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을 만드는 사람

2016.01.02 18:00

지난주 금요일, 크리스마스 날을 두 시간 남긴 밤 10시경, 우리 동네에는 눈이 내렸다. 그러니 간신히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그때부터 기온이 크게 떨어져 눈발은 작고 싸락눈처럼 단단했다. 바람에 날리며 지상에 닿은 눈발들은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귀가하는 행인들처럼 길 위를 바쁘게 굴렀다. 우리 가족도 인적 드문 가로등을 따라 귀가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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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자정 넘어 발코니 창가에 섰다. 어느새 아파트 주차장에 나열된 자동차들이 하나같이 하얗게 도색되어 있었다. 꼭대기 층에 세 들어 사는 우리 집 맞은편 동의 지붕들도 하얀 모자를 쓰고 서 있었고, 여전히 작은 눈발들이 겨울밤 창공을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고요한 도로에는 간혹 노란 불을 켠 자동차가 한 해가 가는 것이 아쉬운 듯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그 너머 서편에는 동네 아파트보다 낮은 동산이 있다. 밤보다 어두운 동산에 눈발은 이제 그만 잠들라는 듯 자꾸만 하얀 꿈 가루를 뿌려주었다.

 

아침잠이 많은 우리 가족이 휴일이면 늘 그렇듯이, 이튿날은 늦은 아침에 기상했다. 다시 발코니 창가에 섰다. 날씨는 차가웠지만 생각보다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다. 눈은 그치고 회색빛 하늘이 우리 동네를 품고 있었다. 길 건너편 중학교 운동장에 부지런한 한 젊은 가족이 나와 눈을 굴리고 있었다. 아빠, 엄마, 꼬마 둘이 농구공만한 여러 개의 눈을 굴려 운동장에 큰 그림을 그려놓았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굴려놓은 눈덩이가 구르며 땅바닥을 드러난 모양이 마치 언덕 위에 상체만 드러낸 곰의 형상 같았다. 무엇인가 닮아 보이는 맑은 하늘의 구름 모양이 그렇듯이 인위적으로 그려놓은 모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위편에서 눈을 굴리고 있는, 아빠로 보이는 사내는 눈을 굴리며 일부러 한반도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운동장 공간이 작아 남한의 위치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어지럽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38선 위쪽으로는 분명한 한반도의 모습이었다.

 

미술을 하는 분이었을까? 조감도의 거리 감각을 가지지 않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큰 그림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이기에도 굴린 눈덩이에는 모래가 가득 묻어 있었다. 그러니 멋진 눈사람이 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였는지, 가족이 떠난 운동장에는 굴린 눈덩이 세 개만 각각 외떨어져 있을 뿐 눈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눈이 좀 더 내렸으면, 그래서 눈덩이도 크고 하얬다면 그 가족은 멋진 눈사람을 세워놓았을 것이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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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겨울, 초저녁부터 쏟아져 내린 함박눈이 우리 아파트 단지를 새하얗게 덮어놓은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무장을 하고 내려가 함박눈을 맞으며 눈을 굴렸다.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이 한 조가 되어 두 시간을 굴렸다. 더 이상 굴릴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눈덩이를 네 명의 가족도 힘이 부쳐 행인의 도움으로 상체를 얹어 제법 큰 눈사람 두 개를 만들었다. 건장한 어른만큼 큰 눈사람이었다. 눈사람 앞에서 우리 가족은 가마솥에서 뿜어 나오는 듯한 입김을 풀풀 날리며 사진을 찍었고, 지나가는 이웃들도 그 쌍둥이 눈사람을 포토 존 삼아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었다.

 

눈사람을 만드는 일은, 따지고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며칠 후면 녹아버리거나 한밤의 누군가의 이단옆차기로 쉬 망가져버리기도 하는 눈사람을 왜 어떤 사람들은 여러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만드는 것일까? 아이의 아빠는 그림을 그릴 데가 없어서 운동장의 눈을 굴려 곧 지워질 한반도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눈사람을 만들거나 운동장에서 눈을 굴리는 것이 딱히 예술 행위는 아니겠지만, 문학이든 미술이든 모든 예술적 행위는 ‘없음’에서 ‘있음’을 자유롭게 꿈꾸는 일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찾는, 자기 세계에 몰두하는 일일 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으로 무용한 그 일에 몰입한 사람은 결과를 염려하지 않는다, 이웃에게 사진 속의 웃음을 주든 이단옆차기를 하게 하든.

 

 

※ 저자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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