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신영] ‘오래된 미래’를 쓰는 SF와 과학 잡지

2016.01.19 13:25

[동아일보]

 

 

SF 팬에게는 여러 즐거움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과거의 작품 속에 묘사된 ‘오래된 미래’를 현실에서 맞는 즐거움일 것이다. 상당수 SF가 미래를 소재로 삼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때, 소설이나 영화에서 상상한 시대가 지금과 얼마나 비슷한지, 그러니까 작가가 영감을 통해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예언자의 역할을 했는지 여부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기대가 비과학적인지도 모른다. 팬들은 그저 기린다. 마치 ‘율리시스’의 팬들이 매년 6월 16일을 주인공의 이름을 따 블룸스데이라고 이름 붙이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줄 타며 즐거워하는 것처럼.

이달 8일은 리들리 스콧의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주인공이 뒤쫓는 인조인간(원작 소설에선 안드로이드)들의 우두머리, 로이 배티의 생일이었다. 이 인물은 인간이 아니므로 태어났다는 표현이 작품에 나오지 않고, 이날 활동을 시작했다는 표현만 화면에 잠깐 지나갈 뿐인데도 팬들은 놓치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들 중 아무도, 2016년 현재 인조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비난하지 않는다.

지난해는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1989년도 영화 ‘백투더퓨처 2’의 주인공들이 시간여행을 통해 방문한 해였다. 시간여행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은, “주변에서 영화 속 인물과 비슷한 사람이 보이면 반갑게 맞아 달라”며 농담을 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상심한 팬은 없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배경인 2001년은 인류가 목성 탐사를 떠나고 인공지능 컴퓨터가 선상 반란까지 일으키는 해다. 이 역시 실제와 다르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가치가 떨어지던가.

과학 기술이 상상보다 느리게 발전한다는 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종종 있다. 과학 잡지에서 일하다 보니 자주 질문을 듣는다. “21세기에는 달나라로 소풍 가고 화성으로 이사 간다고 어려서부터 읽었다. 그런데 현실 속 과학은 왜 이렇게 발전이 느린가?”

사실, SF 작가들의 예측에 미치지 못할 뿐 과학과 기술은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런 점은 당대의 과학 기술을 꼼꼼히 추적해 기록해 온 매체인 과학 잡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말에 창간 170주년을 맞은 미국의 과학 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는 각 호마다 독특한 기사가 실린다. ‘50년 전, 100년 전, 150년 전’이라는 제목으로, 실제로 과거에 실었던 기사의 내용을 한 토막씩 소개한다. 기사를 보면 불과 한 세기 남짓에 세계가 크게 변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남극 탐사를 나갔다가 조난당한 학자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는 내용(지금은 남극에 수많은 과학기지가 세워져 과학자들이 상주하고 있다), 혜성의 궤도를 계산했다는 소식(최근엔 아예 탐사선이 혜성에 가 그 위에 착륙도 한다) 등이, 당대를 흥분시킨 과학으로 소개되고 있다.

과학 잡지는 과학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근대를 기록한 매체다. 근대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의 이면에는 폭발적으로 발전한 과학과 기술이 있다. 주요한 과학 선진국에는 역사가 오래된, 자국어로 된 과학 잡지가 있어 이를 촘촘히 기록하고 보존하고 있다. 미국 외에 프랑스에도 창간 103주년, 영국에도 60주년을 맞는 과학 잡지가 있다. 한국은 좀 느려서 이제야 서른 살이 된 잡지가 나왔다. 여기에 기록된 과거를 통해 오늘날의 과학과 사회를 다시 읽어 본다. 또 다른 의미의 ‘오래된 미래’를 말이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잡장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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