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에 종지부 찍을 사람은 ‘어머니’ 뿐인가?

2015년 11월 23일 15:10

※ 편집자주
이달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IS(이슬람국가)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가 일어나 130 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문명 사회라고 하지만, 이러한 야만적인 사태가 왜 계속 일어나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저희는 어떠한 테러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앞으로  테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테러가 발생하는 이유’,  ‘대책’ 등을 정신과 전문의의 분석을 통해 전해드립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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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폭력성과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에게는 골절과 치유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는데, 상당수는 사냥보다는 전투에 의해서 일어난 부상으로 추정됩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부족 간의 전투가 더 치열했으며, 일부 연구에 의하면 평균 40% 이상의 부족원이 부족간 전투에 의해서 사망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특히 전투에서 패배한 부족의 성인 남성은 대개는 몰살당하고는 하는데, 이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한 이후 더 심해진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왜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이렇게 자주, 심각한 수준의 전쟁을 벌이는 것일까요? 동물들도 집단 내의 서열이나 혹은 암컷에 대한 접근권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는 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서열이 정해지거나 혹은 암컷과 같은 자원에 대한 접근권이 결정되면, 싸움은 중단됩니다. 싸움을 더 끌어봐야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는 목숨을 건 테러가 끊이지 않습니다. 정규전과 달리, 테러나 게릴라전은 기습의 이득을 노리고 일어나기 때문에 상당한 과시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테러에 투입된 인원은 대개 살아남지 못합니다. 종종 처음부터 목숨을 걸고 하는 자살테러는, 상식의 눈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한번뿐인 목숨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을까요?


● 집단의 일부가 되고 싶은 인간의 본성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면서 집단성을 진화시켰습니다.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나 벌을 제외하면, 인간이 모든 동물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성을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른바 진사회성(eusociality)을 이루는 동물은 큰 규모로 집단생활을 하며, 집단 안에 노동 분업을 일어나게 됩니다. 개미 사회는 병정개미, 일개미, 여왕개미, 유모개미 등으로 나누어진 사회적 역할을 가지는데, 인간 사회도 이와 비슷합니다.
 
조너선 하이트는 이러한 인간의 경향을 일컬어, 이집단성(groupish)이라고 하였습니다. 집단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을 이기성(selfish)이라고 한다면, 다른 집단에 대해 자기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바로 이집단성입니다. 인간 사회의 이집단성은 본성적인 특징이지만, 문화적 영향도 상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이 가지는 애국심이나 맹목적인 신앙, 집단에 대한 충성심은, 자신의 집단을 다른 집단보다 편애하는 본능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를 ‘부족본능가설(tribal instincts hypothesis)’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약 100년 전에, 찰스 다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도덕심이나 양심은 복잡한 감성이 된다. 최초에 사회적 본능에서 시작하였고, 점차 동료의 칭찬에 의해서 지배된다. (중략) 나중에는 깊은 종교적 느낌까지 지배받는다.” -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에서.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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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폭력성의 증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깊은 집단성을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자살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성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협상하는 외교관이나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영업사원은, 비폭력적인 협상과 대화를 통해서 이집단성을 추구합니다. 끔찍한 테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집단성 외에도 근원적 폭력성이라는 또 하나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인류학적 데이터에 의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고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남성의 폭력성이 증가합니다. 배우자를 찾기 어려운 여건에서, 남성에 의한 강간과 폭력이 더 많이 발생합니다. 이를 진화심리학에서는 ‘대안적 번식 전략(divergent reproductive strategy)’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테러는 남성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빈부격차가 심하고 성비의 불균형이 심한 지역에서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테러를 많이 일으키는 일부 이슬람 국가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군사적 공격보다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테러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가, 가해 집단에게 폭격이 아니라 식량과 물자를 보낸다는 것은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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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집성과 이민족 증오, 테러리즘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 일원으로서 행동하고 싶어 하는 감정에 대해서 ‘나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한 만큼 전체의 행동에 따르게 되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정확하게 기술한 바 있습니다.


인간은 강력한 군집성을 가지고 있으며,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감정은 마치 삶의 의미를 찾은 것 같은 기쁨을 주고는 합니다. 이를 조너선 하이트는 ‘군집스위치(hive switch)가 켜졌다’라고 재치 있게 표현했는데, 군중집회나 종교의식, 군무, 심지어는 축구경기를 응원하는 중에도 군집스위치가 켜지고는 합니다. 이러한 군집성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특정한 여건 하에서는 테러와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1945년 5월, 알제리에서 열린 제 2차 대전 종전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축제의 들뜬 분위기에 휩쓸린 알제리인의 일부가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프랑스인 100여명을 살해했고, 프랑스는 이에 분노하여 전면적인 군사적 보복을 하였습니다. 이 군사작전으로 죽은 알제리인은 최대 5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미리 폭동을 계획한 사람도, 적극적으로 주도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아주 참혹했습니다.

 
테러는 주로 왜곡된 군집성에 경도된 젊고 미숙한 테러리스트 몇 명이 저지르지만, 결과적으로 타민족 배척이라는 인류의 오랜 본성에 불을 붙이게 됩니다. 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인간이 제노사이드의 충동적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이 충동이 점점 통제불능 상황에 빠지고 있다며 경고합니다. 파리 연쇄 테러의 주동자는 반드시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무차별적인 보복전은 테러 예방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큰 피의 악순환을 유발하는 경구가 많다는 것을, 긴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 인류는 영원히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야노마뫼 족은 남미 볼리비아와 브라질에 걸쳐서 살고 있는 호전적 원주민입니다. 이들의 원시적 전투를 들여다보면, 인류가 끊임없이 벌이는 전쟁의 원초적인 동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노마뫼 족은 전투의 분명한 목적도 내걸지 않고, 부족 간 전면전을 벌이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경제적 이득을 위한 전리품 노획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기만전술에 의한 기습적인 잠입과 살육, 그리고 재빠른 도주라는 일관된 패턴을 따라 전쟁을 벌입니다. 마치 현대 사회의 과시적 테러리즘을 연상시킵니다.


나폴레옹 샤농은 이러한 야노마뫼 족의 전투가 침팬지 사회의 집단 간 폭력과 매우 유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규전이나 대규모의 테러는, 종종 도덕적 명분이나 숭고한 종교적 목적을 표방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사실 원시적 폭력성을 위장하는 수단에 불과 한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본성적인 폭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이 있을까요?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이에 대해 아주 우울한 예측을 한 바 있습니다. 수백 만 년 이상 진화해 온, 인간의 폭력성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효과적인 살육무기로 무장한 인류의 미래는, 더 큰 규모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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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제시하면서, 희미한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바로 영장류가 보이는 폭력성의 거의 대부분은 수컷, 즉 남성에게만 배타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계성이 강한 사회에서는 집단 간 분쟁이 상당히 적게 일어나고, 집단 내 폭력성도 낮아집니다.


물론 이슬람 국가에서 심각한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고 하여, 그것이 중동 지역에 테러리스트가 많고 분쟁이 잦은 이유라고 단순하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테러는 아주 복잡한 정치적, 사회문화적 배경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도적 민주주의를 통해 여성들이 보다 많은 참정권을 가지게 되고, 이를 통해 실질적인 여성 리더가 나타나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성들이 더 많은 사회적 권력을 가진 적은, 인류 역사에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만, 기나긴 살육의 인류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사람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들인지도 모릅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작품에서, 2차 대전에 참전한 한 여성의 입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정말 무시무시한 전투였어. 그렇게 끔찍하고 처참한 전투가 또 있을까. ‘심장 하나는 증오를 위해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위해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은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내 심장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 <관련 시리즈 기사>
[Pray for Paris]정신과 전문의가 본 테러리즘(1), 순박한 청년이 IS 테러리스트가 되는 이유...혹시 당신도?
[Pray for Paris]정신과 전문의가 본 테러리즘(2), 테러 겪은 사회 독재자 등장 우려...사회적 트라우마 치유법은?

 

 

※ 필자소개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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