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의 키워드, 물과 바람

2013.08.23 00:00

한낮의 관공서에서는 땀을 뻘뻘 흘려대는 와중에도 에어컨만은 가동하지 않고 버틴다.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시원스러운 전경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전력난이 최고조에 이른 지난주 초에는 숫제 어두운 실내에서도 불까지 끄고 지낼 정도였다. 급기야는 민간기업 사무실의 실내온도를 규제하고 벌금을 물리겠다는 초유의 조치까지 발표됐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싶을 정도지만 돌잔치 행사장이 정전으로 암흑천지가 되는가 하면 식당가가 한동안 정전되어 식재료를 못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보니 이런 난리법석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전력 수급 비상에 무더위까지 겹친 여름날, 가장 고달픈 곳은 뜻밖에도 초현대식으로 지은, 첨단 건물들이었다. 전력사정이 나쁘지 않았을 때야 온도와 습도가 쾌적하게 조절된 환경에서 시원하게 일할 수 있었지만, 전력을 사용하는 장비들을 모두 정지시키자 햇볕은 고스란히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열리는 시늉 정도만 하는 창문을 지닌 건물 내부는 말 그대로 찜질방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낡아빠진 옛날식 콘크리트 건물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견딜만한 낮시간을 보냈다.

이쯤 되면 그간 ‘친환경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쌓아올린 마천루와 공공건물들이 정말 친환경적인지 돌아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전력 시스템 좀 껐다고 사람 살기 어려워지는 건축물이 과연 친환경적인 건물일까? 스스로 온도조절 하나 못하는 건물이?




언젠가부터 공공건물을 중심으로 유리로 뒤덮인 건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마천루들도 콘크리트의 영역을 최소화하고 유리로 표면을 도배하는 것이 트렌드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주거용 건물에까지 영향을 주어서 주상복합형 아파트는 사무용 건물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무기질적인 매끈함으로 치장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이번 무더위에 낭패를 본 건물들은 바로 이런 건물들이었다.


유리를 대폭 활용한 건축방식이 유행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유리 건축은 그 자체로 현대적인 세련미를 물씬 내고 풍요와 개방성을 상징한다. 1851년, 런던에서 수정궁이 선보였을 때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던 까닭도 유리로 뒤덮인 건물이 그때까지의 어떤 건물과도 다른 세련미를 보이면서도 기술력과 물질적 풍요를 과시했기 때문이다. 수정궁은 철골 구조라는 신기술과 유리라는 새로운 벽면 재료를 활용하여 미래의 건축을 한발 앞서 제시하고 후대의 건축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수정궁 이후, 유리와 철골은 미래지향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다. 유리에 대한 기대감은 1914년, 셰르바르트(Paul Scheerbart)의 ‘유리건축(Glasarchitketur)’ 선언문에 잘 드러났다. 이 선언문에서 셰르바르트와 독일 표현주의 건축가들은 고전 건축의 폐쇄성을 비판하고 유리의 투명함을 찬양하며 실내 깊숙이까지 빛을 끌어들이자고 제안했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기둥과 보로 골격을 만들고 벽체는 내력을 지탱하는 데서 해방하자 셰르바르트의 이상은 현실이 되었다. 이전까지 건축물 전체를 지탱하는 일부였던 벽을 구조적 제약을 거의 완전히 무시하면서 자유로이 배치하거나 다양한 소재를 실험해볼 길이 열린 것이다.


유리 소재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유리로 만든 건축물도 점차 규모가 커졌다. 1970년대의 후기 모더니즘에 이르면 페이(I. M. Pei)나 펠리(Cesar Pelli)와 같은 건축가들이 유리와 금속을 마천루에 극한까지 활용하여 ‘슬릭테크(slick-tech)’라는 스타일을 유행시키기에 이른다. 광택으로 뒤덮인 표면, 무한하게 공간을 확장시키는듯한 투명한 벽면, 주변의 사물을 반사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외관은 산업사회의 대규모 기념비인 빌딩숲에 딱 맞는 속성이었다.


슬릭테크는 마천루에만 활용된 것은 아니다. 가냘픈 철골에 구조를 의존하고 투명한 벽면이 시원스럽고 널찍한 내부공간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공공건축에도 폭넓게 활용되었다. 최근 주요 지자체의 신축 청사들에 유리건축이 대폭 도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탁 트인 공간은 지역 주민과 민원인들에게 개방적인 느낌을 주어 관공서의 문턱을 낮추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관청 건물의 설계자들은 지역 주민에 대한 봉사와 주민의 자치를 실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냈던 것이다.





현대에 들어 유리 건축은 심미적이고 상징적인 역할 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유리 건축은 외부의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거주자를 최대한 보호하면서도 태양의 에너지를 극대화하여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친환경 건축’이라고 하면 으레 최소한 한쪽 벽은 유리로 만든 건물을 떠올릴 만큼 유리는 저에너지 건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인류 역사에서 건축물의 중요한 역할은 외부의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거주민을 보호하는 한편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는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자연히 건축에는 햇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자연의 햇볕과 바람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먹고 자는 공간까지는 끌어들이지 않도록 배려한 베란다나 발코니, 천정과 지붕이 외부로부터 실내를 분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방된 다용도 야외 공간의 기능을 겸하게 한 테라스, 계절과 시간에 따라 효율적으로 햇볕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절묘하게 계산된 처마 등이 그 산물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햇볕을 수동적인 방식으로 이용한다 하여 ‘패시브 솔라(passive solar)’로 불린다. 패시브 솔라는 문명 초기부터 이용해왔던 에너지 활용 방식이다. 햇볕을 받아들이는 집열부, 햇볕의 에너지를 저장해두는 축열부, 축적된 에너지를 활용하는 이용부로 구성된 패시브 솔라 시스템은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4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올린서스(Olynthus) 유적에서는 남쪽에 면한 중정(中庭)으로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석재로 둘러싼 집 안에 열을 가두어두는 구조가 확인된다. 이러한 형식의 건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Ur) 유적과 고대 이집트의 카훈 유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건축 양식은 이후 서양 건축의 원형이 됐다. 로마인은 중정 구조를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창문에 유리를 도입함으로써 열을 더욱 효율적으로 가두어둘 수 있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건축 10서(De Architectura libri decem)>를 집필하여 르네상스시대의 유럽인들에게 로마 건축의 유산을 남겼고 18세기 들어 유리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태양열을 이용하는 효율이 대폭 늘어났다.


이러한 경향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통 한옥의 구조도 집 앞의 마당을 비워 두어 햇볕을 받아들이게 하고 이를 방으로 둘러싸서 열을 보존하는 형태다. 15세기 조선에서는 봄나물을 재배할 수 있는 온실을 설치하고 이를 장원서(掌苑署)라는 관청에서 전문적으로 관리할 정도로 태양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유리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건축은 햇볕의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공기는 차단하지만, 빛은 통과시키는 유리로 사방을 감싸면서 햇볕의 에너지를 최대한 받아들여서 실내에 가두어 두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유리로 뒤덮인 건물은 태양의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정점에 이른 형태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전력사태에서 확인했듯, 현대식 유리 건축은 중요한 중대한 결점을 안고 있다. 널찍하고 시원스러운 공간을 제공하고 태양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었을 때 이를 적절히 해결할만한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요컨대, 난방에는 우수한 효율을 보이지만 냉방에는 오히려 낮은 효율을 보인다는 뜻이다. 예전 같으면 실내가 바깥보다 더 덥다면 그저 창문만 활짝 열면 그만일 것을 유리벽이 창문을 대체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가면서 냉각시스템을 구동해야 한다. 이래서는 ‘친환경’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할 지경이다.


고전 건축이나 자연물은 현대 건축이 놓친 바로 이 부분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고전 건축은 오랜 경험을 통해 적은 에너지로도 충분한 냉방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비결은 바로 물과 바람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저택에서 중원(Atrium)은 태양열을 받아들이는 역할만 했던 것이 아니다. 아트리움에는 보통 ‘임플루비움(Impluvium)’이라는 사각형 빗물받이 겸 연못을 만들어두는데, 비열이 큰물이 중원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침실을 말 그대로 자는 용도로만 활용했고 대부분 시간은 밝게 햇볕이 들어오면서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 아트리움에서 보냈다. 또 다른 개방공간인 페리스타일(Peristyle)도 마찬가지였다. 기둥과 처마로 둘러싸인 공간인 페리스타일에는 정원이나 채소밭을 두곤 했는데, 식물들이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온도조절에 중정을 활용하는 방식은 남부 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페인의 알람브라(Alhambra) 궁전이다.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알람브라 궁전은 가운데의 커다란 정원을 방들이 사각형으로 요새처럼 둘러싼 구조다. 중정에는 큰 연못이 있고 이곳으로부터 사방으로 수로가 뻗어나 와 방 안쪽까지 물이 흘러든다. 중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은 생명의 물, 오아시스를 상징하는 한편으로 효과적인 냉각장치 역할을 한다. 건물의 한가운데에 연못 정원을 두는 건축양식은 이슬람 세계에 오랜 시간 동안 장려되어 이른바 ‘지중해식 중정’으로 정착했다.


물을 이용한 냉각방식은 놀라운 효율을 보인다. 한여름에 전형적인 지중해식 중정은 길거리보다 온도가 9도나 낮다. 중정의 시원한 공기를 이용하면 냉각에 필요한 에너지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세비야 대학(University of Seville)에서는 지중해식 중정의 시원한 공기를 능동적으로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는 냉각기법을 개발하여 말라가 호텔(Monte Málaga)에 적용함으로써 냉각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반으로 줄이는 성과를 얻었다.


자연 냉각의 또 다른 키워드인 바람 역시 여러 문화권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전통 한옥이 바람을 이용한 냉각방식의 전형적인 사례다. 한옥은 앞뒤로 트인 대청을 사이에 두고 텅 빈 마당을 집 앞에, 식물을 심은 후원을 집 뒤에 둔다. 햇볕을 받으면 맨땅인 마당이 빨리 뜨거워져서 상승기류가 발생하고 식수를 한 후원으로부터 시원한 공기가 마당 쪽으로 흘러든다. 이 공기가 대청을 지나면서 집 전체를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 통째로 들어 올려 아예 벽이 없는 형태로 만들어줄 수 있는 들 문을 설치하여 냉각 효과를 극대화한다.


한옥이 수평적인 공기의 흐름을 이용했다면 이슬람 사원은 수직적인 공기 흐름을 활용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건축가인 시난(Mimar Sinan)은 그의 대표작인 술레이마니에 사원(Süleymaniye Mosque)에 수직적인 환기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온도조절과 환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냈다. 시난은 양초와 램프에서 생긴 그을음이 사원의 내벽을 더럽히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고심했다. 공간의 성격상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공기가 탁해진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시난은 출입구 위의 작은 공간으로 내부의 후덥지근하고 지저분한 공기를 빼내고 바닥에 둔 관으로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공기 흐름을 이용한 냉각의 진수는 인간이 아닌 흰개미에게서 볼 수 있다. 흰개미의 집에는 엄청나게 많은 통로가 복잡하게 얽혀 개미탑 표면의 수많은 구멍을 통해 바깥과 연결된다. 흰개미는 곰팡이와 버섯을 키우는 부분과 주요 생활공간을 집의 아래쪽에 두는데, 여기서 나오는 열이 집 내부의 공기를 위로 밀어 올려서 개미탑의 위쪽 구멍을 통해 덥고 탁한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아래쪽 구멍을 통해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유입된다. 흰개미는 개미탑의 구멍들을 여닫으면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함으로써 집 내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흰개미의 환기 시스템은 이들의 주 서식지인 아프리카 초원은 한낮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고 일교차가 심한데도 흰개미 집의 내부는 항상 29~30도 정도로 유지될 만큼 효율적이다.


짐바브웨 출신의 건축가, 믹 피어스(Mick Pearce)는 자국 수도인 하라레에 에어컨이 없는 쇼핑센터를 설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아프리카의 에어컨 시설이 없는 쇼핑센터라니, 황당한 요구였다. 처음에는 막막해 보였지만 피어스는 흰개미의 환기시스템을 모방하여 최초의 대규모 자연냉방 건물인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Eastgate Centre)’를 건설했다. 구조는 간단했다. 건물의 가장 아래층을 완전히 비워버리고 꼭대기에 더운 공기를 빼내는 수직 굴뚝을 여러 개 설치한 후, 두 개의 건물 사이에 소용량 선풍기를 설치했을 뿐이었다.


단순한 구조였지만 효과는 놀라웠다. 건물 내에서 더워진 공기가 꼭대기의 굴뚝을 통해 빠져나가고 아래쪽에서는 신선한 공기가 지속해서 유입되어 에어컨 없이도 실내온도가 24도 정도로 유지됐다. 전력이 소모되는 곳이라고는 공기 순환을 거드는 선풍기뿐이었다. 이 간단한 시스템 덕분에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는 같은 규모의 건물의 10%에 불과한 전력만을 사용한다.


사람의 목숨은 물이 없다면 사흘, 공기가 없다면 15분을 넘기지 못하지만, 주변에 늘 있기 때문에 그 역할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곤 한다. 하루 중 반은 없어서인지 태양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 부당한 대우다. 태양을 중요한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많아도 공기와 물을 섬기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요즘의 ‘친환경’ 건축은 태양을 어떻게든 실내로 끌어들이는 데 골몰해왔다. 그러는 동안 공기와 물은 불안하고 비효율적인 전기 시스템에 맡겨둔 채 더는 건축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별도의 에너지 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환기와 냉각에는 대책이 없는 ‘반쪽짜리 친환경’이다. 소재만 친환경이라고 저에너지 건물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제대로 된 친환경 건축을 실현하려면 온갖 첨단기술을 무차별적으로 도입하기 이전에 대량의 에너지를 양껏 사용하기 이전의 건축을 들여다봐야 한다. 굳이 온고지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비단 건축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 본 콘텐츠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온라인 뉴스레터 KOITA IN 20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김택원

tw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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