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도 꿰어야 보배…바이오 인재도 마찬가지”

2012.07.02 16:14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와 KASBP는 6월 18일 미국 보스톤에서 ‘한미FTA와 세계화‘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한국 바이오 산업의 세계회를 위해서는 해야할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우선 해외 한인 과학자들을 적극 활용해야죠. 또, 아이디어 중심의 벤처 육성과 전임상·임상을 위한 연구자도 필요하고, 제약산업의 단계별 전문가들을 꿰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도 키워야 합니다.”

올해 3월 15일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국내 제약회사들은 ‘세계화’라는 화두를 흘려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준비해야 거대 다국적 바이오 기업들 속에서 토종 바이오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와 재미한인바이오과학자협회(KASBP)는 지난달 18일 미국 보스턴에 있는 법률사무소 에드워드 와일드만(Edwards Wildman) 세미나실에서 ‘한미 FTA와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를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재미한인 바이오 전문가를 포함해 법률과 경제, 정책 전문가도 참여해 한국 바이오의 세계화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를 통해 참석자들은 ‘해외 한인 네트워크 강화’와 ‘아이디어와 벤처 중심의 연구개발’, ‘패러다임 전환 위한 정부 지원’을 강조했다. 또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을 위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좌담회를 개최한 KASBP는 미국 바이오텍(바이오 전문기업)에 종사하는 한인 전문가 단체로, 2001년 설립돼 현재 5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좌담회에는 현병환 센터장, 성무제 박사(KASBP 회장), 정영춘 박사(KASBP 차기 회장), 이원복 박사(미국 로스쿨·의사), 이유택 보스톤대 교수, 한성구 KISTEP 박사, 고종성 박사(KABIC 회장), 이동호 (재)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장, 남성한 박사(씽크이쿼티·벤처투자회사), 김공식 변호사(에드워드 와일드만) 등 10명이 참석했다.

●한민족 네트워크, 바이오 발전의 중요 축

왼쪽부터 이원복 박사, 고종성 박사, 남성한 박사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 윌리엄 커(William R. Kerr) 교수에 따르면 해외서 활동하는 자국 과학기술자가 많을수록 한 나라의 과학기술과 경제가 발전한다. 세계화가 진행돼도 유용한 정보는 여전히 같은 민족 사이로 흐르고, 해외에 동족 과학자가 많을수록 미국 특허 출원도 많다는 것.

이런 차원에서 우리나라도 해외에 있는 박사학위자 등 고급 인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한인 연구자가 미국에 머물면서 한국과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정책이나 시설을 마련하는 등 해외 한인과학자를 활용할 전략을 짜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원복 박사=중국은 1980~90년대에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 머문 인재가 90% 정도에 달했다. 생명공학 분야뿐 아니라 공학과 기술 전 분야에서 배출된 인재는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중국에 선진문물을 전했고, 과학기술 발전 등에 큰 도움을 줬다. 반면 미국에 머무는 한인 박사학위자는 이제 40% 정도다. 다행스러운 건 박사학위자 체류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 있는 인재를 국내로 불러들이기 위한 ‘잠재적인 풀(pool)’로만 생각하지 말고, 더 넓은 시각에서 한민족 네트워크를 강화했으면 좋겠다.

▽고종성 박사=미국 대기업에 있던 사람이 한국에 가면 문화를 못 견디는 경향이 있다. 그들을 무조건 한국으로 불러들이기보다 미국에서 가족과 살면서 한국 기업이나 연구소를 위해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를 운영하면 좋을 것 같다. 미국 네트워크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을 것이다. 보스톤에 머무는 한인 박사후연구원이 500여 명인데, 정부가 이를 활용하면 엄청난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곳의 인재와 벤처기업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 기업이 이곳을 초기 시작점으로 삼고, R&D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남성한 박사=세계 바이오산업의 지도를 그려 ‘어디에 기회가 있는지’를 살피는 데도 미국에 있는 한국 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다. 한국처럼 문화가 강한 나라는 들어가서 협력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미국에 ‘위성기지’를 세우는 게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

▽이동호 단장=미국에 있는 전문가(Specialist)를 국내 기업과 연결시키고, 가치 있는 분야를 찾는 등 투자를 해야 3년 후 한국 바이오도 세계 시장에서 팔린다. 그런 파트너십(partnership)을 찾기 위해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은 네트워킹에도 신경 쓰고 있다.

●우물안 개구리 벗어나라…세계 기준에 맞춰야

왼쪽부터 이유택 교수, 성무제 박사, 김공식 변호사

한국 바이오의 세계화를 위해서 보스톤 등 미국 시장을 포함해 해외 시장에 직접 진출해 부딪쳐보라는 충고도 나왔다.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세계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보스톤 지역에서 바이오산업이 발달한 배경을 소개하고, 이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성무제 박사=한국에서 매출 1조원인 동아제약이 미국 시장에서는 중간 크기다. 그만큼 국내 제약 시장은 영세한 규모다. 결국 눈을 세계로 돌리고 뻗어나가야 한다.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는 4년 전 동아제약과 같은 규모였지만 현재 3조원 정도로 성장했다. 전 세계를 보면서 인수합병(M&A)를 하고 몸집을 키운 결과다 우리 기업도 성장하려면 해외, 특히 보스톤처럼 모든 산업이 다 있는 지역으로 진출해서 함께 경쟁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은 밖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면서 회사가 크길 원하는 것 같다. 수영을 잘 하려면 물에 들어가야 한다.

▽김공식 변호사=해외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의 특징은 한 마디로 ‘곰팡이가 피어 있는 집’이다. 좋은 기술로 특허를 받았지만 번역을 엉망으로 해 부실 특허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세계 기준에 맞추려면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부분이다. 소송에 들어간 이후 고치는 건 전체적인 낭비다. 또 미국에 진출하고 싶은 기업인들을 만나도 보스톤이 아닌 다른 지역부터 진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버드나 MIT의 텃세’를 핑계로 대는데, 그런 것을 핑계로 호랑이굴에 직접 들어가지 않으면 빨리 성장할 수 없다. 보스톤에는 충분히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한국인 네트워크가 많다.

▽이유택 교수=바이오 산업이 성장하려면 우선 정부와 벤처자본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가 초기에 공공성을 기준으로 작은 회사를 키운다면 다음에는 돈이 들어와야 한다. 그러려면 바이오만 모여서는 안 된다. 보스톤은 의대와 병원, 제약회사가 있을 뿐 아니라 IT산업과 방위산업 등이 다양하게 모여 있다. 이 때문에 자본가들이 들어와서 여러 기회를 보면서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다양한 기회가 있는 생태계가 중요하다. 전문화된 생태계도 중요하지만 초기에는 열린 생태계가 돼 다양한 기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다.

▽한성구 박사=보스톤 지역에서 바이오산업이 활성화되는 또 다른 이유는 융합에 있다. 하버드대를 보면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생명공학 기반의 융합연구가 많고, 운영도 잘 되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이나 생명공학 인프라의 성장을 위해서 바이오 기반 융합 제도를 도입하면 우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성한 박사=앞으로 한국은 중국이나 동남아가 아니라 미국 시장을 주시해야 한다. FTA 이후 미국에서 경쟁하려면 FDA 승인이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 그것이 되면 엄청난 도약이 시작될 것이다. 삼성과 현대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 시장도 우리가 가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바이오 산업 성공, 아이디어와 기초연구에 달렸다

왼쪽부터 한성구 박사, 이동호 단장, 정영춘 박사, 현병환 센터장

바이오 전략도 과거와 다른 눈으로 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과거에는 거대 제약사가 대량으로 투자해 약을 생산하고 시장에 넘기는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수요자 중심의 공급’으로 가고 있다. 이유택 교수는 “생명공학산업에서도 R&D나 제조 부분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개발부터 시장에 나갈 때까지 전체적인 공급망을 살펴야 한다”며 “ 각 단계별로 일부만 골라서 집중하는 제약사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종성 박사는 “최근 화이자 같은 대기업도 R&D 대신 임상시험이나 제조, 마케팅만 하고, R&D는 잘하는 벤처 기업과 손잡으려 한다”며 “결국 신약 개발도 규모보다 아이디어의 경쟁으로 가고 있고, 우리나라 바이오벤처가 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무제 박사=한국은 이미 성공한 사례(특허 만료된 의약품)를 보고 뒤따라 하는 걸 잘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하버드의대 교수 등이 연구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벤처기업을 차리려는 준비가 한창이다. 한국은 기초과학 연구도 잘 돼 있으니 이미 알려진 방법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더 유리하다. 그게 실패할 확률이 많지만, 크게 성공할 확률은 더 높다.

▽고종성 박사=생명연이나 화학연, KIST 같은 기관에서 기초과학연구를 하고, 각자 역할을 분담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신약 개발도 만날 선배를 답습할 게 아니라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칼국수는 칼국수 잘 하는 집에 가서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모든 분야는 할 수 없고, 미래지향적 분야 혹은 아시아에 집중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정영춘 박사=제약 분야에서는 성공하려면 ‘최초냐 최고냐’ 둘 중 하나가 확실히 돼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최초’에 집중하려면 차별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곳에 있으면 중국 사례에 집중하게 되는데, ‘우시팜’이라는 회사가 인상적이었다. 임상, 의학, 생명공학 쪽 전문가들이 상하이에 모이더니 전문적인 연구중심 기업(CRO)를 차렸다. 그리고 그 기업이 크게 성장했다.

●정부, 바이오 분야 전체 보는 제널리스트 육성해야

재미 한인과학자 전문가 좌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단체 사진. 왼쪽부터 한성구 박사, 남성한 박사, 성무제 박사, 김공식 변호사, 이동호 단장, 고종성 박사, 정영춘 박사, 이유택 교수, 이원복 박사, 현병환 센터장

한국 바이오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아울러 엮을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동호 단장은 “사실 한국에는 넓은 분야를 모두 볼 수 있는 전문가가 드물다”며 “각 분야 전문가들을 서로 도움 되게 엮는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택 교수=세계적인 공급망에서 볼 때 ‘바이오를 이해하면서 각자 전문 분야가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있어야 한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말처럼 각자의 R&D나 제품이 구슬이 될 수 있도록 꿰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전문가들은 평생 연구만 한 과학자보다 다른 분야에서 나올 수 있다. 이런 제너럴리스트을 양성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좋겠다.

▽정영춘 박사=우리나라는 바이오에 충분히 투자하고 있고 신약을 개발할 여력도 있다. 그런데 경험이 적어서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미국 등 세계 시장을 바라보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서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아야할 것이다. 생명공학정책센터처럼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이 무척 중요하다.

▽현병환 센터장=생명연만 해도 SCI 논문이 30편고, 특허가 250개씩 나오는 상황이 됐다. 과거에 비해 고무적인 발전이다. 정부의 투자가 외적 확대, 인력 양성, 특허?논문 숫자에서 양적인 성장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우리 바이오는 ‘양에서 질로 가는 단계’를 거치고 있다. 이런 내공이 쌓여 기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롭게 생겨야 할 전임상과 임상 분야에서 전문가를 키우고, 변호사·변리사도 있어야 한다. 정보 네트워크를 위한 인문사회과학자들도 대거 BT 쪽에 들어와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5~6년 정도 더 지나면 BT도 기간산업으로서 첫 발을 디딜 것으로 기대된다.

※ 이 좌담회 시리즈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와의 공동기획에 의해 취재, 보도되고 있습니다.

박태진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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