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탄생과 새로운 지평

2013.06.17 09:37

소비재용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IT 기업들에서 가장 바쁜 부서는 어디일까? 신기술과 지식이 중요한 분야다 보니 많은 사람은 연구개발이나 신제품 기획부서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기업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최근 들어서는 법무 관련 부서들이 가장 바쁠 것이다.

 

퀄컴이나 애플 등의 사례에서 보듯, IT 기업의 이윤은 실물 제품 이상으로 특허와 지적재산권에서 창출된다. 2011년을 뜨겁게 달구고 아직도 진행형인 삼성-애플 분쟁부터 시작해서 팹리스 기업들의 막대한 순이익, 기업 인수 합병 시장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특허권 확보 등은 IT 업계에서 기업 경쟁의 중심이 권리를 둘러싼 법적 공방으로 옮아갔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1년까지 7년 사이에만 글로벌 기업 간 지식재산권 분쟁이 4.3배나 증가했고, 이 중 IT와 전기전자 분야 분쟁만 86%에 달할 정도다.

 

최근의 열띤 소송전은 따지고 보면 2차전에 해당한다. 이보다 훨씬 앞서 1980년대에 이미 IT 기업들을 바짝 긴장시킨 대규모 지식재산권 분쟁이 있었으니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exas Instruments, 이하 TI)와 잭 킬비(Jack St. Clair Kilby)가 그 주인공이다.

 


시작은 일본의 기업, 후지쓰였다. 1986년 TI는 후지쓰에 특허료 지불 소송을 건 이래 한국과 일본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10여 년간 엄청난 소송공세에 시달렸다. TI가 내세운 무기는 이른바 킬비 특허. 반도체를 포함한 회로를 하나의 칩 위에 조합하여 집적회로의 기본 개념을 정립한 특허였다. 요컨대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원천기술에 해당하는 셈이다. TI는 킬비특허의 권리사용료로 무려 판매액의 10%를 로열티로 요구했다.

 

킬비 특허는 2001년 특허권이 만료되어 이에 관련된 법적 분쟁은 일단락됐다. 반도체 업계에는 상용 반도체를 생산할 때 킬비 특허를 회피할 방법 자체가 없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킬비 특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IT 산업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재료, ‘실리콘’에 있었기 때문이다.


잭 킬비가 집적회로를 고안해 낸 1950년대는 트랜지스터 혁명이 한창이던 시점이었다. 트랜지스터는 이전의 진공관에 비해 훨씬 작고, 전력소모도 적으며, 수명도 길어 크기와 비용, 효율, 안전성에 커다란 비약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럴듯한 회로를 만들어내려면 여전히 커다란 난관이 버티고 있었으니, 바로 ‘숫자의 횡포(The Tyranny of Numbers)’였다.

 

트랜지스터 덕분에 전자회로를 다루기 쉬워지자 엔지니어들은 이전의 진공관으로는 꿈도 못 꾸던 복잡한 회로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회로 하나에 필요한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저항, 콘덴서 등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는데 아무리 소자가 소형화됐다 해도 1,000만 개가 넘는 부품을 하나의 기판에 집어넣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부품을 구하는 것과 기판의 크기는 둘째치고 현실적으로 납땜조차 불가능할 판국이었다. 게다가 이처럼 구성요소가 많아지면 노이즈가 낄 확률도 높아지고 회로 자체의 저항도 증가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정하는 일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50년대 엔지니어들은 결국 엄청난 숫자에 눌려 아이디어를 현실로 펼쳐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해야만 했다.

 

킬비와 노이스(Bob Noyce)는 수의 횡포에 결정적인 돌파구를 제시했다. 당시 엔지니어들이 구상하던 복잡한 회로를 현실화하려면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했다. 첫째는 하나의 작은 기판 위에 모든 구성요소를 어떻게 올려놓을 것인가, 둘째는 수많은 구성요소를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연결할 것인가였다. 둘 모두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방법이 필요했고 킬비는 첫 번째 질문에서, 노이스는 두 번째 질문에서 출발하여 집적회로를 탄생시켰다.

 


킬비는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집적회로 연구로 노벨상까지 받았던 그이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과학자보다 엔지니어로 여겼다. 조용하게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그 성격대로 휴가철 텅 빈 연구실에 앉아 전자 회로의 원가를 절감할 방법을 고민하던 킬비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떠올렸다. TI에 입사한 지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은 1958년, 그의 나이 34세 때의 일이었다.

 

숫자의 횡포를 해결하려면 수많은 부품을 최소화하고 이를 단일 기판 위에 꽉꽉 채워넣어야 했다. 열쇠는 바로 재료에 있었다. 킬비는 회로를 구성하는 저항, 콘덴서 등을 트랜지스터와 동일한 재료인 게르마늄, 혹은 실리콘으로 만들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만약 회로를 구성하는 부품들을 모두 동일한 재료로 만든다면 공통된 재료를 기반으로 수많은 부품을 일체화한 회로를 구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조 공정 자체도 단순해질 것이다.

 

킬비는 자신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상관에게 보고했고, 이 기술의 가능성을 알아챈 TI는 킬비에게 실제 샘플을 만들어볼 것을 주문했다. 킬비는 게르마늄을 기반으로 하여 소량의 불순물을 첨가하여 저항을 만들고 게르마늄 산화물을 절연체로 활용하여 콘덴서를 만드는 한편 이들을 조합하여 P-N 접합점을 구현함으로써 다이오드를 만들었다. 이들을 트랜지스터와 함께 게르마늄 칩 위에 얹어서 단일한 소재로 회로 전체를 구현해내는 데 성공한다. 이른바 단일한(mono-) 광물(-lith-)에 기반을 둔(-ic) 집적회로, 모노리식 집적회로(Monolithic Integrated Circuit)의 탄생이었다. 킬비는 1958년 9월 12일, 마크 셰퍼드 TI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손수 만든 집적회로로 직류를 교류로 바꿈으로써 IT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킬비가 회로를 구성하는 부품들을 작은 칩 위에 모으는 데 집중하는 동안, 노이스는 금속선을 이용하지 않고도 각 부품을 연결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노이스는 실리콘 기반의 트랜지스터를 개발하여 대량생산함으로써 본격적인 실리콘밸리 시대를 연, ‘8인의 배신자’ 중 한 명이자 굴지의 반도체 기업, 인텔의 설립자다. 8인의 배신자는 트랜지스터 개발로 노벨상을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에게 발탁되어 함께 일하다가, 쇼클리의 독선에 질려 사표를 제출하고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한 8명의 공대생을 이르는 말이다.


노이스는 8인의 배신자 중 리더 격에 해당하는 인물로 실리콘밸리라는 단어가 탄생하는 데 일조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한 노이스는 동료와 함께 회로를 오염시키는 각종 외부요인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를 두고 씨름했다. 당시의 트랜지스터는 수작업으로 일일이 재료들을 붙이고 전선을 연결해야 해서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트랜지스터 회로를 흐르는 전기신호가 오염되지 않도록 절연하는 일도 문젯거리였다. 부품의 크기를 줄여 회로의 집적도를 높이자면 회로 곳곳을 연결하는 전선들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작으면서도 확실하게 절연막을 입혀야 했다.

 

마침 동료 중 한 사람이 세 겹으로 쌓은 반도체 위에 반도체 산화물을 입히는 아이디어를 냈다. 반도체 산화물은 실리콘, 또는 게르마늄에 산소가 결합한 것으로 전자의 이동을 봉쇄하기 때문에 절연체로서는 매우 훌륭했다. 노이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산화물 막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산화물 막을 입히는 자리를 정교하게 제어하면 전선을 기판에 ‘인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선택된 재료가 바로 실리콘이었다.

 

집적회로가 개발되던 당시 반도체의 주 재료로 각광받던 물질은 게르마늄이었다. 그러나 게르마늄은 비쌀 뿐 아니라 1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정확한 동작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반도체 산화물을 만드는 공정에서는 고온 처리 과정이 필요했는데 게르마늄 반도체에는 적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실리콘은 지각에 산소 다음으로 흔한 원소인데다 안정성이 높고 고온 가공이 가능하여 노이스가 계획한 새로운 반도체에 적합했다.

 

노이스는 동료이자 ‘무어의 법칙’의 주인공인 무어(Gordon Moore)의 방으로 찾아가 칠판에 실리콘 블록 위에 인쇄한 구리선으로 두 개의 트랜지스터를 연결한 그림을 그려주었다. 며칠 후에는 실리콘 블록에 수로처럼 홈을 내에 저항으로 활용하고 며칠 후에는 축전기를 구현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렇게 전자회로의 각 부품을 하나하나 실리콘 블록 위에 구현하던 노이스는 1959년 1월, 마침내 집적회로의 그림을 완성했다. 킬비의 발표보다 6개월 늦은 시점이었다.

 

노이스의 아이디어는 킬비의 집적회로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었다. 킬비는 단일 소재 칩 위에 부품을 올린다는 집적회로의 기본 아이디어는 제시했지만 노이스는 미세한 부품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방법을 제시했다. 노이스는 실리콘 기판에 각각의 부품, 즉 소자를 만들고 그 위에 평면처리공정으로 산화막을 입혀 절연층을 만들었다. 절연층 위에는 다시 금속층을 얇게 입히고 여기에 사진을 인화지에 인화하듯 회로 설계도를 영사한 후, 빛이 닿은 부분의 금속을 깎아냄으로써 금속배선을 만들었다. 부품을 하나하나 전선으로 연결하여 납땜할 필요 없이 단일 공정으로 수많은 부품과 배선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노이스와 킬비는 서로의 발명에 대해 모른 채 TI와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각각 특허를 출원했다. 두 사람의 출원은 모두 인정되어 TI와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법정 분쟁을 겪다가 양사의 특허가 보완 관계라는 데 합의하고 크로스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다.


 


킬비와 노이스가 문을 연 실리콘 반도체 산업은 세계를 ‘IT 혁명’으로 이끌었다. 만약 이들의 발명이 없었다면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덕지덕지 연결한 회로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당연히 이러한 회로들의 성능은 현재 시각으로 보았을 때 재앙 수준으로 형편없었을 것이며 가격도 엄청나게 높았을 것이다. 당연히 일상을 바꾼 IT 혁명도 늦어지고 정보화 사회의 도래도 한참 미뤄졌을 것이다. 현대 사회를 농담으로 ‘제2의 석기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실리콘의 역할은 컸다.

그러나 실리콘의 한계가 슬슬 드러나고 있다. 1965년, 미국의 잡지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는 노이스의 절친한 동료이자 인텔의 공동창업자인 고든 무어의 이름을 딴 ‘무어의 법칙’이 언급됐다. 당시의 경험에 바탕을 두어 반도체의 집적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고 예측한 것이다. 이 법칙은 한동안 제법 잘 지켜졌지만, 집적도가 높아지고 공정도 미세해지자 실리콘 반도체는 성능의 한계에 부딪혔고 무어의 법칙은 깨지고 말았다. 현재 인텔 등의 반도체 기업들은 집적도를 높여 속도를 끌어올리기보다 병렬처리기술을 향상해서 복수의 코어를 이용함으로써 속도 향상을 꾀하고 있다.

 

노이스가 고안한 집적회로는 ‘쌍극접합 트랜지스터’가 기반이었다. 전극 두 개와 이미터를 지닌 트랜지스터를 실리콘 기판 위에 구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로는 제조 공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인접한 트랜지스터를 격리하기 위해 제법 많은 공간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본격적으로 복잡한 회로가 나타나면서 쌍극접합 트랜지스터는 금속-산화물-반도체 전계 효과 트랜지스터(metal-oxide- semiconductor field effect transistor, 이하 MOSFET)로 대체됐다.

 

MOSFET은 1926년, 줄리어스 릴리언필드(Julius Edgar Lilienfeld)가 특허출원한 기술로 반도체 표면에서 동작이 일어나게 한 트랜지스터다. 표면에 반도체 구조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노광-식각으로 진행되는 집적회로 제작기술에 적용하기에는 최적의 기술이었다. 문제는 표면에서 작동하다 보니 미세한 불순물이 들러붙기만 해도 정상적인 작동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노이스와 무어가 창업한 인텔은 생산라인에 방진장치를 도입함으로써 불순물을 대폭 줄이고 10%에 불과하던 수율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본격적인 상용화에 성공한다.

 

MOSFET을 기반으로 한 집적회로는 반도체 기판에 ‘홈’을 파서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를 만든다. 말하자면 전자가 이동하는 전선이 되는 셈이다.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단위 면적에 집약되는 트랜지스터의 수도 많아지고 이에 필요한 전자의 통로, 회로선의 밀도도 높아진다. 회로선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인접한 회로선과 거리도 줄어드는데, 40nm 미만의 거리에서는 정확한 동작을 보장하기 어려워진다. 이전까지는 홈 속에 얌전히 잘 자리 잡고 있던 전자들이 회로선의 간격이 일정 거리 미만으로 줄어들면 ‘양자 터널링’ 효과에 의해 인접한 회로선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2, 30nm대 공정에서는 전자들의 터널링 효과를 막기 위해 홈 사이에 나노소자 절연체를 삽입하고 있다. 2020년대 중후반에 실용화될 것으로 보이는 10nm대 공정에서는 절연체 삽입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실리콘 기판의 홈을 덮어서 o자형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문제는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부도체 삽입이나 o자형 홈을 만드는 일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현재도 o자형 홈을 만드는 기술은 곡예에 가까운 고난도 기술이라고 한다. 실리콘 소재 자체의 한계도 있다. 반도체 공정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단결정 실리콘은 충격에 약하고 공정 자체에 고온처리가 필요하여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제품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가장 부각되는 분야는 바로 소재. 기존의 알루미늄 배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알루미늄 대신 전기전도성이 높은 구리를 적용하여 미세화에 따른 저항을 낮추는 한편, 기판을 이루는 실리콘을 대체하는 물질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소재가 갈륨-비소(GaAs) 화합물로 대표되는 III-V족 화합물이다. GaAs 반도체는 단결정 실리콘 반도체에 비해 전자이동속도가 높아 초고속 집적회로에 사용된다. 최근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고분자 반도체도 기대주다. 고분자 반도체는 탄소를 기반으로 하여 공정을 단순화할 수 있고 높은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어 활용폭이 넓지만, 아직 실용화 초기 단계라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2010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여 화제가 된 그래핀도 탄소 기반 소자로 탄소나노튜브나 풀러렌 기반의 반도체 소자도 활발하게 연구 중이다.

 

실리콘 집적회로의 역사는 벌써 65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한참 사회적으로 활동할 시간을 지나 과거를 반추하며 노후를 즐기는 단계에 온 셈이다. 기존의 반도체 기술 역시 실리콘과 MOSFET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변화의 핵심이 새로운 소재가 될지, 새로운 공정이 될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구조가 될지, 아니면 이 모두일지는 미지수지만 인류가 두 번째로 맞은 ‘석기시대’가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본고에서는 대한화학회의 ‘저마늄’ 표기를 따르지 않고 라틴어/독일어식인 ‘게르마늄’ 표기를 적용했습니다. 저마늄이 일반인의 상식에 익숙하지 않은 표기임을 감안한 결정이오니 다소 거슬리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실리콘 역시 ‘규소’라는 국명을 사용하지 않고 IT 산업 재료로서 익숙한 명칭인 ‘실리콘’을 일관되게 유지하였습니다. 단, 본고에서 말하는 실리콘은 ‘규소수지’를 뜻하는 Silicone이 아닌, 원소명으로서의 Silicon임을 알려드립니다.

 

* 본 콘텐츠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온라인 뉴스레터 KOITA IN 15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김택원

tw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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