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호령하던 그때처럼… ‘大虎’ 복원 프로젝트

2015.12.20 18:00

하얀 눈으로 덮인 고요한 지리산 자락.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짐승의 거친 ‘그르렁’ 소리가 숲의 적막을 깨뜨린다. 거대한 몸집의 호랑이가 이내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에 흩날리는 황금색 털에 빛나는 노란 눈이 ‘지리산 산군’다운 위엄을 자랑한다. 16일 개봉한 영화 ‘대호’의 한 장면이다. 100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호랑이의 모습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복원돼 눈앞에 생생히 나타났다.
 

2015년 12월 16일 개봉하는 영화 ‘대호’ 조선에 마지막 남은 호랑이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 뉴 제공 제공
2015년 12월 16일 개봉한 영화 ‘대호’ 조선에 마지막 남은 호랑이의 이야기를 다뤘다.  - 뉴 제공

영화 ‘대호’처럼 약 100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호랑이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당시 조선 땅을 주름잡던 호랑이를 박제한 표본이 현재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同志社) 고등학교에 있다.

 

●100년 전 호랑이와 마주하다
 

“100년 전 호랑이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에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죠.”
 

1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항 수의대 교수는 당시를 본인의 연구 인생에서 가장 벅찼던 순간으로 꼽았다. 이 교수가 지난 10년간 한국호랑이를 연구해 온 이유는 간단했다. 국토가 호랑이를 닮았다고 말하며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를 호랑이로 내세우는 ‘호랑이 민족’이라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호랑이가 산 적도 없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호랑이 연구가 아주 활발하다”며 “이들에게 호랑이는 멸종위기 동물의 아이콘”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100년 전 호랑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일본 땅에서 한국호랑이의 표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山本唯三郞)의 책 ‘정호기(征虎記)’를 연구하면서다.

 

야마모토는 일제의 경제 성장과 함께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으로 당시 거액을 들여 조선의 ‘호랑이 사냥’을 기획했다. 그는 조선인 명포수들을 영입해 호랑이 사냥 팀 ‘정호군(征虎軍)’을 꾸려 금강산과 전라도 일대에서 호랑이를 잡으러 다녔는데 당시의 이야기를 책에 자세히 담아냈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1917년 야마모토가 실제 한국호랑이를 사냥하는 데 성공해 조선호텔과 일본 데이코쿠(帝國) 호텔에서 고관들을 초청해 호랑이 고기를 시식했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고기를 먹고 남은 호랑이 뼈와 가죽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이 여기에 닿자 이 교수는 호랑이가 남긴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야마모토가 이 호랑이를 박제해 모교인 도시샤 고등학교에 기증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교토에 있는 공동연구진에게 확인을 부탁했고 그에게서 ‘아직 학교에 호랑이 박제가 남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날 이 교수는 도시샤 고등학교로 가 호랑이 표본을 직접 확인했고 몇 달 뒤에는 전문 사진사를 데려가 호랑이 표본을 사진으로 남기고 표본의 정확한 크기 등을 계측하고 돌아왔다. 1917년 사진에 남은 호랑이 가죽의 무늬와 도시샤 고등학교 호랑이 표본의 무늬를 비교하자 정확히 일치했다. 

 

1917년 11월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잡은 뒤 찍은 사진. - 에이도스 제공
1917년 11월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잡은 뒤 찍은 사진. - 에이도스 제공

최근 이 교수팀은 한국호랑이 두 마리가 남긴 가죽을 추가로 찾아냈다. 이번에는 지구 반대편 미국 땅에서였다. 미국인 의사 윌리엄 스미스가 1902, 1903년경 전남 목포 인근에서 잡은 뒤 모교인 하버드대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까지 하버드대 동물학박물관(Museum of Comparative Zoology)에 보관돼 있다. 연구팀은 야생 호랑이의 수명이 15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가죽의 주인이 ‘대호’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에 있는 한국호랑이 가죽을 발견한 뒤 한국 연구진이 연구할 수 있도록 국제협력을 도운 조장혁 변호사는 “그동안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있는 호랑이 박제가 유일한 남한 호랑이 표본으로 알려졌지만 박제가 탈색돼 호랑이의 원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이번에 한국호랑이 가죽 표본 발견은 중요한 학술적 자료를 확인하고 촬영과 계측까지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한국호랑이의 몰락은 조선부터  
 

한반도에 살던 호랑이의 자취를 연구해 온 김동진 박사(한국생태환경사학회장)는 “20세기 초에는 서구 열강의 자본가들이 인도와 아프리카 등을 돌며 야생동물을 수렵했다”며 “이들 중에는 호랑이를 잡으러 한반도까지 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에 호랑이 가죽을 기증한 스미스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 외에도 영국의 포드 바클리 일행은 1903년 전라도를 찾아 해남과 진도 일원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미국인인 커밋 루스벨트 일행은 1922년 함경도에서 호랑이를 잡았다고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한국의 호랑이와 늑대 등 맹수를 무분별하게 잡아들이는 ‘해수구제정책’을 폈다. 호랑이 사냥을 위해 조직한 포수가 항일의병이 되는 것을 걱정해 일제가 무기 소지를 불법화했는데 이 때문에 맹수로 인한 피해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사실 호랑이의 수는 이미 조선 전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경작지를 개간함에 따라 호랑이가 번식할 수 있는 장소와 먹잇감을 잃은 것이 한반도에서 호랑이 수가 줄어든 가장 주요한 원인입니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물가 범람원 지대는 야생동물이 사는 땅이었다. 호랑이 역시 먹이인 야생동물이 풍부한 이곳에 살았다. 하지만 15세기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수리시설을 짓고 논(수전)을 마련했다. 물가를 빼앗긴 호랑이는 산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구가 늘어나며 더 많은 농경지가 필요하자 사람들은 산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산골짜기와 중턱에 불을 질러 농지를 마련하는 ‘화전’을 만들었다. 수전 때문에 숲으로 떠밀려 간 호랑이가 산속에서도 오갈 곳이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비슷한 시기에 만주에서 ‘우역 바이러스’가 들어와 창궐했다. 소를 비롯해 사슴, 멧돼지 등 우제류가 모두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특히 호랑이의 주 먹이인 사슴이 이 바이러스로 한반도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배가 고픈 호랑이는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왔다. 김 박사는 “17세기에서 18세기 기록에는 ‘호랑이가 횡행한다’, ‘호랑이가 미친 듯 뛰어다닌다’는 기록이 많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전쟁 뒤에 생긴 휴전선은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만주에서 사는 한국호랑이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그 길이 인위적으로 단절되며 더 이상 내려올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호랑이 한반도에서 포효하는 날 올까
 

“비록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졌지만 한국호랑이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항 교수가 희망적인 소식을 건넸다. 이 교수는 “종이 사라진 것은 ‘멸종’이라고 하고 특정 지역에서 특정 종이 사라진 경우를 ‘멸절’이라고 하는데 한국호랑이는 ‘멸절’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2006년 이 교수는 ‘한국호랑이’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이 교수는 일본과 유럽, 미국의 연구자들에게 한국에서 온 호랑이 뼈나 두개골, 가죽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곧 가장 가까운 일본의 도쿄(東京)과학박물관에서 연락이 왔다. 박물관에 한국호랑이의 두개골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멸종위기종의 뼈를 국외로 반출하는 것이 금지돼 있어 이 교수팀은 드릴로 두개골에 붙어 있는 이를 뚫어 뼛가루를 조금 얻어오는 데 그쳐야 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도 소식이 있었다. 마침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연수를 간 학생이 있는 터라 학생을 통해 이곳에서 뼛조각을 가져 왔다.
 

두 표본에서 얻은 뼈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DNA)를 얻었다.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민족이나 종을 구분하고 혈통을 추적할 때 많이 사용된다. 미국과 일본에서 가져온 유전자와 현존하는 6종의 호랑이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한국호랑이의 유전자 염기서열은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의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 교수는 “지금 러시아와 연해주, 중국, 북한 접경지역에 살아남은 400~500마리의 아무르호랑이가 바로 한국호랑이”라며 “아무르호랑이를 잘 보존하는 것이 결국 한국호랑이를 지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지난해에는 한반도에 한국호랑이 복원이 가능한지를 조사하는 기초연구를 마쳤다. 먹이사슬에서 상위 포식자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는 세계 각국에서 꾸준히 진행돼 왔다. 멸종위기에 처한 특정 종을 복원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상위 포식자가 생태계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토종여우 복원을 시도한 이유도 생태계를 되살리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회색늑대를 복원한 뒤 까치와 곰 등 다른 동물의 개체 수도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과포화 상태인 사슴을 회색늑대가 먹어치우기 시작하면서 사슴의 먹이가 됐던 식물과 나무 열매가 많이 열렸고, 이에 따라 까치와 곰의 먹이도 증가하면서 이들의 개체 수가 늘어난 것이다.
 

유럽은 1920년대부터 갈색곰과 회색늑대 등 상위 포식자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이 복원 프로젝트가 성공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실렸다. 노르웨이 핀란드 등 유럽 일대에는 갈색곰이 1만7000마리까지 늘었고 회색늑대 1만2000마리, 스라소니 9000마리, 울버린 1250마리 등 상위 포식자가 안정적으로 서식하는 환경이 정착됐다. 특히 이들은 처음 복원된 보호구역을 벗어나 차츰 인간 거주지까지 서식지를 넓혀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시베리아호랑이의 모습.  - 동아일보DB 제공
아무르호랑이의 모습.  - 동아일보DB 제공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이 교수가 내린 결론은 “남한에 호랑이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백두산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이다. 한국호랑이의 경우 수컷은 약 1000㎢, 암컷은 약 400㎢로 행동반경이 넓어 인간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높은 남한에는 현실적으로 도입할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낮은 백두산 지역에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교수는 북한과 가까운 중국 백두산 지역에 한국호랑이 복원이 가능한지를 조사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실제 백두산 지역이 호랑이의 생존에 가능한 서식지인지 알아보기 위해 올해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이 지역에 이영 연구원을 파견했다.
 

중국 현지에서 이 연구원은 e메일을 통해 “호랑이의 먹이가 될 수 있는 대륙사슴과 멧돼지, 노루 등이 눈 표면에 남긴 흔적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동물의 밀도조사를 진행할 것이며 백두산 지역 주민의 야생동물보호 인식도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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