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필름 카메라로 찍어 사진관에서 사진 현상하던 시절

2015.12.18 19:30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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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은 추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추억의 대명사는 바로 사진, 오래 되어 빛바랜 사진입니다.

 

지금도 추억은 사진으로 남습니다. 아, 동영상으로도 남겠네요. 어쨌든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데 드는 값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떨어졌습니다.

 

1988년 그 시절 카메라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고도의 광학 기술이 적용되는 첨단 메커닉 제품이었습니다. 독일 일본 정도만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카메라에 들어가는 필름 역시 높은 수준의 화학 기술이 필요했고, 일본 독일 미국의 소수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과점했습니다. 코닥 후지 아그파 같은 회사들이었죠.


● 빛바랜 필름 카메라의 추억

 

렌즈에 손때라도 묻을까 애지중지 모시고 다녔습니다. 필름은 계속 새 걸로 갈아끼워야 했고, 필름 한장으로 24장, 많아야 36장밖에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장 한장 찍을 때마다 신경 쓰고 만반의 준비를 해서 찍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앨범에 넣어 고이 보관했습니다.

 

수학 여행 가는 덕선이에게 카메라를 맡기며 “집안 가보”라며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부모님의 말씀은 그냥 잔소리가 아니었을 겁니다. 당시 카메라는 덕선이 집 형편에는 굉장히 귀중한 물건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덕선은 친구들과 신나게 이야기하다 그만 기차 안에 카메라를 두고 내리고 맙니다. 덕선이는 엄마 아빠에게 크게 혼날 까봐 엉엉 울고, 부모님은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못내 아쉬워 합니다. 그러다 결국 집에 돌아온 후 덕선이는 효자손으로 두드려 맞습니다.

 

화면을 보니 덕선이가 잃어버린 카메라는 미놀타의 제품이었습니다. 잠깐 모습이 스쳐가는데 미놀타 X300 시리즈 제품이라고 추정하시는 매의 눈 시청자들이 계시더군요. 1980년대 초반에 출시된 일안반사식 제품이고, 몇가지 전문 기능을 빼 가격대를 낮춘 제품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보급’ 물건인 건 사실이었습니다.

 

1988년 그때는 디지털 카메라는 상상도 못 하던 시절입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수천장의 사진을 찍고 지우고 하는 건 더더욱 생각 못할 일이었고요. 사진술의 원리 자체는 수백년 전부터 알려졌고 1800년대 초에는 이미 오늘날과 비슷한 원리의 사진 연구가 시작됩니다.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해 나가던 카메라 산업은 1940~1950년대에 이르러 독일 일본 미국 기업들이 카메라 바디와 렌즈, 필름 등을 분점 생산하는 방식으로 시장 분업이 완성됩니다.

 

코닥이 19세기 말부터 플라스틱 필름을 만들기 시작했고, 미놀타가 1925년 처음으로 35mm 필름을 사용한 소형 카메라를 내놓습니다. 렌즈에 비친 모습을 그대로 뷰 파인더에서 볼 수 있는 일안반사식 카메라도 수십년 간 개량을 거쳐 1940년대 말 펜탁스가 펜타프리즘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이며 완성 단계에 이릅니다.

 

1925년 라이카가 출시한 최초의 35mm 필름 카메라 - 위키피디아 제공
1925년 라이카가 출시한 최초의 35mm 필름 카메라 - 위키피디아 제공

1988년이라면 이렇게 정착된 카메라 시장의 큰 틀이 수십년째 유지되던 때입니다. 디지털 이미징 혁명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하던 때이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당시 아직 경제 수준이 낮고 카메라 관련 기술력을 가진 회사도 없던 시기라 카메라는 더 접근하기 어렵던 시절입니다.  

 

● 디지털 카메라 시대의 개막

 

하지만 이때 이미 디지털 카메라의 혁신은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반도체에 화상을 저장한다는 디지털 카메라 개념은 이미 1970년대에 현실화됐습니다. 코닥의 신참 엔지니어였던 새뮤얼 새슨이 1975년 전하결합소자(CCD)에 이미지를 저장하는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와 필름 시장을 지배하던 코닥은 주력 사업을 갉아먹을 이 새 기술의 상용화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디지털 카메라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2000년 이후 코닥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 파산 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릅니다. 미국의 상징 기업 중 하나가 몰락한 것입니다.

 

최초의 상용 디지털 카메라는 1981년 소니가 내놓은 ‘마비카’입니다. 다만 오늘날의 디지털 카메라와는 작동 방식이 달랐습니다. 정지 화면을 찍는 비디오 카메라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합니다. 비디오 카메라의 정지 영상을 아날로그 신호로 저장하는데, 저장 매체가 무려 플로피 디스크입니다. 10만픽셀 정도의 해상도를 구현했고 뷰 파인더 없이 텔레비전에 연결해 화상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최초의 상용 디지털 카메라이긴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 했습니다.

 

1981년 출시된 최초의 상용 디지털 카메라인 소니의 마비카 - 위키피디아 제공
1981년 출시된 최초의 상용 디지털 카메라인 소니의 마비카 - 위키피디아 제공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디지털 카메라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입니다. 덕선이가 카메라를 잃어버리던 1988년 일본 후지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고, 미국에서는 1990년 다이캠이라는 회사가 ‘모델1’이라는 디지털 카메라를 출시했습니다. 모델1은 1MB 용량의 내장 메모리에 TIF 포맷 이미지 파일을 저장할 수 있었고, 특히 PC에 연결해 바로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1990년대에 주로 빠르게 사진을 전송하고 편집해야 하는 신문 사진기자들을 위한 고가의 디지털 카메라들이 간간히 출시되다 2000년 들어 본격적으로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 이른바 ‘똑딱이’의 시대가 열립니다. 1995년 카시오에서 나온 ‘QV-10’이란 제품은 광학식 뷰파인더 없이 LCD 모니터로 피사체를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비록 20만 화소밖에 안 됐지만 크기도 가격도 부담 없고,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똑딱이’의 모습을 대부분 갖추고 있었습니다.

 

카시오 QV-10 - 위키미디어 제공
카시오 QV-10 - 위키미디어 제공

2000년대 들어 200만~300만 화소 제품군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500만, 800만, 1000만으로 화소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캐논, 니콘, 올림푸스, 펜탁스, 후지, 라이카, 코닥, hp, 삼성전자 등등 광학 및 IT 업계 주요 기업들이 마케팅 전쟁을 이어갔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한대씩 앙증맞은 크기의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가격은 수직 낙하 했습니다. 2008년 우리나라 카메라 시장은 연간 판매량 200만대 규모로 2000년에 비해 20배 커졌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비약적 발전에는 반도체 기술도 한몫 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자체가 빛을 받아들여 전류 신호로 바꿔주는 특수한 형태의 반도체가 개발됐기에 가능해진 기술입니다. 처음에는 CCD가 많이 쓰였고, 상보성 금속산화막 반도체(CMOS)도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CCD는 전력 소모가 많지만 화질이 좋아 고급 제품에 주로 쓰였지만, 지금은 CMOS가 지속적 기술 개발로 화질 노이즈 문제를 거의 해결함으로써 점점 시장에서 입지가 커지고 있습니다. 전력 소모도 적고, 기존 반도체 공정을 활용할 수 있어 생산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1994년부터 플래시 디스크 카드가 나온 것도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내장 메모리에 얽매이지 않고 수백 수천장의 사진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낸드 플래시 시장을 주도하며 ‘메모리 집적도는 18개월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을 주창한 삼성전자 황창규 전 사장은 우리가 자유롭게 셀카를 찍을 수 있게 해 준 사람 중 한명이라 하겠습니다.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을까? 디지털 카메라 시장 위축

 

이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양분됩니다.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달리기 시작하고,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폰 사진 품질이 더욱 좋아지면서 똑딱이 시장은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반면 전문가들이나 쓰던 DSLR 카메라 가격이 내려가면서 아마추어 사이에도 DSLR이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컴팩트 카메라 시장이 사라진 자리에 제조사들은 DSLR 제품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채울 수 없는 전문적 사진 촬영의 수요를 공략한 것이죠. 모두가 사진 전문가가 되어 목에 커다란 DSLR 카메라를 걸고 다니는 풍경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다 렌즈 교환 등 DSLR의 장점은 살리면서 들고 다니기 좋게 크기를 줄인 미러리스 제품군이 나오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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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마트폰 때문에 전체 카메라 시장 규모는 크게 줄었습니다.  최근 일본 카메라제작사협회(CIPA)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전성기인 2010년에 비해 일본은 35%,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는 2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는 예외가 아닙니다. 일상에서 수시로 가볍게 찍는 사진은 스마트폰이 모두 흡수한 셈입니다. 카메라에 와이파이 기능을 넣는다던지, 안드로이드 운용체계를 갖춘 카메라를 만든다던지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만, 현재로선 스마트폰과 전문 카메라가 각자의 길을 가는 모양새입니다.

 

필름 카메라 산업이 100년의 영화를 누렸다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불과 15년 사이에 최고와 최악의 시간을 모두 겪었습니다.

 

● 싸이질, 페북질, 인스타질


2000년대 초반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의 약진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블로그 열풍을 뒷받침했습니다. 반대로 싸이월드가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일으킨 것도 사실입니다. 디카로 인해 항상 들고 다니면서 사진 찍고, PC에 연결해 쉽게 전송하고 편집(이라 쓰고 ‘뽀샵’이라 읽는다)하고 미니홈피에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 그 시절 기억하시죠?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거 먹기 전에 일단 음식 사진 한장 찍고, 친구들이랑 둘러 앉은 사진 한장 찍고, 갖은 포머 잡아가며 셀카 찍어 싸이에 올리던 시절이요. 애인한테 받은 선물, 예쁜 우리 아기 모습 등등 모두 디카로 찍어 싸이에 올려 자랑했습니다. 셀카가 예쁘게 잘 나오는 ‘얼짱’ 각도를 연습했고, 일반인 셀카 사진을 모아 예쁜 사람을 뽑는 ‘얼짱 카페’가 유행한 것도 디카 덕분이죠.

 

싸이월드도 디카도 인기가 예전같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하죠. 디지털 카메라는 위축됐지만, 역설적으로 사진은 더 많이 찍고 있습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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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쉴새 없이 찍어대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끊임없이 올려 대고 있습니다. 여전히 얼짱 각도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며 ‘좋아요’를 갈망하고, 에쁜 필터로 꾸민 사진에 온갖 해시태그를 달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취향도 앞서가고, 예쁘고, 잘 나간다는 것을 은연 중에 알리고 싶어하지요.


PC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포토샵은 각종 사진 꾸미기 모바일 앱으로 바뀌었고, 셀카봉이라는 새로운 물건이 나왔다는 점 정도가 달라진 점이겠네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우리는 24시간 카메라를 손 안에 품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아예 우리의 눈을 대신하는 카메라까지 등장했습니다. 헬멧이나 옷에 튼튼히 부착해 사이클링이나 서핑 등 거친 활동을 하면서 시야에 보이는 모은 것을 역동적으로 담을 수 있는 고프로나 액션캠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업을 말아먹은 후 호주로 서핑 여행을 떠난 닉 우드먼이란 사람이 자신이 서핑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에 돌아와 시작한 회사가 고프로입니다. 고프로는 사람의 일상을 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폭발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매출은 1조원이 넘었고, 2014년 상장도 했습니다. 활동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구매해 자신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이들은 그 영상을 다시 유튜브에 올리며 입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과는 다른 형태의 이미지이긴 합니다만, 역시 이미지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략한 점은 비슷합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우리가 추억을 저장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조심스레 찍어 지문 묻을까, 색 바랠까 고이 앨범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요즘은 수백 수천장을 찍어 잘 나온 사진만 남기고 지워버리죠. 두툼한 앨범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에 비치는 SNS에서 사진을 훑어봅니다. 사진은 책상 서랍 한 구석이 아니라 대용량 하드디스크나 저 멀리 클라우드 서버에 어지럽게 쌓이고 있습니다.

 

더 많은 추억을 더 자유롭게 간직하게 된 지금, 추억의 값어치는 더 커졌을까요?

 

 

※ 필자소개
한세희. 연세대를 졸업하고 전자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인터넷, 소셜 미디어, 모바일 등의 분야를 열심히 취재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 속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크다. 기술과 세상의 변화를 따라다니며 쉽게 풀어쓰고 싶어한다. 요즘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잉여 인간 체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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