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로 사연 보내던 시절

2015.12.04 19:24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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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서울에 눈이 펑펑 왔습니다. 쌍문동 하늘에도 눈이 내렸을까요? 최근 응답하라 1988에도 첫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동네 친구 선우를 좋아하던 덕선이는 가수 이문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첫눈이 오면 고백할 생각"이라는 사연을 엽서에 적어 보냅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선우에게 “첫눈 오면 고백하라"고 부추깁니다.

 

사연은 첫눈 오는 날 공개됩니다. 아, 그러나 덕선이는 김칫국을 마셨습니다. 선우가 좋아하던 사람은 덕선이가 아니라 덕선이의 언니 보라였습니다. 덕선의 고백을 응원하는 이문세의 멘트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덕선이는 펑펑 웁니다.

 

[응답하라 1988]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로 사연 보내던 시절 - tvN 응답하라 1988 제공
[응답하라 1988]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로 사연 보내던 시절 - tvN 응답하라 1988 제공

●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라디오

 

3040 이상 세대라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라디오를 들으며 사연 엽서를 적던 기억이 한번쯤 있을 것입니다. 자기만의 사연을 엽서에 정성껏 적어 보냈고, 사람들은 엽서에 담긴 사연에 울고 웃었습니다. DJ가 내 사연을 뽑아 주길 기대하며 정말 열심히 사연을 썼고, 내 사연이 방송에 나오면 대학 합격한 것보다 더 기뻤습니다.

 

내용뿐 아니라 엽서 자체도 정성껏 꾸며 보냈죠. 연말이면 방송국에서 예쁜 엽서 전시회를 하던 것도 기억납니다. 연말 가요대상 수상자를 결정할 때도 엽서 투표 결과가 중요했죠. 인기 가수 팬클럽들은 자신들의 ‘오빠'를 가수왕으로 만들기 위해 방송국에 엽서를 앞다퉈 보냈습니다.

 

1990년대 말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까지 라디오 엽서는 청취자들이 매스 미디어의 제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라디오는 신문이나 TV에 비해 사용자 참여 폭이 훨씬 컸던 매체였습니다. 현장성은 TV에 밀리고, 깊이는 인쇄 매체를 당하기 힘들었던 라디오가 발견한 틈새 시장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엽서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지 않습니다. 라디오는 살아있지만 엽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죠. 청취자들은 해당 프로그램의 인터넷 게시판에 접속해 사연을 올리거나, 전용 인터넷 라디오 소프트웨어로 사연을 남깁니다. 전에는 방송 전에 엽서를 써서 우편으로 붙여 방송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요즘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전용 라디오 앱에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며 제작진과 직접 소통할 수도 있습니다. 휴대폰 문자로도 많이 소통하죠.

 

그렇게 본다면 1988년의 라디오 엽서와 대비되는 지금의 신문물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전용 라디오 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넓게 생각해 보면 당시의 라디오가 하던 역할 자체가 이제 인터넷으로 옮겨왔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신문이나 TV에는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극히 적었습니다. 소수의 신문사 방송사는 세상에 알릴 내용을 취재하고 선별해 결정하고 독자와 시청자, 즉 대중은 그 내용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구조였습니다. 그 틈새에서 사용자 참여를 확대하며 존재 의미를 찾은 것이 라디오 프로그램들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문적인 기자와 PD가 만드는 신문이나 TV와 달리 라디오는 일반인 사용자가 보내는 엽서 사연, 진행자와의 전화 통화 등이 프로그램의 콘텐츠를 채웠으며 그 자체가 방송의 형식이기도 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전형적인 모습  - 진행자가 얘기를 풀어가다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하고, 엽서나 인터넷 게시판으로 들어온 사연을 소개하고 그에 대해 다시 이야기한다  - 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죠.

 

라디오부스 -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제공
라디오부스 -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제공

 

● 그때의 라디오, 지금의 인터넷

 

이건 오늘날 인터넷 커뮤니티나 카페, 포털의 자유 게시판과 비슷합니다. 라디오 프로그램 자체가 하나의 게시판이고, 할 말 있는 사람들은 게시판에 글을 올리듯 엽서를 보냅니다. 사연을 골라 읽어주는 DJ는 스토리를 큐레이션하고 인기 게시물을 ‘베스트’로 보내는 게시판 관리자, 엽서 사연은 오늘날로 치면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라고 하겠습니다. 사연에 반응해 청취자들이 다시 보내는 엽서는 댓글이겠네요.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며 달라진 점은 엽서가 아니라 PC나 스마트폰으로 훨씬 쉽게 훨씬 많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인터넷 게시판이나 문자로 방송 내용에 실시간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기술 발달에 따른 이런 변화가 라디오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지만, 근본적인 틀은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게시판-댓글 방식 소통은 기술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존재해 왔습니다. 덕선이가 라디오를 듣던 1988년 전후나 9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닌 분들이라면 학생회실에 날적이 노트가 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노트에 적으면 다른 사람이 그 밑에 자기의 생각을 더하거나 글쓴 이를 위로하는 글과 그림을 남기곤 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늘의 인터넷 게시판을 종이 위에 옮겨놓은 듯 합니다. 무작위 공중을 상대로 하는 게시판은 기술과 환경의 한계로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학생회실에서 같은 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게시판이라 할 날적이는 유지 가능했습니다.

 

더 옛날로 거슬러가면 시대가 혼란해질 때 사람들이 모이는 저잣거리에 밤 사이 누군가 붙여 놓던 ‘방'도 게시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댓글을 달기는 쉽지 않았겠네요. 마틴 루터가 중세 카톨릭 교회의 부패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성 비텐베르크 교회 문 앞에 붙인 95개 조항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게시판 글 중 하나가 됐습니다 .

 

마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는 모습.  - saintmlc.com 제공
마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는 모습.  - saintmlc.com 제공

라디오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게시판을 가능하게 한 최초의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참여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게시판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엽서 사연을 읽어주던 1988년의 라디오와 엽기 ‘썰'이 올라오는 2015년의 인터넷은 ‘자유당 때'와 ‘다가오는 서기 2000년'만큼 멀게 느껴지지만, 근본적인 모습은 비슷합니다. 바로 이야기를 말하고 듣고 공감하려는 사람들의 소통 본능이죠.

 

● 편지에서 소셜미디어로  - 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소통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도 비슷합니다. 소셜 미디어는 페이스북이 탄생한 2004년이나 트위터가 설립된 2006년 등장한 것일까요? 물론 우리에게는 페이스북 이전에 싸이월드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싸이월드가 소셜 미디어를 발명했다고 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환일기 한번씩은 다들 써 보셨을 겁니다. 교환일기는 여러 명이 하나의 일기장에 번갈아가며 일기를 쓰는 것을 말합니다. 한 사람이 일기를 쓰면 친구나 연인이 그 밑에 답을 달거나 자기 일기를 씁니다. 대답이 꼬리를 물며 이어지기도 합니다. 적절한 댓글을 안 달면 삐지고 사이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사각의 노트 테두리 안쪽은 예쁜 그림과 사진, 다양한 색채로 아기자기하게 꾸밉니다 .

 

네,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현실 버전입니다. 실제로 미니홈피는 여고생들의 다이어리를 메타포로 디자인됐습니다. 교환 일기를 쓰며 우리는 이미 ‘SNS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메신저 카카오톡 - flickr(Mike Lee) 제공
메신저 카카오톡 - flickr(Mike Lee) 제공

메신저는 어떨까요? 작년 기준 카카오톡 하루 메시지 전송 건수는 55억건을 넘었습니다. 라인은 100억건을 넘었죠. 해외에서 인기 많은 왓츠앱은 진작에 270억건을 기록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우리는 메신저로 말 그대로 대화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연인에게, 직장 동료에게 할 말, 안 할 말, 안 해도 될 말, 예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말까지 모두 토해냅니다. 일대일로 대화하고, 친구 가족들 단톡방에서 얘기하고, 수십 수백명이 모인 단톡방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쏟아냅니다.

 

이렇게 부담없이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바일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큽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대화의 욕구는 기술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증폭돼 왔습니다. 휴대폰이 나오자 10대들은 문자메시지로 대화했고, 그 이전에는 친구와 얘기하느라 전화통을 붙잡고 놓지 않아 많은 부모들이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더 생각해 보자면 사실 편지는 가장 오래 된 일대일 메신저이죠. 로마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키케로는 정무에 바쁘고, 때로는 정적에 쫓겨 도망다닐 때도 쉴 새 없이 친구와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900통의 편지가 남아 있고 키케로 덕분에 우리는 수천년 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숨 죽여 라디오를 들으며 흘러나오는 사연에 울고 웃던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엽서에 나의 사연을 적어보내던 1988년과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는 2015년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와 공감에 목마른 우리 안 덕선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 필자소개
한세희. 연세대를 졸업하고 전자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인터넷, 소셜 미디어, 모바일 등의 분야를 열심히 취재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 속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크다. 기술과 세상의 변화를 따라다니며 쉽게 풀어쓰고 싶어한다. 요즘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잉여 인간 체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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