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자로 시작한 삶, 이제는 ‘과학 전도사’가 꿈

2016.01.04 18:00

※ 편집자 주
올해는 국내 정부 과학기술 연구소 설립 50주년입니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서울 홍릉에 처음 문을 연 뒤 현재는 25개 과학기술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간 국내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1월 한달 간 올해 50세가 된 출연연 소속의 1966년생들에게 출연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보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제 전공은 화학입니다. 기초과학을 연구해 인류에 이바지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정보기술(IT)을 공부하면서 제게 더 잘 맞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식 KISTI 대외협력실장 - 전승민 기자 제공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대외협력실장은 “유학 시절 맛본
인도 음식을 잊을 수 없어서 인도 음식점을 주로 찾는다”고 밝혔다. 
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대외협력실장. 그의 이력은 과학자 출신으로는 매우 독특하다.
 
대학에서 기초과학을 공부했지만, 박사후연구원 시절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전산화학자의 길을 걸었고, KISTI에 입사한 뒤로는 슈퍼컴퓨터 운영을 총괄하며 슈퍼컴퓨터 응용실장을 맡았다. 지난해부터는 연구기관의 외부 홍보를 총괄하는 대외협력실장을 맡고 있다.
 
국내 출연연에서 순수 과학자가 대외협력실을 총괄하는 경우는 손에 꼽힌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에서 응용과학을 다루는 학자를 거쳐 지금은 과학 행정 업무까지 두루 진행하고 있는 재주꾼이다.
 
이 실장과 함께 대덕연구단지 내 한 인도 음식점을 찾았다. 이 실장은 “박사학위를 마치고 영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는데, 영국 음식이 워낙 맛이 없다 보니 다양한 외국 식당을 전전했다”며 “그 시절 인도 음식 맛을 알게 돼 자주 먹었고 지금도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인도 음식은 유학 생활의 향수를 자극하는 별식인 셈이다. 눈 앞에 난, 탄두리치킨, 커리 등의 음식을 차려 두고 그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 기초과학자에서 슈퍼컴퓨터 전문가로 
 
“석·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제게 손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실험만 하면 자꾸 실수가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누군가가 컴퓨터를 이용하면 가상현실 속에서 조건만 지정해 주면 실험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거기 혹 해서 전산화학과 컴퓨터모델링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컴퓨터를 공부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컴퓨터의 왕’으로 꼽히는 슈퍼컴퓨터에까지 손을 뻗쳤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이 경력이 계기가 돼 KISTI에도 입사했다.
 
“처음 맡은 일은 화학자들을 돕는 것이었죠. 화학자들이 KISTI에 실험하러 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저는 화학을 전공했고 슈퍼컴퓨터도 운영할 줄 알았으니 제격이었죠.”
 
그러던 중 연구소 내에서는 사람들을 모으고 외부와 협력해 일을 꾸리는 그의 특출난 능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슈퍼컴퓨터 운영 팀 전체를 조율하는 실장 자리에 올랐다.
 
그에게 KISTI에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슈퍼컴퓨터 육성법”이라고 답했다. 슈퍼컴퓨터 육성법은 우리나라도 외국 못지 않은 슈퍼컴퓨터 자원을 확보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한 것으로, 2011년 제정됐다.
 
이 실장은 “법은 국회에서 만들지만 실제 자세한 조사 업무 등은 모두 KISTI에서 도와야 했다”며 “약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치면서 입법부의 과학계 지원 방식도 상세히 알게 되는 등 많은 공부가 됐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 법이 제정되면서 거의 동시에 도입이 완료된 ‘슈퍼컴퓨터 4호기’는 지금도 우리나라의 유일한 고성능 연구용 컴퓨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는 “김광수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팀, 임지순 서울대 교수팀 등 국내 내로라 하는 연구진이 KISTI 슈퍼컴퓨터 4호기를 이용해 연구를 해왔다”며 “덕분에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적 저널에 실린 논문도 많이 나왔고,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 10년 후엔 ‘과학 전도사’가 꿈
 
‘키스티’라는 이름 석자로 삼행시를 지어 달라고 하자 그는 ‘가 해가 지날수록 자라듯이, 스로의 능력과 성과를 더욱 키워서, 나는 연구소가 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대외협력실장답게 기관의 미래에 대해 답한 셈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이 좋아서 과학자 이외의 길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KISTI에 입사한 뒤에는 생각이 바뀌어서 과학의 즐거움, 특히 슈퍼컴퓨터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일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을 두고 KISTI 내에서는 ‘연구소의 간판 같은 인물’이라고 말한다. 슈퍼컴퓨터를 주제로 외부 강연도 자주 나가고, 신문이나 잡지 등에 칼럼도 자주 쓴다. 대중서인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 ‘슈퍼컴퓨터가 만드는 슈퍼대한민국’ 등 5권이나 책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 실장은 앞으로 10년 후 환갑이 됐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질문에 “과학 대중화를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엔 그저 제가 하는 일을 대중이 알기 쉽도록 풀어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대로 된 과학 홍보는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과학을 자주 접해야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청소년 대상의 대중 강연은 최대한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몇 년 간은 매년 20~30회 대중을 찾고 있습니다.”
 
 
정부출연 출범 50주년을 맞아 인터뷰한 이식 KISTI 대외협력실장(50)이 슈퍼컴퓨터 4호기 ‘타키온’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실장은 슈퍼컴퓨터와 현대 과학의 중요성을 대중에 널리 알리는 일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이식 KISTI 대외협력실장이 슈퍼컴퓨터 4호기 ‘타키온’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슈퍼컴퓨터와 현대 과학의 중요성을 대중에 널리 알리는 일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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