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 같은 집념으로 아들을 왕으로 만든 여인

2013년 06월 04일 17:59

 

금천교에서 본 정자각과 비각 - 이종호 박사 제공
금천교에서 본 정자각과 비각 - 이종호 박사 제공

문정왕후는 학자들이 중국 당나라의 측천무후, 청나라의 서태후와 비교할 정도로 우리나라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으로 억척같은 집념으로 그 아들을 기어코 왕으로 만든 여인이다.

 

그러나 명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8년 동안 국정을 지휘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여 역사는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정왕후의 가장 큰 피해자로 그의 아들인 명종을 손꼽는다.

 

명종이 된 아들에게 “너는 내가 아니면 어떻게 이 자리를 소유할 수 있었겠느냐?”며 호통을 치고 왕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회초리까지 들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종을 눈물로 왕위를 지킨 왕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문정왕후의 일생을 보면 그녀의 정치적인 월권은 적어도 국왕의 권위를 누르거나 자신의 정치적 욕심만을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렴청정을 끝내며 문정왕후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원문은 매우 길지만 핵심 내용만 적는다.

 

“나는 본래 불민(不敏)한 사람이다. 일찍이 서책(書冊)을 보니, 부인으로서 국정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였다. 우리나라가 불행하게도 두 대왕이 연이어 사망하였으므로, 주상이 어린 나이에 보위를 이어 국정을 맡길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부득이 섭정을 하기는 하였으나, 미안한 마음을 일찍이 하루도 잊지 못하였다.

 

더구나 재변이 계속 이어지고 여러 변고가 함께 발생함이 지금과 같은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나의 부덕한 소치 때문이 아닌가 하여 주야로 근심하고 염려하였으며 2∼3년 이래로는 항상 성상께 귀정(歸政)하고자 하였으나, 아직 주상의 학문이 성취되지 못하여 모든 기무를 홀로 결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굳이 사양하는 까닭에 머뭇거리다가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주상의 춘추가 장성하고 학문이 고명하여져서 군국(軍國)의 여러 정사를 재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귀정하고 다시는 정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니, 대신들은 국사에 마음을 다하고 성상을 잘 보도(輔導)하여 태평스런 정치에 이르도록 힘쓴다면 매우 다행하겠다.

 

부덕한 나로서는 비록 폐습을 바로잡아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려 하였으나, 잘못되는 일이 많아 끝내 그 효과를 보지 못했으니, 인심에 반드시 맞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생각하여 보건대, 재변이 일어나는 것은 실로 부덕한 나 때문이니 지금 귀정하는 것도 너무 늦은 것이다.”

 

명종은 친정하기에 아직 이르다고 한사코 거절했으나 문정왕후가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친정에 임한다.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명종은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고 나라를 평온하게 하기 위해 지금의 터에 어머니 문정왕후를 모셨다 한다.

 

당시 지관이며 예언가였던 남사고(南師古)가 ‘동쪽에 태산을 봉한 뒤에야 나라가 안정될 것이다’라고 한 예언에 따라 명종은 어머니를 태릉에 모시고 자신도 태릉 옆인 강릉에 안장됐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능침 - 이종호 박사 제공
정자각에서 바라본 능침 - 이종호 박사 제공

그러나 문정왕후는 자신이 죽으면 남편인 중종 옆에 묻히고 싶어 원래 장경왕후의 희릉(고양시 서삼릉 내) 우측에 있던 중종의 능을 정릉(현재의 강남구 삼성동) 터로 옮겨 놓고, 자신도 그 옆에 묻힐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정릉 주위의 지대가 낮아 장마철에 물이 들어 자주 침수되자, 명종이 장마철에 물이 들어온다는 명분을 대고 남사고 등이 국가안정론을 근거로 이곳 태릉에 안장해 결국 그녀의 뜻은 무산된다. 이 내용은 중종의 정릉을 설명할 때 보다 자세하게 설명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王을 만나다·24]태릉 (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이창환, 경인일보, 2010.03.11
   「조선 왕실의 측천무후 50여 년간 국정 쥐락펴락」, 이창환, 주간동아, 2010.08.02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dongascience.com)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4부를 연재합니다.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세계문화유산 속에 숨어 있는 과학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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