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짜리 독성시험 760만원에 해결...“효과적 지원이 신약사업 키운다”

2013.04.30 10:47

▲ 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서울회의소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대학, 연구소에서 나온 기초연구 결과를 신약개발 사업과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부담을 덜어 줄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기자enhanced@donga.com

 

 

“죽음의 늪이라고 불리는 사업화 단계가 문제다. 신약개발은 전임상, 2단계의 임상시험 등을 거쳐야 한다. 개발 초기보다 후반기에 더 큰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여기서 주저앉는다. 척박한 신약개발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정부지원이 필수다.”(윤엽 목암생명공학연구소장)

“외국기업에 개발이 끝나지도 않은 신약기술을 1200만 달러(186억원)에 팔았다. 계약금으로 받은 돈만 200만 달러(31억원)가 넘는다. 날 어떻게 믿고 이런 투자를 하느냐고 묻자 ‘실패해도 아이디어와 기술개발 노하우만으로도 200만 달러의 가치는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은 신약개발에 대한 접근방법이 다르다.” (묵현상 메디프론디비티 대표)

국내 생명공학 전문가 4명이 모여 국내 신약 개발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한국 신약개발 현황과 국내여건에 맞는 신약개발 문제 해결방안’이라는 주제로 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서울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3시간이 넘는 토론을 통해 ‘국내 신약개발 산업이 희망적이지만 효과적인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모임에는 김대경 중앙대 약대학장, 묵현상 메디프론디비티 대표, 신희섭 한국생명공학연구협의회장(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윤엽 목암생명공학연구소장이 참석했으며 현병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장이 사회를 맡았다. 신희섭 박사가 좌장을 맡은 이날 좌담회에서는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의 입장을 고루 반영한 실질적인 산업활성화 방안이 다수 제안됐다.

●문제점 하나… “죽음의 계곡을 혼자 힘으로 넘어야 한다?”

신약개발과정에선 반드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사업화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좌담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먼저 대학, 연구소에서 나온 기초 연구 결과를 신약개발 사업과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차원에서 기업의 부담을 덜어 줄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며 한국화학연구원(화학연)의 독성시험 지원 프로그램(PK)을 사례로 꼽았다.

묵현상 대표는 “우리 회사에서 신약개발 실험을 하며 1억원 이상을 쏟아 부은 적이 있다”면서 “똑같은 실험을 화학연에 들고 가면 760만원에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비하면 큰 발전이지만 화학연 한 곳에서만 이런 서비스를 해서는 부족하다”며 “대학, 생명연 등 다른 출연연에도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서비스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신희섭 박사는 “전체적인 시스템 조율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기초과학자가 연구한 결과를 상용화하지 못해 스스로 벤처를 설립하는 사례도 자주 본다”고 했다. 대학과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이 선순환 되지 못하니 ‘학자가 사업을 하러’ 뛰어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토론자들은 해결책으로 연구자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미 개발돼 있는 기초 성과를 심층 연구하고, 사업화 단계까지 끌어 올리는 과학자들에게 러닝 연구비 등을 지급해 ‘기술의 사업화’를 강화하자는 의견이다.

●문제점 둘… “산업화 단계 지원이 취약하고 정부기관의 신약개발 정책 제각각”

1차 기술개발이 끝나더라도 실제로 사업화에는 다른 문제가 있다. 개발된 기술을 통해 사업화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자원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기술 지원도 문제지만 자금 지원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엽 소장은 “현실적으로 임상 1상 단계까지 연구를 진행하는데 200억 이상이 든다”며 “자금지원을 분산하기 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는 신약개발을 위해 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이같은 자원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체제를 키워야 한다. 신희섭 박사는 “한국의 정보기술(IT) 비즈니스는 당시 정보통신부가 있었기에 전문적으로 지원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며 “신약개발을 위한 공공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경 교수도 “현재 여러 부처가 관련되어 있어 복잡한 만큼 통합 운영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며 “기초부터 허가까지 전문적으로 조정하는 기구가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문제점 셋… “효율적 평가·지원시스템이 없다”

참석자들은 ‘현 체제에 대한 효율적인 평가·지원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정부에서 투자하고 있는 연구비의 효율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다.

묵현상 대표는 “최근 몇 년간 장비와 시설은 충분히 투자했으며 이제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며 “특히 민간 연구를 지원해야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묵 대표는 “외국은 신약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 경험을 갖고 있어 가치 있는 신약후보 물질과 사업을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며 “연구개발 초기부터 목표를 명확하게 해야 하나 지원체계가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목표를 갖고, 어디에다 중점적으로 판매할 것인지 철저한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신희섭 박사도 “좋은 타깃을 만드는 것은 기초과학”이라며 “지금 잘 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 박사는 “과학재단의 창의과제, 프런티어 사업 등 국내 과제는 최종목표에 꼭 신약개발을 넣어야 해 연구자가 연구에만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기초과학자 입장에서는 큰 연구과제를 통해 계속적인 지원이 이뤄지면 좋지만 다른 성격의 과제로 옮겼다고 해서 전혀 연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부 투자 시스템의 문제점”이라고 해석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토론자들은 정부과제 평가시스템과 지원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약개발전문가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논문(paper)과 특허(patent), 산업(product) 분야를 각각 분리해 지원하는 3P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문제점 넷… “신약개발의 마지막 단계, 임상시험 인프라가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임상시험 인프라가 취약한 만큼 연구개발 대행기관(CRO)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약개발 기술력과 임상시험 인프라가 부족하니 아웃소싱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경 교수는 “한국의 전임상 시험능력이 많이 발전했지만, 임상 시험은 인프라 시설이 부족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거의 외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다 보니 막대한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국내 신약은 대부분 민간자본으로 개발되고 있다”면서 “국민생존권, 건강권과 연계한 신약개발은 국가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말해 국가 인프라 강화를 지적했다.

묵 대표도 “개발된 기술이 다음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걸 자주 볼 수 있다”면서 “LG 등 대기업은 아웃소싱을 통해 데이터를 만들 수 있으나 일반기업은 스스로 연구할 역량도 부족하고, 믿을만한 아웃소싱 기관을 찾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국내에서 연구개발 아웃소싱을 장려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보다 민간의 아웃소싱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외국 전문인력을 활용하고, 외국기업과도 적극적으로 연계해 현 상황을 타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 제1회 BT전문가 좌담회 참석자들. 좌로부터 김대경 중앙대 약대학장, 묵현상 메디프론디비티 대표, 신희섭 한국생명공학연구협의회장, 윤엽 목암생명공학연구소장, 현병환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장.

● 전문가 4인이 꼽은 신약사업 강화 방안
①기술사업화 단계에서의 문제점 해결=정부지원을 통한 연구개발 지원 인프라 강화(화학연 PK 시스템 등). 인센티브 지급, 지속적 연구비 지원 등 사업화 단계 연구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②산업화 단계 재원 확보=신약개발 펀드조성, 정부투자를 통한 기업융자제도, 신약개발공사(가칭) 창설 등 신약개발의 자금 지원 현실화
③정부의 신약개발 연구비 효율성 재고=상임신약개발전문가로 구성된 상임위에서 평가. 논문, 특허, 산업 등 3P 시스템 체계 구축 지원등 시스템 강화.
④임상시험 인프라 강화=국가 지원보다 민간의 CRO 능력을 높이도록 지원. 한국·중국·일본 공동시험 인프라 구축 등 외국 전문인력 및 기업 연계. 임상 이행연구 강화.

※ 이 좌담회 시리즈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와의 공동기획에 의해 취재, 보도되고 있습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