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오락실에서 50원 내고 보글보글 하던 시절

2015.12.11 18:00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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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응답하라 1988’에서 또 하나의 러브 라인이 그어졌습니다. 대입 7수에 도전하는 정봉이와 덕선의 베스트 프렌드 미옥이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정봉이 난데 없이 길을 지나던 미옥의 우산 속에 들어가게 되는 사건의 근원은 ‘오락실’입니다. 정봉이가 옆 동네 오락실 가서 ‘보글보글’ 게임을 끝판인 100판까지 클리어한 후 다시 한번 더 하려 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동네 노는 형들이 시비를 겁니다. 결국 줄행랑을 친 정봉이는 마침 지나가던 미옥의 우산 속에 들어가 양아치들의 눈길에서 벗어납니다.

 

3040세대에게는 이런 오락실 장면이 참 낯익을 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은 게임을 좋아하죠. 오락실은 재미있는 게임이 잔뜩 있는 설레임의 장소이자, 부모님과 선생님이 금하는 금단의 장소였습니다. 신기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사람 뒤에는 어느새 구경꾼들이 모여 들어 한마음이 되어 감탄을 연발하며 구경하고, 때로는 정봉이처럼 노는 형들을 만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오락실은 소년들의 판타지가 펼쳐지는 곳이기도 했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사회를 배우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참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곳이었죠.

 

 

● 오락실을 만나다

 

응답하라 1988에도 가끔씩 추억의 게임들이 등장합니다. 지난주 방영분에서 정봉이가 즐기던 게임은 ‘보글보글’입니다. 요즘 스마트폰 게임으로도 다시 나왔기 때문에 아마 젊은 세대도 많이 알고 계실 듯 합니다. 귀여운 공룡이 입에서 거품을 뿜어 적들을 가둔 후 점프하거나 올라타 거품과 함께 터뜨리는 게임입니다.

 

보글보글 - 위키피디아 제공
보글보글 - 위키피디아 제공

매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새로운 배경과 새로운 적들이 등장합니다. 일본 게임 개발사 다이토가 1986년 출시했고, 귀여운 캐릭터와 퍼즐과 액션을 결합한 흥미로운 게임성으로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학생들이 누가 먼저 100판을 깨느냐며 경쟁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방송 초기에는 정봉이가 오락실에서 ‘하이퍼 올림픽’을 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하이퍼 올림픽’은 일본 코나미가 1984년 로스앤젤리스 올림픽을 앞두고 라이선스를 받아 1983년 내놓은 스포츠 게임입니다. 정봉이 말대로 “100원만 있으면 올림픽의 영웅들과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100m 달리기, 넓이뛰기, 창던지기 등 6개 육상 종목을 플레이하는데 결국 버튼을 빨리 누르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봉이처럼 쇠자를 버튼 위에 튕겨 버튼 누르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꼼수도 많이 썼죠.

 

하이퍼 올림픽 - arcade-museum.com 제공
하이퍼 올림픽 - arcade-museum.com 제공

우리나라에 오락실이 등장한 것은 대략 1980년대 중반으로 추정됩니다. 초기에 너구리, 방구차, 엘리베이터 액션 같은 게임이 인기를 얻었고 갤러그에서 출발해 제비우스와 1942로 이어지는 비행 슈팅 게임도 많이 즐겼습니다. 정봉이가 오락실에 드나드는 1988년 전후는 보글보글과 테트리스 같은 게임이 인기를 얻은 시기네요.

 

그러다 1990년대 초 ‘스트리트 파이터2’가 나옵니다. 대전 격투 장르가 본격적으로 흥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장르 게임은 게임 중 누구나 들어와 대결을 벌일 수 있습니다. 게이머에게는 무한 경쟁과 대결의 스릴을, 오락실 업주에게는 추가 매출의 기회를 주는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다 성질 나서 진짜 싸움으로 번진 기억 한번쯤은 있으시죠?

 

스트리트 파이터2 - 위키피디아 제공
스트리트 파이터2 - 위키피디아 제공

이때가 어찌 보면 오락실의 전성기 아니었나 싶습니다.  1990년대 말 펌프와 DDR, EZ 2 DJ 등 리듬액션 게임의 인기를 마지막으로 오락실의 인기는 시들어 갑니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PC방이었습니다. 1994년 국내 최초의 인터넷 카페가 등장했고 1995-1996년에 이르면 오늘날과 비슷한 PC방이 대학가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 오락실에서 PC방으로

 

그러다 스타크래프트가 나왔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나온 후 세상은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TERRAN, StarCraft 2 - flickr(SobControllers) 제공
TERRAN, StarCraft 2 - flickr(SobControllers) 제공

1998년 나온 스타크래프트 확장팩 브루드워가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은 PC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친구들과, 혹은 모르는 사람과 팀을 이뤄 네트워크에 물려 있는 다른 사람과 대결하는 배틀넷이 최고 인기 요인이었습니다. 인터넷 속도가 빠른 PC방에 모여 친구들과 삼삼오오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급속히 퍼졌습니다.

 

오락실은 물론, 당구장 만화방 등 기존 친구들 간 놀이 문화는 급속히 사라져 갔습니다. 당구장이 사라져 간 자리에 PC방은 길가마다 골목마다 들어섰습니다. 우리나라 PC방은 2001년 2만3000곳에 이를 정도로 널리 퍼졌습니다.

 

당시 초고속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IMF 경제 위기로 기업에서 밀려 나온 사람들이 대거 PC방 창업에 나섰습니다. 때마침 스타크래프트라는 킬러 콘텐츠가 나왔고, ‘리니지’ ‘바람의 나라’ ‘뮤 온라인’ 같은 온라인게임이 우후죽순 등장했습니다.

 

PC방이라는 새로운 게임 공간은 여러모로 독특한 게임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선 세계 최초로 e스포츠를 탄생시키는 모태가 되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존재와 초고속인터넷의 확산, 경쟁적 놀이에 익숙한 한국인의 특성 등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쌈장 이기석 선수, 임요환 선수 등이 모두 PC방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세계 게이머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기업이 프로 게임단을 운영하고, 선수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며 정기 리그를 운영하는 프로 스포츠의 룰이 적용된 e스포츠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게임 케이블 채널 온게임넷 등 게임 전문 미디어도 등장했습니다.

 

PC방 - 위키피디아 제공
PC방 - 위키피디아 제공

온라인게임의 발전 역시 PC방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게임은 빠르고 안정적인 네트워크 환경이 필수입니다. 전국에 깔린 PC방이 그런 인프라 역할을 했습니다. PC방과 만난 온라인게임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 일본 등 게임 선진국과 달리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 콘솔이 거의 보급되지 않았고, 게임 불법 복제도 성행해 게임 시장이 취약했습니다. 하지만 게임 설치 CD를 따로 판매하지 않고 서버에 접속해야 플레이할 수 있는 온라인게임은 불법 복제 걱정 없이 게임에 과금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으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온라인 게임 분야를 세계적으로 선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월정액 방식이 대세였지만 차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임 자체는 무료로 하되 다른 게임 아이템을 유료로 구매하는 ‘부분유료화’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부분유료화 역시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에서 시작돼 오늘날 세계 게임 시장의 주요 비즈니스모델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e스포츠 대회 - wikimedia commons 제공
e스포츠 대회 - wikimedia commons 제공

 

● 게임 공간, 변화와 진화

 

요즘은 PC방도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다 보니, 사람들이 모바일 게임에 쏟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가볍게 모바일 게임을 하는 사람이 늘다 보니 PC방에 가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규모가 큰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무래도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워낙 PC방이 난립해 레드오션이 된데다 게임 시장의 중심 자체가 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는 상황이라 PC방 시장의 축소는 불가피할 듯 합니다.

 

몇일 전 모 PC방 사장님이 시간당 300원 요금을 받는 옆 PC방 사장에게 “가격 경쟁을 자제하자”고 제안했다 거절 당하자 불을 질러 버린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2015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2014년 우리나라 PC방 시장은 전년보다 26%나 감소했습니다. 온라인게임 시장이 2013년 20% 가까이 역성장하고 지난해 1.7% 성장에 그치는 동안에 모바일게임은 2013년 190%, 지난해 25% 성장했으니 PC방 위축도 당연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애니팡 - google play 제공
애니팡 - google play 제공

국내 10조원 게임 시장에서 온라인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55%인 5조5000억원이고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는 3조원을 기록,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PC방은 전국의 초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청년들이 친구들과 모이는 사회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동안 인기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에서 스페셜 포스와 서든 어택 같은 총쏘기게임, FIFA온라인 같은 스포츠 게임, 오늘날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조금씩 변화해 왔습니다.

 

현재 전국의 PC방은 1만 5000군데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구장 수가 많이 줄었지만 이제 당구 동호인들을 위한 장소로 확실히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것처럼, PC방도 수가 줄면서 남는 곳들은 게임 허브 공간으로 정착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아케이드 게임장, 즉 오락실도 많이 위축되긴 했지만, 남아 있는 곳들은 자동차 오토바이 라이딩이나 총쏘기 게임, 리듬댄스 게임 등 체험형 기기를 앞세워 차별화된 놀이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예전 부모님들은 자녀가 오락실에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오늘날에는 PC방에 드나드는 걸 마뜩찮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아이들은 놀이를 중심으로 서로 뭉치고 함께 어울리며 자라났고, 오늘날 그런 놀이 문화의 중심은 게임인 것도 사실입니다. 게임을 하는 것, 게임을 위해 어울리는 것, 게임을 하기 위한 장소 등도 아이들의 성장 과정의 일부라고 보면 어떨까요?

 

 

※ 필자소개
한세희. 연세대를 졸업하고 전자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인터넷, 소셜 미디어, 모바일 등의 분야를 열심히 취재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 속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크다. 기술과 세상의 변화를 따라다니며 쉽게 풀어쓰고 싶어한다. 요즘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잉여 인간 체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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