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이 있더라도 늘 무언가는 배울 수 있는 직업이 과학자죠"

2013.10.10 00:00
김빛내리(44) 교수는 한국 생물학계의 유명인사다. 노벨상 후보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며 한국인 최초의 유럽분자생물학기구(EMBO) 회원,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 생물학계의 대표 학술지인 셀(Cell)지의 편집위원…. 로레알 여성과학인상이나 호암상 등의 수상실적까지 포함하면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력이다. 
그러나 정작 김 교수 자신은 조용히 연구하는 생활에 몰두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생물학계에서는 김 교수는 이상적인 롤모델로 꼽히기도 하고 여성 과학인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과학인이자 생물학자인 김빛내리 교수를 SEMA 웹진에서 만나본다. 

Q.최근에 수상 소식이 많았었습니다. 올해의 선도과학자로 선정되기도 하고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셨는데요, 어떠한 성과가 가장 주목받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 전공분야인 마이크로 RNA 연구의 가치를 인정해주신 것 같아요. 훌륭한 분들이 많이 연구하시는 분야인데도 유독 저에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어요.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더욱 연구에 매진하는 계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쓰오일과학문화재단 오명 이사장(왼쪽)이 2013년 7월 17일,올해의 선도과학자 펠로십 수상자인 김빛내리 교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Q. 마이크로 RNA가 주요 연구 분야인데요, 이 분야가 중요한 이유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마이크로 RNA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마이크로 RNA는 유전정보가 형질로 나타나는 데 아주 중요하지요. 유전병의 20% 이상이 RNA 결함으로 발생하는만큼 의학적인 가치고 큰 분야입니다. 마이크로 RNA이 세포 내에서 생성되고 작동하는 기작을 알아내면 이를 이용하여 난치성 유전병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요.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RNA는 줄기세포와 암세포의 형성, 노화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연구가 충분히 진척되면 암 치료에 혁신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화를 극복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겠지요. 

Q.2012년에는 학술지에 정식으로 등재된 논문을 스스로 철회하고 이를 정정하는 논문을 내신 바 있습니다. 사실 과학계에서는 이례적이기도 하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요, 논문 철회를 결정하신 배경과 연구 철학이 궁금합니다. 
2011년, <몰리큘러 셀(Molecular Cell)>이라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었어요. 발표한 논문이 무사히 통과되고 게재되었는데 이 연구에서 문제점이 나중에 발견되었어요. RNA를 추출할 때 트리졸이라는 시약을 쓰는데, 실험실에서는 매우 널리 이용되는 시약이지요. 그런데 이 시약이 문제였어요. 2011년 논문에서는 트리졸이 정상적으로 RNA를 추출했으리라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지만 다른 시약으로 실험을 반복해보니 특정 조건에서 트리졸이 RNA를 제대로 추출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트리졸이 정상적으로 RNA를 추출했다는 잘못된 전제 때문에 틀린 결론을 이끌어냈으니 이를 정정해야 했습니다. 
논문철회는 어려운 결정이기는 합니다. 논문철회는 저자가 이전 논문에서 오류를 발견했을 때 스스로 하기도 하지만 논문에 조작처럼 중대한 결함이 있을 때 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저와 연구실 사람들이 발견한 문제는 가벼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어요. 트리졸을 이용하는 다른 연구자들이 본의아니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셔서 논문을 철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Q.생물학자로서 어떨 때 가장 행복하신지요? 
제가 연구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가 평생 배우면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배우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다른 무엇보다도 연구에 집중해서 일할 때가 과학자로서 가장 행복해요. 

Q.여성과학자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육아일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부부가 공동으로 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많고 실제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셨는데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았죠. 출산으로 1년 반 정도를 쉰 적이 있어요. 쉬는 동안 실력이 있는 여자 선배들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많이 불안했었지요. 연구를 그만둘까 하는 고민까지 했었어요. 다시 연구실에 나오면서부터는 어린 아이를 떼어 놓고 일해야 하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었고요. 다행히 가족들이 믿고 지지해준 덕분에 연구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가족들이 없었다면 견뎌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Q.조금 민감한 질문입니다만, 국내 연구비 지원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IBS 단장으로서 연구비 운영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연구비는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연구활동을 하려면 시약이나 기자재,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자금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연구자들이 무언가를 판매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연구를 시작하던 2001년만 하더라도 RNA 관련 연구가 초보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했죠. 연구하면서도 저의 연구과제가 과연 성공할 것인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전망도 비관적인 연구가 지원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연구 초반에는 연구실을 유지하느라 억대의 빚을 지기도 했어요. 
지금은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다른 연구자들도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많아요. 최소한 저와 함께 하는 연구자들만이라도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습니다. 

Q.마지막으로 교수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과학자로서 행복하게 살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과학자는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큰 행복도 생계나 연구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구에 매진하고 자유롭게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꺾이지 않는 긍정적인 자세도 필요하겠지요. 연구 활동에서 실패도 많겠지만 그 과정에서도 늘 무언가 배우는 것은 있으니까요. 

연구실에서의 김빛내리 교수. 김 교수는 한국에서 RNA 연구가 거의 없던 시절,마이크로 RNA 연구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과감하게 도전했다. 
현재 마이크로 RNA는 유전정보 발현 조절의 핵심 분야로로 주목받고 있다



*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공제회의 온라인 뉴스레터 동향 9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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