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절대기준은 존재하는가?

2015.10.26 18:00

얼마 전 ‘진짜사나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본 흥미로운 상황이 기억에 남는다. 여군 특집으로 여자 연예인 10명이 입소해 숙소에 배정된 뒤 하사관이 묻는다.

 

“혹시 수술받은 사람 있으면 얘기합니다.”

 

다들 쭈뼛쭈뼛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데 사유리 씨가 용감하게 손을 든다.

 

“눈을 좀 고쳤고요, 코도 좀 올렸어요.”

 

보통 맹장수술 같은 걸 생각하고 물은 걸 텐데 엉뚱하게 성형수술로 초점이 옮아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어지는 한채아 씨의 인터뷰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형 미인으로 프로그램에서 ‘절세미인’으로 설정된(다른 채널의 드라마에서 ‘조선절세미인’으로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 씨는 자신을 성형미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절대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MBC
MBC 예능 프로그램인 ‘진짜사나이’ 화면 캡처.  

그러면서 인상이 약간 강해 보여 거꾸로 얼굴선을 순화시키는, 즉 코를 약간 낮추는 성형수술을 받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결심을 못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 얼굴이 너무 알려져 수술을 할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사람 놀리나’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자연미인’을 높이 평가하는 필자로서는 한 씨를 다시 보게 됐다.

 

● 더 이상 백인의 외모를 꿈꾸지 않는다

 

학술지 ‘네이처’ 10월 8일 자에는 ‘아름다움의 과학(Beauty)’을 특별부록으로 다뤘다. 아름다움의 다양한 측면을 다룬 기사와 인터뷰 등 총 9편의 글이 실렸는데, 다들 흥미진진하면서도 ‘미(美)의 추(醜)한’ 이면을 다룬 글도 여러 편 있어서 이제는 약간 식상한 아름다움의 과학(진화생물학 관점의 설명)을 벗어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네이처’ 10월 8일자 특별부록 ‘아름다움의 과학’에 실린 성형수술의 현주소를 다룬 글의 메인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성형수술광고로, 성형공화국으로서의 우리나라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 네이처 제공
‘네이처’ 10월 8일자 특별부록 ‘아름다움의 과학’에 실린 성형수술의 현주소를 다룬 글의 메인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성형수술광고로, 성형공화국으로서의 우리나라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 네이처 제공

 

부록에서 세 번째 글은 제목이 ‘다양한 개입’으로 성형수술의 현주소를 다루고 있다. 처음 이 페이지를 펼쳐보고 필자는 순간 ‘네이처 안에 어떻게 국내 광고지가 껴있지?’라고 의아해했는데 자세히 보니 광고지가 아니라 메인 이미지였다. 성형수술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한국이라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수자타 굽타라는 프리랜스 과학작가가 쓴 이 글은 지난 10년간 성형수술의 증가가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2005년에서 2014년 사이 백인은 성형수술이 38% 증가했고 유색인은 무려 110%가 증가했다는 것. 그런데 성형수술의 방향이 좀 다르다. 코수술을 보면 백인들은 주로 코를 낮추는 수술이 많은 반면(좀 더 여성스럽게 보이기 위해) 유색인들은 코를 높이고 좁히는 수술이 많다. 즉 ‘미의 기준’인 백인과 좀 더 닮아 보이고 싶은 열망이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최근 ‘백인이 되고 싶어’ 성형수술을 받는 경향이 서서히 퇴조하고 있다고 한다. 즉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에서 얼굴을 다듬어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중동 여성들은 매부리코가 많은데 예전 같으면 콧등을 평편하게 깎는 경우가 많았지만(백인여성들의 코수술 가운데 상당수가 이것이다) 지금은 그냥 놔두거나 너무 두드러진 경우 살짝만 깎는다고. 완전히 없앨 경우 ‘백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줄리우스 퓨 미국 시카고대 성형외과의 교수는 “인종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수술은 혈관이 어떻게 배치돼 있는지 모른 채 심장수술을 하려는 것과 같다”며 ‘백인동경’ 성형수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기사에는 ‘성형공화국’인 우리나라도 당연히 등장한다. 코성형전문의인 장용주 아산병원 교수는 성형수술의 가이드라인이 백인을 기준으로 잡혀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참고로 장 교수는 이달초 프랑스 칸느에서 열린 유럽안면성형재건학회에서 조셉메달을 수상했다. 조셉메달은 현대 코성형수술의 창시자인 자크 조셉을 기려 이름을 붙인 상이다.

 

성형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아래의 필자 의견이 한가로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읽다보니 문득 아름다움의 진화생물학이야말로 얼굴 성형의 방향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화생물학(또는 진화심리학)은 아름다움의 평가기준이 번식력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는 건강한 자손을 많이 낳을 수 있는 외형적 특징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 이렇게 추출된 특징이 대칭성, 성적이형(sexual dimorphism), 평균성(averageness)이다. 대칭성은 말 그대로 좌우대칭으로 대칭성이 클수록 유전자에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즉 발생과정에서 좌우가 맞는다는 건 유전자 발현조절이 정교하게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심각한 질병이나 사고가 없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성적이형은 남성은 남성스럽고 여성은 여성스러운 특징이 잘 부각돼야 한다는 말이다. 얼핏 늘씬해보여도 몸매가 콜라병형이 아니라 통나무형일 경우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 참고로 체형은 성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고 따라서 생식력과 관련이 많다. 실제로 남녀(암수)는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양분된 게 아니라 그 정도에 따라 넓게 분포돼 있고 남녀특성의 애매모호함이 클수록 생식력은 떨어진다.

 

끝으로 평균성은 비교적 새로운 개념으로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됐다. 즉 심리학자들이 얼굴 합성 실험을 하다가 얼굴을 많이 섞을수록, 즉 평균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더 아름답다고 판단한다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은 것. 평균성은 대칭성과도 관련이 있지만(여러 명의 얼굴을 섞을수록 좌우가 대칭이 될 것이므로) 뇌가 얼굴을 인식하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덜 드는 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주된 이유라고 한다. 즉 얼굴정보를 처리하는 건 매우 복잡한 과제이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덜 들어가는 얼굴, 즉 평균적인 얼굴을 선호한다는 것.

 

결국 견적만 많이 들고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높은 낯선 백인얼굴로 고치는 것 보다 자신의 얼굴에서 비대칭적인 요소를 평균에 가까운 방향으로 살짝 다듬고 이 과정에서 성정체성 향상까지 고려한다면 주위에서 “어, 왜 이렇게 예뻐졌지? 성형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같은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 예쁜 남자 신드롬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좀 기분이 나쁜 독자도 있을 텐데, 특집에는 남성의 미모 가꾸기 현상을 다룬 기사도 있어 소개한다. 켈리 레 키라는 프리랜스 과학작가가 쓴 글로 오늘날 외모를 중시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경향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다.

 

즉 20년 전만 해도 자신의 신체이미지에 대해 불만을 갖고 그 결과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남성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급격이 늘고 있다는 것. 즉 각종 미디어에서 보통 남성들은 ‘도달할 수 없는(unattainable)’ 신적인 외모를 지닌 남성성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많은 남성들, 특히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을 불만스러워하고 그 결과 섭식장애 같은 질환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영국 남자 청소년 가운데 18%가 외모에 대한 불만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고 7.6%가 성장호르몬이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복용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꼭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야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들은 온갖 미디어를 동원해 이상적인 남성상을 부각했고 그 결과는 새로운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우울함을 겪게 됐다는 것. 미국 보스턴어린이병원의 역학자 앨리슨 필드는 “우리 주변에는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만족하기를 바라지 않은 업계들이 포진해 있다”며 오늘날 남성들이 직면한 위기를 진단하고 있다. 

 

● 성형외과가 아니라 정신과를 찾아야

 

이어지는 글 역시 외모 지상주의의 병폐를 다루고 있는데 좀 더 심각하다. 즉 ‘신체이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얘기인데 인구의 2%가 이 범주에 들어갈 정도로 광범위한 문제라고 한다. 신체이형장애란 자신의 몸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돼 사소한 결함이 침소봉대돼 이를 너무 의식하다보니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된다는 것. 실제로 신체이형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자살 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2배나 된다고 한다.

 

신체이형장애인 사람의 뇌 이미지로 시각정보를 처리할 때 활성패턴에 차이를 보인다. 즉 왼쪽후두엽의 시각피질의 활동도는 낮고(왼쪽 파란색) 미상핵과 왼쪽안와전두피질의 활동도는 높다(오른쪽 노란색).  - Jamie Feusner 제공
신체이형장애인 사람의 뇌 이미지로 시각정보를 처리할 때 활성패턴에 차이를 보인다. 즉 왼쪽후두엽의 시각피질의 활동도는 낮고(왼쪽 파란색) 미상핵과 왼쪽안와전두피질의 활동도는 높다(오른쪽 노란색). - Jamie Feusner 제공

 

신체이형장애는 얼굴에 아무 문제가 없거나 작은 흠이 있는 걸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처럼 확대 왜곡해 인지하는 증상이다. 역시 다른 많은 정신질환처럼 유전적인 요소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증상이 발현돼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울증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하듯이 신체이형장애도 배부른 병이라고 넘기기 쉽지만 상황은 꽤 심각하다. 즉 오늘날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성형수술 관련 분쟁의 상당수가 신체이형장애인 사람들이 수술을 받은 결과라고 한다. 그 결과 담당 의사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은 물론 신체적 상해, 심지어 살해도 일어난다고 한다. 글을 보면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의 10% 정도가 신체이형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즉 이런 사람들은 성형외과가 아니라 정신과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과학작가인 엘리 돌긴은 글에서 의사들은 내원한 환자의 수술을 결정하기 전에 꼼꼼한 설문을 통해 신체이형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체이형장애가 결국은 뇌, 즉 마음의 문제임을 밝힌 연구결과들도 소개돼 있다. 즉 신체이형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뇌에서 시각자극을 처리하는 영역의 활성이 비정상적이라는 것. 그 결과 신체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특정한 영역의 디테일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심리치료법의 하나인 ‘인지행동요법(CBT)’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CBT는 자신의 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에 도전하고 우회해 떨쳐내는 방법이다.

 

● 아름다움은 진리보다도 위대하다?

 

문득 외모의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는 요즘 풍토에서 한 번 생각해볼만한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랐다. 1902년 봄 27세의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프랑스의 위대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으로부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당시 62세인 로댕이 무명의 젊은 외국 시인에게 일을 맡긴 건 릴케의 아내인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가 제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8월 28일 파리에 도착한 릴케는 9월 1일 로댕을 방문했고 이후 거의 매일 작업실을 찾으며 로댕의 삶과 작업을 지켜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듬해 ‘로댕론’을 출간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24세 때 작품 ‘코가 깨진 사나이’(1864). 주로 외모가 아름다운 대상만을 조각하던 당시 풍토에 정면으로 도전한 충격적인 작품으로 릴케가 ‘로댕론’에서 그 의의를 자세히 다뤘다. - 로댕박물관 제공
오귀스트 로댕의 24세 때 작품 ‘코가 깨진 사나이’(1864). 주로 외모가 아름다운 대상만을 조각하던 당시 풍토에 정면으로 도전한 충격적인 작품으로 릴케가 ‘로댕론’에서 그 의의를 자세히 다뤘다. - 로댕박물관 제공

릴케는 책에서 1864년 로댕이 24세 때 발표한, 실질적으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코가 깨진 사나이’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아름다운 남녀를 조각한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시대의 전통을 무시하고 로댕은 ‘늙어가는 추한 남자의 두상’을 제작했고, ‘그때까지도 유일하게 지배적이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관학파들의 요구 조건들을 무모하게 거부한’ 이 작품은 이해 살롱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릴케는 ‘로댕론’에서 “로댕은 얼굴에 현혹되지 않고 육체를 추구했던 사람”이라며 ‘코가 깨진 사나이’에 대해 “이 얼굴에는 어떤 대칭적인 면도 없으며 반복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완성도로 인해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다 보니 문득 로댕이 세속적인 아름다움을 초탈한 사람인 것 같은 오해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다른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조각에 재능을 보였던 카미유 클로델은 당시 파리의 명문 미술학교 에콜데보자르가 여성을 받지 않아 할 수 없이 아카데미 콜라로시에 들어갔다. 소녀의 천재적인 재능을 아까워한 스승 알프레드 부쉐르는 1884년 클로델을 로댕에게 보낸다.

로뎅의 조수이자 모델, 제자 그리고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 로뎅과 처음 만난 20세 때의 모습이다. 클로델이 빼어난 미인이 아니었어도 로댕이 흔들렸을까.
로뎅의 조수이자 모델, 제자 그리고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 로뎅과 처음 만난 20세 때의 모습이다. 클로델이 빼어난 미인이 아니었어도 로댕이 흔들렸을까.

 

로댕의 조수 겸 모델, 제자가 된 클로델은 곧 24세 연상의 스승과 연인이 된다. 오랫동안 내연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1892년 클로델이 유산하면서 결별하고 이후 클로델은 조각가로 독립하지만 정신적으로 힘겨운 삶을 살다 1905년 정신분열증이 발병해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1943년 사망했다. 로댕에게 ‘단물을 빨리고 껍데기만 남겨 버려진’ 여성으로 클로델을 그린 1988년 영화 ‘카미유 클로델’(이자벨 아자니가 클로델을,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로댕을 연기했다)은 로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참고로 필자 눈에는 클로델이 아자니보다 더 미인으로 보인다.

 

위대한 예술가조차 삶의 어느 길목에서만 진화생물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을 뿐 늘 그럴 수는 없었던가보다. 문득 영국 통계학자 조지 박스의 경구가 떠오른다.

 

“통계학자는 예술가처럼 자신들의 모델과 사랑에 빠지는 나쁜 습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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