 있는 원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장과 정지 건수가 계속해서 감소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고리 1호기의 연평균 고장과 정지 건수는 1978년에서 1990년까지는 6.6건이었다. 하지만 1991년에서 2000년까지는 1.9건으로 급감했다. 운전 시작 10년의 경험을 토대로 도입한 설비 개선과 선진 운영기법이 고장과 정지를 대폭 줄인 것이다. 그리고 2001년부터 설계수명 만료 시점인 2007년 사이에는 0.3건으로 계속운전을 시작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연평균 0.25건으로 더 줄어들었다.

 

고장과 정지가 줄어듦에 따라 원전 이용률도 급증했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는 65%였는데, 1991년부터 2000년까지는 80%, 2001년부터 2011년까지는 92%까지 이용률이 늘어났다. 이 수치는 고리 1호기가 국내 원전기술 축적의 산실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고리 1호기는 우리나라 원전의 전문인력 양성의 산실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1960년대 초 국내 인력들은 선진국에서 공부하며 원전 기술을 습득했다. 고리 1호기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들이 실전에 배치되고, 운영 경험을 통해 기술인력이 양성되면서 국내 기술인력 양성 자립 기반이 구축됐다.

 

원전 조종과 전문인력 양성에서 지속적인 반복교육과 신기술 교육 등 장기간 소요되는 원자력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원전을 가동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 전문인력 양성에 큰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배출된 원전 전문인력은 UAE 원전 수출 등 우리나라가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 본 기사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아톰스토리(http://atomstory.or.kr)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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