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상에 단 하나뿐인 룸메이트를 소개합니다

2016.01.23 11:06


[동아일보]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톰 미첼 지음·박여진 옮김/352쪽·1만5000원/21세기북스
아르헨티나에 살던 영국인 저자, 우연히 죽을 뻔한 펭귄 구해주고
집에 데려와 함께 생활하게 돼
우울한 사회 살던 남미 사람들과 펭귄 ‘후안’의 특별한 우정 그려

펭귄 한 마리를 살리려고 국경을 넘어 세관 직원과 맞닥뜨리는 위험을 감수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저 지독한 동물 애호가가 쓴 ‘달려라 래시’류의 뻔한 에세이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1970년대 초반 남미의 우울한 사회상과 광활한 남미대륙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적절히 녹아든 수작이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영국인 저자는 모험심 풍부했던 20대 초반을 회상한다. 넓은 세상이 궁금했던 젊은이는 아르헨티나 기숙학교의 교사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우체국으로 달려간다. 한때 전 세계를 주름잡던 영국인의 기질은 역시 남다른가. 영국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와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스리랑카, 짐바브웨 등에서 살았던 그의 가족내력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23세 청년은 우루과이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바다에 유출된 기름에 뒤덮여 폐사한 펭귄 무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녀석을 발견한 저자는 숙소로 데려와 기름때를 벗겨준다. 이후 국경을 넘어 일터인 아르헨티나 기숙학교로 펭귄을 데려오기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뺨칠 정도의 온갖 고난이 청년을 기다리고 있다. 펭귄을 씻기다 심하게 물려 깊은 상처를 입는 건 기본이고, 몇 시간을 타야 하는 버스에서 감춰놓은 펭귄이 실례를 하는 바람에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살아 있는 동물을 몰래 데리고 들어오는 건 중범죄”라고 윽박지르는 아르헨티나 세관원에게 붙들려 곤욕도 치른다.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경험이었다. ‘후안 살바도’라고 명명된 이 펭귄이 그와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값진 추억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기숙사의 동료 교사와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들, 그리고 학생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고 반기는 후안에게 푹 빠져든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후안에게 줄 청어를 시장에서 사오고 함께 놀아주는 수고를 자청한다. 후안은 청어를 받아먹고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깊은 위로를 받는다. 세탁실 근무자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낮은 임금으로 고통받는 자신들의 얘기를 후안에게 털어놓는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1970년대 초반 군부 독재정권이 붕괴된 직후의 혼란스러운 아르헨티나 상황을 보여준다. 테러와 무질서로 점철된 아르헨티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표를 바꿀 정도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현물에 비해 현금 가치를 형편없이 떨어뜨리는 인플레이션의 특성상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심해졌다. 월급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야 하는 기숙학교 직원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당시 교사들은 월급을 받자마자 시장으로 달려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들였다. 현금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하나라도 물건을 더 사서 지인들끼리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서였다.

고향 영국으로 돌아갔던 저자가 40년 만에 아르헨티나를 다시 찾아가 해양 동물원 ‘문도 마리노’에서 들은 펭귄의 생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사육사는 “펭귄은 무리 동물이기 때문에 한 마리만 방사하면 결국 살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후안을 구한 뒤 다른 해변에 놓아주려고 했지만 후안은 끝까지 자신을 따라왔다. 그때 후안의 행동이 저자에겐 오랜 세월 의문이었지만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마침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제자리에 딱 맞게 자리를 잡은 기분이었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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