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테러, 인류의 숙명일까

2015.12.01 13:58

무자비한 테러 사건 소식을 접하며 의문을 떠올린다.

 

“인류는 짐승이 아니지 않은가. 서로 물어뜯고 죽이는 일은 짐승이나 하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잔혹한 테러와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혹시폭력은 인류의 본성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위 의문은 전제부터 결론까지 모두 틀렸다. 먼저 동물은 같은 종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드물다. 오히려 오직 인간만이 무고한 이유로 서로를 대량으로 죽이고 해친다. 그렇다고 인류의 본성이 폭력적인 것만은 아니다. 반대로 긴 진화 역사 동안 인류는 협력하고 심지어 희생하는 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여 왔다. 마지막으로 폭력 자체도 늘지 않았다. 뉴스를 통해 생생하게 접해서 늘었다고 느낄 뿐이지, 사실은 먼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 동종 대량 살해는 인류 고유의 속성일까

 

우리는 동종을 해친 살인범이나 테러범에게 ‘괴물’이나 ‘짐승’ 같은 표현을 쓴다. 하지만 짐승은 쉽게 동종을 해치지 않는다(인간의 이익을 위해 싸움닭이나 투견으로 사육되는 경우는 제쳐두자). 동물에게 죽음은 곧바로 먹는 행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동물은 오직 먹기 위해서 먹잇감을 찾아 죽이는데, 그 먹잇감은 자신과 같은 종이 아니다.

 

버펄로를 사냥한 사자. 동물의 세계에서 살육은 먹이 활동과 연관된다. 동종을 죽이는 일이 많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사람은 대량으로 동종을 죽이는 일을 한다. - GIB 제공
버펄로를 사냥한 사자. 동물의 세계에서 살육은 먹이 활동과 연관된다. 동종을 죽이는 일이 많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사람은 대량으로 동종을 죽이는 일을 한다. - GIB 제공

 

물론 동물이라고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끼리는 경쟁 관계에 놓여 있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갈등을 살해를 통해 해결하지는 않는다. 동물 사이의 갈등은 대부분의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경우에 생긴다.

 

예를 들어 영역 다툼을 하거나, 암컷에 대한 접근권을 놓고 수컷끼리 다투는 식이다. 이 때 동물은 주로 상대의 힘을 ‘재보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한다. 힘을 과시하거나, 친구를 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질 것 같은 쪽이 먼저 꼬리를 내려서 패배를 인정한다.

 

서로 털끝도 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시로 끝나지 않을 때에는 몸을 부딪치며 으르게 된다. 그렇게 을러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다치게, 그것도 크게 다치게 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조직적인 테러와 전쟁도 벌인다. 인간만큼 다양한 규모와 이유로, 자주, 많이 폭력을 행사하는 동물은 없다. 언제부터 인간이 이런 행위를 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가깝게는 농경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갈등도 더 첨예해졌다는 해석이 있다. 사유 재산의 등장과, 문명과 국가의 발달, 그리고 그로 인한 대규모 살상 능력의 획득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 문명 이전에도 폭력은 있었다

 

스페인 아타푸에르카에서 발견된 43만 년 전 호모 속 인류의 두개골. 연구 결과 두 개의 상처는 사망 시기에 생긴 것이다. 두 번 연속해 상처를 입힌 것으로 보아 의도적인 폭력의 흔적임을 알 수 있다.  - Javier Trueba/Madrid Scienctific Films 제공
스페인 아타푸에르카에서 발견된 43만 년 전 호모 속 인류의 두개골. 연구 결과 두 개의 상처는 사망 시기에 생긴 것이다. 두 번 연속해 상처를 입힌 것으로 보아 의도적인 폭력의 흔적임을 알 수 있다.  - Javier Trueba/Madrid Scienctific Films 제공
하지만 고인류 화석 자료를 보면, 동종에 대한 폭력의 기원은 더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생 세자르에서 발굴된 3만6000년 전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커다란 날로 정수리를 맞아서 뼈가 깨졌다가 나은 흔적을 보인다. 폭력의 흔적이다.

 

이라크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샤니다르 3호는 왼쪽 갈비뼈에 치명적인 외상을 입었고 그 뒤로 몇 주 정도 살아남았던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후기 구석기 시대 초기 현생인류인 숭기르 1호는 제1흉추체(흉추는 몸통 부위의 척추. 12개로 구성되며 가장 위에 있어 경추(목뼈)와 연결되는 게 제1흉추다)에 날카로운 돌날의 흔적이 보이는데, 타인에 의한 살해인지 혹은 사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렇게 폭력적인 상황을 겪었다가 회복한 흔적은 고인류 화석 자료에서 종종 보인다. 하지만 죽음으로까지 이어진, 그러니까 살인의 흔적은 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5월 발표된 스페인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스페인 살루드카를로스3세연구소 진화 인간행동통합센터 노헤미 살라 연구원은 스페인 아타푸에르카에서 발견된 43만 년 전 호모 속 인류 두개골을 연구했다. 연구팀은 두개골에서 사망 전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전방 두개골 함몰 두 개에 주목했다. 위치나 각도 등을 바탕으로 추정해 본 결과, 이 상처는 두 사람이 맞붙어서 싸운 결과이며 여러 차례의 치명적인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의도적인 살해였음을 밝혔다.

 

인간의 폭력과 동종 살상이 농경과 복합사회의 결과물이 아니라 좀 더 오래 전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동종 살해가 인간(특히 문명화 이후의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생각도 흔들리고 있다. 발단은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이다. 구달 박사는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모두가 믿던 동종 살해를 침팬지에게서 처음 발견했다.

 

‘묻지마 살인’ 식의 사이코패스성 살해, 무리 지어 잠복했다가 한 마리를 떼지어 공격하는 보복성 살해 등, 구달 박사의 발견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발견은 영장류에게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영아살해(수컷이 기존 수컷을 몰아낸 뒤 집단의 새끼를 죽이는 행위. 암컷의 배란기를 유도)와 더불어 큰 논란거리를 안겨줬다. 다른 영장류, 특히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에게서도 나타난다면, 동종 살해는 인류가 지닌 문화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으로(진화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만약 그렇다면, ‘폭력과 살인’ 유전자가 살아남아 있는 것도 진화적으로 적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

 

○ 폭력이라는 본성도, 폭력의 시대도 없다

 

하지만 폭력의 유전적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더구나 인간의 폭력에는 특이한 점이 많다. 그 대상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점이다(이번 테러처럼). 이 사실은 인류가 지닌 또다른 특성을 떠올리게 한다. 반대로 불특정 다수를 배려하고 도와주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피를 나누지 않은, 생판 모르는 ‘남’과도 집단을 구성한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그런 ‘남’으로 구성된 사회의 일원이 되며, 평생 그들과 협력하고 연대한다. 파리와 베이루트 테러 이후 각국의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해당 도시의 사람들에게 보여준 지지와 연대가 그 예다. 때로는 세월호 사건에서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돕기도 한다.

 

꼭 협력의 본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류는 문명화하면서 폭력과 동종 살해에서 점점 멀어져 왔다. 문명 이후 대규모 전쟁과 학살 사건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구 대비 발생량은 오히려 급격히 줄어들었다.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따르면, 농경 이전의 생활 양식인 수렵, 채집을 하던 시대의 사망자 가운데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비율은 60%에 달했다. 이 수치는 20세기 유럽으로 오면 1% 수준으로 낮아진다. 핑커 교수는 국가와 정부 등 합법적 폭력(처벌)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와 상업의 발달(협력의 동기를 제공한다)로 폭력의 동기가 줄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중세 이후로도 인류의 폭력은 급감했다. 인구 10만 명 당 살해된 인구는 16세기에 100명 수준이었지만, 현대는 0.5명 수준으로 200분의 1로 줄었다. 지금 발생하는 테러와 피비린내 나는 복수들이 미디어를 통해 충격적으로 다가오기에 많아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인류의 폭력성은 과거와 비할 수 없이 줄어든 상태다.

 

다시, 치명상을 입고 죽어간 샤니다르 3호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 네안데르탈인은 분명 치명적인 외상을 입었지만, 적어도 몇 주는 살아남았다. 같은 유적지의 샤니다르 1호 역시 한 쪽 눈이 멀고 한 쪽 몸을 거의 쓰지 못하는 상태임을 화석 상태로 알 수 있지만, 이 네안데르탈인도 이후 오랜 기간 목숨을 부지했다. 누군가 이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도와줬다는 뜻이다.

 

이렇게 혼자 힘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 주는 모습은, 심지어 연대가 18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조지아의 드마니시 화석에서도 발견된다. 늙은데다 치아가 모두 빠져 제대로 씹을 수 없었음이 분명한 드마니시 3444호 화석의 주인공은 (아마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오래 살았다. 이유 없이 이웃을 죽이는 얼굴도 인간이지만, 혼자 힘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이웃을 보살피는 얼굴도 모두 똑같은 인간의 얼굴이라는 사실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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