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이야기가 뜨는 비밀

2013.08.21 09:36

제대한 예비역들에게 '군대 다시 가는 꿈'은 최고의 악몽이라지만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안줏감이 된다. 군대생활이 개인으로서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지만 그래서 추억이 되는 묘한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가의 주류 트렌드로 뜨고 있다. 2012년 tvN의 '롤러코스터2'의 최고 인기코너였던 <푸른 거탑>, 추억의 군대 에피소드를 세밀한 심리묘사로 다루어서 사랑받았다. 그 덕에 올해 1월에 롤러코스터에서 독립 편성되어 시트콤 형식으로 인기를 누리다가 7월 10일 25부작으로 종방되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로 방영 중인 <진짜 사나이>는 tvN의 <푸른 거탑>의 인기를 시샘한 듯하다. 아예 '리얼 입대 프로젝트'를 표방했다. 군대를 제대했거나 의무조차 없는 연예인들이 입대해서 남자들의 군대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그램이 진짜 군대에 대한 '코스프레'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가 방송의 소재가 된 것은 최근만의 경향은 아니다. 20여 년 전 개그 프로그램의 하나였던 <동작 그만>이나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쇼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남성 중심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은 드물다. 왜냐하면, 시청률의 '갑'은 언제나 여성이었고 모든 방송 PD들은 여성 시청자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시대에 역설적으로 남성 중심의 이야기가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대중문화 트렌드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대중은 영화와 드라마 같은 문화콘텐츠를 소비할 때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문화콘텐츠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자신의 삶과 대비한 재미, 심미,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이 존재한다. 물론 콘텐츠에 대한 1차적 접근은 재미 층위에서 제일먼저 이루어진다. 그 단계를 지나면 심미 층위나 의미 층위가 결합한 콘텐츠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재미로 보는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의미를 획득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트렌드와 문화코드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그 시대에 만들어지는 문화콘텐츠에 반영된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92년부터 1994년은 군부의 통치가 종식되고 해방 후 최초의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 시기이며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3저 호황(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대단히 안정적으로 보이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영화를 살펴보면 결혼 혹은 신혼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주를 이룬다. <결혼이야기(1992)>, <미스터 맘마(1992)>, <마누라 죽이기(1994)>, <닥터봉(1994)>, <그 남자 그 여자(1993)> 등이다. 모두 해당연도 흥행순위 3위안에 들었던 영화들이다. 그 서사구조를 살펴보면 전통적 가족의 패러다임과 현대사회의 가족 패러다임 혹은 성 담론의 충돌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의 가족주의 코드는 전통과 현대 가족주의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에 대한 발랄한 시선이다. 그러나 IMF구제 금융기간이었던 1997년과 1998년 사이의 가족주의 코드는 앞의 시기와는 다르다. 많은 기업이 하루아침에 도산했으며 많은 가장이 실직을 당했고 그 좌절감에 자살이 폭증했다. 사회적으로 암흑기였던 그 시절 한국영화 최고흥행작 6편중 5편이 멜로드라마였다. <편지(1997)>, <접속(1997)>, <약속(1998)>,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창(1997)> 등은 실직과 좌절감으로 대단히 어려운 사회 현실 속에서 가족에 대한 복고적 관계회복이 이루어지고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영화들이 주를 이룬다. 이처럼 사회적 불안요소가 증가할 때 사람들은 정서적 울림을 주는 근대적인 가족관계로 회귀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것은 이러한 가족주의 코드를 반영한 영화를 통해 위로받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세계적인 경제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현실 앞에 가장이라는 책임을 가지고 서 있는 한국 남자들의 삶을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방송가를 달구는 남자이야기 트렌드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남성들의 "외로움"에 문화코드를 맞추고 있다. 

MBC의<아빠 어디가?>는 늘 바깥으로 나돌아야 하는 이 시대 아버지가 짊어진 소외의 그늘을 포착해서 성공했다. 19.8%라는 시청률이 인기를 짐작게 한다. 가족 속에서 늘 소외되기 쉬운 아버지와 자녀의 여행을 통해 서로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때론 웃음과 눈물을 함께 준다. 윤후가 '예전에 아빠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건 나를 싫어해서였느냐'고 질문하는 장면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아버지를 울리는 가슴 아픈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와 자녀가 자연스럽게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에게 가족 간의 치유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아빠 어디가?


MBC의<나 혼자 산다>는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말 못하는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노홍철은 'ㅅ'발음을 하지 못해 교정을 위해 전문 학원을 찾아가고 이성재는 항상 짜증을 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정신병원을 찾아간다. 이성재는 현재<구가의서>에서 악역인 조관웅 역을 하면서 현실의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갈등한다. 그의 모습은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역할을 하다가 정신병을 얻은 히스 레저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이들이 한두 가지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줌을 통해 대중들을 위로한다. 

대중문화의 트렌드는 그냥 어느 연예인이나 방송프로그램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지점을 포착하여 담아낸 대중문화 콘텐츠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뒤집어서 말한다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문화콘텐츠는 재미만을 좇는 콘텐츠가 아니라 그 시대 대중을 관통하는 유행의 '의미'를 찾아 심금을 울려주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남자의 외로움을 주목하고 위로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유행엔 비밀이 담겨있다. 그만큼 지금 세상이 살기 힘듦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문화코드다.

나 혼자 산다



*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공제회의 온라인 뉴스레터 동향 7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김평수(문화콘텐츠평론가 / 한국외대 문화콘텐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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