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2013.11.04 17:01

지금은 약간 시들해졌지만, 한때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송을 장악한 적이 있다. 공중파 3사는 물론, 케이블이나 종합편성채널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하나씩은 내보냈다.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를 보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에 잘 부응한 방송 포맷이라는 말도 있다만, 적어도 한국의 경우에는 유럽과 북미의 방송 트렌드를 따라간 결과기도 하다. 국내 방송이 참고하거나 그대로 수입한 프로그램들이 바로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영국의 엑스팩터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 프로그램을 제작한 인물이 바로 사이먼 카월이다. 카월은 제작자일 뿐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폴 포츠나 리오나 루이스 등 수퍼스타를 키워낸 기획자이기도 하다. 가히 방송가의 큰 손이라 할만해서 대중음악 시장에서 절대권력을 누릴 것 같은 카월과 정면 대결했던 밴드가 있었으니, 바로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이다.





카월은 일부 음악 팬들에게는 공공의 적으로 비난받곤 한다. 쟁쟁한 스타들을 키워낸 그가 왜 질리도록 욕을 먹어야 할까? 기막힌 장사 수완으로 각종 차트를 독식해버리는 식성 탓이다. 영국에서 특히 악명이 높았는데, 한 해를 결산하는 자리로 큰 의미를 지니면서 엄청난 판매량을 보장하는 크리스마스 차트 1위를 그의 프로그램인 엑스팩터 수상자가 쓸어버리는 탓이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장장 4년동안 엑스팩터로 데뷔한 아티스트가 크리스마스 차트를 독식하고 음반을 팔아치웠다. 크리스마스 차트 1위를 두고 내기를 걸던 도박회사들은 아예 크리스마스 차트 도박을 접을 생각까지 하기에 이른다.


2009년에도 엑스팩터 우승자인 조 맥엘더리가 연말 시즌에 맞추어 부리나케 싱글을 내자 잔뜩 약이 올라 있던 음악 팬들은 폭발했다. 한 팬이 웹을 통해 RATM의 ‘Killing in the name’을 크리스마스 1위로 올리자고 제안하고 수많은 팬들이 이에 호응한 것이다.


누가 봐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RATM은 혁명적인 가사와 그에 걸맞는 활동으로 유명한 행동파 좌파 밴드다. 게다가 Killing in the name은 공격적인 가사와 소위 ‘F word’로 점철된 과격한 곡이었다. "Fuck you, I won't do what you tell me! Motherfucker!"를 외치며 피날레를 장식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무엇보다도 이 곡은 2009년 기준으로 15년이 훨씬 넘은, 1992년의 곡이었고 당시에도 차트 25위가 고작이었다. 대중적이지도 않은 옛날 노래를 대체 누가 사줘서 1위로 올린다는 말인가?


그런데 카윌이 멍청한 캠페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이를 조롱하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했다. 카윌의 말에 기분이 상한 음악 팬들이 캠페인에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다. 캠페인을 시작한 사람조차 그저 재미있는 해프닝 한 번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던 일이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불어나니 더 이상 여흥이나 장난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뻔한 음악들만 차트에 오르내리는 꼴이 마뜩찮았던 음악가들도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폴 매카트니와 너바나같은 거물까지 지지의사를 밝히자 캠페인 참여자는 90만명에 육박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 차트 1위는 RATM이 차지했다. 영국은 싱글 음반과 디지털 음원 판매 실적만으로 차트 성적을 매기는데, Killing in the name은 52,000여장 차이로 존 엘더리를 눌렀다. 홍보도 따로 하지 않고, 방송이라고는 BBC에 나왔다가 공중파에서 Fuck you가 들어간 가사를 그대로 내지르는 바람에 황급히 수습된 것이 거의 전부인데다, 크리스마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좌파적인 랩 메틀 곡이 1,500만 이상의 가구가 시청한 방송에서 집중조명을 받은 스타의 곡을 제압한 것이다. 언론들은 이 소식을 속보로 타전했고 RATM은 당초 약속한대로 판매 수익을 기부하고 무료 자선 콘서트를 열었으며 존 엘더리는 이후 별 볼일 없는 커리어를 쌓다 음악계에서 눈에 띄지 않게 됐다. 정작 공격대상은 카윌이었는데 엉뚱하게 피해를 뒤집어 쓴 존 엘더리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음악팬들에게는 전설로 남을, 감격의 순간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그룹 백두산이 90년대 발표한 곡이 소녀시대나 씨스타 같은 정상급 아이돌을 제치고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한 사건인 셈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하다. 적어도 백두산은 가사에 욕을 넣지는 않으니까.







이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페이스북이다. 한 음악팬이 장난삼아 ‘Killing in the name을 크리스마스 차트로!’라는 슬로건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한 것이 발단이 된 것.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일이 커졌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가 거대한 힘을 발휘한 사건이 비단 크리스마스 차트 사건만은 아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정부 발표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식이 훨씬 빨리 퍼졌으며 아랍권을 달구었던 민주화 시위와 혁명도 트위터의 공이 컸다. 민주화 혁명 당시 정부는 어떻게든 불리한 소식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유언비어라느니 괴담이라느니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시민들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죄다 차단하려 했지만 트위터를 통해 퍼지는 소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조금 다른 루트기는 하지만, 국내 한 커뮤니티에서 군용 24인 텐트를 혼자서 칠 수 있네 없네로 투닥대다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사람이 정말로 24인용 텐트를 혼자 치는 퍼포먼스를 열고 많은 인파가 몰린 일도 있었다.




등장한 이후, 소셜미디어에는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수식어답게 소셜미디어는 등장 이후 수많은 신화를 양산해내면서 자신의 힘을 입증해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투브의 힘으로 철저하게 묻혀 있던 실력파 아티스트가 스타덤에 앉기도 하고, 한국에서 순전히 내수용으로 만든 곡이 본의아니게 ‘강제 해외 진출’을 당하는가 하면,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고 아랍권 국가들의 정부가 전복되기도 한다.


소셜미디어의 힘을 말할 때 흔히 적용하는 설명이 바로 Power Law, 멱급수 법칙이다. 멱급수는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는 일련의 수열을 뜻한다. 수식으로 간단히 표현하면 y=의 꼴이다. 멱급수의 특징은 ‘일정 시점 이후의 급격한 증가’다. 쌀 한 톨로 시작해서 체스판의 칸마다 두 배씩 늘려가서 결국에는 왕을 파산시키고야 말았다는 옛 이야기가 멱급수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다.


소셜미디어는 점과 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다. 모든 점이 인접한 세 점과 똑같은 거리로 연결된 가상의 네트워크를 생각해보자. 한 점에서 시작된 정보가 가중치 없이 네트워크를 따라 퍼져나간다고 하면 이웃한 두 점 사이에서 정보가 전달되는 시간,  후에는 처음 정보를 지니고 있던 점과 정보를 새로 받은 이웃의 두 점, 도합 세 점이 정보를 보유한다. 세 개의 점은 다시 이웃한 점에 정보를 전달하며 이 과정은 시간 가 지날 때마다 계속 반복된다. 결국 정보를 새로 받는 점들의 숫자는 개가 되며,  시간 후 정보를 보유한 점의 총 개수는 , 즉 개가 된다.


이를 개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한다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알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넉넉잡고 하루라고 할 경우 33일만 지나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보가 전달된다는 얘기다. 물론 현실에서는 사람관계가 무작위적이지도 않고 개인간의 네트워크가 균일하지도 않다. 사람들은 잘 아는 사이끼리 뭉치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정보는 특정 집단 내에서 유통되다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성향을 변수로 도입하여 전염병이나 정보가 실제 인구 집단에서 퍼져나가는 과정을 수학적 모델로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전염병이 퍼질 때, 예방대책을 세울 때는 이러한 모델을 사용한다.





흔히 소셜미디어를 커뮤니케이션의 혁신이라고 한다. 분명 뉴스에 종종 나오듯, 그 효과면에서는 엄청난 혁신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혁신의 정체가 모호하다. 기술적으로도 소셜미디어는 혁신일까?


대표적인 소셜미디어 서비스인 트위터는 웹 서비스의 기능이 빈약하기로 악명이 높다. 실제로 트위터 서비스에는 어떤 기술적인 비밀도 없다. 트위터 본사는 아예 API와 웹 디자인 프레임워크를 오픈소스로 풀어버려서 서드파티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덕분에 트위터 서비스는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온라인 게임 아이온은 게임 내에 트위터를 구현했으며 음악 소프트웨어인 알송 역시 트윗을 지원한다. 트위터 전체 이용자 중 15%만 공식 웹서비스나 클라이언트를 이용할 뿐이라는 조사도 있다.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트위터에는 숨길 가치가 있는 기술적 요소가 없다는 뜻이다.


트위터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은 어떨까? 페이스북의 시초는 하버드 학생들끼리만 이용하던, 친목용 사이트였다. 프로필과 사진을 올리면 그만인 아주 단순한 페이지였다. 기껏해야 낙서가 가능한 전화번호부 정도라고 할만했다. 그러던 것이 인근 아이비리그 대학교들도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다른 학교들의 사용자들도 점점 늘어났다. 설립 후 2년이 지난 2006년에는 일반 사용자들도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을 만큼 커졌다.


페이스북이 빠르게 확산된 비결은 ‘그저 전화번호부에 그쳤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자신의 페이지를 입맛대로 꾸밀 수 없다. 페이지 구성과 프로필의 형태가 모두 동일하다. 마이스페이스 등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 때문에 서비스 초기에는 무슨 재미로 하냐는 말도 들었지만 오히려 연락처라는 본연의 목적에는 충실하게 들어맞았다. 페이스북이 강점을 지닌 부가기능도 사진 관리와 메모, 친구의 친구 연결하기로 연락처 네트워크라는 정체성에 부합한다.




페이스북도 기술적으로는 아주 단순하다. 게시글을 올리고 사람들의 페이지를 연결하고 가끔 동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이런 종류의 서비스에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보안이나 인증과 관련된 기술도 빈약하다. 툭하면 터져나오는 시비가 도용한 정보로 만든 사칭 페이스북일 정도. 심지어는 ‘아는 사람 찾기’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활용하는데 제대로 된 보안도 되지 않아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내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술적으로는 오히려 보완해야 할 구멍들이 숭숭 나 있는 꼴이다.


물론 커다란 변화는 있다. 전통적인 의사소통 네트워크는 작은 폐쇄적 그룹들이 듬성듬성 흩어진 형태였다. 이 그룹들은 고립성이 강해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연결망이 빈약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정보도 그룹 내에서만 유통되다 소멸될 뿐, 다른 그룹으로 전파되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만약 그룹과 그룹 사이를 강하게 연결하는 네트워크, 말하자면 간선도로를 낸다면? 그룹 내에서 유통되던 정보는 폭이 넓어진 간선 네트워크를 타고 다른 그룹으로 전파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확산을 제한하던 소그룹 네트워크의 한계를 넘어서서 정보를 퍼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의사소통행위의 본질, 기본적인 목적과 형태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넓은 간선도로를 냈다고 교통수단으로 버스 대신 기차를 사용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단순한 구조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크게 성공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등장하면 성공의 비결을 찾아보느라 여기저기서 분주하다.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신기술을 썼다거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거나, 기존의 제품이나 서비스 활용 양상을 변화시켰다거나 하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특별한 것에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기대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단순한 법이다. 여러 설명이 있을 때 가장 간결하고 쉬운 설명이 진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오컴의 면도날’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소셜미디어는 범상치 않게 성공했지만 그 실상은 지극히 범상하다. 여기에는 어떤 발상의 전환도, 기술적인 혁신도, 업계의 판도를 바꾸려는 야심찬 의도도 없다. 그저 학부생 수준에서 충분히 설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간단한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이다.


소셜미디어에 비범함을 제공한 주역은 다름아닌 사람들의 상식과 습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청하기보다는 떠들기를 좋아한다. 남의 생각을 듣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 데 더 익숙한 것이다. ‘입은 하나이나 귀는 두 개인 이유는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뜻’이라는 격언도 있다만, 사람들이 듣지는 않고 말하기를 좋아하니 생긴 격언일 것이다.


왜 말하기를 좋아할까? 여러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은 이를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의 발로로 해석한다. 꼭 이런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도 내 이야기에 누군가 공감하고 동조했을 때의 안도감과 소속감은 누구나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서비스는 바로 이러한 심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트위터는 ‘말하기’를, 페이스북은 ‘공감’을 핵심 서비스로 하고 있다.


인터넷이 확산되던 초창기, 1990년대 중반에는 학계에서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을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가 유행한 바 있다. 접근 장벽이 지극히 낮고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 관계 없이 각자의 발언이 동일한 무게를 지니는 무작위적 네트워크가 기존의 중앙집중적인 커뮤니케이션 행태를 바꾸어 놓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예전의 대중 의사소통은 정부기관이나 방송과 같은 거대한 조직이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정보를 개인이 받아들이는 식이었다면, 인터넷은 이러한 일방향적인 의사소통을 극복하는 장이 되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2013년을 사는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듯, 인터넷은 결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지평을 열지 않았다. 방송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도 언론사가, 대형 포털이, 기업들의 홍보용 페이지가, 파워 블로거나, 거대 카페들이 있다. 여전히 인터넷상에는 여론을 주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고, 이들에게 의견을 묻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 구조는 변화가 없는 셈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인터넷 서비스는 점점 더 복잡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마치 가전제품의 리모콘처럼 ‘기술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을 실천하기라도 할 양, 온갖 복잡한 기술을 동원하여 여러 가지 편의기능을 달아놓고 현실과는 다르게 꾸밀 수 있는 것이야말로 온라인의 장점이라고 강변하는 서비스가 유행했다. 그러나 한차례의 인기가 지나간 지금, 온라인 서비스는 다시 단순한 형태로 돌아갔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의 성공과 쇠퇴가 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소셜미디어는 기술이 제공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기본적인 기능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을 잔뜩 쏟아내느라 정작 핵심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마찬가지로 기술적 요소에 과도하게 경도되면 기술의 화려함에 취해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매일 겪고 느끼는, 아주 기본적인 감정과 습관이라는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셜미디어의 본질은 새로운 기술이나 네트워크 구조 따위가 아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 지인들과 감정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느낌이야말로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이유다. 이러한 느낌은 굳이 배울 필요도, 익숙해질 필요도 없다. 사람을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사람에 맞추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이 아닐까. 어쩌면 기술적으로 원숙해진 미래의 모습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에 가까운 형태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기술적 혜택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있는 채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을 보조해주는 형태 말이다.



* 본 콘텐츠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온라인 뉴스레터 KOITA IN 25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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