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과학기술자들

2014.11.05 13:13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인공제회에서 발행한 <SEMA 함께 행복 同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지난 7월 23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700여 명의 한국인 과학자들이 모였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이하는 '한·유럽 한인 과학기술 학술대회(EKC)'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200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등 매년 국가와 도시를 옮겨가며 개최되는 이 학술대회를 통해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과학자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고들 하지만 조국을 생각하지 않는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선진국들도 커다란 행사를 치를 때에는 언제나 자국 출신의 과학자들을 자랑하는 데 열을 올린다. 매년 7월 14일 오전에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혁명기념일 축하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 퍼레이드의 맨 앞줄은 미래 프랑스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갈 에콜폴리테크닉(Ecole Polytéchnique) 학생들의 차지다.

러시아는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33개 알파벳에 얽힌 인물과 기술을 소개하면서 과학기술자도 빼놓지 않았다. 현대식 헬리콥터를 개발한 시코르스키(Sikorsky), 항공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주콥스키(Zhukovskii), 주기율표를 고안해낸 멘델레예프(Mendeleev), 러시아 우주계획의 선구자 치올콥스키(Tsiolkovsky)가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 과학기술자로 어떤 인물을 소개할 수 있을까.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과학기술 분야 최고의 영예는 노벨상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없지만 노벨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들이 있다.

우선 김필립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탄소 계열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graphene)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은 안드레 가임 경(Sir Andre Geim)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경(Sir Konstantin Novoselov)이 공동 수상했다. 김 교수는 이들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그래핀의 존재를 발견했으며 실험으로 확증한 것은 이들과 같은 시기지만 아쉽게도 노벨상은 받지 못했다. 수상자인 가임 경은 김 교수의 업적을 인정하며 "노벨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실망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물리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타터(Douglas Hofstadter)가 제안한 전자와 자기장 간의 함수를 세계 최초로 물질 차원에서 구현했다. 이 함수를 그래픽으로 전환하면 나비 모양이 되기 때문에 '호프스타터의 나비'라 불리는데 김 교수가 나노미터 크기의 그래핀으로 제작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고 이휘소 박사도 자주 거론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지만 대학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세계적인 입자물리학자가 되었다.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은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공로로 피터 힉스(Peter Higgs) 교수와 프랑수아 엥글레르(François Englert) 교수가 받았다. 힉스 입자는 150억 년 전 대폭발로 우주가 생성될 당시에 만들어진 16개 종류의 입자에 질량을 부여해서 '신의 입자'로도 불린다. 여기에 힉스 교수의 이름을 붙인 것이 이 박사다. 그러나 노벨상은 생존자에게만 수여한다는 원칙이 있어 이 박사의 수상은 불가능하다.

이외에 또 어떤 한국인 과학자가 노벨상에 근접했을까. 매년 노벨상 후보를 예측 공개하는 학술정보업체 톰슨로이터(Thomson Reuters)는 지난 5월 30일 '노벨 과학상 후보에 오를 만한 한국인 과학자 16인'을 발표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최고 수준의 논문을 발표해 300회 이상의 피인용 지수를 기록한 상위 1퍼센트의 과학자 3천 200명을 추려냈다. 그 중에서 국내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은 16명으로 집계되었다.

가나다 순으로 소개하면 강신민 경상대 교수, 권익찬 KIST 책임연구원, 김광명 KIST 책임연구원, 김기문 포스텍 교수, 김대옥 경희대 교수,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김세권 부경대 교수, 김종승 고려대 교수, 박광식 동덕여대 학장, 서영준 서울대 교수, 윤주영 이화여대 교수, 이종흔 고려대 교수, 조길원 포스텍 교수, 조열제 경상대 교수, 천진우 연세대 교수, 현택환 서울대 교수 등이다.

연구 업적이 화려한 교수들에 대한 기대도 높고 유일한 여성 과학자로 포함된 김빛내리 교수의 활약도 눈길을 끈다. 노벨상이 고령자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관례를 생각하면 45~64세인 이들보다 이전 세대에 활동한 연구자들의 수상도 기대해볼 만하다. 그러나 톰슨로이터도 노벨상 예측 정확도가 20퍼센트 미만이라서 누구도 수상을 장담할 수 없다.

노벨상 수상의 징후로 여겨지는 3단계가 있다. 울프상, 래스커상, 노벨 심포지엄이다. 울프재단이 농업, 화학, 수학, 의학, 물리학, 예술 등 6개 분야에 수여하는 울프상(Wolf Prize)이나 래스커재단이 기초의학, 임상의학, 특별 분야에서 선정하는 래스커상(Lasker Prize)을 받은 인물의 30퍼센트가 후일 노벨상까지 거머쥐었다. 노벨재단이 주최하는 노벨 심포지엄(Nobel Symposia)에 강연자로 초청될 경우에는 더욱 확실해진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우리나라 과학자는 아직 없다. 한국연구재단은 2012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한국인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노벨상 후보가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과학자들은 많다. 분야도 다양하다. 공학 분야 중 이성규 미국 오하이오대 교수는 에디슨, 라이트 형제, 페르미를 비롯해 지금까지 53명밖에 등재되지 못한 '미국 과학·공학 명예의 전당(ESHF)'에 지난해 이름을 올렸다. 나노테크놀로지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종민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영국 옥스퍼드대 공채를 통해 정교수가 되었다.

신경의학 분야에서는 김광수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인간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한 해법으로 파킨슨병 등 퇴행성 질환 치료의 기틀을 마련했다. 조광욱 교수는 2011년 영국 왕립협회로부터 동양인 최초로 울프슨 연구업적상(Wolfson Research Merit Award)을 받았으며 현재 영국 브리스톨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알츠하이머 치료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산술대수 기하학 분야에서 21세기 최고의 업적을 이뤄낸 김민형 교수가 미국과 영국 유수 대학의 교수직을 거친 후 현재 옥스퍼드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1970년에 이미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tRNA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낸 김성호 UC버클리 교수는 1988년 항암제에 쓰이는 라스(Ras)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는 등 화학 분야에서 선진적인 성과를 낸 바 있다.

년 기준 외국에서 활동 중인 한인 과학기술자 협회는 모두 16개에 1만 8천 명을 넘는다. 창립일로 계산하면 미국('71), 독일('73), 영국('74), 프랑스('76), 일본('83), 캐나다('86), 중국('89), 러시아('91) 순이다. 회원수로 따지면 미국(7천 200), 일본(3천), 중국(2천 500), 캐나다(1천 400), 영국(1천), 독일(950) 순이다. 모두가 한국의 저력을 뽐내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열정과 가능성만 보아도 우리나라는 이미 과학기술 선진국이다. 미래 인재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늘린다면 앞으로 세계는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동욱 사이언스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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