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으로 시각을 알리는 정밀한 물시계를 제작하여라!”

2013.10.10 13:52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국립과천과학관

관아에서 울리는 종과 북 소리가 시간의 기준

핸드폰도 없고 시계도 없던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시간을 파악하고 생활했을까? 조선시대 한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아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북소리가 시간을 파악하는 기준이었다. 해가 진 뒤 22번의 종소리가 울린 뒤 성문이 닫히면 사람들은 성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었다. 새벽녘 33번의 북소리가 울린 뒤에야 밤새 굳게 닫혔던 성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성 안팎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출퇴근을 했을까? 이들 역시 매시마다 울리는 북소리와 종소리에 따라 궁에 입궐해 일을 하고 퇴궐을 했다.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은 낮의 길이가 달라지는 계절에 따라 달라졌다. 봄‧여름‧가을은 묘시(5~7시)에 출근해 유시(17~19시)에 퇴근했고, 겨울철은 진시(7~9시)에 출근해서 신시(15~17시)에 퇴근했다.

 

그런데 종과 북을 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파악해 매 시각 종과 북을 쳐 시간을 알렸던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지만, 해와 달 등 자연의 변화를 이용해 시간을 파악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낮에는 앙부일구 같은 해시계로, 밤에는 일성정시의와 같은 별시계로 매 시각을 계산했을 것이다. 그럼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이 낀 날은 어땠을까? 날씨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물시계가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으로 시각을 알리는 정밀한 물시계를 제작하여라!

물시계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718년 신라 성덕왕 17년에 물시계를 만들고 이것을 관리하는 관청을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 만든 최초의 물시계가 671년 백제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삼국사기에 기록된 718년 훨씬 이전부터 물시계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우리나라 물시계는 세종시대 자격루 제작에 의해 획기적으로 발전한다. 1432년 6월 24일 세종은 장영실과 김 빈에게 시각을 자동으로 파악해 알리는 나무 인형을 만들어 물시계를 지키는 관리의 노고를 덜어 줄 것을 명하였다. 2년 여 기간을 거쳐 1434년 7월 드디어 자격루가 완성되어 공식적인 표준시계로 사용되었다. 세종의 요구대로 자격루는 매 시각마다 나무인형이 나타나 자동으로 시각을 알렸다. 물시계를 지키는 관료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시각을 잘못 알려 중벌을 받는 일도 사라졌다고 한다.

 

시간을 측정해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격루

물시계의 핵심 기능은 물 흐름의 속도(유속)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과 눈금이 적힌 부표를 일정한 속도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물 흐름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는 대파수호, 중파수호, 소파수호, 폐호가 사용되었는데, 수수호로 물을 흘려보내는 소파수호의 물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맨 위쪽 대파수호의 물은 수압에 따라 물 흐르는 양이 달라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파수호를 통해 물이 소파수호로 흘러들어오게 설치했고, 소파수호에 일정 높이 이상의 물이 차오르면 폐호로 물이 넘치게(overflow)해 소파수호의 수압을 일정하게 유지시켰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렇게 일정하게 유지된 소파수호의 물은 수수호로 흘러들어가 부표를 일정한 속도로 떠오르게 한다. 부표에는 눈금을 새긴 잣대(부전)이 붙어 있는데, 물에 의해 일정한 속도로 떠오르면서 수수호 위쪽에 설치된 2개의 방목을 작동시킨다. 방목은 하루의 시간을 12개로 나누어 표시한 12시 동판이 왼쪽에, 25개로 밤 시간을 나누어 표시한 경점이 오른쪽에 위치해 있고, 각각의 동판에는 12개와 25개의 작은 구리구슬이 설치되어 있다. 부전이 떠오르면서 차례로 12시와 25경점 동판을 치면 구슬이 떨어져 광판을 지나 시보장치의 동통으로 굴러들어간다.

 

시보장치, 구슬을 움직여 낮과 밤의 시간을 알리다   

동통은 방목에서 떨어진 작은 구리구슬이 큰 쇠구슬을 움직여 시간을 알리는 인형(시보인형)을 작동시키는 동력발생기구이다. 동통의 왼쪽은 12시 시보를 알리는데 필요한 큰 쇠구슬이 있어 방목에서 굴러온 작은 구리구슬이 지날 때마다 차례대로 방출된다. 반면 우측은 5경 북과 20점 징을 치는 데 필요한 쇠구슬이 설치되어 있다. 동통에서 빠져나온 쇠구슬은 12시를 알리는 시보기구로 굴러가 매 시마다 위층에 설치된 나무 인형(사시신)을 움직여 종을 치고, 아래층에 있는 인형인 보시신을 튀어 오르게 한다. 밤의 시간을 알리는 경점 시보기구도 매 경마다 위층에 설치된 사경신 인형으로는 북을, 사점신 인형으로는 징을 치게 한다.

 

경복궁 보루각의 자격루 시간이 표준시

그렇다면 조선시대 표준시계인 자격루가 알리는 시간이 어떻게 사대문까지 전달되었을까? 
우선 자격루는 경복궁 보루각에 설치된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보루각에 있는 자격루가 스스로 시간을 알리면 육조거리에서 북을 쳐 종루에 전달한다. 종루에 시간이 전달되면 보신각의 종이 울리고, 이후 남산의 봉수대를 통해 한양 성 밖까지 널리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이런 방법으로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표준시계인 자격루가 알리는 시간에 따라 생활하며 큰 불편함 없이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다.

 

15세기 시계 기술의 혁신 자격루

자격루는 동·서양의 과학기술이 접목된 15세기 당시의 최첨단 장치라 할 수 있다. 먼저 자격루에 적용된 대파수호-중파수호-소파수호 형태의 3단 파수법은 중국의 2단 파수법보다 한 단계 발전된 정밀한 방법이었다. 또 12시와 경점으로 구분해 방목을 이용한 신호발생기법은 아날로그 방식의 시간정보를 디지털 방식의 시각 발생장치로 변환한 획기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작은 힘을 큰 힘으로 변환시키는 동통기술과 자동 시보인형 장치는 당시의 이슬람의 자동제어 장치를 진일보시킨 새로운 발명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자격루는 당시 최첨단 기술인 중국의 물시계 장치와 이슬람의 자동기계 장치를 뛰어넘는 매우 정밀한 자동시계 장치다. 거기에 삼국시대부터 발명되어 사용되던 물시계의 노하우까지 더해졌으니 자격루야말로 15세기 가장 돋보이는 기술 혁신 제품이라 할 것이다.

 

※ 가볼 만한 곳
덕수궁 : 중종시대 제작된 자격루의 물시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 실제 작동하는 자격루 복원품을 볼 수 있다.
국립과천과학관 : 자격루 모형 및 자격루 설명 동영상이 잘 만들어져 있다. 자격루 외에도 해시계, 혼천시계 등을 같이 볼 수 있어 가 볼만 하다.
 


국립과천과학관 남경욱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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