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화백 별세…끝나지 않은 ‘미인도’ 위작 논란

2015.10.23 14:33

한국의 천재 화가 천경자 화백이 두달 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숨을 거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 화백은 1952년 개인전에서 우글우글한 뱀 그림 ‘생태(生態)’가 주목받으며 단번에 스타작가로 떠올랐습니다. 국내 대표 작가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에 충격을 받아 붓을 놓고 말았는데요. 세간에 많은 논란을 빚어온 위작 스캔들과 진품을 가려내는 과학기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미인도 위작 사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미술계에 여러 위작 논란 속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천 화백의 미인도 사건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인도는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 인물화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아트 포스터를 본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검토해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림의 제작연도부터 소장경위 등을 추적해 진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시간이 지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되살아났습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습니다.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강하게 반발했으나, 자기 작품도 몰라보는 정신나간 작가로 취급받은 데 충격을 받아 예술계를 떠납니다. 그리고 얼마전 천 화백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 사건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천경자 화백의 진품 여부로 논란을 빚은 ‘미인도’ - 천경자 제공
천경자 화백의 진품 여부로 논란을 빚은 ‘미인도’ 

 

고흐, 박수근 등 유명 화가들의 위조품 대거 판별


예술계의 진품 논란은 한두번 있었던 게 아닙니다. 유명한 작가라면 한번씩 크고 작은 위작 논란에 휩싸이는데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디기탈리스 가지를 든 가셰 박사의 초상’은 끊임없이 위작 논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그의 주치의였던 가셰를 그린 그림으로 가셰가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고흐는 그림과 함께 ‘노란색 책과 보라색 디기탈리스 꽃이 놓인 붉은 탁자’라고 묘사한 편지를 남겼는데요. 가셰가 위작 화가로 명성을 떨쳤을 뿐더러, 그림 속에서 노란색 책은 찾아 볼 수 없다는 데서 논란이 시작됐죠.


국내에서는 2005년 이중섭 화백과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 대거 위조품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4년에 걸쳐 이 화백의 작품 1069점, 박 화백의 작품 1765점 등 모두 2834점을 위조품으로 판별했죠. 이때 미술품의 진위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지문 및 필적 감정, 물감 성분확인 시험, 머리카락 DNA 분석 등이 실시되는데요. 이러한 기법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위조품으로 의심받는 ‘디기탈리스 가지를 든 가셰 박사의 초상’. - 오르세 미술관 제공
위조품으로 의심받는 ‘디기탈리스 가지를 든 가셰 박사의 초상’. - 오르세 미술관 제공

 

● X선으로 그림을 찍어본다?


미술품 분석에는 그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빛이 활용됩니다. 특히 인체에 골절을 입었을 때 찍어보는 X선은 미술품 분석에 가장 많이 쓰입니다. 물감이나 도료, 화폭의 성분을 검사해 진위 여부를 가리는 방법인데요. 일례로 세계적인 화가 프란시스 고야의 위조품으로 드러난 한 초상화 역시 X선 분석을 통해 고야의 생전에 있던 물감이 사용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박수근 화백의 위조품들을 X선으로 촬영하자 공통적으로 검출된 티타늄과 규소가 나타났습니다. 이를 주성분으로 하는 미술용 물감은 박 화백이 별세한 이후에야 생산된 것으로서 위조품의 결정적인 증거가 됐죠. 반면에 2007년 서울옥션에서 45억2000만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된 박 화백의 유화 ‘빨래터’는 감정 결과, 진품이라고 판별됐습니다. ‘빨래터’에 사용된 물감은 박수근의 다른 진품에 쓰인 물감과 동일한 것이며 캔버스 천도 1950년 전후의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죠.

 

고야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이 초상화는 X선 촬영 분석을 통해 위조품으로 밝혀졌다. - 위키미디어 제공
고야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이 초상화는 X선 촬영 분석을 통해 위조품으로 밝혀졌다. - 위키미디어 제공

 

● 작가의 메시지까지 꿰뚫어 보는 적외선


진품을 밝히기 위해 적외선 또한 함께 쓰이는데요. 적외선을 쐬면 그림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또 다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물감 아래 그려진 밑그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요. 위조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기 때문에 본 창작가의 작업이나 흔적까지 베끼지는 못하죠.


일례로 1951년 이중섭 화백이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제주 서귀포로 피란했을 때 그린 ‘서귀포의 환상’을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하자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본그림과는 살짝 다르게 표현된 밑그림이 드러나 진품으로 확인된 것이죠. 이러한 적외선 기법은 16세기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가 그린 ‘성모를 떠나는 예수’에 등장한 노인의 얼굴에서도 비밀을 찾아냈습니다. 적외선 촬영에 나타난 노인의 얼굴은 이별의 슬픔이 부각되도록 눈을 움푹하고 처지게 스케치했으나, 물감을 칠하는 과정에서 초연한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중섭 화백의 ‘서귀포의 환상’. 완성된 그림(위)에는 아이가 머리를 젖힌 채 나무를 타고 놀고 있다. 하지만 본래 밑그림(아래)에는 아이가 앞을 보고 있는 형태로 그렸다. - 공주대 제공
이중섭 화백의 ‘서귀포의 환상’. 완성된 그림(위)에는 아이가 머리를 젖힌 채 나무를 타고 놀고 있다. 하지만 본래 밑그림(아래)에는 아이가 앞을 보고 있는 형태로 그렸다. - 공주대 제공

 

● 화가 고유의 그림 그리는 패턴 분석 기법


화가마다 그림을 그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패턴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에릭 포스트마 박사팀이 2004년 반 고흐의 위작을 가려내기 위해 이러한 패턴을 분석해 판별하는 영상분석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요. 국내에서는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김정훈 교수팀이 영상분석 기술을 개발한 사례가 있습니다.


연구팀은 로봇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거나 지문 또는 홍채를 이용해 사람을 인식할 때 쓰는 기술을 이용했습니다. 영상 속에 있는 윤곽선을 아주 잘게 쪼갰을 때 각각의 선이 어떤 각도를 이루는지 분석하거나, 그림 안의 도형이 어떤 조합으로 분포하는지 분석하는 것이죠. 이를 진품과 비교해 차이가 많이 나면 위작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품에서 붓이 덧칠해지는 각도를 측정하고, 다른 그림 속에서 각도가 더 누워졌거나 세워진 경우 위작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아낙네의 옆얼굴 모습(위)이나 이중섭 화백의 그림 속 선(아래)을 잘게 잘라 작가의 고유한 화풍으로 추출해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위작으로 판결난 작품들을 분석해보니 진품과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 - 동아사이언스 제공
박수근 화백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아낙네의 옆얼굴 모습(위)이나 이중섭 화백의 그림 속 선(아래)을 잘게 잘라 작가의 고유한 화풍으로 추출해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위작으로 판결난 작품들을 분석해보니 진품과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 - 동아사이언스 제공

 

● 희미한 지문 하나가 바꿔놓은 가치 


잘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지문 자국 하나가 1만2000파운드(한화 약 2114만 원)짜리 그림을 무려 8333배 이상인 1억 파운드(한화 약 1762억 원) 가치를 지닌 걸작으로 탈바꿈시켰다면 믿어지시나요? 르네상스 시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확실시되는 새로운 인물화가 발견됐습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한 독일 화가가 다빈치 기법을 본떠 그린 것으로 알려지다가, 정밀 감정을 통해 다빈치의 작품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인물화 왼쪽 상단에 남아 있는 지문이었죠. 로마 바티칸 성당의 ‘성(聖) 예로니모’에 찍힌 다빈치의 지문과 ‘매우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로또보다 대박이었던 다빈치의 지문(화살표 표시된 곳). 색연필과 펜, 잉크로 그려진 가로 23cm, 세로 33cm 크기의 ‘르네상스 시대 의상 차림의 젊은 여인’은 다빈치의 그림으로 판명됐다. - 동아일보 제공
로또보다 대박이었던 다빈치의 지문(화살표 표시된 곳). 색연필과 펜, 잉크로 그려진 가로 23cm, 세로 33cm 크기의 ‘르네상스 시대 의상 차림의 젊은 여인’은 다빈치의 그림으로 판명됐다. - 동아일보 제공

 

● DNA, 생체정보 태그가 진품 보장


지문, 머리카락, DNA 정보와 같은 화가 본인의 생체정보는 진품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앞으로는 미술작품의 위조를 방지하는 데 DNA 기술이 적용될 전망인데요. 10여년 전에 이미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 미술가인 프로 하트는 자신의 작품에 DNA 인증표를 삽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구강세포를 체취한 뒤, DNA를 분리하고 디지털 사진 형태의 인증표로 제작해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합니다.


최근에는 기술이 더 발전돼 이 라벨이 제거된 경우에도 진위 여부를 밝혀낼 수 있게 됐습니다. 뉴욕주립 알바니 대학의 유전학 연구팀은 DNA 인증표가 제거된 후에도 분자 형태로 남아있는 DNA 정보를 그림에서 추출해 진품을 인증할 수 있는 기술을 발표했습니다.

 

이때 사용되는 DNA 정보 또한 작가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개별 작품마다 생명공학적으로 합성한 DNA 정보가 들어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증표는 작품의 한 부분에 삽입되며, 그림을 사고 팔 때 이 인증표만 검사하면 진품과 모조품을 쉽게 가려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DNA 인증표가 보급되면, 미래의 후손들은 예술품 진위를 두고 논란에 휩싸일 필요가 없어지겠죠. 한편으로는 이러한 의문도 생깁니다. 진품을 판별하는 과학기술이 지켜주는 것은 예술가의 복제할 수 없는 고유한 예술혼일까요, 아니면 작품 소장자를 대박나게 해줄 경제적인 가치일까요? 천경자 화백이 붓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예술가의 자존심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미술품에 첨부할 DNA 라벨을 개발한 알바니 대학의 연구팀.  - 뉴욕주립 알바니 대학 제공
미술품에 첨부할 DNA 인증표를 개발한 알바니 대학의 연구팀.  - 뉴욕주립 알바니 대학 제공

 

 

[출처 및 참고]
[[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 위작 가려내는 빛의 과학] 동아사이언스 2007년 12월 21일
[Art Forgers Beware: DNA Could Thwart Fakes ] 뉴욕타임즈 2015년 10월 12일
[인물화 속 다빈치 지문 1839억원 대박을 낳다] 동아일보 2009년 10월 14일
[“가짜 그림 꼼짝 마”] 동아사이언스 2009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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